소설리스트

천살검협-266화 (266/334)

EP.267 이부 육장 - 별과 뱀 (9)

* * *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이무백은 빠르게 성장했다.

고작 10년 만에 훌쩍 키가 자라 교와 비슷한 수준이 되었고, 이목구비도 완연한 사내의 선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스승님!”

라고, 이무백은 교를 그리 지칭했다.

“오늘 대련도 잘 부탁드립니다!”

근래 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해내는 일과였다.

이무백은 배움이 아주 빨랐다.

물론 인간과 이무기라는 종의 구분이 있는 이상 여타 다른 부분에서 교를 압도하진 못했으나, 검술의 성장 속도만큼은 교도 놀랄 정도였다.

자연히 떠올리게 되는 말이 있었다.

몇몇 인간은 타고난 영성이 있어 그 종의 한계를 뚫고 다음 경지로 넘어갈 때가 있다던가.

염의 말대로라면 이무백이 꼭 그런 인간일 것이다.

교는 사내와 소년의 경계에 선 필멸자를 마주한 채로 비늘 검을 뽑았다.

“어디까지 했더냐.”

“검기의 수련이요!”

“그래, 기를 검 위에 덧씌워 날을 벼리는 기예를 가르쳤었지.”

교는 멍하니 침잠해있던 정신을 일깨웠다.

염이 참선에 빠져있는 기간이 갈수록 길어지며 교도 마찬가지로 멍해져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방심할 수 없었다.

순수한 검술로 맞붙을 때의 이무백은 교도 긴장시킬 정도로 날카로운 면모를 자랑했으니 말이다.

“오거라.”

“그럼 갑니다!”

퉁, 가벼운 소리와 함께 이무백의 신형이 쏘아져 나왔다.

교는 그의 검을 막고 흘리고 반격하며 공방을 이어갔다.

과정은 치열했으나 결과는 뻔했다.

“흐아! 역시 스승님은 못 당하겠네요!”

이무백은 교를 이길 수 없었다.

아직까지는.

*

염이 참선을 끝낸 것은 그로부터 또 일주일이 흐른 날이었다.

언젠가 그늘진 얼굴을 만들던 염은 어느 순간부터 그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 교가 눈을 떴을 때처럼 해사하게 웃는 얼굴을 이어가기 일쑤였고, 그런만큼 교의 심신도 안정되어갔다.

물론 겉으로는 그랬다.

40년.

천 년이나 되는 이무기의 삶에서 그녀와 보낼 수 있는 나날이 그 정도밖에 남지 않았음은 교에게 너무나도 뼈아픈 일이었다.

집착에 가까운 마음이 일었다.

교는 때때로 그런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참선했다.

“이번엔 반년이구나.”

“응, 슬슬 승천을 준비해야지.”

늦출 수는 없는 것이냐.

교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질문을 띄워 올리고, 다시 삼켰다.

수행을 마친 이무기는 승천해야만 했다.

그리하지 않으면 쌓아온 모든 영기를 잃고 미물, 혹은 마물로 타락하게 된다.

교는 지금처럼 밝은 그녀의 곁에 있고 싶은 것이지, 타락한 그녀를 곁에 두며 과거를 추억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러한가.”

교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염이 싱긋 웃으며 손을 뻗었다.

새하얀 손은 치렁치렁한 교의 머리칼을 쓸어올려 이마 쪽을 드러내었다.

“너도 이제 뿔이 자라기 시작하는구나.”

“첫 번째 단을 만들고 있다.”

“40년이면 완성되겠네.”

교의 이마, 관자놀이 쪽엔 검은 비늘이 볼록 솟아올라 뿔의 형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이 뿔은 염의 것처럼 크고 아름답게 뻗어날 것이었다.

교는 그게 싫었다.

이 뿔의 크기를 대조할 때면 서로의 시간이 다름을 깨닫게 되는 까닭이었다.

“손, 치워라.”

“까칠해라.”

염은 순순히 손을 떼어냈다.

그녀는 지그시 웃음을 흘리다 냇가 쪽을 바라봤다.

교도 마찬가지로 시선을 옮기고 안력을 집중하니 저 멀리 이무백이 옷을 빨래하고 있는 게 보였다.

교는 문득 입을 열었다.

“저놈을 가르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응?”

“네 말대로 인간 중엔 특출난 것이 있다. 선계에 달할 정도로. 그리고 이무백이 딱 그런 재능이다.”

“그치?”

“알고 있었나?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교는 그녀가 곧장 그렇다고 대답할 줄로 알았다.

그녀 정도의 영기를 쌓은 이무기는 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혜안을 가지는 법이니, 천기를 읽는 정도는 금방 할 수 있을 게 뻔한 까닭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녀는 언젠가부턴 보이지 않던 그늘을 일순 드러내다, 이내 장난스럽게 말했다.

“천기누설은 금기야.”

교는 욱하는 마음을 띄워 올렸다.

아직 60년 묵은 이무기인 교는 그 금기를 침범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간악한 것.”

“이무기는 간악해. 용이 되기 전까지는.”

다시 생각해보면 그랬다.

“그러니까 간악한 게 맞지. 너도, 나도.”

그녀의 말은 실로 옳았다.

끔찍할 정도로 말이다.

*

5년이 더 지나 이무백은 완전한 청년이 되었다.

그쯤의 이무백에겐 신체적인 변화 외에도 정신적 변화가 함께 일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영산을 나가보고 싶습니다.”

인간인 이무백에게 영산의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인 풍경은 언젠간 지루해질 종류였으니 말이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짧은 시간을 살아간다.

그 시간 동안 치열하게 자라고 치열하게 늙으며 스스로를 불태워 소멸하는 종이다.

하나,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허한다.”

교는 그 뜻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째서입니까?”

“위험하다. 그리고 네놈은 완성되지 않았어. 영기조차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몸으로 뭘 하겠다는 것이냐?”

영산의 영험함이 자연지기를 그의 몸에 채워주고 있으나 교가 보기엔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정도였다.

자연지기와 영기는 다르다.

영기는 그 자체로도 생물이 가진 영성을 일깨워 자연과의 깊은 소통을 이끌어내는 기운이었다.

교는 이무백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경지가 되어야 어디서 객사하진 않으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물론 이무백이 그런 일을 쉬이 납득할 리가 없었다.

그의 얼굴이 불퉁해졌다.

교는 물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이곳 생활에 모자람은 없을 텐데.”

먹거리가 부족한 게 아니다. 안락한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위협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산의 영험함이 선천진기를 견고히 다져주기까지 한다.

한데 대관절 무엇이 그리 불만스러워 산을 나가겠다 이르는 것인지.

교는 도통 이무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 이무백은 답했다.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음?”

“이곳엔 저와 같은 인간이 없지 않습니까. 저는 인간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의 눈동자엔 애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스승님과 염님은 용이 되실 분들이십니다. 저와 같은 시간을 살지 않으시겠지요. 저는… 그게 싫습니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며 함께 세월을 흘려낼 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왜일까.

교는 웃기지도 않는 소리라 일갈할 수 없었다.

아무렴, 그의 마음이 꼭 자신의 것과 닮아있지 않던가.

서로 한 공간에 있음에도 다른 시간을 살아가야 함이, 그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함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교는 이미 알고 있었다.

“….”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이무백이 고개를 숙여 절했다.

교는 그의 무력에 대한 불신과 떠오른 공감 사이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갈팡질팡했다.

염이 나타난 것은 그 순간이었다.

“보내주자.”

“염님?!”

“무백이도 이제 다 컸는데 하고 싶은 것 정도는 하게 해줘야지.”

염이 싱긋 웃으며 이무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무백은 크게 감격하여 환하게 웃었다.

“정말이십니까?!”

“이놈은 너무 약하다.”

“인간 중에선 강할 거야.”

“인간 중에서도 최고는 아니다.”

“모두가 최고가 되어야만 세상에 나설 수 있다면 세상엔 누구도 존재하지 않을 거야.”

교와 염의 의견이 충돌했다.

이무백은 사이에 끼여 어쩔 줄 몰라 했고, 염은 여유로웠으며 교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나, 교로서도 완고한 거절을 내뱉을 마음은 없었다.

염은 그런 마음을 아는 것인지 이무백에게 말했다.

“무백아.”

“예!”

“나는 널 참 아낀단다. 교도 그럴 거야. 너는 우리가 갓난 아이 때부터 키워온 아이니까. 이르자면 우리가 너의 부모가 되는 거지.”

“예! 저도 두 분을 부모라 생각합니다!”

“그래, 그래서 교가 걱정하는 거야. 나도 물론 걱정이 돼. 하지만 붙잡아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뿐이구.”

염이 이무백을 품에 안아 토닥였다.

“그러니까 약속 하나만 해줄래? 꼭 다치지 말아야 한다?”

“당연합니다!”

교는 그 꼴을 불퉁하게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흐뭇함을 어딘가에 숨기고 있었다.

사실 염보다 더 이무백과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이 교였던 만큼, 그 애정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

“못난 놈, 웃지 마라.”

“걱정하실 일은 없도록 꼭 안전하게 세상을 보고 오겠습니다!”

“오지 마라. 그냥 아주 나가 살아라.”

“예! 꼭 돌아오겠습니다!”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군.”

교는 흥! 코웃음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염은 그 모습에 쿡쿡 웃었고 이무백은 설렘 때문이지 붉어진 얼굴로 들썩거렸다.

“그럼 당장 가보겠습니다!”

“당장은 안 된다. 자고 일어나서 든든히 먹고 난 다음 출발해라.”

“앗! 알겠습니다!”

그리 이무백의 하산이 결정되었다.

그날 밤이었다.

마음이 심란해 냇가를 걷던 교는 발견했다.

“…아.”

쪼그려 앉은 염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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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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