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2 이부 일장 - 출두, 만남 (12)
* * *
아이의 눈이 참 동그랗다.
볼은 말갛고 짓는 미소는 개구지다.
“아빠십니다!”
조막만 한 손으로 남궁진천을 가리키며 외치는 목소리 또한 앳되다.
그게 문제였다.
남궁진천이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냔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남궁진천이.
새록새록 남궁진천의 어록이 떠오른다.
-나는 도발 따위에 넘어가지 않는다.
-어미가 없나 보군.
-와라, 구역질 나는 창녀.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그럴수록 괴리감은 더욱 짙어져갔다.
목리원은 혼란에 현실을 의심했다.
‘꿈인가?’
“꿈인가?”
당화서가 눈을 비비고 있었다.
그러다 실눈으로 남궁영을 바라봤고, 그것으론 모자란 것인지 뺨을 찰싹찰싹 치고 있었다.
목리원은 물었다.
“입양하셨소?”
“내 딸 맞다.”
목리원은 남궁진천의 새파란 눈동자나 심드렁한 얼굴, 그리고 굳게 닫힌 입매를 한참이나 보다 다시 남궁영을 바라봤다.
역시 안 닮았다.
“…아니.”
콧날이 좀 닮긴 했나?
고민하던 중이었다.
“…!”
목리원은 남궁영을 자세히 뜯어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닮은 부분이 있었다.
“무, 무골이구려…!”
“내 딸이니까.”
세상에 이리 어린 소녀에게서 무재가 느껴진다.
타고난 골격이 참으로 검을 휘두르기에 적합하다.
얼굴은 닮지 않았으나, 그 골격이 남궁진천과 꼭 빼닮은 것이다.
한참이나 남궁영을 바라보던 중, 그제야 목리원은 아이의 어머니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 하오….”
“쉿.”
흡! 하고 목리원의 숨이 들이켜졌다.
흘긋 보니 남궁진천이 서예의 정체를 딸에게 말하지 않는 모양.
그러고 보니 서예는 어디 있는 것인가.
그 여인이 정파의 구역이라 해서 안 올 리는 없는….
“저 찾으세요?”
문을 열고 서예가 들어왔다.
그녀는 목리원의 기억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엄마야!”
남궁영이 달려가자 서예가 안아 들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웃는 얼굴이 부정할 수 없는 어머니의 것이었다.
이리 보니 남궁영이 모친을 꼭 닮았구나.
그랬구나.
그랬구나.
목리원은 이해를 해보려 했으나, 영 쉽지 않았다.
“목 아우, 이해하네.”
제갈산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목리원은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했다.
아무튼,
“이렇게 인사드리게 됐네요. 저희 혼인해요.”
서예가 말했다.
뭔가 이상한 말이었다.
혼인 ‘했어요’가 아니라 ‘해요’인 게 그랬다.
“…그러시구려.”
목리원은 생각하길 그만뒀다.
“계십니까!”
뒤이어 일운과 혜운이 들어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얼굴에 반가워야 마땅한데, 인사를 나눌 틈도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남궁영의 존재감이 공간을 지배했다.
그것은 지독한 진법, 혹은 환술이었다.
일운과 혜운조차 남궁영을 보는 순간 바짝 굳어버렸다.
“내가 뭘 잘못 보고 있나?”
혜운이 주먹으로 제 턱을 갈겼다.
안타깝게도 꿈이 아니었다.
*
상황이 정리되기까진 꽤 시간이 걸렸다.
이 상황과 가장 닮아있는 경험을 꼽으라면 목리원은 당문의 금지에 들어가며 진법을 통과한 날을 고를 터였다.
모두가 멍한 얼굴로 현실을 부정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암만 생각해도 그때의 일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내가 늦었다고? 저 병신보다?”
혜운이 가장 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식이 무너져내린 듯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덜덜 떨었고, 일운은 그 옆에서 생각이 많은 얼굴로 남궁영을 바라봤다.
제갈산은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그리 술을 좋아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됐다.”
“됐다!”
남궁진천은 무릎 위에 남궁영을 앉힌 채로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게 참 안 어울렸다.
그런 와중, 역시 가장 목리원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당화서였다.
“아이가 참 어여쁘군요.”
“내 딸이니까.”
“검룡, 당신을 안 닮아서 다행입니다.”
“도발인가?”
“입 다무십시오.”
“….”
장난스레 말하고 있지만 목리원은 알았다.
당화서의 기색엔 숨길 수 없는 씁쓸함이 감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문의 주인, 중원에서 제일가는 독공의 사용자, 만독불침의 몸.
그런 화려한 수식어를 얻은 대가로, 당화서는 남들이 당연히 가지는 한 가지를 희생해야만 했다.
스스로가 원치 않음에도 말이다.
“이모?”
“아줌마다.”
“검룡, 나 좀 봅시다.”
“이모다.”
당화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이라 말했음에도, 그에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없는 몸이었다.
목리원은 그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스스로 그런 사실을 말하기까지 당화서가 얼마나 홀로 괴로워했는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하는 것조차 실례가 될 것만 같은 기분에 가만 입을 다물던 중이었다.
“그래서 어쩌다 생긴 것이오? 이제와서 혼인한다는 건 또 뭐고?”
회복이 빠른 제갈산이 물었다.
분위기가 전환됐다.
남궁진천은 말했다.
“어쩌다 생겼다. 비무행을 하느라 가문에 미처 말하지 못했고, 이제야 허락을 받았다.”
“반대는 안 하셨소?”
“엄청 좋아하시던데요.”
서예의 말에 제갈산이 중얼거렸다.
“하긴, 저 인간을 누가 데려간다고.”
“도발인가?”
“칭찬이오.”
“그렇군.”
“사람이 한결같구려.”
제갈산이 허허롭게 웃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풀어지기 시작했다.
“마셔야겠어요. 그래야 꿈에서 깨겠죠? 이게 사실일 리가 없잖아요.”
혜운이 술병을 나발째로 불었다.
당최 애초에 비구니인 인간이 왜 혼인과 출산에 경쟁심을 가지는지부터가 의문이었으나 어쨌든 혜운은 술에 몸을 절였고, 일운은 곤란한 듯 웃었다.
남궁진천과 서예는 화목했고 남궁영은 어여뻤다.
당화서는 기색을 티내지 않으려 애써 밝은 척을 했고, 목리원은 그랬다.
“축하하오.”
그래도 축하할 일이라는 생각에 한껏 웃어줬다.
*
용봉단 전원이 재회한 자리라 그간의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다.
그러다 보니 늦은 저녁이었다.
당화서는 목리원과 함께 제갈 가의 장원을 나섰다.
당문의 장원이 있는 곳까지 걷는 걸음은 느릿했다.
“아이가 참 귀엽더군요.”
적적한 것이 묘하게 어색해 말하니 목리원이 한발 늦게 답했다.
“그렇더구려.”
“한데 걱정입니다. 아비가 검룡이라. 어떻게 인간이 변한 게 하나도 없지 않덥니까?”
“하오문주가 똑부러지지 않소.”
“그래야 할 텐데 말입니다.”
한낮의 열기가 다 가신 골목은 어둠 아래서 찌르르 새가 우는 소리만이 적적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따금 말이 끊어질 때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침묵이 어깨를 짓눌렀다.
터벅, 터벅, 발소리만이 가볍게 울린다.
그런 중, 목리원은 돌연 입을 열었다.
“훗날, 말이오.”
당화서의 시선이 목리원을 향했다.
“예?”
“아주 먼 훗날의 얘기요.”
그는 부드러운 얼굴로 앞을 보며 걷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당화서는 그 낯선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마교와의 전쟁이나, 강호의 사건사고를 해결하면 이제 은퇴를 결정해야할 시기가 우리에게도 올 것이오. 여태까지의 모든 선배들이 그러하지 않았소.”
당화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목리원이 말했다.
“그때가 되면 소저와 하고 싶은 게 있소.”
목리원의 고개가 당화서를 향했다.
달빛을 등진 모습이 차가워 보일 법도 한데, 그의 얼굴 위로 떠오른 미소 탓인지 그림자 진 얼굴이 참 따스하게만 보였다.
하여 당화서는 물었다.
“무엇입니까?”
“무관을 차리는 것이오.”
우뚝, 당화서의 걸음이 멎었다.
목리원 또한 걸음을 멈추고 당화서를 향해 몸을 돌렸다.
여전히 따스한 미소를 한 채로.
“아이들을 가르쳐보고 싶소. 대단한 신공 말고, 그저 저잣거리에 돌아다니는 무공이라도 제대로 가르치는 그런 무관 말이오.”
당화서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은 지금 나를 위로하는 거구나.
모를 수 없을 만큼 목리원은 진심을 부딪쳐오고 있었다.
“무공보다 마음의 수양을 가르칠 것이오. 사람 된 도리와 무인의 마음가짐과 협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습관을 길러줄 것이오. 그리하여 아이들이 바른 어른으로 자라게 이끌어주고 싶소.”
단순히 위로를 해주려는 것은 아닐 터였다.
아마, 이 말을 하기 전에 정말 그런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렸겠지.
그리해야만 이토록 막힘없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내였으니 말이다.
“한데 내가 좀 일머리가 없지 않소. 검을 가르치고 마음을 가르치는 것은 자신있으나, 무관을 어떻게 짓고 어찌 운영할지는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게요.”
부끄럽다는 듯 머쓱하게 웃는 얼굴이 왜인지 망막에 깊이 새겨진다.
“하여 소저에게 부탁하고 싶소.”
그가 내민 손이 제 손을 감싸는 것에 당화서는 괜히 시큰거리는 감정을 느꼈다.
“먼 훗날에, 그런 날이 오면 말이오. 나를 조금 도와주실 수 있소?”
참으로 간질간질하게 속에 스며드는 말이었다.
이렇듯,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어찌 스스로도 잘 파악하지 못한 마음을 꿰뚫어 보듬어주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목리원은 그랬다.
7년이 지났으나, 그런 점만큼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목리원은 물었다.
그러다 실눈으로 남궁영을 바라봤고, 그것으론 모자란 것인지 뺨을 찰싹찰싹 치고 있었다.
“입양하셨소?”
그게 못내 우습고 기꺼워, 당화서는 작게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귀여운 구석이 있으십니다.”
“응?”
“아닙니다. 부탁은 생각해보지요.”
목리원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이게 아닌데?’ 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게 분명한 얼굴이었다.
당화서는 맞잡은 손을 깍지꼈다.
“가지요.”
그리 밤거리를 걸었다.
말은 어느새 끊겼으나, 그 전처럼 침묵이 무겁게 느껴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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