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5 십칠장 - 임무, 잠행 (6)
* * *
흑사련주 만악 도은강.
이 사내의 삶을 설명하는 데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태어난 지 하루 만에 길바닥에 버려진 고아.
그를 키운 것은 흑도의 어느 방파였고, 키운 이유는 혹여 있을 흑도끼리의 분쟁에 첩자로 키우기 위함이었다.
아이일수록 충성심을 키우기 쉽다. 흑도에선 꽤 널리 퍼진 말이었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무공을 배우고 그런 이유로 무럭무럭 자라 도은강은 마침내 임무를 받게 됐다.
그를 키운 흑도와 영역 분쟁을 하던 이들의 소굴에 잠입한 것이다.
그날 도은강은 생각했다.
‘이들이 더 강하다.’
상대 흑도가 더 강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들 편에 붙어야지.’
그에겐 충성심이랄 게 없었다. 아니, 충성심을 포함한 그 어떤 감정도 없었다.
그는 타인들이 감정이라고 말하는 무형의 자산을 조금도 실감하지 못하는 사내였다.
그러니 따지는 것은 효율이다. 눈으로 보이는 재물과 전력, 그리고 승패 따위의 것들이다. 그저 생존하기 위하여, 무엇도 느끼지 못하는 채로 당연하다는 듯 인의를 저버리는 것이다.
“저는 첩자입니다.”
도은강은 결심을 내린 직후 방주를 만나 자신이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왔으며 자신을 보낸 상대는 누구고 왜 이런 것을 말하는지까지 모두 그에게 말했다.
“거둬주십시오.”
도은강은 고개를 조아렸다.
방주는 물었다.
“어떻게 첩자를 믿으란 말이지?”
“이곳이 흑도이기 때문입니다.”
“음?”
“흑도는 이익을 가장 우선으로 추구하는 이들의 땅이 아닙니까? 한데 어째서 방주께선 이익 외의 신의를 논하십니까.”
방주, 그러니까 당시 흑도에서도 꽤 입지가 있던 방파인 흑룡방(黑龍幇)의 방주 구배선은 도은강의 당돌함에 크게 흡족해했다.
“훌륭하군! 좋다. 내 너를 들이마!”
감정은 느껴지지 않음에 바라는 것은 이익,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부모와 같은 이들을 내치는 잔혹함은 그야말로 흑도 무인의 본이라고 할 만한 하다.
라고 말한 구배선은 비단 도은강을 거두어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스승 자리까지 자처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너는 최고가 될 것인 까닭이다!”
“그것이 거둬들인 이유가 됩니까?”
“그럼!”
구배선은 그 이상을 말하지 않았다.
도은강은 이유를 굳이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구배선의 단언대로 도은강은 최강이 되었다.
언제든 흑사련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주인이 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날 도은강은 구배선을 죽였다.
“끄흐흐흐…!”
구배선은 웃었다.
도은강은 물었다.
“놀라지 않으십니다. 배신감을 느끼지도 않으십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럴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왜 반격하지 않으셨습니까.”
“나의 피가 흑사련주의 옥좌에 스며든 까닭이다.”
그 말대로였다.
구배선은 옥좌에 앉은 채로 죽어가고 있었고, 도은강은 그런 그를 올려다보는 상황이었다.
와중 구배선은 말했다.
“흑도(黑道)다. 검을 흑, 속 시꺼먼 버러지들이라는 뜻이다. 하나 그 버러지들의 집단이라 한들 머리는 머리다. 최고는 최고이며 지존은 지존이다. 나는 지존의 좌에 한순간이라도 앉을 수 있었던 것으로 족하다.”
“스승님의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 앉았다. 참으로 흑도 다운 방식으로.”
도은강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야망과 열망, 도은강에겐 멀기만 한 이야기였다.
“이제 당신을 치워도 되겠습니까?”
“아니,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이곳에 두어라. 한낮 첩자에 불과했던 너를 흑사련의 주인으로 만들어준 값, 계산을 치러야만 한다.”
구배선의 마지막 말 만큼은 도은강도 이해할 수 있는 형태였다.
도은강은 기꺼이 그 일을 수행했고 구배선은 소원대로 옥좌에서 최후를 맞았다.
도은강의 시대가 왔다.
하나 도은강은 그것에 어떤 만족감도 느끼지 못했다. 조금 더 생존에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는 감상뿐이다.
그는 흑도의 땅 각지에 있는 영약을 긁어모았다. 흑사련에 있는 모든 무공을 접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공을 창안했다.
그것이 도은강을 초월로 이끌었다.
하나 도은강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생존을 위한 환경의 변화만을 추구했고, 그것이 충족되자 이익을 추구했다. 도은강 스스로도 아는 사실이 있는 까닭이다.
자신은 흑도에나 어울리는 사람이며 이 땅에서나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불만, 그 또한 느끼지 못했기에 도은강은 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시간을 죽일 뿐이다.
그렇기에 목리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
“왜지?”
도은강은 목리원에게 물었다.
그의 답이 이치에서 벗어나 있는 까닭이다.
“재물을 더 원하나? 줄 수 있다.”
“필요없소.”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명예를 원하나? 그 또한 줄 수 있다.”
“그 또한 필요없소. 정확히는 흑도로서의 명예가 필요 없소.”
도은강은 목리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환한 낯빛이나 공경을 담은 어조, 분명 백도 무인의 것이라 할 만하나 그의 속에 든 것은 살귀다.
도은강이 이제껏 봐온 이들 중 가장 본인과 닮은 이가 바로 목리원이란 말이다.
도은강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사내는 백도가 아닌 흑도가 어울린다. 이곳에서나 본성을 내보일 수 있는 사내다.
목리원이 자신을 추월하여 뒤통수를 칠 걱정은 하지 않았다.
싹이 보이는 순간 내칠 생각인 까닭이다.
초월을 넘기 전이라면 얼마나 대단한 살귀이던 죽일 자신이 있는 까닭이다.
‘눈치챈 건가?’
그것은 아닌 듯했다.
도은강은 재차 물었다.
“어째서지?”
돌아오는 답은 도은강의 이해에서 아득히 벗어난 형태였다.
“협에 맞지 않기 때문이오.”
협(俠).
도은강은 당장 그것을 부정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쫓는군.”
“분명 존재하오.”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오?”
“그것엔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분명 가치가 있소.”
“아니, 없다. 가치란 즉슨 대상이 품고 있는 이익으로서의 기능성이다. 하지만 협에는 이익이 존재치 않는다. 그 속에 있는 것은 오로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만족감뿐이다.”
“그게 나쁜 것이오?”
“손해가 된다면 나쁜 것이다.”
목리원의 입이 다물렸다.
도은강은 설득의 가능성을 봤다.
목리원은 꽤 좋은 검이었다. 쓸 만하다 이상으로.
포기하는 것보단 회유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
“다시 권유하지. 흑도가 되어라.”
“다시 거절하겠소.”
“이유는?”
“역시 협이오.”
말이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도은강은 눈을 좁혔다.
이런 권유법은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방법을 바꿔야지.
“그럼 너를 죽여야겠군.”
“당신은 그리할 수 없소. 백도의 초월을 적으로 두면서까지 나를 죽이고 싶진 않을 것이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당신의 안정이 깨질 것인 까닭이오. 틀렸소?”
“맞다.”
협박도 불가.
그렇다면 정녕 방법이 없는 것인가.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협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지. 련주께선 협에 존재하는 가치가 없다고 말하였소. 한데 나는 협이 가치 있음을 증명할 자신이 있소. 그러니 내기를 하는 것 어떠오?”
도은강은 꽤 좋은 방편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좋다. 증명은 어떤 식으로 할 것이지?”
“결과로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니오?”
도은강은 감정에 호소하는 주장이 어떤 허점이 있는지를 알았다.
“미리 약속하지.”
“무엇을 말이오?”
“증명해야 할 것은 이익으로서의 가치다. 감정적인 만족감이 아닌 물질적인 이득, 혹은 그에 준하는 이득을 주어야만 협에 가치가 존재함을 인정하겠다.”
“좋소.”
“자, 어떻게 증명할 셈인가.”
“그 전에 조건을 말해야하지 않겠소?”
“내 조건은 이른 대로 네놈이 흑도가 되는 것이다.”
“내 조건을 말해야겠구려.”
목리원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협에 가치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날, 한 번은 협을 위해 싸워주시오.”
“한 번인 이유는?”
“당신은 평생을 약속하면 지키지 않을 사람으로 보이는 탓이오. 그것은 당신의 계산에 옳지 않겠지.”
“맞다.”
통찰력은 있는 건가.
도은강은 목리원에게 더 높은 가치를 매겼다.
“그래서 내기 내용은?”
“나의 행보를 지켜봐 주시오. 7년.”
“늦다. 5년.”
“6년으로 하지.”
“그날 네놈이 초월에 올라 나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내기는 의미가 없어진다. 네놈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면 될 일이니.”
“그러지 않을 것이오.”
“믿을 수 없다.”
“그럼 믿을 수 있는 계약의 증거를 들이밀도록 하지.”
목리원이 묶은 뒷머리 끝을 한 줌 검으로 잘랐다.
그리고 끈으로 묶곤 손가락을 베어 머리칼에 피를 묻혔다.
“이것을 증거로 건네겠소.”
“무슨 의미가 있지?”
“내가 약조를 위해 이런 것까지 건넸다는 의미. 못 미더우시다면 계약서를 쓰도록 하지.”
“계약서가 좋겠군. 그것도 일단은 받도록 하겠다.”
도은강은 문지기를 불러 계약서를 준비했다.
그 위로 계약사항을 적은 후 지장을 찍었다.
“찍어라.”
“알겠소.”
목리원 또한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두 사람 다 피로 지장을 찍었다.
도은강은 말했다.
“내 피가 흘러나오는 순간 네놈은 살기를 띠워 올렸다. 역시 네놈은 흑도가 어울린다.”
“틀렸소. 나는 백도가 어울리오.”
“우둔하군.”
“신념이 있는 것이지.”
“…계약서의 효력은 우리 두 사람 모두의 숨이 거둬지는 날까지다. 혹여 네놈이 나를 넘어 계약서의 파기를 위해 찾아온다 한들 나는 이것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네놈 주변에 눈을 심어 내게 다가오려는 순간 이것들 백도 전체에 퍼뜨리지.”
“그리하셔도 좋소.”
“6년, 증명하지 못한다면 자결해라.”
“그리 내용을 바꾸셨더구려.”
“6년이면 네놈이 날 뛰어넘을 테니까.”
“과찬이시오. 고맙소.”
도은강은 부드럽게 말을 넘기는 목리원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목리원은 기꺼이 그 시선을 받아냈다.
그런 상황인지라 의문이 떠오른다.
“어째서냐.”
“무엇이 말이오?”
“왜 굳이 내기까지 하며 이것을 증명하려 했나. 너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다. 너는 짊어지지 않아도 될 위험을 짊어졌다. 내가 협의를 위해 한번 싸우는 일은 생존보다 중하지 않다.”
“중하오. 내게는 그것이 더욱.”
도은강은 목리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전히 감정은 움직이지 않으니 그 이유는 당연히 미지에 대한 경계다.
목리원은 그런 도은강에게 말했다.
“협. 그것이 가치가 없다면 나는 살아있을 이유가 없소. 예컨대 나의 삶을 위해서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느꼈을 뿐이오.”
뜻모를 말이었다.
하지만 도은강은 그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미리 애도를 표하지.”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도록 해보겠소.”
목리원은 등을 돌렸다.
도은강은 생각했다.
‘6년은 길다.’
목리원은 가치가 있다.
쥘 수 있다면 손안에서 굴릴 수 있을 때까지 굴리고 싶었다.
하지만 계약은 이리 완성된 상황.
‘가지지 못했으니 죽이는 게 맞다.’
이윽고 나온 판단은 그랬다.
‘손해를 봤군.’
시간을 손해 봤다. 사람을 손해 봤다.
도은강은 차를 따라 마셨다.
차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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