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6 십오장 - 임무, 추격 (6)
* * *
최초엔 실망했다.
천살성을 가지고도 겨우 절정에, 막상 싸우니 공격에 살의가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 미진함은 곧 기대로 바뀌었다.
‘얼마나 더 강해질까.’
억제함에도 새어 나오는 살의가 저 검에 더해진다면 얼마나 더 강해질까.
얼마나 더 두려워질까.
싸우는 중에도 성장하는 게 보이니 패웅추의 속엔 그런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렇기에 살렸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경지를 올리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목리원은 패웅추의 기대에 부응했다.
18세 초절정.
목리원이 이룩한 그것은 위광천도 해내지 못한 위업이었다.
마침내 만난 순간 이리도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니 패웅추의 속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환희로 차 있었다.
“더 강하게!”
패웅추가 주먹을 뻗었다.
목리원이 검면으로 그걸 흘리고 곧장 허리를 향해 왔다.
“어딜!”
쾅! 허리에 두른 마기가 충격을 상쇄한다.
그대로 목리원의 안면에 정권.
목리원이 검집을 들어 막아낸다.
“아주 잘 여물었구나.”
“그딴 말이나 듣자고 경지를 올린 것이 아니다.”
“그렇다 한들 찬사받아야 마땅한 법!”
쿵!
패웅추가 바닥을 밟자 순간적으로 땅이 울렸다.
주먹을 뻗자 실린 마기에 공기가 울었다.
‘피하겠지.’
목리원의 검술은 기이하다.
마치 어디로 권을 뻗던 그것이 갈 자리를 훤히 꿰고 있다는 듯 가장 적절한 조치를 해오는데, 그 탓에 정타를 먹일 수가 없었다.
고민은 깊어진다.
어떻게 저 방어를 뚫을까.
섬찟하게 날아드는 검을 막을까.
이윽고 패웅추는 답에 도달했다.
‘지금은 불가능.’
그렇다면.
‘더 높은 경지를 바라봐야 한다.’
패웅추의 미소가 짙어졌다.
‘좋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존본능에 의해 성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깨달음은 순간에도 수십 개씩 몰아치고 그것들이 일 순간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손에 쥐기 어렵지만, 패웅추는 그 상황 속에서도 능히 깨달음을 손에 쥘 수 있는 사내였다.
이미 그것을 경험해본 까닭이다.
한번 해본 일을 두 번이라고 못 하겠느냔 말이다.
“전력을 발휘해봐라!”
라고 하자 목리원의 기세가 더욱 거세졌다.
“바란다면!”
외침과 동시에 짓쳐 드는 검은 더욱 사나워진다.
온다.
검이 오고 죽음이 오고 허무가 온다.
하지만 그것이 두렵지만은 않다.
마침내 묵색의 기파가 실린 검이 어깨에 닿는 아슬아슬한 순간.
“왔다!”
패웅추는 깨달음을 얻었다.
‘검은 즉 검수의 의도에서 놀아나는 도구이니!’
검수를 노려 무용하게 만들면 그만인 일이다.
패웅추는 어깨 위로 마기를 두르고 팔꿈치로 목리원의 팔뚝을 쳐올렸다.
쿵!
또 한 번 일대를 휩쓰는 충격파가 인다.
패웅추는 마기를 정련했다.
‘심상이라!’
초절정에 오름으로서 마음속에 품게 된 심상이 있다.
구체화하고픈 미래가 있다.
목리원이 거리를 벌린다.
기회였다.
패웅추는 호흡을 가다듬은 후, 몸 위로 마기를 덧씌웠다.
“투쟁이다!”
영원한 투쟁, 혹은 찰나의 환희.
그 아슬아슬한 간극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 곧 바라는 삶일지니.
“투귀(鬪鬼). 이것이 내가 바라는 이상이다.”
마기가 패웅추의 몸을 감싸며 갑주처럼 굳어졌다.
“자, 천살성.”
패웅추는 물었다.
“네놈은 무엇을 품었나.”
자세를 다잡으며 달려들 준비를 했다.
목리원은 한껏 사나워진 얼굴로 묵색의 기파를 공간 전체에 덧씌웠다.
*
검게 물든 공간이 떠오른다.
목리원은 그것들을 헤쳐 나가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리할수록 목리원의 몸 주변이 새하얗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유성만리(流星萬里).
이 강호를 내달리며 빛나는 별이 되고자 몸뚱어리를 다 태워 올리겠다는 각오를 형상화한 목리원의 심상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목리원은 더욱 선명히 느꼈다.
‘이대로는 꺾을 수 없다.’
패웅추의 몸 위로 덧씌워진 마기가 사뭇 단단하다.
아마 검으로 깎아낸다 한들 다시금 수복할 터다.
허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목리원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까드드득!
검과 갑주가 부딪친다.
그 순간, 목리원은 억제해두었던 천살성의 금제를 풀었다.
‘보인다.’
살로가 보인다.
이대로 긁어 올리며 목덜미의 동맥을 가르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힘이 모자란가?
아니다.
공력은 계속해서 차오르고 있었다.
극마지체가 패웅추의 마기를 씹어 삼키며 몸에 활력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고민할 일이 무엇이 있겠나.
‘동맥 앞으로.’
노골적으로 그곳을 노리며 검을 그어 올린다.
막기를 강요한다.
갑주에 사용되는 내공의 총량이 정해져 있음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자명한 사실.
목리원은 목덜미에 마기가 몰리는 순간 방어가 약해진 다른 부위로 검을 꺾을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적인 관측이었다.
‘이런…!’
패웅추는 목덜미를 막지 않았다.
그 순간조차 주먹에 마기를 더해 뻗어내고 있었다.
그는 말하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주먹 한 대를 꼽겠다고.
‘낭패.’
목리원은 황급히 검을 물리며 고개를 꺾었다.
관자놀이를 노린 주먹이 허공을 스쳐 지나간다.
“계집아이처럼 굴지 마라!”
쿵!
패웅추가 목리원의 몸을 발로 차서 밀어냈다.
“있는 힘껏! 목숨을 걸어서 덤비란 말이다!”
거리가 벌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다시 한번 패웅추가 달려든다.
목리원은 크게 검을 휘두르며 간격을 유지했다.
그가 노리는 방향 정도는 천살성이 살기의 형태로 일러주기에 얼마든지 알 수 있었다.
명치를 노리는 척하며 턱.
정직하게 허리.
그리고 무릎을 노리는 척 사타구니.
때로는 우직하게, 또한 때로는 간사하게 수십 수백의 변화를 거치며 패웅추의 권각이 이어졌다.
갈수록 힘이 빠지는 것이 옳을 텐데 패웅추는 그런 상식을 비웃듯이 갈수록 기세를 더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성장 중이다.’
그는 이 순간 생사의 갈림길에서 깨달음을 수집하고 있다.
자신을 양분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안 될 일.’
목리원이 더욱 거칠게 패웅추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챙, 채쟁, 채재쟁.
검에 속력을 더한다.
인지를 벗어나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연격을 이어간다.
만련이검 1식, 탈혼번쾌.
목리원의 신형조차 일그러질 정도로 몰아치는 검이 패웅추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얕구나!”
하나 역시 갑주의 형태로 굳어진 마기를 뚫기엔 얕았다.
그렇다면 전법을 바꾼다.
목리원은 방어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간격을 좁히며 패웅추의 공격을 유도했다.
그렇게 쏘아지는 권각을 검면으로 빗겨내며 자세를 천천히 무너뜨린다.
이윽고 작은 틈이 드러난다.
목리원은 그 틈을 찌르고 들어갔다.
흐름을 끊어 무장을 해제하는 만련이검의 2식, 지사허류였다.
“요행은 불가하다!”
흡! 하고 숨을 들이쉰 패웅추가 갑주 전방으로 마기를 덧씌웠다.
까아앙!
이번 시도 역시 불발.
역시 패웅추를 뚫기 위해서는 더 강한 파괴력이 필요했다.
목리원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유성칠검의 후반초.’
백도의 무인들 앞에선 함부로 보이지 못하는 비전이다.
유성칠검의 후반초는 엄연한 기공의 영역에 걸친 것들인 만큼, 그것이 그리는 형태가 목선오를 연상케 하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보라.
다행히 이곳엔 패웅추와 자신뿐이다.
지금이라면 눈치를 보지 않고 후반초를 사용할 수 있단 말이다.
“…저번 결투에선 4식까지 밖에 보여주지 못했지.”
목리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패웅추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것을 쓰는구나! 좋다!”
그날, 지난 비무에서 목리원은 유성칠검의 4식을 패웅추에게 선보였었다.
그것이 그때의 목리원이 할 수 있는 최대였다.
하지만 이젠 달랐다.
“이번엔 5식이오.”
“전력을 다해 상대해보지!”
패웅추의 숨엔 이루 말할 수 없는 열기가 맺혀 있었다.
그의 갑주가 모두 스러졌다.
심의에 사용되던 마기조차 모두 그의 주먹으로 응집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를 마주하며 목리원은 검을 역수로 쥐었다.
허리 뒤로 검을 숨긴 채 묵색의 기파를 회전시켰다.
공간에 기류가 생긴다.
패웅추가 폭소하며 달려들었다.
‘기다린다.’
더 달려들길 기다린다.
최적의 순간이 곧 오리라.
인내심을 가지고 목리원이 기를 정련하던 중, 패웅추가 목리원이 설정한 소용돌이의 중심부에 발을 디뎠다.
‘지금!’
역수로 쥔 검을 앞으로 휘두르자,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검은 공간 위로 떠올라있던 백색의 별들이 일제히 패웅추의 몸을 폭격한다.
유성칠검의 5식, 성야일주천.
“좋다!”
꽈드드득!
패웅추가 절반 이상의 충격을 왼팔로 받아냈다.
그 탓에 팔이 너덜너덜해졌지만 오른 주먹의 마기만큼은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목리원으로선 나쁘지 않았다.
패웅추의 권에 힘을 더할 하체도 모두 상하게 했으니 주먹에 온전한 힘이 실리지 못할 터인 까닭이다.
목리원은 기꺼이 패웅추의 주먹으로 검을 뻗었다.
검신이 새까만 목리원의 검이 검붉은 주먹을 반으로 쪼갰다.
쩌억, 소리가 날 정도로 깔끔하게 패웅추의 주먹이 세로로 쪼개졌다.
“끄하하하하!!!”
패웅추가 박치기를 시도했다.
막지 못했다.
너무나도 의외의 공격에 목리원은 순간 당황해서 얼었고 그대로 이마가 부딪쳤다.
빠악!
하고 뇌 속까지 충격이 파고들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패웅추의 몸을 이루는 것이 마기라, 극마지체의 공능으로 심대한 타격은 피했다는 것이다.
“더!”
라고 말하며 패웅추가 재차 박치기를 하려는 순간.
“…이런.”
패웅추가 멈췄다.
그의 인상이 한껏 험악해졌다.
목리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인들의 증원이다.’
이곳을 향해 달려드는 마기가 한둘이 아니었다.
신강이 있는 방향에서부터 내려오는 마기다.
직전 떠나간 신원미상의 초절정이 병력을 파견한 듯하다.
“한창 좋을 때 초를 치는구나!”
패웅추가 탄식했다.
목리원은 고민했다.
‘더 싸워선 안 된다.’
목리원의 목적은 패웅추의 사살이 아닌 생포다.
다만 천살성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을 마교의 정보가 문제였다.
이제야 정체를 알게된 초월의 마인 소교주.
그에 관한 것과 그 외의 수많은 정보가 패웅추의 머릿속에 있었다.
‘무력화를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그리고 패웅추는 얌전히 당해줄 정도로 성격이 좋은 인간이 아니었다.
“쯧, 오늘은 여기까지.”
패웅추가 가죽 위가 죄다 갈려 나간 오른쪽 다리에 억지로 힘을 불어넣어 목리원을 걷어찼다.
목리원은 검집으로 그것을 막으며 허공에 떠올랐다.
그대로 충격을 흡수하며 멀리 떨어졌다.
“천살성.”
패웅추가 말했다.
“살아라. 잡히지도 말고.”
그의 입가에 찢어질 듯 긴 미소가 걸렸다.
“다음에는 더 강해져서 돌아오지.”
그대로 여유롭게 뒤돌아 걸어나갔다.
목리원은 이를 악 물었다.
‘쫓아갈 수 없다.’
지금 신강 쪽에서 달려오는 마인들이 노리는 곳이 너무 명확했다.
자신과 남궁진천이 빠진 용봉단이었다.
‘도우러 간다.’
목리원은 바로 뒤돌아 단원들에게로 달려갔다.
*
같은 시각, 남궁진천은 옅게 숨을 내쉬며 연리건을 마주하고 있었다.
“귀찮은 수를 쓰는군.”
투덜대며 연리건에게 물었다.
“무공의 이름은?”
“검투술.”
“검과 육체를 함께 쓰는 마공. 기억해뒀다.”
남궁진천은 꽤 여유로웠다.
무엇보다 상성의 문제였다.
마주한 직후부터 곧장 이어져 온 공방은 남궁진천이 넘치는 내력으로 연리건을 찍어누르는 형태였기에, 지금 몰골이 된 것은 연리건 뿐이었다.
하지만 남궁진천이 연리건을 생포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방어가 굳건하다.’
몸을 다 가릴 정도로 폭이 넓은 검.
숫제 검이 아닌 방패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커다란 저 검탓에 치명상을 가하지 못했다.
일단 유리한 양상이긴 하나, 이것을 확정지으려면 앞으로도 긴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한데 마인들의 증원이 다른 단원들을 향하고 있었다.
남궁진천은 ‘쯧’ 혀를 차며 돌아섰다.
“다음에 만나면 죽인다.”
단원들이 있는 방향으로 경공을 발해 달렸다.
남궁진천은 마인의 생포보다 단원들의 안전이 중요했다.
연리건은 그제야 자리에 주저앉았다.
“검룡. 까다롭다.”
연리건은 상성의 중요성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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