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5 십오장 - 임무, 추격 (5)
* * *
내달리는 일을 얼마나 했는지 시간 감각조차 흐려지던 시점이었다.
“찾았다…!”
목리원은 청해 끝자락에서 마인들의 기운을 감지했다.
낯선 기운도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초절정에 달하는 기운.
개중 두 개는 이미 목리원도 겪어본 일 있던 종류였다.
“검마! 권마! 그리고 누군지 모를 것이 하나 있소!”
여섯이서 움직이던 단원들 전체가 멈춰 섰다.
“확실합니까?”
당화서가 물었다.
그러자 남궁진천이 대신 답했다.
“나도 느껴진다. 검마의 기운은 확실하다.”
지금 저곳에 있을 이들 중 유일하게 검마 만을 마주해본 남궁진천의 답에 당화서가 표정을 굳혔다.
“바로 쫓….”
순간, 마인들이 단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죽여라아아!!!”
눈이 새빨개진 마인들의 수는 족히 수십이 된다.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있었기에 큰 혼란은 없었다.
와중 목리원은 빠르게 판단하여 답했다.
“나와 검룡 형이 쫓겠소! 이곳을 부탁하오!”
“예!”
당화서의 몸에서 독기가 흘러나왔다.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
저마다 기파를 흘려내며 마인들과 대치하기 시작했다.
“검룡 형!”
“안다!”
목리원과 남궁진천은 마인들을 뚫고 내달렸다.
“권마는 내가 맡겠소! 검마를 맡아 주시오!”
“나머지 하나는?”
“셋을 잡을 여력은 없소! 확실한 육마(六魔) 둘을 잡아야 하오!”
“협공할 가능성은….”
“없소!”
목리원은 단언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지난 무한행 중 만난 권마 패웅추는 절대 협공을 생각하는 사내가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자신과의 비무.
그것을 위해 아군들까지 속이는 인물이었으니 그 성질이 지금이라고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판단 끝에 내뱉은 확신에 남궁진천은 다른 반박을 더하지 않았다.
“…믿고 맡기지.”
그리고 직후, 목리원의 말은 현실이 됐다.
세 명의 마인이 찢어졌다.
멀리 신강을 향하는 것은 누군지 모를 초절정의 마인.
서쪽으로 향하는 것은 검마 연리건이었고, 동쪽으로 향하는 것은 권마 패웅추였다.
“그럼 나도 가겠소!”
목리원은 검을 뽑아 들며 경공을 발했다.
‘패웅추!’
그에 관해 되새긴다.
아니, 정확히는 그와의 결투, 그 양상과 끝에서 느꼈던 비참함까지 모든 것을 되새긴다.
얼마나 속이 쓰라렸던가.
또 얼마나 무력함이 차올랐던가.
지난날 패웅추를 제대로 막지 못해 명을 달리해야만 했던 표사들의 얼굴은 아직도 목리원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다시는 그런 비참함을 겪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목리원은 강해졌다.
더 이상 어설픈 절정이 아닌 완연한 초인이 되었다.
스스로의 심상을, 그 뜻을 강호에 펼칠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꽈악, 목리원이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하자 묵색의 기파가 사납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묵료오오옹!!!”
그리고 앞에 패웅추가 나타난다.
검붉은 마기를 전신에 두른 그가 주먹을 뻗는다.
목리원은 천리만통(千里萬通)을 발했다.
‘명치다!’
명치를 향해 쏘아지는 권이다.
권이 궤도를 틀 것을 예상하여 범위를 더욱 넓게 잡는다.
‘목젖, 어깨, 단전과 간장으로 뻗을 수도 있다.’
찰나가 길게 늘어진다.
목리원의 집중력이 한계까지 발휘되며 패웅추의 권이 이를 경로를 쉼없이 계산한다.
하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패웅추는 권의 경로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듯, 이것을 막아보라는 듯 정직하게 주먹을 뻗어올 뿐이었다.
‘그렇다면!’
피할 이유가 없다.
목리원이 짓쳐드는 권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아앙!!!
검과 권이 맞닿으며 충격파가 일었다.
근처 숲의 수풀과 나뭇가지가 죄다 일어나 흔들렸다.
“강해졌군!”
“네놈을 잡기 위해서!”
“흡족하다!”
쿵!
패웅추가 진각을 밟으며 왼주먹을 뻗어온다.
목리원은 그것을 막기 위해 검로를 고치다 흠칫 몸을 떨며 몸을 물렸다.
‘허초다!’
저것은 허초였다.
패웅추는 첫 수와는 다르게 정직함이 아닌 교묘함으로 승부를 걸어오고 있었다.
다행히 천리만통의 시간은 현실보다 빠르다.
목리원은 늦지 않게 권을 피할 수 있었고 그것에 패웅추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과연 천살성!”
목리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하다.’
분명 표행 중 만났을 때는 절정의 끝자락이었다.
한데 다시 만난 패웅추는 그 경지는 사실 실력을 숨긴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완연한 초절정에 올라와 있었다.
이것은 목리원이 생각하기에 기이함이 있는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부정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진실, 목리원의 성장은 천살성에 기댄 성장이다.
이 중원 땅에서 무공의 성장에 관해서만큼은 그 무엇에도 지지 않는 별의 도움을 받아 이룩한 성장 속도란 말이다.
한데 패웅추는 그것을 따라잡은 것이다.
그에게 다른 별이 존재하는 것도 아님에도 말이다.
“다시 만날 날을 고대했다.”
패웅추가 자세를 다잡으며 말했다.
“그래, 네놈이라면 반드시 성장할 것이라 생각했다. 천살성이 아닌가! 그 살의만으로도 초월의 벽을 넘을 수 있는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별!”
“…그렇지 않소.”
“뭐가 그렇지 않다는 건가!”
“이 별은 그런 축복받은 별이 아니오.”
패웅추가 크게 웃었다.
그 소리에 공간이 다 울릴 정도였다.
“헛소리!”
쿵!
패웅추가 땅을 딛자 굉음이 울렸다.
“그것은 분명한 축복이다. 다만 네놈을 위한 축복이 아니지! 나를 위한 축복이기도 하다!”
“그게 무슨….”
“네놈은 모를 것이다! 혹여 네놈이 소교주의 손에 잡혀 오기라도 했을까 이 내가 얼마나 마음졸였는지를.”
목리원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소교주…?”
“아차차.”
패웅추가 전혀 낭패어린 기색이 없는 얼굴로 과장되게 놀랐다.
“내가 정보를 흘린 것인가?”
패웅추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솟았다.
그것에 목리원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자가!’
비무회 상대로 나와 자신을 두 수만에 쓰러트린 초월의 마인.
지금 도왕과 내각주가 상대하고 있는 마인.
그가 바로 소교주였던 것이다.
“자, 그런 시시한 이야기는 나중에 생각하고!”
패웅추가 쏘아져 나왔다.
목리원조차 순간적으로 그 움직임을 놓칠뻔했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지금을 즐기자! 투쟁이다!”
꽈아아아아앙!
패웅추의 주먹이 목리원의 검면을 때렸다.
*
마도육문(魔道六門) 귀천문(鬼天門)의 소문주.
패웅추는 그런 신분으로 태어난 사내였다.
어린 날 처음 검을 휘두른 순간, 그를 본 모든 이들이 그리 평했다.
“신동(神童)이구나.”
신동이라고.
능히 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난 기재라고.
어린 날의 패웅추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 한 가지 느끼는 바는 있었다.
‘시시하다.’
재미가 없었다.
패웅추는 검을 쥔 그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검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고 상대의 급소는 어찌 찔러야 하며 또한 짓쳐드는 검은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그것을 모두 안 채로 검을 휘두르게 된단 말이다.
한데 어찌 그것이 즐거울 수가 있겠나.
신동이라는 찬사도, 비무에서 누군가를 이기는 일도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그저 시키니까 한다.
그런 마음으로 패웅추는 검을 휘두르기만 했고, 그의 삶이 변한 것은 7세 때의 일이었다.
“어억…!”
난생 처음 주먹으로 사람을 팬 날이었다.
비무 중 검이 부러졌고 그런 와중에 상대의 검이 목젖을 향해 날아오기에 검을 피하고 상대의 목젖에 주먹을 박아버렸다.
‘이거다.’
그 순간의 감정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조금만 실수해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거리와 힘과 무기에서 오는 불리함.
또한 그것을 꿰뚫고 나가 승리를 쟁취했을 때 오는 성취감.
그것은 패웅추에게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깨달음이었고 무미건조하던 삶을 일깨워준 보물과도 같았다.
패웅추는 깨달은 것이다.
이제껏 삶이 무미건조했던 이유는 자극이 없어서라는 것을.
생과 사가 오가는 그 길목에서의 투쟁만이 심장을 일깨워준다는 것을.
그러니 압도적인 양상을 만드는 재능 따위는 족쇄와 같다는 것을.
그날 이후 패웅추는 검을 손에서 놓았다.
철저히 생사결을 쫓기 위해 경지의 상승도 늦춰갔다.
압도적 강자로서 군림하는 것이 아닌, 패배가 떠오르는 상황에서의 아슬아슬한 승리를 위해 타고난 것을 모두 버린 것이다.
그리하니 무(武)가 즐겁다.
싸움이 즐겁고 피가 정겹다.
패웅추는 정확히 12세까지 이류 마인의 상태를 유지하며 그저 매 순간 위협에 빠지기를 즐겼고, 가을이 넘어갈 시점에 삶의 두 번째 변곡점을 맞이했다.
“위광천. 새로운 소교주의 이름이라고 하더구나.”
“오강악은요?”
“패배했다. 처참하게.”
“그놈이 말입니까? 꽤 쓸만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천살성이다.”
그는 생애 처음 별을 마주했다.
당시 소교주였던 오강악을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자리를 빼앗은 것은 바로 어디서 온 것인지도 모를 천살성.
패웅추는 호기심에 이끌려 그를 찾아갔었고, 생애 단 한 번도 느껴본 일 없던 강렬한 쾌락을 느꼈다.
‘죽는다!’
싸우면 무조건 죽는다.
어떤 식으로 덤벼들어도, 설령 검을 든다 하여도 저놈에겐 이길 수 없다.
일 수에 목이 달아날 것이다.
목을 지킨다면 사지가 뽑혀 나가 바닥을 길 것이다.
하지만 싸우고 싶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생사결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 감각이 일깨워지며 흥분이 차오르는데, 실제로 생사결에 들어가면 얼마나 짜릿하겠는가.
그 순간 죽음에 닿는다 하더라도 한 줌의 후회조차 없을 것이란 말이다.
패웅추가 경지의 상승을 바라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왕 해낼 생사결이라면 최선의 상태로.
할 수 있는 모든 발악을 다 한 상태로.
‘적어도 초절정에는 올라야겠지.’
그런 마음으로 패웅추는 3년 만에 일류까지 경지를 끌어올렸고, 그날 꿈이 좌절되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말 그대로다. 제사장 단천화가 수를 써서 소교주의 천살성을 강탈했다.”
“신교 방침은 어떻게 됩니까?”
“침묵. 교주님께서 폐관에 드셨으니 우리는 신교를 지킬 뿐이다.”
절망적이었다.
천살성과 겨뤄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달려온 모든 시간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그다지도 허망한 일이었다.
하여 패웅추는 위광천을 찾아갔다.
하나, 천살성을 잃은 그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초월에 올라 마기로 사방을 짓누르던 괴물은 간데없고 술독에 빠져 사는 병신만이 있을 뿐이다.
고작 별 하나를 잃었다고 실의에 빠져있는 병신만이 시야를 메울 뿐이란 말이다.
더 이상 그에게서 죽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와 싸워도 조금도 충만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속에 차오른다.
목표를 잃은 패웅추는 그날부터 또 권태로움에 젖어 들어갔다.
그저 다시는 겪을 수 없을 천살성과의 생사결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약자로 남아 시답잖은 투쟁으로 분을 삭혀갔다.
이후 위광천이 천살성을 되찾겠다 천명한 순간, 패웅추는 폐인이 된 그를 보며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저건 병신이다.’
별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 하는 병신이다.
저것에게 다시 별이 돌아가 봐야 그 어떤 충족감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저놈이 아닌 천살성과 싸우자.
단천화가 만들었다는 그 인형과 싸워보자.
그리 결심한 지 18년.
목리원을 만난 패웅추는 심장이 널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마침내, 숙원을 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진정으로 생사를 건 투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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