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9 십사장 - 청룡비무회 (20)
* * *
비무의 시작과 동시에 심판이 저 멀리 가버렸다.
소리라도 내질러야 하건만 할 수 없었다.
꽈아아앙!
하고 순식간에 짓쳐들어온 강오설이 날리는 주먹이 그만큼 매서웠던 까닭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목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호흡이 점차 가빠져만 갔다.
천살성(天殺星)이 반응하는 것이다.
극마지체(極魔之體)가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다.
이곳에 마(魔)에 속한 것이 있노라고.
너무나도 달콤한 피가 있노라고.
그리 외치고 있단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왜인지 모를 기시감, 익숙함과 안락함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 속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목리원은 딱 한 번 이런 감정을 느껴본 일이 있었다.
‘뱀…!’
이것은 당문의 비동에서 만난, 최초의 살성이었던 뱀에게서나 느끼던 감각이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머리는 점점 복잡해지는데 그것에 집중할 틈도 없었다.
꽈아아아앙!
단 한 호흡도 쉬지 않고 짓쳐들어오는 강오설 탓이다.
순간 목리원과 강오설의 눈이 마주쳤다.
목리원은 그의 검붉게 눌어붙은 눈동자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살심과 분노를 읽었다.
그리고 광기를 읽었다.
대관절 이 사내는 누구고 천살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것이 궁금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허접하다.”
와중 강오설이 말했다.
쿵! 하고 진각을 밟으며 이제까지와는 궤가 다른 힘을 담아 권을 내질렀다.
목리원은 천리만통(千里萬通)을 발했다.
찰나를 무한히 쪼개 강오설의 권로(拳路)를 읽는다.
그 길이 향하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어떤 힘과 어떤 기교를 더해 뻗어 나올 것인지를 쉼 없이 파악하려 드는 것이다.
이윽고 목리원은 깨달았다.
‘…없어?’
그의 권로엔 어떤 목적지도 기교도, 정해진 형과 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목리원 스스로가 그간 행해오던 검술과도 같이 말이다.
한 가지를 더해보자면 그랬다.
강오설의 권은, 목리원이 아는 그 어떤 권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묘함을 담고 있었다.
다행히, 그럼에도 목리원에겐 그의 권을 피할 하나의 방도가 남아있었다.
목리원의 검이 빙글 검날을 돌려 강오설의 권을 쳐냈다.
그리고 그에게 쏘아져 나갔다.
‘살심을 읽는다!’
천살성을 타고나며 자연히 몸에 깃든 이적.
그것을 이용하며 공방을 주고받으면 되는 것이다.
기파가 부딪친다.
그 속으로 권과 검이 힘겨루기를 한다.
와중 목리원은 확신했다.
강오설의 권은 분명 초월(超越)에 달한 권이라는 것을.
*
강오설, 그런 이름으로 나온 소교주 위광천은 목리원을 몰아치던 중 혀를 쯧 찼다.
‘미꾸라지 같은 것.’
과연 이딴 버러지의 속에 들어있어도 천살성은 천살성이라는 것일까.
통상적인 수로는 천마신공(天魔神功)의 궤적을 읽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함에도 이리 공방을 주고받으니, 위광천은 그 이유로 천살성의 살로를 들었다.
별을 이고 있는 이를 향한 모든 살기를 읽어 그것을 투로로 치환하는 능력 말이다.
언젠가 제 것이었던 능력을 상대하는 입장이 된 것에 위광천의 분노는 더욱이 덩치를 불려갔다.
“와아아아아아!!!!!”
멋모르는 중원의 버러지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눈앞의 버러지는 좀처럼 쓰러질 생각을 않는다.
위광천은 그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기만 있었다면.’
약을 복용하지만 않았다면, 사마(司馬)의 말을 무시했더라면 이미 승부는 끝났을 것이다.
강기(罡氣)를 이용했다면 중원이 무슨 수를 써오든 인형의 사지를 분쇄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었으리란 말이다.
그 분노가 또다시 권에 힘을 더한다.
다시 한번 거대한 공력으로 화한다.
꽈아아아앙!!!
숫제 폭음이 된 충돌음이 고막을 두드린다.
강오설은 진각을 밟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기파가 퍼지는 기예는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정확히 뻗어나가 명치를 노리는 장(掌)은 천마파천장(天魔破天掌).
하나 그 모든 것이 무용했다.
마기가 없는 까닭이다.
천마신공(天魔神功)의 모든 무공의 근간이 되는 기운이 없으니 그것은 다만 십분지일의 위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분이리라.
이런 감각 속에서 15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위광천은 슬슬 머릿속마저 희끄무레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 그만.’
주먹을 뻗었고 그것에 맞춰 목리원이 반격해온다.
‘죽어라!’
별을 넘겨라!
하고 위광천은 피해를 불사하고 권을 뻗어 목리원의 갈빗대에 박아넣었다.
빠득―
소리와 함께 손맛이 전해진다.
“쿨럭!”
목리원의 입에서 핏물이 튀어나온다.
눈은 찢어질 것처럼 크게 뜨인 게 꽤나 우스운 꼴이다.
하나, 위광천도 멀쩡하진 못했다.
푹! 소리와 함께 위광천의 왼쪽 어깨에 검신이 새까만 검이 박혔다.
그럼에도 위광천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그간 뇌가 다 절여질 정도로 몸에 쑤셔 박은 미약이 고통조차 흐려버렸기 때문이다.
‘이대로 사지를 분지른다.’
그 전에 심판이 나설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비무장에 초월은 없다.’
구경을 나온 몇 초절정.
비무장을 지키는 중원 무림맹의 무인들.
무시하고 두들겨 패면 그만이다.
그래, 이리 사마공의 말에 따라주니 남은 일은 사마공이 알아서 할 테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위광천은 멈칫했다.
‘알아서 한다?’
그것은 불안감이었다.
지난 15년 내내 위광천의 속에 들러붙어 있던 불안감이었고 또한 과실을 취하는 순간에서야 고개를 내민 조급함, 그리고 갈증이었다.
지금 이 주먹을 뻗는 자리에 잃었던 것이 있다.
이대로 이것을 쥐고 신교까지 달리면 된다.
한데 생각해보라.
이것들 사마공에게 맡긴다면 일이 제대로 해결되겠는가?
아니다.
무당의 첩자질이나 하며 마뇌(魔腦)의 후계를 자처하는 그 버러지는 보여준 것이 없다.
아니, 보여준 게 있긴 했다.
그 버러지가 망둥어처럼 날뛰는 통에 신교의 병력을 얼마나 많이 잃어왔던가.
지난 15년간 인내하며 쌓아온 것들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사라졌던가.
믿을 수 없다.
아니, 믿을 것은 처음부터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천상천하(天上天下)요,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위광천은 스스로가 그런 자리에 앉을 사내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눈 주변이 뜨거워진다.
숨 또한 이전과는 다른 깊은 호흡으로 화한다.
그리고 투로에 잔가지가 사라진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얼핏, 검붉은 기파에 흑색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틀리지 않다.’
아니, 틀린 길도 옳은 길로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이 천마(天魔)의 위계에 설 사내가 마땅히 취할 심상이었다.
마기를 다시금 몸에 품는다.
오래토록 몸을 절여온 약 기운이 뇌를 콕콕 찌른다.
마기를 쌓아 올리려 하자 심장이 꽉 조여 피가 돌지 않는 게 느껴졌다.
‘꺼져라.’
그 모든 것을 부정한다.
그저 딛는 걸음이 곧 진리라 이르는 어떤 사내의 등을 떠올린다.
쿵!
그리하여 재차 내딛는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흑색의 마기가 비무대 위를 모두 휩쓸어 목리원을 무릎 꿇린다.
“끄헉…!”
기파로 막아보려 하지만 위광천은 알았다.
천살성의 업이고 뭐고, 초월에 닿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는 하늘의 높이만큼이나 큰 격차가 존재함을.
그것을 이미 실감해본 일이 있기에 망설임이 없다.
손바닥을 펼쳐 재차 뻗는다.
천마파천장(天魔破天掌).
하늘을 깨부수어 그 위로 이르는 장이라, 이름에 걸맞는 거력이 마기를 품으며 그제야 발휘된다.
목리원이 검을 앞으로 내민다.
기파를 몸 전체에 두른다.
우습다.
그조차 마기에 휩쓸려 스러진다.
콰아아아앙!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지는 것은 목리원뿐만 아니었다.
“쳐라아아아아!!!”
비무장 아래에서 달려드는 것들이 있었다.
이름을 기억하기로 권표월, 그리고 백검대.
또 하나, 당문의 계집.
“웃기지도 않는 짓을.”
위광천은 코웃음 치며 마기를 더욱 불렸다.
찌릿하게 차오르는 충만함을 휘둘렀다.
그러자 관중석에서도 속속들이 초절정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뛰어든다.
“좋다.”
위광천이 입꼬리를 길게 찢으며 웃었다.
초월에도 오르지 못한 한심한 버러지들.
딱 한 수면 충분하다.
그리고 천살성을 확보해 신교로 돌아가리라.
그리하여 마기를 그러모은다.
양손바닥을 마주한다.
그 안에 가두는 것은 분명한 신공의 기운이었으며, 또한 무엇보다 강대한 마의 상징이었다.
키이이이이잉―!
회전하며 모인 마기가 회전하며 흑색으로 타오른다.
그제야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중원이 달려든다.
위광천의 입가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긴 미소가 찢어질 듯 걸렸다.
직후 위광천의 손이 하늘을 바라봤다.
천마대멸겁(天魔大滅劫).
초월에 오르고서야 겨우 손에 쥐게 된 권능이 이내 땅을 치며 폭사하니.
―――――!
달려들던 모든 무인들이 일제히 그 충격에 진탕되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윽고 비명과 흙먼지만이 남았다.
관객석에 남아있던 것들이 혼란에 빠져 도주하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
사마공이 그리고 경계하던 백도 무림은 겨우 이 정도였다.
짓밟으면 스러질 버러지만이 존재하는 한심한 약자들의 땅이었단 말이다.
위광천은 고개를 돌려 정신을 잃은 목리원을 바라봤다.
아니, 잃기 직전의 목리원을 바라봤다.
“당신은…!”
꺽꺽 숨을 내쉬며 일어나려 한다.
위광천은 가만 그를 바라보다 다가갔다.
그리고 멱살을 쥐어 들어 올렸다.
그가 원하는 답을 읊조려 줬다.
“네놈의 가진 별의 원주인.”
그 순간 목리원의 몸이 덜컥 멎었다.
위광천은 유쾌함을 느꼈다.
15년의 기다림.
겨우 그것이 끝난 것이다.
아니, 별을 잃었던 날이 18년 전이니 15년조차 축약한 말이 될 터다.
한껏 달아오른 기분, 그것은 염원을 이루었다는 희열과 그간 억눌렀던 경지를 되찾았다는 통쾌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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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그리 말이 많지 않은 위광천이었으나 이 순간만큼은 목리원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다.
입을 빌어 나온다면 그것은 꽤 감상에 차있는 푸념일 터다.
지난 시간을 그리워해 온 별과의 재회를 기념하는 말일 터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음이라.
멍청한 사마공의 겁에 질린 경고에서도 위광천이 하나 인정하는 점이 있었다.
이 15년을 침묵하게만 만든 점이 있었다.
‘초월은 부담스럽다.’
이기냐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천살성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 이것을 취하기 위해선 한시 빨리 신교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 여정은 건너온 땅의 거리만큼 길 테고, 과정에서 중원의 초월을 만난다면 만약을 가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유쾌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여 위광천은 그새 정신을 잃어버린 목리원의 멱살을 쥔 채 비무장을 떠나려 했다.
그때였다.
[멈추거라.]
계획이 어그러진다.
기파를 씌워 비무장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울림.
그것이 위광천의 귀에도 닿았다.
위광천은 고개를 돌렸다.
흉신악살과도 같은 표정으로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맹주.”
무림맹주, 창성(槍星) 사백운.
그가 한껏 찌푸려진 얼굴로, 그의 상징과도 같은 대극(大戟)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마인.”
사백운이 말한다.
동시에 백금색의 기파가 사백운의 몸 위로 덧씌워진다.
그리고 초월을 상징하는 절대자의 전유물, 강기(罡氣)가 대극을 뒤덮는다.
“감히.”
쿵! 하고 사백운의 걸음마다 공간이 진동한다.
“이곳이 어디라고.”
사백운이 대극을 양손으로 쥔다.
“발을 들이미느냐.”
말을 내뱉은 순간, 사백운은 이미 위광천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직후 대극이 휘둘러졌고, 굉음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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