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7 십삼장 - 사천, 결 (8)
* * *
이상한 일이었다.
살아생전 사천 땅 근처에도 와본 일이 없음에도 그리움이 떠오르니 의아함이 차올랐고, 그 기운이 삿되지 않았으니 기이함이 차올랐다.
마기였다면 극마지체에 의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것조차 아니라는 말이다.
목리원은 눈을 좁히며 비동 쪽을 바라봤다.
‘이건….’
무슨 기운이라 해야 할까.
단순한 그리움이라기엔 가슴이 찌르르 울린다.
왜인지 목이 메었고,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목 소협?”
“…아니, 아니오.”
목리원은 고개를 저었다.
심호흡으로 감정을 수습하고 고개를 들었다.
“갑시다.”
비동 쪽에 도달하면 알게 되리란 생각에 단원들을 채근했다.
그렇게 걸음을 옮겼다.
*
영물을 두 번 더 만났다.
각기 제갈산과 혜운이 찾아낸 것이었고, 다른 사람이 나설 새도 없이 잡아 내단을 뽑았다.
분위기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비동이 있는 골짜기가 어느새 눈에 보일 정도가 되었다.
그럴수록 목리원은 감정이 더욱 널뛰는 것을 느꼈다.
스스스―
또 한 번 뱀이 기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무엇이냐.’
속으로 물어도 답은 알 수 없었다.
꾹꾹 가슴이 눌리며 뜨거운 기운을 발한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목리원은 계속 이 그리움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리 또 걸음을 옮겨 도착한 비동.
“…닫혀있군요.”
동굴 앞을 커다란 석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당화서가 툭툭 석벽을 두드리더니,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부수고 지나가진 못할 듯합니다. 너무 두꺼워요.”
“전에는 이곳을 어떻게 지났소?”
“…지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땐 이 골짜기 앞에서 대기했었고, 당시 비동에 들어간 것은 가주 혼자였으니.”
당화서는 한숨을 내쉬며 제갈산에게 물었다.
“치울 방법이 있겠느냐?”
“흐음….”
제갈산은 턱을 쓸며 석벽을 이리저리 살폈다.
한껏 좁아진 눈과 집중하며 서린 분위기가 제갈산 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
직후 제갈산이 답했다.
“이곳에서 여는 게 아니구려.”
“음?”
“입구는 이곳이 맞소. 하나 이곳을 열기 위한 장치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오.”
제갈산이 일어나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허리를 뒤틀었다.
“흩어져서 장치를 찾아보도록 하지. 아마 이 골짜기 안에 있을 것이오. 모양까진 나도 모르겠으나, 아마 사람의 손길이 닿아있을 법한 자리로 가보면 있을 거요.”
“그래, 흩어지는 게 차라리 좋겠구나. 딱히 다를 위협이랄 게 없는 장소이기도 하고.”
당화서가 단원들을 한차례 훑었다.
“그럼 찾아봅시다. 성공이든 실패든 2시진 정도 후에는 다시 이곳에 모이는 것으로 하고.”
“그럼 내가 먼저 가도록 하지.”
남궁진천이 곧장 돌아서서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이어 혜운과 일운이 사라졌다.
당화서는 여전히 자리에 있었고, 제갈산은 막 떠나며 목리원에게 물었다.
“목 아우, 혹 불편한 데라도 있나? 표정이 좋지 않군.”
“아무것도 아니오. 그저….”
목리원은 말을 얼버무리곤 고개를 저었다.
“…나도 찾으러 가보지.”
그리 목리원이 비동 앞에서 떠났다.
향하는 방향은 계속해서 가슴속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쪽이었다.
*
길을 헤매는 일은 없었다.
비동이 있는 골짜기까지 오자, 그 정도로 감각이 한 방향을 가리켰다.
홀로 남은 목리원은 차오르는 눈물을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주르륵 눈시울에서부터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너무 뜨거워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다.
‘무엇이냐.’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도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것이냐.
이 끝에 당최 무엇이 있기에 이리도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것이냐.
연신 되물으며 목리원은 거대한 동굴의 입구를 마주했다.
저 황성의 입구가 이러할까 싶을 정도로 장황한 크기에 절로 경외가 떠오르나, 목리원은 오랜 시간 감상에 빠져 있질 못했다.
그저 주먹을 꽉 쥐며 앞으로 나아갔다.
내부의 전경은 신비로웠다.
분명 한밤중의 동굴임에도 어딘가에서부터 솟아난 미약한 빛이 곳곳에 매달린 종유석이나 솟아난 석순에 부딪혀 시야를 밝혀주고 있었다.
공기는 서늘하고 소리는 울린다.
그런 전경을 따라 쭉 걷던 목리원은, 이내 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에 이제까지 걸어온 길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펼쳐졌던 까닭이다.
‘이곳이다.’
직전보다 어두워져 무엇이 있는지는 확실히 보이지 않았으나,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찾던 것이 이곳에 있노라고.
목리원은 소매를 눈물을 슥슥 닦으며 나아갔다.
순간.
[어인 일로 왔느냐.]
그런 말이 들려왔다.
귀가 아닌 머리를 통해.
“누구냐!”
스릉―!
목리원은 깜짝 놀라 검을 뽑고 기파를 발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목리원은 의아해하면서도 긴장을 놓지 않고 외쳤다.
“숨어 있지 말고 나와라!”
직후 공간이 밝혀졌다.
화르르륵―!
허공에서 떠오른 적색의 불무리에 의해.
드디어 환해진 동굴 속, 목리원은 헛숨을 들이켰다.
[아해야, 어인 일로 왔느냐 물었다.]
그곳엔 뱀이 있었다.
아니, 뱀이라기엔 너무 컸다.
이 동공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의 거대한 몸집이라 말해야 할까.
똬리를 튼 채 고개를 치켜드는 뱀은 몸통이 온통 검게 반들거렸으며, 그 눈은 샛노랗게 빛나는 채로 목리원을 향하고 있었다.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목리원의 몸은 바짝 굳어버렸다.
그제야 느껴지기 시작하는 뱀의 기운은 아득함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했다.
이것은 생물이 담을 수 있는 기운을 넘어섰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초인을 데려와도 이 뱀의 발끝에조차 미치지 못할 것이다.
몸이 덜덜 떨린다.
위압감이 전신을 찍어누른다.
당장 도주를 해야 함이 마땅하건만.
‘…어째서.’
몸은 뒤돌 생각을 하질 않았다.
아니, 더 나아가길 원하고 있었다.
저 뱀을 향해, 저 뱀에게서 느껴지는 존재감을 향해.
본능은 말하고 있었다.
여태껏 쫓아왔던 그리움은 저 뱀을 향한 것이라고.
재차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목리원의 표정이 따라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주체하지 못하는 걸음은 뱀을 향해 서서히 움직였다.
[멈추라.]
뱀이 말하자 목리원의 몸이 멎었다.
목리원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크게 뜨였다.
뱀은 말했다.
[그 이상 다가오지 말라.]
목리원은 그 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부모에게 버림받는 순간의 아이가 딱 이런 기분을 느끼리란 생각이 들 정도의 절망감이었다.
목리원은 덜덜 떨리는 턱을 움직여 물었다.
“어째서요…?”
[이미 내버린 정욕인 까닭이다.]
“그것이 무슨 말이오?”
[떼어낸 살심이니, 나는 그것을 거둘 생각이 없음이라.]
목리원은 가만 뱀을 바라봤다.
떼어낸 살심.
그 한마디의 말에 목리원은 스쳐 지나가는 상념이 있어 물었다.
“…이 천살성이 당신의 것이오?”
이번 역시, 왜인지 그런 것 같다는 생각에 내뱉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제 몸에서 이리 감정을 멋대로 움직이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게 만드는 것은 천살성 하나밖에 없지 않던가.
뱀은 긍정했다.
[과거의 허물 되어 이제는 원치 않는 것이니.]
뱀이 고개를 숙여 똬리 튼 몸 위로 뉘었다.
그리하며 눈을 반개했다.
[더 이상 내게 그것을 권하지 말라.]
목리원은 당황스러웠다.
뱀의 존재도, 말도, 이 상황도, 스스로의 감정도.
지금 뱀의 말에 머리에 수없이 많은 의문이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그러는 중에도 더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에 짓이겨지는 마음이 눈물을 토해냈다.
그 끝에서 목리원이 질문한 것이 있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영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라면 그것이었다.
하나 마냥 영물로 치기엔 목리원이 아는 것과 눈앞의 뱀은 달랐다.
적어도 목리원이 아는 영물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말을 구사하지 못하고, 현명하고 지혜롭다 한들 동물의 선을 넘어선 수준이 고작이다.
또한 자연지기를 몸에 쌓았다곤 하나 이리 거대한 존재감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것은 명백히 목리원이 아는 상식을 넘어선 생물이었다.
뱀은 물끄럼 목리원을 내려다봤다.
한참이나 침묵을 이었다.
그 끝에서 뱀은 말했다.
[…우둔한 미물일지다.]
“그런 답을 원한 것이 아니오.”
[분에 맞지 않는 꿈을 꾸는 행자일지다.]
“그 또한 내가 원하는 답은 아니오.”
궁금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목리원은 가슴을 저미는 이 감정의 이유를 갈구했고, 또한 뱀이 자신을 거절하는 이유를 갈구했다.
“당신은 무엇이오?”
왜인지 그 답 속에, 자신이 이런 운명을 타고난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너를 살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진법 속에서 들었던 말이 재생됨에, 목리원은 그런 일이 일어날까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이유를 꼭 알고 싶었다.
차마 더 다가가지는 못하고 목리원은 자리에 콕 박혀 뱀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뱀이 답했다.
한숨을 쉬는 듯한 어조로.
[선(仙)이 되고자 하는 귀(鬼)일지다.]
“귀…?”
[일찍이 본능에 충실하여 살겁을 행한 마(魔)에 속했고, 이제야 그 나날에 참회하며 구백아흔아홉 해의 속죄를 이어가는 미물일지다.]
목리원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 말은….”
[아해야, 너의 생에 깃든 운명의 원주인이 나다. 그것은 내가 벗어던진 원념이다.]
목리원의 몸이 멎었다.
[원하는 답을 주노니, 내가 최초의 살성(殺星)이다.]
뱀이 고개를 내밀었다.
내내 삐뚜름하게 기울었던 고개가 정확히 그를 향했다.
검게 번들거리는 비늘이 목리원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목리원은 물었다.
“어째서 그리했소?”
[무엇을?]
“어째서 당신의 원념을 세상이 뿌리셨소?”
[뿌리지 않았다. 묻어둔 허물을 파헤친 이가 있을 뿐.]
목리원은 가만히 뱀의 말을 곱씹었다.
천살성은 뱀의 것이었다.
뱀은 제 살심을 떨쳐내 묻어두고자 했고, 그것을 파헤친 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목리원은, 천살성을 가졌던 이들을 알았다.
개중 누가 가장 먼저였는지도.
“…이무백.”
3대 천마 이무백.
고금제일을 꼽을 때면 언제나 세 손가락 안에 이름을 올리던 극악무도한 마귀.
이 땅에 천살성이란 존재를 각인시킨 살아 숨 쉬었던 재앙.
답을 바라며 뱀을 바라보자, 뱀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런 이름이었던가.]
어찌 긍정이라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이었다.
목리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
고개를 숙였다.
“…당신의 것이었다 하였소.”
[실로 그러하다.]
“그럼 거둬가시오.”
[불가하다.]
“왜 그런 것이오? 지금도 이 별은 당신을 원하고 있소. 그것을 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당신께 그리움을 느끼는 것이 이를 증명하오.”
목리원의 목소리엔 울분이 차 있었다.
이것은 그간 억눌러왔던 분노였다.
고개를 든 목리원의 눈빛은 붉은빛으로 번들거렸다.
“그러니 가져가시오. 나는 이런 별을 바라지 않았소.”
다짐컨대, 목리원은 누군가에게 살심을 품는 일을 바라본 일이 없었다.
“그 대가로 무재(武才)를 받았다 한들, 내겐 의미가 없소.”
차라리 양민으로 살아도 되었을 것이었다.
그리해도 만족스러운 삶이었을 것이었다.
“나는….”
목리원의 목소리가 젖어 들어갔다.
이미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 위로 또다시 물기가 어렸다.
“…나에게서 비롯된 살겁을 조금도 원치 않소. 한데 왜 내가 이것을 품고 있어야 하는 것이오?”
왜 자신이어야 했는가.
목리원이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품어왔던 원망이 그의 입을 빌어 세상에 튀어나왔다.
그 누구에게도 감히 말할 수 없었던, 이런 천형을 알고 있던 스승에게조차 토해내 본 적 없던 원망이었다.
[…하늘의 뜻이 그러한 이유라.]
“하늘은 왜 내게 이리도 가혹한 것이오? 왜 나를 이리도 괴롭히는 것이오?”
억지를 부리는 듯한 말투였다.
아니, 실제로 목리원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게 맞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타들어 가는 속이 진정되지 않을 것 같은 이유였다.
뱀을 노려보며 말하던 목리원의 표정은 이윽고 형편없이 무너져내렸다.
“제발 가져가 주시오….”
애원 조의 목소리였다.
“나는 어찌해야 이 별을 지워낼 수가 있는 것이오?”
뜨거운 숨이 삐져나왔다.
목리원은 흐느끼듯 말하다,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나는 모르겠소. 하늘의 뜻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런 별이 존재하는지, 그것을 왜 내가 이고 있어야 하는지.”
뱀은 그제까지도 침묵했다.
목리원은 머리가 너무 뜨거워 생각이 잘 이어지지 않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 동공에 목리원의 흐느낌이 길게 울리던 중 뱀이 말했다.
[…천기누설(天機漏洩)이라 말할 수는 없음이다. 하지만.]
뱀의 어조가 누그러졌다.
[그 모든 천명은 결국 뜻하는 바가 있음을 의심치 말라.]
주변을 밝히던 불길이 옅게 흔들렸다.
[너의 앞길에 살겁이 있을 것은 분명함이나 그 끝조차도 그리하리라곤 장담할 수 없음이다.]
목리원은 고개를 들었다.
뱀에겐 표정이 없었다.
하나, 목리원은 뱀이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나아가라.]
뱀이 그리 말한 순간.
쿠구구구궁―!
굉음이 울려왔다.
동굴 바깥, 이것은 비동에서부터 울려오는 진동이었다.
[그리한다면 천명은 너를 뒤따를 터다.]
순간, 목리원은 기이한 인력에 몸이 이끌려 동굴 밖으로 튕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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