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십장 독대, 결의 (2)
* * *
맹주와의 독대까지 이틀 남짓이 남은 날.
당화서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합니다.”
목리원의 식사 예절이 완벽해졌다.
흠잡을 곳이라곤 단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다 소저 덕이오. 고맙소!”
“아닙니다. 목 소협이 잘 배우신걸요.”
빈말이 아니었다.
당화서는 그것에 깜짝 놀랐다.
‘머리는 참 좋은 것 같은데….’
한 번씩 이런 순간마다 느끼는 것은 목리원이 참 공부 머리가 좋다는 것.
응용력은 그것보다도 더 좋다는 것.
한데 하는 짓은 왜 이렇게 어린아이 같은 것일까.
‘흠, 성격이랑 공부 머리는 별개인 건가.’
그리 볼 수도 있겠다.
그것 외에 떠올릴 만한 원인은 목리원이 정말 산에서 단 한 번도 내려와 보지 않은 사람이라 세파에 무지하다는 것 정도.
당화서가 생각을 이어가던 중, 목리원이 닭다리를 집어 당화서의 입 앞으로 들이밀었다.
“자! 드시오!”
“응?”
“절친한 친우 사이엔 이렇게 하는 것 아니오? 감사의 뜻이오!”
당화서가 움찔했다.
순간 떠오르는 것은 양심의 가책.
하나, 길게 가지는 않았다.
당화서는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다 낼름 고기를 받아먹었다.
“…감사합니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내뱉은 말에 목리원이 환히 웃었다.
“거듭 말하지만 내가 더 고맙소! 사실 식사 예절이란 게 어디서 따로 배우기 힘든 것이 아니오? 소저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뭐요!”
“별말씀을.”
“아, 오늘 저녁엔 제갈형에게도 한 입 먹여 줘야겠구려! 그간 참 신세를 졌….”
“안 됩니다.”
당화서의 눈이 부릅 뜨였다.
등엔 식은땀이 한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응?”
“그, 아….”
무어라 변명해야 할까.
이제와서 사실 거짓말이었다고 하기엔 냉큼 준 음식을 받아먹은 게 마음에 걸린다.
짧은 순간 이어진 당황.
그 끝에서, 당화서는 조금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사내끼리는 아무리 절친해도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왜 그렇소?”
“남사스럽지 않습니까? 보기에도 흉하고.”
“아, 그럼 여인과 친해질 때만….”
“그것도 안 됩니다.”
당화서의 머리가 뜨거워졌다.
당연했다.
애초에 논리도 뭣도 없는 걸 가르쳐 놓고 거기에 이유를 붙이려니 나오는 말이 정상적인 형태일 리가 없었다.
“제일! 제일 친한 사람에게만 해주는 것입니다! 목 소협은 저보다 더 친한 친우를 만들 생각이십니까?”
무슨 애새끼 억지 같다.
당화서가 그리 자조하고 있던 중 목리원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니오! 나는 소저보다 더 친한 친우를 사귀지 않을 것이오! 그런 말은 마시오!”
억울하다는 듯 한껏 놀란 목소리로 해내는 항변에 양심에 비수가 꽂힌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무를 수는 없는 상황이니, 당화서는 체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습니다.”
적당한 뻔뻔함은 삶은 윤택하게 해준다.
당화서는 그런 진리를 아는 사람이었다.
하나 목리원으로선 아직 마음의 불안이 남은 상황.
다른 사람도 아닌 당화서를 불안하게 했다!
그런 생각에 가슴속이 콕콕 찔리는 기분을 느낀 목리원은 벌떡 일어나 말했다.
“나는 소저랑 제일 친할 것이오! 이제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히!”
쿵!
가슴까지 두드리며 단언하는 말에 당화서는 ‘흡!’하고 숨을 들이켰다.
뺨은 조금 붉어졌다.
“그, 그으….”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혔으나, 이내 당화서는 삐죽삐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겠습니다.”
나오는 것은 또 같은 말.
목리원이 시원스레 웃었다.
당화서 또한 부끄러운 듯 미소 지었다.
문 뒤쪽.
목리원이 걱정되어 약식 진법까지 펼친 채 두 사람을 지켜보던 제갈산은 눈을 좁히며 쯧쯧 혀를 찼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원.’
하나 확실한 것은 있었다.
이대로 두다간 당화서의 음습함에 목리원의 상식이 개변될 지도 모른다는 것.
제갈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목아우! 걱정마시게!’
상식 개변이라니, 이 얼마나 두려운 울림이던가!
제갈산은 당화서의 마수에서 아우를 건져내겠다고 다짐하며 뒤돌아 달아났다.
‘일단 나중에!’
지금 다가갔다간 수치심에 미친 당화서가 설사독을 묻힌 주먹을 날릴지도 모르니까!
*
맹주와의 독대가 또 하루 남은 날.
이번에 찾아온 것은 남궁진천이었다.
“묵룡.”
“아, 검룡형!”
“그리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남궁진천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와서 친한 척 ‘검룡형’이라 부르는 목리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까닭이었다.
하나 목리원은 그런 남궁진천의 기색에도 해맑기만 했다.
“어쩐 일이오? 원래는 먼저 찾아오는 일이 없었잖소!”
“맹주님과 독대한다고 들었다.”
“그렇소만?”
“이걸 맹주님께 전해드려라.”
남궁진천이 품에서 밀봉된 서찰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오?”
“영약 하사를 부탁하는 전서다.”
흠칫.
목리원이 놀랐다.
“여, 영약…!”
목리원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완연한 기대감이었다.
“이, 이 서찰이 영약으로 이어지는 것이오?! 어떻게?!”
“구파와 세가에서 해마다 맹에 보내는 영약이 있다. 친교의 의미로 보내는 것이지만… 우리가 여기 들어와 있는 이상 그 일부의 소유권을 주장해도 큰 탈이 없으리란 판단이다.”
“아! 준 걸 다시 빼앗아 간다는 말이로구려!”
“표현이 천박하다.”
그리 말하며 목리원을 나무라지만 남궁진천도 알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데 허락해주시겠소?”
“안 해줄 이유야 없지. 우리는 성과를 냈으니까.”
무려 육마(??) 중 한 명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양민을 구하며 맹의 위상도 함께 올려주었다.
이 정도 성과라면 보상으로 영약 몇 개 정도는 받아도 무방했다.
“흐음….”
목리원은 받은 서찰을 보며 잠시 침음을 흘리다, 이내 그걸 받아들었다.
“일단 알겠소.”
다른 일을 떼놓고 생각하면 그랬다.
영약이라 하면 지금 목리원에게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 중 하나.
안휘를 떠난 이후 있었던 여러 사건으로 이미 깨달음은 다음 경지를 바라보는 수준이 되었고, 검술의 깊이 또한 그에 걸맞게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모자란 것은 오로지 내공이니 그걸 보충할 방법에 목을 매달아야 하는 것이다.
목리원은 더 강해지고 싶었다.
“내 맹주님께 강력히 주장해 보겠소.”
“주장할 필요도 없다. 서찰이나 전해라.”
그리 말하고 남궁진천이 돌아섰다.
언제나처럼 퉁명스러운 태도로.
목리원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히히덕대며 돌아섰다.
*
독대 당일은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용봉단의 전각은 그 혜운조차 밖에 나돌지 않고 목리원에게 딱 붙어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목 시주님, 알겠지요? 절대! 절대 맹주님 앞에서 단원들이 어쩐다 하는 얘기는 꺼내면 안 됩니다!”
“알고 있소!”
“알고 있는 얼굴이 아니잖아!”
혜운이 이리 잔소리를 늘어놓는 이유는 하나였다.
무림맹주인 사백운과 제 스승의 친분이 꽤나 깊은 까닭.
즉, 목리원이 허튼소리를 해 제 행실이 스승의 귀에 들어갈까 두려운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다른 단원들의 생각은 그랬다.
애초에 찔릴 만한 짓을 안 하면 되지 않나.
옆에서 그리하지 말라고 하면 얌전히 수련이나 하면 되지 않나.
왜 꼭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책임만 회피하려고 하는 것일까.
물론 그 마음을 입 밖으로 내는 이는 없었다.
당화서만 빼고.
“그러게 평소에 잘하지 그러셨소?”
“잘 했는 걸요! 저 하루치 수련은 다 하고 놀러 다니는 거잖아요!”
“그 놀이가 문제이오만?”
혜운은 얄밉다는 듯 당화서를 흘겼다.
하나 당화서는 코웃음으로 그걸 받아쳤다.
아무렴, 용봉단의 사고 중 3할을 차지하는 게 혜운이니 속엔 꼴 좋다는 생각까지 들고 있었다.
참고로 사고 비중은 목리원과 남궁진천이 각각 2할 5푼, 제갈산이 1할 5푼씩에 일운이 5푼을 차지하고 있었다.
“됐으니 목 소협은 그만 닦달하십시오. 알아서 잘할 겁니다.”
“소저…!”
목리원이 감동한 듯 눈을 빛냈다.
당화서는 싱긋 웃으며 목리원을 일으켰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며 말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목아우! 응원하겠네!”
당화서와 제갈산의 응원 뒤로 일운이 웃었다.
남궁진천은 괜히 다른 곳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혜운은 끈질겼다.
“헛소리하기만 해보십쇼?”
그리 말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혜운은 잠시 생각하다 목리원에게 속삭였다.
“만약 제 귀에 이상한 말이 들린다면 말입니다.”
“으, 응…?”
“잠자리는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오소소!
목리원의 전신에 닭살이 돋았다.
입은 ‘흐에엑!’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 다녀오겠소!”
목리원이 부리나케 줄행랑쳤다.
“무슨 말을 하신 겁니까?”
“알면 다칩니다.”
일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
줄행랑친 목리원은 그대로 독대 자리가 있는 맹주전에까지 뛰어 도달했다.
맹주전의 정문엔 군사 제갈무연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 오셨군요.”
“군사! 잘 지내셨소!”
“저야 잘 지냈지요. 묵룡께서도… 예, 잘 지내신 듯하군요.”
제갈무연은 목리원의 해맑은 기색에 쿡쿡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바로 들어가실까요?”
“아! 알겠소!”
제갈무연이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부터 문이 열렸다.
목리원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오…!”
마치 신선이 기거하는 장소 같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정원에 있는 침엽수 몇 그루와 멋들어진 바위, 그리고 연꽃이 떠 있는 소담한 연못 탓에 떠오른 감상이었고, 안으로 들어오니 느껴지는 청량한 기운은 그 감상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여기가….”
“맹주전이지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무림맹이 생긴 이후 들어온 기물을 하나씩 가져두다 보니 이리 되었다고 하더군요.”
“허어….”
목리원은 걸음을 내딛는 중에도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하며 말했다.
“수련하기에 참으로 좋아 보이는 곳이오!”
“무인다운 감상이십니다.”
제갈무연이 큭큭 웃었다.
그러다 멈춰 서며 말했다.
“자, 저곳입니다.”
제갈무연이 가리키는 끝에 풍경과 어우러지는 아늑한 정자가 있었다.
그 한가운데, 작은 상을 하나 두고 맹주 사백운이 앉아있었다.
눈을 감은 채였다.
참으로 고요해 보이는 얼굴.
목리원은 그걸 본 순간 왜인지 속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원인을 꼽으라면….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구나.’
은연중 사백운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도 탓이었다.
초월지경의 무인은 스스로의 기도를 숨길 수 있다.
그것은 무인의 기도가 자연에 조금 더 가까워지며 조화를 이루는 까닭이었고, 목리원은 이제야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의 깨달음이 드디어 신기루 속에 가려진 사백운의 무위를 어렴풋이라도 볼 정도로 다듬어진 것이다.
‘이것이 초월지경.’
백도 무림에 단 열 명밖에 없는 절대자.
‘스승님도….’
지금 다시 뵌다면 저런 형상으로 보일 터다.
목리원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중이었다.
“아, 명상을 하고 계시….”
“아니네.”
사백운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눈을 떴다.
그의 고개가 목리원과 제갈무연을 향하고, 이어 눈이 곱게 접히며 주름이 생겼다.
“어서 오시게. 묵룡.”
목리원은 작게 손끝을 떨다, 이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일단 앉겠는가?”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아, 군사도 고생 많았네. 가서 일 보시게.”
“그럼.”
제갈무연이 고개를 들고 자리에서 멀어졌다.
목리원이 그제까지 망부석처럼 서있자, 사백운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앉지 않을 겐가?”
“아, 아닙니다!”
목리원이 헐레벌떡 정자로 달려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