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오장 용봉지회 (23)
* * *
시상식으로부터 이틀이 더 지났으나 서현은 아직 용봉지회의 열기를 잊지 못하고 들떠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봉지회는 끝났으되 끝나지 않았으니.
강호의 미래를 이끌 젊은 고수들이 모두 제 재주를 뽐낸 뒤에 있는 것은, 그 영광된 자리에 들지 못한 이들의 처절한 발버둥이었으니.
“합!”
“흐앗!”
서현의 거리 곳곳에는 언젠가 관객으로 있었던 이들의 비무가 시도 때도 없이 이어졌다.
이들의 목적은 하나.
제 재주를 뽐내 이곳에 있는 명가의 눈에 드는 것.
그리하여 그곳의 무인으로 초청받는 것.
이번 용봉지회는 특히 그 소란이 심각했다.
본디 아직까지 남아 무인을 충당하려는 명문은 전체의 절반 이하였으나, 이번만큼은 그 명문이 모두 서현에 남아있는 까닭이다.
그런 만큼, 지금 소란을 벌이는 이들의 입장에선 제 처지를 구원해줄 황금줄이 평시의 배는 많아진 상황이었다.
명문들이 남아있는 이유야 말해 뭐하겠는가.
묵룡 목리원.
그를 포섭하기 위함이었다.
“묵룡이 사람 여럿 살리는 구먼.”
“그 얘기 들었나? 일전 묵룡의 첫 상대로 나왔던 섬도 말일세. 그가 팽가의 무인으로 초청받았다더군.”
“그걸 모를까. 그럼 자넨 이거 아나? 이틀 전 우리와 술잔을 기울였던 왕형 말일세, 그 치는 조가장에 무인으로 초청받았다더군.”
“아, 젠장. 부러워 죽겠구만. 나도 빨리 소속을 찾아야 할 텐데.”
“어쩌겠나. 묵룡이 하루라도 더 이곳에 머물길 바라는 수밖에. 혹시 아나? 그리 묵룡이 남아있는 동안 우리도 기회를 잡게 될지.”
아직 소속을 얻지 못한 무인들은 바랐다.
묵룡이 하루라도 더 이 서현에 머물기를.
그리하여 명문들의 발을 붙잡아 주기를.
하나,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도 지금 들려오는 소문은 절망적이었다.
“…묵룡이 무림맹에 입단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아직 확신은 아니네. 어디까지나 소문이지 않던가.”
“한데 영 신빙성이 없는 소문은 아니더군. 내 믿을만한 정보책이 있는데, 그치가 이르길 묵룡은 독봉과 함께 무림맹으로 가 새로운 단을 창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지 뭔가.”
“대체 어떤 무도한 자가 그런 정보를 푸는 게야? 알아도 입을 꽉 다물어야지!”
“그, 그걸 나한테 말해 봐야….”
묵룡이 무림맹의 입단을 희망하고 있다.
그 소문에 서현의 명가들은 내내 뒤숭숭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당연했다.
무림맹은 정파 무림에선 절대 건드려선 안 될 성역과도 같은 것이었다.
혹여 이 소문이 진짜라면 이곳에 남은 명문들의 입장이 애매해지는 것이다.
무림맹의 인재가 될 이에게 손을 뻗은 문파.
이는 혈사 이후 내내 드높아지는 중인 무림맹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비칠 수가 있는 것이다.
명문들이나 무인들이나 할 것 없이 입장이 애매해진 상황.
한편, 그 소란을 만든 이들은 유유자적하게 황산에 올라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소저! 저기 보시오! 소나무 두 개가 서로 꼬여있소!”
목리원은 해맑게 웃으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당화서는 목리원의 말에 쿡쿡 웃으며 답했다.
“예, 아주 사이가 좋은 나무들이군요.”
“저기도 보시오! 주변 것들보다 유독 큰 소나무! 허리가 곧게 펴져 있는 것이 저 나무가 이곳의 대장인 것 같소!”
“확실히 어여쁜 나무이기는 합니다. 외진 곳이라 발견되지 않을 것일까요? 저리 이쁜 나무가 있다면 저것을 뽑아가려는 이들이 있었을진대.”
황산을 메운 소나무를 보며 감상을 나누고, 그러다 한 번씩 보이는 평평한 바위 위에서 쉬어가고.
목리원과 당화서, 그리고 제갈산은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엔 관심조차 가지지 않은 채 외유를 이어갔다.
그러길 한참, 어느새 세 사람은 황산의 꼭대기까지 올랐다.
“오오…!”
목리원은 드러난 전경에 전율했다.
바위 사이로 돋아난 소나무들이 멋스럽다.
발아래로 보이는 구름과 저 멀리 펼쳐진 안휘의 전경은 대자연의 아득함을 그대로 뽐내며 심금을 울린다.
신선들이 사는 세계가 이러할까.
목리원은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잘게 몸을 떨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오….”
“절경 중의 절경이지요.”
당화서의 답이 있고, 잠시 침묵이 일었다.
황산의 경치에 감동이 물 밀 듯 밀려와 세 사람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침묵을 깬 것은 제갈산이었다.
그는 한참이나 경치를 즐기며 미소 짓다, 은근슬쩍 당화서에게 말했다.
“그래서 누님. 소문이 참 잘 퍼졌더구려.”
“음?”
“무림맹에 간다는 소문 말이오. 누님이 퍼뜨린 것이잖소.”
그제까지 멍하니 있던 목리원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소, 소저? 그게 무슨 말이오?”
목리원은 놀랐다.
분명 당화서는 가문을 피해 움직이고 있을진대, 그런 그녀가 먼저 자신의 행선지를 알린다는 것에 떠오른 의문이었다.
아직 강호의 생리를 잘 모르는 목리원이기에 품는 의문.
그것에 당화서가 평온한 어조로 답을 이었다.
“그렇기에 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말했잖습니까. 무림맹 소속의 무인은 제아무리 명문이라 한들 함부로 취급할 수 없다고.”
“그 명문이 본가라고 해도 말이지.”
제갈산이 씨익 웃었다.
그간 함께 움직이며 이들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게된 제갈산은 기쁜 마음으로 말을 덧붙였다.
“누님, 목아우. 나도 그 길에 함께 해도 되겠소?”
“네놈이 말이냐?”
당화서는 의외라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는 목리원도 마찬가지.
떠돌길 좋아하는 그의 성정상 어딘가에 매여 있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있었던 까닭이다.
제갈산은 그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장난스레 말했다.
“두 사람이랑 있으면 재밌거든. 그리고 나도 이제 슬슬 떠돌이 생활을 청산해야 하지 않겠소.”
“너무 좋은 의견이오!”
목리원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는 실로 정이 들어버린 제갈산과의 이별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던 차였다.
“그럼 우리 셋이 이렇게 무림맹으로 가는 것이구려! 의와 협을 위해 몸을 불사르는 것이구려!”
목리원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무림맹의 협객으로 이름을 떨칠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며 벅차오른 것이었다.
하나, 당화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괜한 방해를.’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떠오른 까닭이다.
무림맹까지 가는 여정은 짧지 않을 터.
그 사이에 있을 목리원과의 외유에 은연중 기대를 품었던 그녀로선 제갈산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당화서는 모를 것이다.
제갈산이 이리 함께 움직이려는 이유에 당화서의 그런 음흉함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그래도 아우인데 챙겨줘야지.’
어쩌다 보니 맺게 된 의형제의 연이나, 그럼에도 기껍기만 한 연이다.
제갈산은 순진한 제 의제가 당화서의 음흉함에 엉망진창으로 조교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뭐, 그럼 잘 부탁하오!”
제갈산이 웃자 목리원도 호탕하게 웃었다.
당화서는 불만스러운 듯 혀를 ‘쯧’하고 차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군이 많을수록 좋은 건 부정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세 남녀는 황산의 꼭대기에서 여정을 함께하길 약속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제 떠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남궁세가의 장원.
연무장의 한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는 사내가 있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자였다.
그의 주위로는 시린 청색의 기파가 일렁이고 있었고, 그 기파가 닿은 곳은 모두 무겁게 짓눌리고 있었다.
남궁진천, 바로 그였다.
그는 결승이 있던 날 이후 내내 속에 자리하고 있던 의문을 또 돌이키는 중이었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인가.
남궁진천은 생각을 이었다.
그날의 비무를 되새기고, 자신의 삶을 되새기고, 목리원을 되새겼다.
‘만약….’
가정을 떠올린다.
‘…그 비무에서 첫수부터 전력을 다했더라면. 묵룡이 반항하기도 전에 찍어눌렀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 검수로서의 재능이 어찌되었든 체급에선 자신이 우월한 것이 분명하니.
‘묵룡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만신창이가 된 묵룡이 했던 도발에 응하지 않고 내내 그를 찍어눌렀더라면.
그리해도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모든 것이 달랐을 것이다.
남궁진천은 이어 스스로에 대한 것을 생각했다.
‘청사진이라 생각했다.’
이 제왕의 별이 제시한 길은 가장 완벽한 길이라 생각했다.
속도야 어찌 되었든, 이 길만 따른다면 가장 지고한 경지에 닿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데 현실은 어떻던가.
‘틀렸다.’
별이 이끄는 길은 틀렸다.
완벽이 없었다.
지고함도 없었다.
별이 준 것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오만.’
오만했다.
우둔했다.
무도했다.
결국은 하나였다.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것이겠지.’
그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남궁진천은 제 목을 옭아매는 패배감을 마주했다.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비틀었다.
‘강호는 넓다.’
조부되는 검왕의 말을 되새기자 기파가 한 차례 일렁인다.
‘적수는 강하다.’
목리원의 검을 떠올리자 그 기파가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기파에서 중압감이 사라진다.
그저 뽐내고 찍어 내리길 좋아하던 그의 기파에서 오만함이 덜어진다.
무도함이 덜어진다.
그 빈자리에 하나가 더해진다.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비무대 위에서 목리원이 했던 그 말이, 그 말속에 담긴 감정이, 정신이.
호승심이 더해진다.
남궁진천이 눈을 떴다.
시리도록 푸른 벽안은 그제까지 단 한 번도 보인 일 없던 빛을 내고 있었다.
“때가 되었다.”
남궁진천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연무장을 나가 장원의 안채로 향했다.
길목에서 남궁진천과 마주친 이들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그의 기색에 흠칫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 자리한 이들의 모든 경외를 한 몸에 받아 도달한 안채에서 남궁진천은 검왕 남궁혁을 마주했다.
“용건은.”
남궁진천이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배우고 싶습니다.”
생애 처음, 그런 말을 내뱉었다.
남궁혁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흥미롭다는 듯 반문했다.
“무엇을?”
“검을.”
남궁진천은 제 조부를 바라봤다.
일찍이 이 강호에서 검의 으뜸이라 평해졌던 절대자가 그곳에 있었다.
“제왕의 검을 배우고 싶습니다.”
검룡 남궁진천은 배움을 청했다.
뱀을 무릎 꿇리기 위해.
가장 위대한 개구리가 되기 위해.
마땅히 쟁취해야 할 자리에 오르기 위해.
“제왕검형(?王??)을 일러주십시오.”
그는 그제야 오만이라는 우물을 나섰다.
*
이 중원의 금권을 지배하는 이들이 누구인가.
중원인에게 그것을 묻는다면 백이면 백 돌아오는 답이 있었다.
천하상단(?下??).
근 15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와 본 일이 없는 명실상부한 중원 제일의 상단이 바로 그 답이었다.
천하상단은 손 뻗지 않은 사업이 없었다.
또한 손 뻗지 않은 장소가 없었다.
이곳 안휘의 용봉지회 또한 마찬가지.
화려하게 열린 무인들의 축제엔 분명 그들의 손길이 닿아 있는 곳이 있었다.
서현에서 이틀 정도 말을 달리면 나오는 거대한 천하상단의 지부.
이번 용봉지회를 지원한 그 장원에 들어서는 도인이 있었다.
허허로운 분위기와 유약한 생김새가 인상적인 사내, 선룡 현공이었다.
지부의 호위들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현공은 그것들을 당연스레 받아내며 안채로 향했다.
벌컥.
안채의 문이 열리자 화악 풍겨오는 지독한 향이 있었다.
맡는 순간 머리가 다 어지러워질 정도로 진한 향이었으며, 또한 왜인지 속이 뜨거워지는 향이었다.
일순 현공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방안에서 풍겨오는 향이 마약에 의한 것임을 이미 아는 까닭이었다.
하나 그리 짜증을 토해내는 것도 찰나.
현공은 표정을 가다듬고 몸 주위로 기파를 둘렀다.
그리고 안채 깊숙한 곳을 향했다.
“…왔나.”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현공은 그 순간 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곳에 한 사내가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머리칼.
옷가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헐벗은 꼴.
그리고 몽롱하게 풀린 눈까지.
사내는 헐벗은 여인들을 제 주위에 낀 채 현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찾았나?”
“예.”
“이름은?”
“목리원입니다. 이번 회에서 묵룡(??)이라는 별호를 받았습니다.”
목리원이라.
그리 읊조린 사내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팔자도 좋구나.”
현공은 그저 고개를 조아렸다.
그 무엇도 질문하지 않는다.
그것이 현공이 갓난아기일 때부터 배워온 가장 기본적인 예절인 까닭이다.
사내는 계속해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생각에 빠지기라도 한 듯 한참이나 그런 행위를 이어갔다.
그러다 그 끝에서야 입을 열었다.
“…슬슬 움직여야겠구나.”
사내가 손을 들어 제 허리를 끌어안던 여인의 머리 위로 얹었다.
푸확!
여인의 머리가 터졌다.
핏물이 분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고깃덩어리가 공간을 수놓고 있음에도 자리한 그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내나 현공을 제외한 여인들은 모두 어딘가의 기녀.
무공이라곤 알지 못하는 이들은 이미 이 방안을 가득 채운 마약에 절어있어 이지가 사라진 상태였다.
“준비하거라.”
사내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핏물을 닦아냈다.
그러자 그제까지 머리칼 사이에 가려져 있던 그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검붉은색으로 탁하게 내려앉아 있는 동공은 그 색채가 왜인지 말라 붙어버린 피와도 닮아있었다.
“도둑맞은 별을 되찾아야지.”
사내의 읊조림에 현공은 이마를 바닥에 처박았다.
직후 중원에선 단 한번도 낸 일 없던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천마군림 만마앙복!”
목소리에 깃든 것은 경외였다.
“소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현공은 드디어 제 오랜 기다림이 끝났음을 느꼈다.
이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혈사 이후 평화에 찌들어있던 이들은 다시 한번 이 강호가 어떤 곳인지를 깨닫게 될 터다.
무림은 본(?)으로 회귀할 터다.
평화는 끝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