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이장 강호초출, 그리고 요녀 (6)
* * *
전각은 혼란스러웠다.
아직 장사도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시간대이건만, 몰려드는 난동꾼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탓이었다.
화서와 함께 최상층을 나선 목리원은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며 눈을 굴렸다.
‘어디냐.’
느껴지는 기운이 있었다.
아주 잘 정련된 살기.
그것이 마치 호수 아래를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고요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스스로를 흐린 채 이쪽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목리원은 기감을 더욱 넓고 날카롭게 벼렸다.
그리고 그 끝에서야 그는 경화루의 입구에 오도카니 서 있는 사내를 찾을 수 있었다.
‘…저기다.’
커다란 삿갓으로 얼굴을 가려 이목구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그 아래 건장한 체격이나 온통 상처가 나 있는 투박한 손은 분명 무인의 것.
또한 묵직하게 풍겨오는 살기와 기파는 그의 무공이 보통 수준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긴장된 순간, 무인이 고개를 들었다.
흠칫.
목리원은 손끝을 떨었다.
‘…나보다 완숙한 경지.’
목리원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가 완숙한 절정지경에 이른 고수라는 것을.
짧은 시선 교차.
그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사내는 몸을 돌려 전각을 나섰다.
목리원은 그제야 긴장이 턱 풀리는 것을 느끼고 화서를 바라봤다.
그리고 놀란 감정을 삼켜야 했다.
“…소저?”
화서는 이제까지 목리원이 한 번도 본 일 없던 표정으로 사내가 떠나간 자리를 보고 있었다.
형편없이 떨리는 동공.
새하얗게 질린 얼굴.
목리원은 알았다.
저 표정은 공포에 의한 것이었다.
*
소란이 진정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루를 지키는 경비들과 화서의 수족인 호위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자 그들로선 막을 도리가 없어진 까닭이다.
잘 넘어갔다.
그리 표현할 수도 있었겠지만, 최상층으로 돌아온 화서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즉슨, 목리원이 본 사내를 화서 또한 봤기 때문이었다.
기파나 살기 따위로 알아낸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사내를 알고 있기에 그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표산.’
음울하게 질린 낯빛과 세파에 찌든 주름.
그것은 분명 자신의 유년기를 내도록 따라다닌, 증오스러운 가문의 그림자였다.
아가씨, 시간입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알리는 목소리가 다시금 재생된다.
그와 동시에 몸속의 장기가 죄다 뒤틀리는 듯한 감각이 떠오른다.
환통(??)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느낄 일이 없는 고통임에도, 이것이 허깨비임을 알고 있음에도 화서는 그 통증에 몸을 떨어야 했다.
‘나를 찾았구나….’
기어이 이곳까지 왔다.
그 지독한 것들은 티끌만 한 단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헤집어 결국 자신을 찾은 것이었다.
‘실패다.’
기나긴 도주가 끝을 맺을 듯했다.
아니, 이것을 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 끔찍한 시간의 시작이겠지.’
이제 자신이 탈출을 생각하는 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들은 더욱 집요해질 것이다.
곁엔 무엇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고, 이미 가지고 있던 것조차 모두 지워내려 할 것이다.
화서는 지금도 느껴지는 천장과 문 앞의 기척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들은 살아 도망치게 해야 한다.’
자신을 위해 이름과 얼굴을 버린 이들이다.
이대로 가다간 이들 모두가 표산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다.
‘적어도.’
도망칠 수 없다면 적어도 그들만은 살 수 있도록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소협.”
화서는 목리원을 불렀다.
목리원은 그제야 내내 다물고 있던 입을 뗐다.
“말하시오.”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오?”
“제 아이들을 안전한 곳까지 피난시켜 주십시오. 사례는 향이가 섭섭지 않도록 할 터이니, 부탁드립니다.”
곳곳에서 부스럭거리는 움직임이 일었다.
직후 일곱의 복면인이 천장에서, 하나의 복면인이 문 앞에서 뛰쳐나와 화서의 앞으로 부복했다.
가장 선두에 있던 소향은 말했다.
“안 될 일입니다.”
“명령이니 따르거라.”
화서는 그들을 보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그리 말했다.
항변은 받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얄궂은 일이었으나, 소향과 복면인들은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체로 모든 일에 관대한 화서였으나, 그녀는 한 번 결심한 일을 좀처럼 무르는 일이 없는 기벽이 있는 까닭이다.
“부탁드립니다. 소협.”
재차 목리원에게 건네진 말.
목리원은 가만히 화서를 바라보며 반문했다.
“소저께선 어찌하시려는 것이오?”
“그들에게 갈 것입니다. 저 하나를 내어주는 것으로 그들은 만족할 터이니, 이들만큼은 목숨을 온전할 수 있겠지요.”
“포기하는 것이오? 싸워보지도 않고?”
화서의 눈이 뜨였다.
지금 들려온 말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그 의도를 알 수 없어 그녀는 목리원을 바라봤다.
눈앞의 사내는 고요한 낯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소저께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오? 또 이들은 왜 도망쳐야 하는 것이오?”
언제나와 같은 순박한 물음이었으나, 화서는 그 속에 왜인지 평소와는 다른 기색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금 평소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호의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소협?”
“나는 알고 있소. 소저는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오. 아니, 죄가 아닌 선업을 쌓는 사람이오. 그것을 이 기루에 있는 이들의 미소가 증명하고 있소.”
쭉쭉 내뱉는 말은 전과 같이 그녀를 찬양하는 형태였으나, 이번 역시 그 기색만큼은 달랐다.
당연했다.
목리원은 지금 조금도 즐겁지 않은 까닭이다.
‘왜’라는 의문조차 사치로 느껴질 정도로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선인은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오. 사실은 그 반대지.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것은 악인이오.”
지금의 상황이 그가 생각하는 도리에 조금도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화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머릿속으론 이런 순간조차 입바른 말이나 지껄이는 저 주둥아리를 한 대 갈겨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사실 묵살해도 되는 의견이었다.
그저 돈을 쥐여주고 이제까지 진 빚을 갚으라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데도 화서는 그 말에 항변했다.
스스로도 연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그녀의 속에 자리한 까닭이었다.
저 답답함이, 저 올곧으려고만 하는 성정이 너무나도 보기 싫다는 생각마저 떠오른 까닭이었다.
“예, 당신은 참 옳은 말을 합니다. 한데 그것 아십니까? 세상은 도리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입니다. 자신을 뜻을 증명하기 위해선 강대한 힘이 필요하지요. 지금 상황만 봐도 그렇습니다. 저 아래, 당신은 절정의 무인이 있다고 했지요? 기색으로 봐서는 당신보다 그의 무위가 더 고강하겠지요.”
목리원은 반박하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화서는 그것에 주먹을 꽉 말아쥐며 말을 이었다.
“도리가 그렇다고 한들 어쩌시겠습니까? 당신은 저 무인을 이길 수 있습니까? 저희가 저항하여 저 무인과 맞서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습니까? 이보십시오. 무림은 당신 생각처럼 낭만적인 곳이 아닙니다. 이대로 맞서봐야 끝에 있을 것은 결국 끔찍한 패배일 터입니다. 살릴 수 있는 사람까지 죽게 된단 말입니다.”
근래 들어 이리 말을 많이 해본 일이 있던가.
화서는 감정에 휩쓸려 말을 쏟아내곤 헉헉 숨을 흘렸다.
왜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것인지, 화서는 여전히 몰랐다.
무엇이 이리 분노를 치밀게 하는 것인지 그녀 스스로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화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쓰게 웃었다.
‘그새 정이 들었구나.’
저 멍청한 인간이 저런 낭만이나 좇다 객사하진 않을지, 그것이 걱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렴 그래도 모가지는 붙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 깊게 연관되어 버린 건가.’
문득 떠오른 허탈함에 화서가 후회를 떠올리던 중, 목리원은 말했다.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지.”
“…뭐요?”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라 했소. 음, 아니.”
목리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여전히 고요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허공을 응시하길 잠시, 그는 이내 화서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미소 지었다.
“나는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드는구려.”
뒷골이 확 당겨온다.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차오른 분노에 화서가 뺨이라도 갈기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목리원은 이어 말했다.
“소저께서 잊으신 사실이 있소.”
멈칫.
화서의 몸이 멈춰 섰다.
그녀의 시야를 수놓는 것은 주제에 맞지 않게 믿음직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목리원이었다.
“협객은 악적에게 지지 않소. 이는 강호협객전의 제 1장에 나오는 검협의 대사요.”
톡톡.
제 품을 두드리며 내뱉은 말 뒤로, 목리원은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다녀오지.”
끼익.
문이 닫혔다.
*
수양현 외곽의 커다란 장원.
대문에는 멋들어진 필체로 ‘일륜회(一?會)’라는 현판이 쓰여있는 건물 내각에 두 사내가 마주 앉아 있었다.
하나는 비굴한 얼굴로 굽신대고 있는 거한, 일륜회의 회주였고 나머지 하나는 경화루의 입구에서 화서를 찾은 표산이었다.
“대, 대인께서 이리 나서주시니 몸 둘 바를….”
“헛소리는 집어치우시게. 내 자네들 같은 흑도와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치를 느끼고 있으니.”
움찔.
회주 강벽운은 표산의 기색에 작게 몸을 떨었다.
속엔 불만스러운 마음이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싸가지 없는 새끼.’
먼저 찾아와 돕겠다 한 주제에 말은 저따구로 하니 곱게 보이지 않는다.
하나 불만을 터뜨릴 수도 없는 것이, 그의 무위가 일륜회 모두가 덤벼도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고강한 까닭이다.
“시, 실언을 했습니다…!”
강벽운은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참아야 했다.
경화루는 수양현에서 가장 큰 기루.
그곳을 집어삼키면 얻을 이득은 고작 감정 문제 따위로 그르쳐서 될 정도가 아니었다.
강벽운은 조용히 표산의 술잔을 채웠다.
어떻게든 비위를 맞춰 일을 끝내겠다.
그런 생각이나 하며 억지 미소를 띄워 올리는 와중.
벌컥!
“형님! 침입입니다!”
내각을 지키고 있던 부회주가 황급히 문을 열며 외쳤다.
강벽운과 표산의 시선이 동시에 그를 향했다.
“뭐? 침입? 누가?”
“모, 모르겠습니다! 그게….”
부회주의 낯빛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떠오른 표정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기색이었다.
“…하, 한 명. 한 명입니다.”
맥락상 한 명의 칩입자가 있고 그를 막지 못해 이곳까지 달려왔다는 말일 터.
그것에 강벽운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호통을 내지르려던 순간 표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놈인가 보군.”
무언가 아는 듯한 기색에 강벽운이 표산을 바라봤다.
표산은 그 시선을 넘기며 말했다.
“짐작이 간다. 다녀오지.”
그는 말만을 남기고 부회주를 지나쳐 소란이 전해지는 장소로 향했다.
*
빠악!
목리원은 다가오는 흑도들을 검집으로 후드려 패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단신으로 감행한 침입.
하나, 그를 막을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당연했다.
절정의 무인은 엄연히 초인으로 분류되는 종이다.
그런 만큼 범인들이 모여 왈패 짓거리나 하는 흑도로선 그를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회주는 어디 있소.”
마침내 정원의 흑도를 모두 쓰러트린 목리원이 고요한 낯으로 바닥에 쓰러진 이에게 물었다.
그 순간.
피슉!
무언가가 목리원의 뺨을 스쳐 지나가며 그의 얼굴에 자상을 남겼다.
목리원의 고개가 들렸다.
그곳에 있는 것은 삿갓을 쓰고 있는 음침한 인상의 중년, 경화루의 입구에서 봤던 절정의 무인이었다.
“기어이 이곳까지 왔구려. 아니, 찾아갈 수고를 덜어줘 고맙다고 말해야 하나.”
느긋한 어조로 내뱉는 말.
목리원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를 본 순간, 의심으로 자리했던 것이 확신으로 화한 까닭이었다.
‘…역시.’
저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나도 정순했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묻게나. 그 어린 나이에 그만한 무공을 쌓은 이니, 내 선배로서 그 정도 자비는 베풀어주지.”
선배라.
목리원은 그 말을 곱씹었다.
그리하며 차갑게 식는 머리를 느꼈다.
“선배, 선배라 하였소.”
“그렇다만.”
“내 이곳까지 오며 내내 생각한 것이 있었소.”
턱.
목리원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하며 떠오른 의문을 뱉어냈다.
“암만해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소. 분명 당신에게서 느껴지는 기파는 정순하기 그지없음인데, 왜 당신 같은 이가 흑도를 돕고 있는지.”
“그 점은 오해가….”
“없을 것이오. 없어야지. 절대 있어선 안 되지.”
턱.
또 한 발, 목리원이 앞으로 나섰다.
직전까지 고요하던 얼굴은 서서히 시린 기색을 발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싸늘하게 내려앉아 버렸다.
“감히, 수많은 협객이 이름을 드높인 정도를 더럽히면서 할 말이 있으면 안 되지.”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또한 자기암시에 가까웠다.
그랬다.
지금 목리원이 표산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그로서는 참 드물게 보이는 분노였다.
“악적이나 행할 짓을 하며, 선인을 짓밟는 짓을 하며 내뱉을 말이 있어선 안 되는 것이오.”
목리원에게 정도는 성역이어야 했다.
또한 천살성을 이고 난 자신조차 협객으로 만들어 줄 의로움이어야 했다.
그렇기에, 그는 표산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르겠소.”
스릉.
목리원이 검이 처음으로 검집을 나왔다.
그 위로 떠오른 것은 묵색의 별.
절정지경에 이른 무인의 상징인 검기상인이었다.
“감히 그 추악한 입으로 선배 됨을 논하지 마시오.”
순간, 목리원의 눈동자에 핏빛 광채가 스쳐 지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