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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결국 용의 손톱이 상어의 이빨에 밀리기 직전 카그네프는 몸을 던져 아슬아슬하게나마 상어의 이빨을 회피할 수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키쿨의 기술에 밀렸다는 치욕감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더욱 일그러졌다.
‘염병할... 감히 이 몸이... 이 몸께서 저런 놈에게 이런 수모를 겪어야 되다니!!’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부글부글 들끓는다.
뒤는 생각하지 않고 전력으로 눈앞에 있는 놈을 깨부숴 다시 한번 과거 그때의 공포를 놈에게 심어주고 싶을 정도로.
허나.
‘크으으...!’
여태까지 무수히 많은 전장을 겪고, 무수히 많은 싸움을 해온 카그네프는 그렇게 행동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강할지언정 감정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자의 말로는 언제나 죽음뿐이었던 탓이었다.
“빠드득.”
그러니 화가 나도 방법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정말 거지 같구나...’
그렇다면 과연 지금 올바른 판단은 무엇일까?
‘후우우...’
카그네프는 심호흡을 하여 억지로 감정을 억누른 뒤 방도를 도출해내기 위해 여태껏 그러했듯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지만 아무리 그라고 할지언정 마땅한 타개책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젠장할! 젠장할! 젠장할!’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만을 죽일 듯이 견제하며 기둥에 다가갈 수 없게 방해하는 상대.
거기에 아직 당도하지 않은 자신의 아군.
당최 그에게 유리한 점이라고 정보를 누구보다도 먼저 얻어 기둥에 가장 빨리 당도한 것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후우... 근데 그걸 놓친 건가... 크라베스놈 때문에...’
결국 좋든 싫든 눈앞에 있는 키쿨을 처리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란 걸 깨달은 카그네프가 언제 그랬냐는 듯 냉철한 표정이 되어 키쿨을 응시했다.
뚜둑-
목을 꺾어 근육을 푼 그가 싸늘하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제부턴 좀 다를 거다. 옛날의 그 공포를 다시금 떠오르게 만들어주마 물고기야.”
“호오, 마력을 어떻게든 아끼는 거 같더니. 이제야 제대로 할 맘이 들은 건가? 뭐,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이제 너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물고기 놈이 말은...”
파앗!
비로소 마력을 개방한 카그네프가 키쿨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콰앙!
쾅!
콰과과광!
크라베스와 리네리아, 카그네프와 키쿨의 전투는 마치 천지를 개벽하듯 세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어찌나 여파가 강한지 지원을 오고 있던 알베타스의 하위 병사, 알비론과 스카이레블은 마땅한 기술을 맞지 않았음에도 그 충격파만으로 가루가 되어 소멸할 정도였다.
“어딜 감히 한번 패배한 물고기 따위가 나에게!!”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나? 이번은 다를 거라 하지 않았나.”
쾅!
콰과광!
그야말로 죽일 듯이 싸우는, 아니 죽이기 위해 싸우는 그들!
그런 그들의 약간 떨어진 장소에선 이런 그들의 행보를 응시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나보다 먼저 가다니... 이 멍청한 놈들... 이런 멍청한...]
아쿠리네와 보레아스의 죽음을 깨닫고 애써 나오는 눈물을 참고 있는 실피리오와 그런 그녀의 일행들이었다.
[실피리오님...]
디네가 실피리오의 어깨를 토닥였다.
사실은 그녀 또한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여태껏 유세현과 함께해왔던 그녀는 이런 죽음을 무수히 많이 봐왔기에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젠장, 저 빌어먹을 것들을 당장...!]
결국 도무지 참지 못하겠는지 실피리오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허나, 그것은 곧 이강호와 이프리트, 카시우스에 의해 제지되었다.
“진정해라 실피리오. 지금 나가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래, 이강호의 말이 맞아. 진정해.]
“확실히... 지금 놈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죽이려고 하고 있어. 나가봤자 괜히 서로 타협할 빌미만 주게 될 뿐이야.”
[...큭...]
실피리오가 순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에게 있어선 이렇게 있어야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치욕스러우면서도 먼저 간 두 명의 친구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답답한지 실피리오가 물었다.
[그럼 일단은 계속 이대로 끼어들지 말고 지켜보자 이거냐?]
“그렇다.”
[이러다가 놈들 중에서 갑자기 큰 스킬을 사용해서 석탑째로 기둥을 부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만약 누가 네가 말한 것처럼 큰 스킬을 사용한다면 다른 한쪽도 스킬을 사용해서 이를 막을 테니까.”
[......]
“그보다도 묻고 싶은 게 있다만. 바람의 정령왕.”
[뭔데?]
“저기 안에 있는 최후의 기둥, 분명 나무라고 했지? 저 천장까지 솟아 있는 고목의 근원이 되는.”
[그래, 맞아. 우리는... 이 나무를 태초의 나무라고 불렀었어. 신께서 만든... 아니 신께서 직접 변화하셔서 된 유일한 나무였으니까.]
“그렇군. 신이 직접 변화한 나무라... 그렇다면 저 태초의 나무, 다른 곳으로 옮길 수는 없는 건가? 대충 뿌리만 깊숙이 베어서.”
[...뭐?]
[으음?]
이프리트를 포함하여 실피리오의 고개가 순간 갸웃 꺾였다.
그들에게 있어선 실로 생뚱맞기 그지없는 발언인 탓이었다.
태초부터 저곳에 단단히 뿌리 박혀 자신이 탄생하기 전보다도, 세계가 시작되기 전보다도 더 먼저 저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나무를 옮길 수 없겠냐니?
[미친. 이강호. 너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
“아니, 그렇게 안 된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말하지 말고 한번 잘 생각해봐라. 마냥 하는 말이 아니라 나도 이 세계에 와서 얻은 정보가 있기에 하는 말이니.”
[정보?]
“그래. 정보. 저 나무가 단일 속성인 너희가 고통받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세계를 재구성했다는.”
[...너 그런 걸 알고 있었어?]
“안 지는 얼마 안 되었다. 최근에 얻은 정보라.”
[아무튼 뭐가 되었든. 너 그럼 나무가 최후의 기둥인 걸 이미 진즉 알고 있었겠구나?]
“아니, 그건 아니다. 다만 얻은 정보로 짐작만 하고 있었을 뿐.”
[......]
“아무튼 이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뭐가 안 중요해. 네가 지금까지 우리를 속여 왔다는 뜻이 되는...]
“안 물어보지 않았나. 너희가 정보를 준 것도 아니고. 게다가 배신할 거였다면 예전에 배신했을 거다 실피리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어쭙잖은 의심은 거둬라.”
[......]
실피리오가 입을 꾹 닫았다.
괘씸하긴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강호의 말이 전부 맞는 탓이었다.
“수긍하는 건가?”
[그래... 미안해.]
“됐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저 나무를 신 그 자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나무는 기본적으로 뿌리가 뽑혀도 바로 죽지 않고 일부 잘라져도 제대로만 묻으면 다시 뻗어나가는 습성이 있지. 그러니까 만약 나무와 대지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이 세계의 존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신 그 자체나 다름이 없는 나무의 생사여부가 이 세계의 존폐를 결정하는 것이라면...”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이강호는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프리트, 실피리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만약 이 가설이 들어맞는다면...
‘시간을 더 끌 수 있다.’
잘만 숨긴다면 빛과 어둠의 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그곳을 클리어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게 불가능하다면.
‘이곳에서 오는 적들을 전부 막아야 된다는 건데.’
이강호는 사실상 이건 불가능이라 보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알베타스족이 이곳을 향하고 있고, 필히 알베타스도 머지않아 이곳에 당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힘을 아끼려던 카그네프와 크라베스가 태세를 바꾼 것이겠고.
“자, 다시 묻겠다. 어떻게 생각하지?”
[......]
이강호의 말에 이번에야 말로 진지하게 고민한 이프리트와 실피리오가 순간 서로를 응시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능할 것... 같다.]
그들이 나무를 몰래 옮겨보기로 결정을 내린 순간이었다.
* * *
쾅!
콰광!
계속해서 하염없이 파공성이 울려 퍼지고 있는 전투 현장의 근처, 이강호는 곧장 작전을 짰다.
크라베스와 리네리아 그리고 카그네프와 키쿨이 아무리 서로를 죽일 듯이 공격하며 싸우고 집중하고 있다 하더라고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기둥.
항상 한편으론 기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터기에.
“그냥 접근하게 된다면 아무리 조심해서 접근한다 한들 발각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겠지. 나무를 옮길 틈은 거의 생기지 않을 테고.]
이프리트가 차분히 말했다.
이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 우리는 미끼를 던진 뒤 일부만 석탑에 진입할 거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우리가 석탑에 접근하려는 의도를 놈들에게서 감출 수 있겠군. 우리가 기둥을 지키면 지켰지 부술 이유는 없으니까.]
“바로 그거다.”
[그럼 미끼 역할을 누가 하지?]
이프리트가 순간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이것에 답한 건 실피리오였다.
[내가 하도록 할게. 아니 나와 카시우스가.]
“......”
이에 카시우스가 순간 몸을 움찔거렸다.
그로서는 미끼보다도 잠입 임무를 맡고 싶은 게 본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의 상황이 발생할 시 신물 파편을 손에 넣는 자는 기둥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자일 것이기에.
인간인 저들이 바로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러도록 하지.”
하지만 카시우스는 이러한 본심을 드러내진 않았다.
실피리오가 저렇게 말한 이상 박박 우긴다고 해서 잠입조에 포함되는 게 허락될 리가 없을뿐더러 애써 다시 얻은 신뢰만 잃을 터기 때문이었다.
아까운 일이지만 두 개다 잃을 수는 없는 법이지 않은가!
‘호오, 실피리오가 카시우스를 믿고 있지 않는 건가.’
이에 이강호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맺혔다.
이렇게 되면 카시우스를 견제하지 않아도 되기에 나머지 인원을 뽑는데 큰 고민을 할 필요성이 없어졌다.
“그렇다면 나도 참여하도록 하지. 너희들만으로는 저놈들의 이목을 전부 끄는 건 불가능할 테니.”
이강호가 살며시 손을 들며 말했다.
[네가?]
실피리오는 의외라는 표정을 내보였다.
“그렇다. 왜 싫은가?”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그렇게 미끼조가 완성되었다.
잠입조는 이프리트, 디네, 김주희가 맡기로 했다.
“그럼, 가볼까.”
그렇게 곧바로 작전이 시작되었다.
* * *
“빌어먹을... 물고기놈...!”
거칠게 움직이는 카그네프의 입에서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일전에도 한번 느껴봤지만 알베타스화한 키쿨의 공격은 변화하기 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하기 그지없었다.
“이놈이!”
[용의 손톱]
“흐음, 또 그건가? 이제는 식상한데?”
[상어의 갈퀴]
치지직-
팡!
용의 손톱과 상어의 칼퀴가 부딪치자 서로 분쇄되어 사라진다.
이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에는 카그네프의 기술이 위력면에서나 섬세함에서나 항상 앞서있었었으니까.
“크으...!”
그런데 놈이 알베타스화 한 지금은... 지금은...!!
그때였다.
카그네프와 키쿨, 두 사람의 발아래에 돌풍과 화살이 동시에 몰아친 것은.
쿠구궁!
슈슈슈슉-
돌풍의 영향으로 가속한 화살은 키쿨과 카그네프, 둘에게 있어서도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건... 카시우스의?! 읏!’
파바밧-
일부 화살이 배리어를 뚫고 들어와 카그네프의 팔에 꽂힌다.
“크윽!”
카그네프가 눈가를 움찔거렸다.
이 상황에서 자신과 키쿨 둘을 동시에 공격해 오다니, 놈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크으으! 카시우스! 이런 멍청한 놈아! 지금 누굴 공격하고 있는 거냐!!”
잔뜩 열이 받은 카그네프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허나 돌아오는 것은.
“흐음, 이걸 맞을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집중하고 있었나 보군. 카그네프.”
슈슈슈슉-
더욱더 거센 화살 세례가 카그네프와 키쿨을 향해 쏟아졌다.
* * *
한편 크라베스와 리네리아가 거칠게 싸우고 있는 공간에도 이강호의 불길이 솟구쳤다.
화르륵-
쿠구구궁!
“크윽!”
그 강렬하기 짝이 없는 불길에 둘은 하던 것을 멈추고는 동시에 시선을 돌려 불꽃의 주인을 응시했다.
이강호인 것을 알아채기 무섭게 크라베스가 놀란 눈이 되어 외쳤다.
“너... 이강호...!”
“오랜만이군. 크라베스.”
“네가 어떻게 여기에...”
“운이 좋았다고 말해두지.”
이강호가 창대를 휭휭 돌리며 자세를 다잡았다.
그러자 크라베스의 입가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대번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크크크, 죽고 싶어 제 발로 나타나 주다니.’
그는 과거 이강호가 신물 파편을 얻는 걸 직접 보았기에 벨제뷔트, 카시우스를 포함하여 이강호가 신물파편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 이강호도 죽이고 기둥까지 파괴한다면?
그야말로 1석 2조.
‘상황이 그닥 좋지는 않지만... 반드시 없애주마.’
눈을 부릅뜬 크라베스가 이강호를 향해 거칠게 쇄도했다.
왕중의 왕(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