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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잉-
유세현이 대꾸 없이 의연하게 검을 뽑았다.
개인 서열전이라 칭한 이 말도 안 되는 편법에 인상을 약간 찌푸릴 법도 하건만... 마치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상관없다는 듯.
“하하하... 그래...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냐...”
이에 동요를 주려했었던 벨제뷔트가 되레 기분이 나빠져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래,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이를 으득 간 벨제뷔트는 거칠게 포효를 터트렸다.
“그래! 그렇게 자신 있으면 어디 한 번 받아 보거라 오만한 인간이여! 현 마족 정점들의 협공을!”
공격은 그 말이 끝나는 즉시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제스처를 취한 이는 나르슈나.
“건방진 인간 놈. 어디 한 번 받아봐라, 진실을 감추는 나의 어둠을!!”
그녀는 자신의 주력기인 환각과 환영마법, 그리고 고유특성을 동시에 사용하며 유세현의 눈과 귀를 가렸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새까만 안개가 스르륵 주위를 잠식하여 유세현의 시야를 가린 순간이었다.
훙-훙-훙-
검 한번 휘두를 틈조차 없이, 어둠 속에서 거대한 양날도끼, 레오릭의 애장병 데크니르스가 유세현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유세현은 마치 미리 알고 있던 것 마냥 몸을 살짝 틀어 이를 회피했다.
그러자 곧바로 등 뒤에서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싸늘한 음성.
“그래, 그럴 줄 알았지. 피할 줄 알았어. 하지만 이것도 피할 수 있을까? 유세현?!”
슈우욱-
어느새 본체화한 벨제뷔트의 거대한 주먹이 유세현의 등을 향해 날아왔다.
시간을 끌 생각이 전혀 없는지, 어마무시한 마력을 머금고 있는 주먹이었다.
하지만.
스슥-
다음 순간 검을 쥐고 있던 유세현이 양손을 자연스럽게 머리 옆으로 쓱 올리며 검날이 등 뒤로 향하는 형태를 만들었다.
치지짓-
벨제뷔트가 내지른 일격은 그 검신에 가로막혔다.
팅!
“...?!”
그러자 벨제뷔트의 눈이 순간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이번 공격은 눈으로 확인하고는 대처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그런데 이걸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렇게 자연스럽게 방어하다니?!
‘이것마저도 예측하고 있었다고?!’
순간적으로 신의 회랑, 그 당시의 때가 떠오른 벨제뷔트가 미간을 와락 구겼다.
그때 얼마나 농락을 당했던가.
“유세혀어언!”
그 많은 굴욕을 겪었지만 단순 자존심만큼은, 루시뷀트 못지않은 자가 바로 벨제뷔트다.
그는 이를 악문 뒤 방금 전 일격으로 튕겨져 나간 유세현을 향해 돌진했다.
어떻게든 한 방 먹이기 위하여!
그렇게 순간적으로 접근한 벨제뷔트가 더욱이 마력을 머금게 한 건틀릿을 유세현을 향해 내지르려 한 찰나였다.
순간적으로 양손에서 오른손으로 검을 옮겨 쥔 유세현이 왼쪽 손을 벨제뷔트를 향해 쭉 펼쳤다.
지이잉-
‘저건...!’
유세현의 포즈를 본 벨제뷔트는 무엇이 날아올지 깨닫고는 재빠르게 하던 행동을 정지하곤 양손을 모아 가드를 취했다.
콰아아아앙-
이윽고 천마혈사장이 벨제뷔트의 전신을 향해 쏟아지자, 방어한 벨제뷔트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크크크! 오만하긴!!’
사실 벨제뷔트로서는 어찌어찌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천마혈사장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정면으로 대응한 이유, 그것은.
스슥-
순간적으로 나르슈나의 어둠의 안개가 일렁이며 그 속에서 푸른 안광을 이글거리는 세 명의 레오릭이 각각 유세현의 머리 위, 좌편, 우편에 등장했다.
좌편의 레오릭은 본체인 진짜, 나머지는 나르슈나가 만든 환영이었다.
레오릭과 그의 환영은 나타나기 무섭게 들고 있던 데크니르스의 자매품, 액스니르스로 무방비 상태인 유세현의 왼팔을 일제히 노렸다.
휘이잉-
어마무시한 속도로 유세현의 왼팔을 향해 떨어지는 세 개의 양날도끼.
‘이건 해냈다!’
가드로 인해 흩어지는 천마혈사장의 틈 사이로 지켜보고 있던 벨제뷔트를 포함하여 나르슈나, 휘두른 레오릭 장본인조차도 그리 확신했다.
그야말로 외통수였기 때문이었다.
셋 중 누가 본체인지 알지 못할게 분명한 현재, 거지 같은 드래곤들처럼 미리 전신에 20~30겹 최상위 방어마법을 펼쳐놓지 않은 바에야 이것은 절대 방어해낼 수 없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스슥-
가짜가 아닌 진짜 액스니르스의 앞으로 난데없이 시퍼런 검날이 번뜩였다.
유세현이 어느샌가 오른팔로 겨눈 검의 검신이었다.
‘무슨!’
행동을 본 벨제뷔트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대체 어떻게?’
그렇다.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진짜를 알아내 대처한단 말인가?
‘이런 미친! 말도 안...’
지이이잉-
콰아아아앙-
순간적으로 검 끝에서 천마혈사장이 발사되자 환영이 그대로 신기루처럼 흩어져 사라짐과 동시에 레오릭의 본체와 액스니르스가 자리에서 거칠게 밀려났다.
유세현은 짧은 틈이 생기자 벨제뷔트에게 내뿜고 있던 왼손의 마력을 거둠과 동시에 타겟을 바꿔 레오릭을 향해 쇄도했다.
순간적으로 파고든 유세현이 갑주 틈으로 훤히 드러난 그의 갈비뼈를 향해 검을 내지르려던 찰나였다.
“어딜!”
스스슥-
허공에서 난데없이 거친 여성의 목소리가 울리며 어둠으로 된 수많은 창이 상공에서 유세현을 향해 비처럼 쏟아졌다.
나르슈나가 사용한 최상위 파괴마법, 절멸의 창이었다.
채재쟁-
물론 그 수백 개의 창이 유세현의 몸에 생채기를 입히는 일 따윈 없었다.
나르슈나로서는 원랜 사용하지 않으려던 것을 레오릭을 구하기 위해 억지로 사용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전부 창을 쳐낸 유세현이 고개를 쓱 들어 어둠 어딘가를 응시했다.
나르슈나는 그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몸을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유세현이 응시하고 있는 곳은...
‘어떻게 내 위치를!!’
그녀가 몸을 숨기는 데 사용한 환영과 환각마법은 죽음의 권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왕 루시뷀트조차도 순수하게 자신을 찾아내는 데는 나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저놈은...!!’
그때였다.
유세현이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생각보다 합을 잘 맞추는군.”
나르슈나는 그 순간 심장이 철렁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빌어먹을...’
나르슈나는 입술을 질끈 곱씹었다.
유세현의 말처럼 지금 방금 전 협공은 엄청나게 합을 잘 맞춘 것에 속하는 편이었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총사령관 레오릭과 벨제뷔트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상극의 존재.
그렇기에 그들은 이 이전까지는 서로 견제하면 견제했지 단 한 번도 합을 맞춰 싸워본 적이 없었다.
유세현 타도라는 큰 목적을 위해 정말 간신히 이 정도의 협공을 펼친 것인 것!
그런데.
‘전혀 통하지 않다니...!!’
어떻게 해야 될까.
나르슈나는 복잡해진 생각을 좀 정리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유세현은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다.
파앗-
순간적으로 도약한 유세현이 나르슈나가 숨어있던 곳을 향해 정확히 날아오고 있었다.
나르슈나는 순간적으로 재차 환각과 환영마법을 펼쳤다.
스스슥-
마치 분신이 생기 듯, 수십 개의 나르슈나가 이곳저곳에 생성되고 지형이 신기루처럼 일그러진다.
그러나.
‘어, 어째서!!’
유세현은 그런 것엔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이내 유세현이 5m 내로 접근하자 사색이 된 나르슈나가 비명을 지르며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너... 너 대체 뭐야! 대체 뭔데!!”
파바바밧-
펑!
퍼버버벙!
물론.
“좀 쉬어라.”
서걱-
“꺄아악!”
그런다고 유세현의 공격을 막아낼 순 없었지만.
“으으으...”
한쪽 팔이 잘려나간 나르슈나가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다른 한 손으로 다급히 출혈이 발생한 단면을 붙잡았다.
이로서 나르슈나는 팔을 붙이기 전까진 당분간은 리타이어.
슈우우욱-
빠악-
“커...커헉!”
허나 유세현은 이쯤에서 그만둘 생각 따윈 없었다.
서열전은 죽거나, 본인 스스로가 졌다고 말하기 전까진 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일은 언제나 철저하고 확실하게!
“크으으! 네놈...!!”
고통으로 인해 공포가 조금 잊혔는지 복부를 발로 차인 나르슈나가 유세현을 죽일 듯이 쳐다봤다.
유세현의 그러거나 말거나 추가타를 가했다.
퍼버벅!
“꺄아악!”
하지만 기절시키기 위해 마무리 일격을 가하기 전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거기까지다. 인간.]
후웅-
각각 손에 액스니르스와 데크니르스를 쥔 레오릭이 거칠게 양팔을 휘둘렀다.
유세현은 하던 걸 멈추고는 검을 들어 그것을 방어했다.
쩌어엉-
검과 도끼가 맞부딪치자 거친 충격파와 함께 종이 울리는 소리가 일대에 일었다.
유세현이 쩌릿하다고 느낄 정도의 강력한 파워였다.
사용하던 검에 균열이 간 걸 확인한 유세현이 새로운 검을 꺼내기 위해 뒤로 살짝 물러나자 레오릭이 나르슈나를 향해 말했다.
[몸을 추스러라 나르슈나.]
“...하, 하지만 레오릭님. 그럼 계획이...”
[그런 어설픈 계획 따윈 현 시간부로 끝이다.]
“예? 그럼...”
[지금부턴 내 식대로 싸울 것이다.]
“하, 하지만 세 명이서 합공을 했는데도 이런 상황이 되었는데...”
[아니, 애초에 급조한 그런 합공이 통할 거라 생각한 거가 문제였다. 나를 믿어라 나르슈나.]
레오릭이 의지를 보이듯 푸른 안광을 순간 번뜩였다.
“......”
그 모습을 본 나르슈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뒤로 스르륵 물러났다.
그렇게 나르슈나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레오릭이 비로소 유세현의 눈을 또렷이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까지 추태를 보였군. 사과하도록 하지.]
“......”
유세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좋아,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쿠구구궁-
레오릭의 전신에서 투기가 거칠게 터져 나왔다.
이전과는 확실히 전혀 다른 스타일의 전투 방식이었다.
‘이런 멍청한...!!’
이에 벨제뷔트가 질타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반면, 유세현은 상대를 인정하는 듯한 작은 실소를 내뱉었다.
‘아깝군.’
사실 약간 당해주는 척했을 뿐 그들의 어설픈 합공은 유세현에게 있어선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어설픈 건 안 하느니만 못하기에.
나르슈나는 어설픈 합공을 신경 쓰느라 제대로 능력 발휘를 못했고 레오릭 또한 벨제뷔트의 행동을 보며 기회를 엿보느라 자신의 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벨제뷔트도 이는 당연히 마찬가지고.
그러니 무난히 갔으면 서서히 체력을 갉아 먹히며 세 명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패배했을 터였다.
하지만.
‘역시 그 루시뷀트가 인정한 레오릭 답군.’
레오릭은 나르슈나가 당하는 걸 보며 단번에 그 사실을 깨닫고는 실수를 인정하곤 재빠르게 고쳤다.
약간이지만 승리할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그래... 그래 봤자 약간이지만...
슈슉-
순간적으로 자세를 낮춘 유세현이 레오릭을 향해 질주했다.
레오릭은 액스니르스를 유세현에게 던져 시야를 가림과 동시에, 나머지 한 손으론 데크니르스를 휘둘렀다.
후웅-
유세현은 그것을 허리를 홱 틀어 회피했다.
목 끝을 스쳐 자칫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어 보이지만 유세현에게는 이미 계산되어있는 행동이었다.
빠악-
결국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데 성공한 유세현이 주먹으로 레오릭의 갈비뼈를 가격했다.
[크흡!]
레오릭은 이에 전신에 힘을 주며 악으로 버텼다.
허나.
빠바박-
계속되는 연속 공격에는 아무리 레오릭이라 한들 결국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유세현은 솔직히 지금 질 자신이 없었다.
나르슈나가, 벨제뷔트가, 그리고 레오릭이 모든 힘을 개방해서 덤벼온다고 하더라도.
‘저런 머저리 같은...!! 저렇게 될 줄 알았다!!’
이에 약간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벨제뷔트가 이를 뿌득 갈았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망쳐버린 레오릭을 지금 당장이라도 쳐 죽여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크으... 투기는 통하지 않으니 사용해봤자 마력 낭비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왜 이렇게 제멋대로인 것일까.
본디 벨제뷔트의 계획은 이러했다.
세 명의 합공으로 유세현의 체력을 어느 정도 고갈시킨다.
이 과정에서 권능 종류는 어차피 통하지 않으니, 마력은 순수한 물리적 타격을 입히는 쪽으로만 사용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유세현의 힘을 소모시키면...
‘크으으...!’
뿌드득-
벨제뷔트가 재차 이를 뿌득 갈았다.
그는 지금 저 머저리 레오릭 때문에 계획이 망해 유세현을 잡을 때 사용하려 했던 그것을 지금 사용해야 될지 말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 실행할 것인가, 아니면 좀 더 각을 볼 것인가.
‘아니, 아무리 봐도 지금은 안 된다.’
[하아압!]
다음 순간 레오릭이 힘찬 괴성을 내지르며 데크니르스와 액스니르스로 바닥을 내리쳤다.
콰아아앙-
마치 폭발이 일어나듯 흙먼지와 파편이 거칠게 튕겨져 나오며 일대에 충격파가 휘몰아친다.
레오릭은 그 짧은 새에 유세현에게 밀리고 있었다.
퍼억!
유세현의 발길질에 걷어차이자 재빠르게 자세를 다잡은 레오릭이 안광을 빛내며 외쳤다.
[아직! 아직이다! 나의 힘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마왕계승전(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