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92화 (57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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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갈 곳을 잃은 혈액들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자, 알베타스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만천하에 울렸다.

그녀가 지금껏 세레나에게 보였던 그 어떤 웃음보다도 진심이 담겨있는 웃음이었다.

자신을 앞에 두고도 마치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것 마냥 여유로운 척이란 척은 다하더니.

감정이 없을지언정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지금은 과연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스슥-

알베타스가 추가적인 공격도 가할 겸, 세레나의 표정을 보기 위해 순간적으로 가속하여 다가간 순간이었다.

“......”

세레나의 표정을 쓱 훑은 알베타스의 입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륵 싸늘하게 닫혔다.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절단된 부위에서 오는 고통이나 절망적인 상황 때문이라도 인상을 찌푸린다던가 하는 등의 약간의 표정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건만.

‘이 녀석...’

세레나는 눈가의 움직임, 입술의 모양, 근육의 떨림 등등 미동이란 것 자체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인형처럼.

‘...께름칙하군...’

그렇기에 웬만한 것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알베타스조차도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렇다.

생명체라는 DNA에 내포되어있는 원초적인 괴리감이었다.

당장 배제해버리고 싶은 감각이 전신을 자극한다.

알베타스는 상황을 비틀어 세레나를 지금 잡게 된 것을 천운이라 생각하며 주먹을 뻗었다.

슈욱-

파앙!

세레나는 그것을 재빨리 돌려차기를 하여 방어했다.

물론.

[에반!]

[알고 있습니다!]

그것조차도 알베타스의 노림수였지만.

스슥-

순간 발길질을 날린 세레나의 등 뒤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세레나의 전방에 있었을 에반은 어느새 그녀의 뒤로 돌아와 있었다.

에반의 검술은 곧장 펼쳐졌다.

[대라무위신공(大羅無爲神功) 개(改]

제5 절기.

[환영대검무(幻影大劒舞)]

그것은 사지만을 완벽히 분쇄하는,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었다.

상대를 먹어치워 알베타스화 시키는 [상자]가 상대를 알베타스화 시키기 위해선 머리를 포함한 몸통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촤좌좌좍-

순간적으로 발산된 40개가 넘는 검기가 세레나를 향해 쏟아진다.

그리고 비살상 기술이라고 할지언정 에반은 현재 큰 부상을 입은 세레나가 이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부분적으로나마 고유특성을 듬뿍 집어넣었으니까.

허나.

“대단하군요. 에반. 알베타스화 하고 나서 더 강해졌군요. 놀랬습니다.”

무미건조한 말투로 툭 말한 세레나가 몸을 크게 회전시키며 알베타스가 있는 곳부터 에반이 있는 곳까지 커다랗게 횡으로 검을 그었다.

스슥-

그것은 언뜻 보면 마지막 발악을 위한 대충 휘두른 검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스스슥-

공간에 순간적으로 기다란 선이 생기기 무섭게 에반이 다급히 외쳤다.

“여왕님 피하십시요!! 이건...!”

“으음?!”

신살참(神殺斬).

양무원의 집념이 만들어낸 신조차 베어버리는 무공은 무섭게 전진하여 눈 깜짝할 새도 없이 40개의 검기를 깨부수고는 에반과 알베타스를 덮쳤다.

“크악!”

커다란 비명이 울러 퍼졌다.

“크으으...”

큰 피해를 입은 건 환영대검무를 사용하기 위해 보다 가까이 있었던 에반.

그는 세레나처럼 한 팔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알베타스는 에반의 경고 덕에 빠르게 반응하여 다행히 큰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이...”

알베타스의 인상이 와락 구겨짐과 동시에 이마에 힘줄 하나가 뽈록 돋았다.

마치 어린애를 제압하듯 순식간에 에반의 검격을 공간째로 잘라버리며 부숴버리다니 이 무슨 무지막지한 스킬이란 말인가!

‘놓치면 안 된다!’

마력의 흐름을 읽어 세레나가 또다시 블링크를 사용해 도망치려 한다는 것을 깨달은 알베타스는 즉시 손을 들어 마력포를 발사했다.

콰아아아앙-

계산할 틈을 주지 않고 신성력으로 강화된 마력포가 덮치자 세레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스슥-

다시 한번 신살참을 발동.

하지만 그 순간 알베타스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방금 전의 무식한 마력포는 세레나가 이렇게 반응해주기를 노리고 한 행동이었으니까.

[상자! 지금이다!]

스슥-

알베타스가 눈을 번뜩 빛내자 땅 속에서 대기하던 운송용 거대 애벌레, 자이언트 웜이 지면 위로 솟아오르며 쫙 벌린 웜의 입안에서 직사각형 형태를 지닌 나무관이 툭 튀어나왔다.

그것은 과거 에반을 먹어치운... 먹어버린 이를 알베타스화 시켜버리는 알베타스의 비밀병기 [상자]였다.

[먹어치워라! 상자!]

퉁!

명령에 따라 세레나의 근처에 도달한 [상자]의 관 뚜껑이 아가리를 쩌억 벌리듯 활짝 열린다.

부상당한 세레나는 갑작스러운 [상자]의 등장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깨닫고는 다급히 쳐내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어딜!”

촤좌좍-

다급히 날린 에반의 추가적인 공격은 아무리 급조했다 한들 부상을 입고 체력이 떨어진 세레나의 움직임을 일순간 막기에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다.

스스스-

암흑 같은 [상자]의 내부가 세레나의 시야에 드리운다.

[상자]와 세레나의 거리는 이제 고작 2m 남짓이었다.

그리고 그 거리는 그녀 자력으로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거리였다.

‘먹었다.’

그렇기에 그곳에 있던 에반을 포함한 모든 알베타스의 생명체들은 그리 판단했다.

허나 세레나의 육신이 [상자]의 내부 속으로 빨려 들어가 관 뚜껑이 닫히기 직전.

스슥-

턱!

치지지직-

순간적으로 블링크를 이용해 [상자]와 관 뚜껑 사이에 등장한 무엇인가가 닫히는 것을 힘으로 억제했다.

에반과 알베타스는 그자를 확인하기 무섭게 동시에 눈이 화등잔만해졌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블링크를 사용할 수 있던 이는 세레나 밖에 없었는데!

모습을 자세히 확인한 에반이 침음을 삼키며 작게 읊조렸다.

“데프... 하우어...”

그렇다.

등장한 이는 과거 블랙드래곤 로드이자 벨제뷔트의 권속이었던 데프하우어였다.

[상자]를 발로 뻥 차 내부에서 세레나를 꺼낸 데프하우거가 떨어져 나갔던 세레나의 왼팔을 내밀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세레나님.”

“그래, 딱 잘 맞춰왔구나. 창은?”

“그것은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추가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퇴각한다.”

마치 별거 아닌 물건처럼 잘려나간 자신의 왼쪽 팔을 받아 든 세레나가 툭 말을 내뱉고는 몸을 홱 돌렸다.

창을 손에 못 넣은 것이 아쉽기도 할 법하건만 미련이라곤 1도 없는 모습이었다.

알베타스는 그런 세레나를 보며 입술을 살짝 곱씹었다.

전력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추격하여 끝장을 봤겠지만...

‘쯧, 아쉽구나.’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

이번 싸움은 여기까지라는 것을.

알베타스가 마찬가지로 몸을 홱 돌리며 말했다.

“창을 챙기거라 에반. 우리도 물러난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의 전투는 롱기누스가 알베타스에게 넘어가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 * *

저벅- 저벅-

임시 막사로 돌아온 세레나는 잘려나간 자신의 왼팔을 대충 접합시키기 무섭게 의자에 앉아 이번에 본 나무관, [상자]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상자]

알베타스가 지니고 있는 물건 혹은 생명체로 대상을 알베타스화 시킬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개체.

알베타스의 [상자]는 워낙 그 흔적이 비밀스럽기 그지없고, 과거에 전례가 없어 아카식 레코드의 파편을 지니고 있는 세레나조차도 여태껏 존재만 인지하고 있었을 뿐 생김새나 조건 등등 정보는 이제껏 하나도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었다.

‘흠...’

그렇기에 세레나에게 있어서 이번 전투는 뼈아프긴 하지만 잃기만 한 전투라고는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대상을 알베타스화 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대상의 머리를 포함한 몸체가 무사해야 가능하다.’

짧기 그지없었지만 이번 일로 꽤나 많은 정보를 알아내 수 있었기 때문에.

‘유혜인을 납치하지 않은 이유도 이 [상자]와 모종의 관련이 있기 때문일 확률이 높겠군.’

그녀는 그렇게 기억을 꼼꼼히 뒤져 [상자]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취합했다.

그리고 나온 결과.

그 첫 번째.

‘관의 강도는 그리 강하지 않다.’

데프하우어가 세레나를 구하기 위해 발로 찬 부위가 그대로 박살이 나며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잘 쳐줘봐야 A랭크 수준.

아마 경도도 그리 강하진 않으리라.

그리고 두 번째.

‘관은 휴대가 불가능하다.’

만약 아공간 포켓 등에 휴대가 가능했더라면 그런 무지막지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을 웜 속에다 구태여 넣고 다니는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성이 없었다.

그 외에도 관의 이동속도나 움직임 등등... 자질구레한 것까지 차례차례 정리한 세레나는 이만 [상자]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상자]도 [상자]지만 계획했던 일이 알베타스에 의해 틀어진 현재, 플랜 B를 당장 실시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곧장 각 로드들이 감시 겸 지원군으로 보내 놓은 대표들을 불러 모았다.

“갑자기 모두를 불러 모으시다니... 무슨 심각한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겁니까? 위대한 레드의 로드시어.”

“예, 맞아요.”

그들이 의문을 표하자 세레나는 지금껏 숨기고 있었던 이 세계의 상태에 대해 면밀하게 말해주었다.

세계가 무너져 가고 있는 이유.

그리고 머지않아 알베타스에 의해 완전히 클리어 될 것까지.

전부다.

왜냐하면...

“세레나님... 지금 하신 말씀... 정말 정확한 정보입니까?”

“예, 이번 습격 때 손에 넣은 정보로 99.99% 맞다고 확신합니다.”

“......”

세레나의 답에 질문한 골드측의 대표, 알레우스나의 미간이 순간 찌릿 구겨졌다.

최근 본대로부터 보고 받은 바 현재 빛과 어둠의 지대의 클리어율은 90%를 넘은 상태였다.

두 달, 아니 이제 한 달 정도만 더 있으면 인간과 여러 세력의 방해를 뚫고 클리어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다다른 것이다.

그런데 이 세계가 알베타스에 의해 당장에 클리어 될 위기라니.

“크으으...”

이 무슨 날벼락이 아니란 말인가.

“그래서 저는 빛과 어둠의 지대는 포기하고 이 세계로 전부 모일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세레나가 차분히 억양을 곁들여 말했다.

“......”

이에 많은 드래곤들은 순간적으로 침묵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힘들 게 일궈놓은 것들인데... 그 많고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모여야 한다고 로드에게 보고를 올려야 되다니...

이 어찌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허나.

“그 정보 99,99%... 확실한 거겠죠. 세레나님.”

“로드의 명예를 걸고 약속할 수 있습니다.”

“큭...!”

그들도 알고 있었다.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쩔 수 없군요. 저희 로드님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그들 전원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전령을 급파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 * *

드래곤들이 각 로드에게 전령을 급파하기로 한 시점으로부터 3일.

충분히 휴식을 취한 알베타스는 권좌에 앉아 수하들로부터 정령들의 동향, 인간들의 움직임 등등 오랜만에 직접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가 오랜만에 직접 보고를 받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후후...”

드디어 원하는 정보가 마침내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정령들이 꽁꽁 숨겨두고 있어 지금껏 알아내기 힘들었던 최후의 기둥이 자리 잡고 있는 고대 산호 동굴의 위치!

알베타스는 마지막 보고가 끝나자 차분히 권좌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수하들을 눈으로 살폈다.

과거 아르우네라는 이름으로 세이렌족의 여왕이자 물을 지배하는 자였지만, 이제는 새로운 이름으로 충직한 수하가 된 에우로네부터 시작하여.

리자드 왕 캬쟉프.

샤크아크족의 왕, 키쿨.

쿠룬족의 왕, 리네리아.

그리고 인간의 영웅 에반 비텔스바흐까지.

베아렉클을 포함하여 나머지 인원까지 쓱 훑은 알베타스가 어느 때처럼 웃으며 말했다.

“가자꾸나. 이 세계를 끝내러.”

그녀가 산호성 바깥으로 발을 내딛자 마치 세계가 두려움에 떨듯, 대기가 거칠게 요동쳤다.

* * *

한편, 그 시각 마군의 진형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산호 계곡.

휘이잉-

마력의 바람이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산호 계곡의 바닥에서는 현존 최강이라고 불리우는 세 명의 마족이 한 인물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벅- 저벅-

좁디좁은 계곡 저편으로부터 발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진다.

이윽고 그들의 앞에 루시뷀트를 연상케 하는 붉은 눈의 눈동자를 지닌 남자가 나타나자 벨제뷔트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왔군. 유세현.”

“그런 약속이었으니.”

유세현이 툭 답했다.

벨제뷔트의 입가에는 전보다 더욱 짙은 미소가 맺혔다.

이내 그가 하늘 위로 양손을 거칠게 뻗어 올리며 외쳤다.

“하하하! 좋아! 좋아! 엄청난 기세로구나! 유세현! 암! 마왕이 되려는 자가 그런 기세가 있어야지! 자!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 마족이라면 그 누구나 참가가 가능한 무제한 개인 서열전을!!”

마왕계승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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