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9/606 --------------
“호오... 이 정도의 힘이라니... 재밌군... 재밌어... 정말 재미있어!”
하지만 그러한 키쿨의 태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게 너의 진심이 담긴 전력인가!!”
그의 입꼬리가 이전보다도 더더욱 위로 치솟으며 즐거운 미소를 띤다.
“그래... 이래야지. 이래야 내가 친히 찾아온 보람이 있지!”
지금껏 키쿨은 물의 정령왕인 아쿠리네에게 실망하고 있었었다.
물의 최강자와 물의 최강자의 대결.
서로의 자존심을 건 결투를 잔뜩 고대하며 찾아왔건만, 근접 능력이건 원거리 능력이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나도 격에 맞춰 보여 주여주도록 하마! 나의 진정한 힘을!”
키쿨의 전신에서 푸른 물의 마력이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물의 마력은 곧 주위에 있던 황금빛의 물줄기를 흩뜨려놨다.
“자, 간다!”
그는 웃는 모습 그대로 가속하여 황금빛 물줄기를 뚫으며 아쿠리네를 향해 달려들었다.
슈우욱-
파앙-!
콰아아앙!
마침내 키쿨과 아쿠리네가 다루는 황금빛의 물이 격돌하자 일대는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화하고 폭풍이 몰아쳤다.
아쿠리네는 이전보다도 더더욱 강해진 키쿨의 능력에 살짝 인상을 구겼다.
지금껏 보여주던 능력이 진심을 담은 것이 아니었다니?
‘하지만 괜찮다. 이길 수 있어.’
아쿠리네는 지금까지 한 공격을 바탕으로 키쿨의 가속 조건을 알아낸 상태였다.
‘놈은... 일반적인 물, 혹은 물의 마력 속에서만 가속이 가능하다.’
지금 신수의 발동으로 인해 얻은 황금빛 물이나, 자신이 직접 마력을 넣어 창조한 물이 키쿨의 주위를 완벽히 감싸 일반적인 물과 마력을 완벽히 차단시켰을 때 키쿨은 한순간이나마 가속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키쿨이 한순간이나마 인상을 찌푸렸던 것이고.
그러니.
쿠구구구-
그녀는 신수의 힘을 이용해 일대에 존재하는 물의 마력을 아예 황금빛의 물로 치환시키기 시작했다.
키쿨은 갑자기 주위의 물이 아쿠리네가 다루는 황금빛의 물로 변하자 살짝 당혹스러웠는지 다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건...?”
이윽고 키쿨을 완전히 감싼 막대한 양의 황금빛의 물이 또다시 그의 전신을 옥죄기 시작했다.
키쿨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 내 능력의 조건을 알아챈 모양이구나! 이 상황 속에서 알아채다니. 대단해! 정말 대단해!”
[......]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나를 붙잡아 둘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키쿨이 눈을 번뜩 빛내며 허공에 발길질을 했다.
쿠구구-
그러자 주위 물이 그의 발과 동화하며 거대한 상어의 형상을 이루었다.
샤크아크족의 종족특성과 고유특성을 결합한 그의 비기.
[상어의 이빨]
“자, 어디 한번 받아봐라! 정령왕!”
쿠오오오오-
고유특성과 결합하여 어마무시한 속도를 획득한 [상어의 이빨]이 황금빛 물결을 찢어발기며 아쿠리네를 향해 쇄도했다.
아쿠리네는 다급히 물결을 움직여 방어하려고 했으나 관통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도무지 제지시킬 수 없었다.
‘큭! 이 무슨 엄청난...!!’
하지만 아쿠리네는 그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되레, 위기를 기회로.
그녀는 순식간에 키쿨의 주위에 수십 개의 황금창을 만들어냈다.
놈이 발을 뻗은 자세 그대로 자리에 멈춰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 짧은 시간 동안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놈은 지금 고유특성을 스킬과 연결중인 상태라 움직이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자신은 코어만 잃지 않으면 얼마든지 재생할 수 있으니까.
육신의 일부를 내주고 키쿨을 확실하게 처리한다!
[죽어!]
슈우우욱-
마침내 각 측이 날린 회심의 일격이 서로를 강타했다.
콰아아앙!
그렇게 한차례 일격이 휩쓸고 간 뒤.
[으으으으...]
아쿠리네의 육신은 절반이 찢어발겨져 너덜너덜 해져 있었다.
반면.
“그 상황에서 회피하지 않고 되레 반격을 취하다니. 같이 죽을 생각이었던 건가? 정령왕?”
키쿨의 육체는 온전한 상태 그대로였다.
놈의 모습을 확인한 아쿠리네가 당황하여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회피를...]
“마지막에 정신집중을 풀고 피했기 때문이지. 뭐, 그 덕에 너를 확실히 처리하지 못한 거기도 하지만.”
[크윽...]
아쿠리네가 힘겹게 키쿨을 향해 손을 뻗어 주위에 다시 한번 황금빛의 물결을 모으기 시작했다.
육체를 수복하는 동안 다시 한번 놈의 육신을 옥죄어 놓기 위함이었지만...
“미안하지만...”
슈슉-
키쿨은 상어의 이빨이 만들어 놓은 물의 길을 타고 이미 그 주위를 빠져나온 상태였다.
“두 번씩이나 얌전히 걸려줄 만큼 바보는 아니라서 말이지...”
[...!!]
어느새 아쿠리네의 앞에 다다른 키쿨이 주먹을 거칠게 내뻗었다.
아쿠리네는 이에 다급히 방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파로 인한 피해는 막을 수 없었다.
퍼엉!
[으윽!]
그리고 그 충격파는 일부 육신을 잃은 아쿠리네에겐 무척 크게 작용했다.
뚜뜨득-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던 오른쪽 다리가 떨어져 나간다.
키쿨이 재자 주먹을 내지르며 말했다.
“넌 강했다 정령왕! 인정 하마! 이곳에 친히 올 가치가 있었어!”
[크으윽...!]
“하지만 내가 너무 늦게 이 세계에 온 모양이다. 너와 나의 기본 스텟 차이는...”
[으아아아-!]
쿠구구구-
아쿠리네의 괴음 섞인 함성과 함께 발악하듯 황금빛의 물결이 송곳이 되어 키쿨을 향해 몰아쳤다.
키쿨은 그것을 한 손으로 쳐내며 정령왕의 코어가 있는 왼쪽 가슴팍에 나머지 손을 쑥 집어넣었다.
“너무나도 크다. 절대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스슥-
이내 키쿨이 아쿠리네의 육신에서 천천히 코어를 뽑아냈다.
한순간에 자신의 코어를 송두리째 잃게 된 아쿠리네의 육체는 빠르게 균열이 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트득-
트드득-
스스스-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팔이, 다리가, 몸이...
[진... 건가... 내가... ]
황금빛의 물결이 빗방울이 되어 추적추적 떨어지는 것을 맞으며 아쿠리네가 힘 없이 중얼거렸다.
키쿨은 그런 아쿠리네를 잠시 쳐다보다 몸을 홱 돌리더니 발을 옮겼다.
마치 마무리는 할 필요가 없다는 듯.
하지만 키쿨이 채 세 발자국을 나아가기도 전이었다.
[어딜 가시나. 우리 귀여운 아쿠리네의 코어를 가지고.]
“음?”
난데없는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옴과 동시에 주위의 대기를 이루고 있던 물이 급작스럽게 황금빛의 불로 변환되더니 키쿨의 발밑에서 어마무시한 위력의 불기둥이 치솟았다.
콰과과과-
‘이건...?!’
키쿨은 이에 다급히 주위에 자신의 마력이 담긴 물을 퍼트림과 동시에 가속 이동을 하여 벗어나려 했으나, 목소리의 주인은 마치 키쿨이 그렇게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순식간에 물을 기화시키며 키쿨의 발목을 붙잡았다.
쿠구구구-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후, 좌우, 위아래, 사방에서 몰아치는 황금빛의 화염의 폭풍.
키쿨은 급한 대로 마력의 물로 전신을 감싸 방어했지만, 그다음 순간 그의 앞에 활활 타오르는 육체를 지닌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인가.”
[호오, 내 이름은 알고 있네? 뭐, 그건 상관없고.]
이프리트가 아쿠리네의 코어를 쥐고 있는 키쿨의 오른손을 향해 손을 쑥 뻗었다.
키쿨은 이에 코어를 부셔야 되나 말아야 되나 딱 1초간 망설였다.
지금까지 키쿨이 코어를 바로 부수지 않고 지니고 있었던 이유는 회수하여 가져오라는 여왕, 알베타스의 직접적인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정령왕의 코어가 어딘가에 사용될 수 있기에!
‘하지만 이대로라면...’
빼앗긴다.
‘그러니 이건 어쩔 수 없다.’
다시 빼앗겨서 물의 정령왕인 아쿠리네를 부활시킬 바엔 이곳에서 부숴버리는 게 차라리 낫다고 판단한 키쿨은 손아귀에 힘을 주려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어이, 지금 하려는 행동. 너희를 위해서라도 안하는 게 좋을 거다. 그거 부수게 되면 그곳에는 절대 다다르지 못하게 되니 말이야.]
“......”
이프리트의 의미심장한 말에 키쿨의 마음속에 일순간 망설임이 일었다.
그곳에 다다를 수 없게 될 거라니?
‘무슨 뜻이지?’
행동을 막기 위한 단순한 페이크?
아니면 정말 진실?
[하하! 그래 그래. 대리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행동해야지.]
콰과과과과-
쿠우웅!
“크윽!”
키쿨이 아차 하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어마무시한 화력의 황금빛 불꽃이 그의 손 틈을 파고들어 코어를 강탈해 간 것!
이프리트는 코어를 되찾기 무섭게 순식간에 키쿨의 앞에서 사라져 아쿠리네의 곁에 나타났다.
이프리트는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는 푸른빛의 코어를 즉시 아쿠리네에게 건넸다.
[아쿠리네. 빨리 받아라. 육신이 더 무너지기 전에.]
[이... 이프리트...]
[어때 나밖에 없지? 좀 반할 것 같나?]
[...이, 이런 상황에서조차도 잘도 그런 농담을 하는군요. 당신은...]
힘겹게 코어를 받아 든 아쿠리네가 그것을 몸속으로 집어넣었다.
[하아... 하아... 후우... 후우...]
그러자 가루가 되어 무너지던 그녀의 육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촉촉한 생기를 서서히 되찾기 시작했다.
아쿠리네가 힘겹게 손가락을 들어 키쿨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프리트... 저, 저는 이제 괜찮으니 저자를 처리하는데 신경을 집중해주세요. 이대로라면 저자가 이곳을 부숴...]
[아니, 이곳은 포기한다. 아쿠리네.]
이프리트가 아쿠리네의 말을 잘랐다.
아쿠리네의 두 눈동자는 순식간에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이, 이프리트... 당신도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장소인지 잘 알고 있잖아요. 어째서...]
[최소 둘.]
[네?]
[저 놈과 비슷한 수준의 강자가 최소 둘 이곳에 더 있다. 이제 알아듣겠나?]
그 말에 아쿠리네의 눈동자가 파르르 요동쳤다.
하나도 상대하기 이렇게 벅찬데 저놈과 동급의 수준을 지닌 놈들이 이곳에 둘이나 더 있다니?
[그럼, 바로 이탈할 거다. 좀 뜨거워도 꽉 붙잡고 있어라 아쿠리네.]
[......]
“어이! 지금 어딜 마음대로 도망치려고 하는...”
슈슉-
키쿨이 채 말을 다 내뱉을 틈도 없이 불꽃에 휘감긴 아쿠리네와 이프리트가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키쿨은 이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두 정령왕이 있었던 자리를 잠시 멍하니 응시하다 솟구치는 짜증에 허공에 발길질을 했다.
“에이씨!”
다잡은 사냥감을 눈앞에서 놓치다니!
알베타스님의 눈에 더더욱 들 절호의 찬스였건만...
그때였다.
“크크큭! 설마 지금 놓친 거야? 키쿨?”
이프리트의 불꽃으로 녹아내린 바위의 틈 사이.
한 여성의 킥킥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어우~ 그러게 방심하지 말았어야지~”
마치 투구를 쓰고 있는 듯한 외형.
키쿨은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기 무섭게 혀를 찼다.
“하, 그래서. 뭐 내가 놓친 게 불만인가? 리네리아?”
“아니 뭐~ 불만은 딱히 아니고~ 그냥 웃겨서. 키키킥!”
리네리아가 입을 가리고 웃는 시늉을 했다.
키쿨은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휘휘 내둘렀다.
“야야, 그냥 가라.”
“키킥. 네가 뭐라고 가라마라지? 싫은데?”
“......”
비웃는 리네리아를 쳐다보는 키쿨의 눈빛에서 일순간 스파크가 튀었다.
그러자 리네리아가 여전히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짜증나? 지금 그 상태로 한판 뜨고 싶어?”
“너 따위 상대로 못 할 것도 없긴 하지.”
키쿨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키킥,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던가~”
리네리아 또한 주먹을 움켜쥐었다.
휘이잉-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서로의 자존심이 걸려있기에 누가 봐도 일촉즉발의 상황.
“...큭!”
“...쳇!”
하지만 둘 사이에 전투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알베타스가 둘 사이에 내린 간단하지만서도 절대적인 명령.
[앞으론 싸우지 말아라.]
그것이 쿠룬의 수장 리네리아와 샤크아크족의 수장 키쿨, 이 둘을 확실히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리네리아.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네가 운이 좋은 거겠지. 고작 유적에 존재하는 몬스터 따위에게 쳐 맞은 주제에.”
“이게...”
이번 일을 트집 잡으며 비아냥거리는 리네리아와 으르렁거리는 키쿨.
그렇게 꼬리의 꼬리를 물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그들의 자존심 싸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쿠구구궁!
쾅!
저 멀찍이 이번 목표였던 세계의 기둥이 다른 이의 손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정령의 세계(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