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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74화 (5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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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침입자.]

슈슈슉-

에르크록시의 육체에서 사방으로 뿜어져 나간 물의 칼날이 갑자기 궤도를 틀더니 일제히 키쿨을 향해 쏟아졌다.

키쿨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목을 긁고 있었다.

퍼버벙-

이윽고 칼날이 키쿨의 육체에 정통으로 부딪치며 일대에 커다란 흙먼지가 일었다.

‘지금이다.’

에르크록시는 그 속에서 음영으로 키쿨의 위치를 파악하기 무섭게 자신이 만든 스킬에 육신을 동화시켜 모습을 숨기고는 키쿨의 등 뒤로 빠르게 접근했다.

상대는 자칭 샤크아크족의 수장.

놈이 자신을 얕보며 방심하고 있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의 두 샤크아크족들을 처리한 최강의 기술로 단번에 끝내려던 것이었다.

슈우욱-

동화된 스킬에서 튀어나온 에르크록시의 물의 검이 키쿨의 목을 향해 정확히 날아간다.

‘이건 성공이다.’

검이 반쯤 다다라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쯤이었다.

“호오, 자신이 만든 스킬에 육신을 동화시킬 수 있는 건가? 이건 좀 흥미로운데?”

물의 검이 닿기 직전, 키쿨의 고개가 별안간 에르크록시를 향해 홱 돌아감과 동시에 주먹이 빛보다 빠르게 날아왔다.

‘아니?!’

주먹은 순식간에 에르크록시가 검을 쥐고 있던 팔을 강타했다.

우직-

그러자 마치 육중한 바위에 짓눌러지듯.

[크윽!]

에르크록시의 팔은 그대로 뜯겨져 튕겨나가 지면을 구르는 신세가 되었다.

에르크록시는 당황하여 다급히 뒤로 몸을 물렸다.

‘무, 무슨...!’

키쿨을 응시하는 에르크록시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그는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적이 빠르다 한들 자신의 검이 먼저 놈의 목에 닿았어야 정상인데!

‘이건 말이 안 된다. 말이...’

만약 순수한 속도로 넘어선 것이라면 키쿨이란 자는 적어도 자신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를 지니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었다.

[네놈...]

“이런, 깜짝 놀랬나?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말이지... 놀랬다면 사과하도록 하지.”

[......]

키쿨의 빈정거림에 입을 꽉 다문 에르크록시의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

이런 조롱은 그가 탄생한 이래 생전 처음 받는 것이었다.

‘후우...’

하지만 에르크록시는 이에 흥분하여 달려들거나 하는 멍청한 짓거리는 하지 않았다.

인정하긴 싫지만 적은 저 정도의 여유를 부릴 수 있을 만큼의 강자.

지금은 일단 잃어버린 팔을 수복한 뒤 보다 신중히...

“어허~ 나를 앞에 두고 딴생각이라니~ 이거 조금 자존심 상하는데?”

[...?!]

단 한순간 눈을 깜빡였을 뿐인데 그새 접근한 키쿨이 에르크록시를 향해 주먹을 재차 내질렀다.

파바밧-

[크아악!]

에르크록시의 전신에는 순식간에 수많은 바람구멍이 뚫렸다.

운 좋게 핵이 있는 위치는 공격당하지 않았지만...

‘크윽 대체 정말 이 말도 안 되는 속도는 무슨...!!’

너무 빠르다.

정말로 순수하게.

반격은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아무리 한 종족의 수장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이놈... 분명히 무슨 다른 수를 쓰고 있는 게 틀림없다. 설마 이게 놈의 고유특성인가?’

에르크록시는 강자에 속하는 대리자들은 일반적인 대리자들은 가지고 있지 않는 특수한 능력, 고유특성이란 걸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큭! 젠장! 더,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

이곳을 지키는 것이 최대 임무인 에르크록시였지만 그는 상대를 죽이기는커녕 버티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만 끝내자. 재미없다~”

후웅-

이윽고 섬뜩한 바람과 함께 쑥 들어온 키쿨의 손이 에르크록시의 오른쪽 허벅지를 관통했다.

에르크록시는 공격당한 곳을 확인하기 무섭게 사색이 되었다.

그곳은 그의 핵이 위치해 있는 부위였다.

키쿨이 툭 말했다.

“네가 이곳을 유난히 더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내가 눈치 채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그렇게 생각했다면 조금 서운한데?”

[너...너...!]

“애썼다. 물에 동화하는 능력은 제법 흥미로웠어. 뭐, 그게 다였지만.”

에르크록시의 육체에서 핵을 쑥 빼낸 키쿨이 그것을 부수기 위해 여유롭게 힘을 주었다.

* * *

트득-

[크아아악!]

코어에 금이 가자 에르크록시는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힘이 빠져나가고 의식이 흔들려 시야가 점점 아른거린다.

이런 게 죽음이란 것일까?

[아... 아...]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았다 한들 죽음은, 끝은 언제고 무서운 것이었다.

[아... 아쿠리네님...]

스스스스-

하지만 키쿨이 에르크록시의 핵을 완전히 부수기 직전, 그의 주위 대기가 부글부글 끓더니 갑작스레 발밑에서 발생한 물의 소용돌이가 그를 덮쳤다.

“음?”

쿠궁!

콰과과과과-

어찌나 흡인력이 강한지 키쿨은 저항했으나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는 말려들어 그 속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키쿨은 이에 빠져나가려 손을 움직였다.

물의 정령이 물의 종족이듯, 샤크아크족 또한 물의 종족.

기습당해 걸리긴 했으나 그에게 있어 소용돌이를 빠져나오는 건 지면을 걷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허나.

‘으음?’

지금 그의 육신을 뒤덮은 물은 그가 지금껏 경험해온 물의 정령의 기술과는 뭔가가 달랐다.

마치 소용돌이 자체가 의지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뭐지 이건?’

끈적하게 달라붙어 놓아주지 않는다.

‘그냥은 안 되겠군.’

결국 안 되겠다 판단한 키쿨이 마력을 방출하여 소용돌이를 날려 보냈다.

그리고 그것을 날려 보냈을 때.

‘흠... 빼앗겼나.’

그가 부수려 했던 에르크록시의 핵은 그의 손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키쿨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죽어가고 있는 에르크록시를 부축하고 있는 아쿠리네가 있었다.

[괜찮나요. 에르크록시.]

[와...왕이시어... 죄, 죄송합니다... 놈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에요. 정말 고생했어요 에르크록시. 어서 가서 핵을 수복시키세요. 아직은 늦지 않았어요.]

[아, 아닙니다. 놈은 강합니다. 그러니 저도 어떻게든 돕겠...]

[에르크록시. 당신은 제게 무척 소중한 존재예요. 제가 당신을 잃고 적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싶으신 건가요? 괜찮으니 저에게 맡기고 어서 가서 핵을 수복하세요.]

[...아쿠리네님...]

“어이~ 거기 걔 가는 거 굳이 막지 않을 테니 대화는 그쯤 해주지 않겠나? 너무 진부해서 지루한데.”

[...가세요. 에르크록시.]

[...죄송합니다... 무사하십시오.]

키쿨의 기이한 속도에 대해 간단히 귀띔한 에르크록시가 물에 동화되어 쓱 자취를 감췄다.

아쿠리네는 서서히 하강하여 키쿨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녀가 내려오자 아쿠리네의 전신을 이리저리 곁눈질한 키쿨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혹시 너... 여성체인 거냐?”

[......]

“말이 없는 걸 보니 맞나 보군.”

키쿨이 무엇인가가 맘에 안 드는지 대뜸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키쿨이 중얼거렸다.

“후우... 리네리아도 그렇고. 여왕님도 그렇고. 이제 여성체랑 싸우는 건 조금 지겨운데 말이지... 뭐, 어쩔 수 없나.”

그 순간 말을 끝낸 키쿨의 표정이 돌변했다.

“아쿠리네라고 했던가? 자, 그럼 어디 한 번 재미있게 놀아보자고~”

스슥-

한 마디 툭 내뱉은 키쿨의 신형이 에르크록시 때와 같이 순식간에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실로 엄청난 고속 이동이 아닐 수 없었다.

후웅-

이윽고 아쿠리네의 우측에 나타난 그가 곧장 주먹을 휘둘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키쿨의 얼굴에는 주먹이 절대로 빗나가지 않으리란 절대적인 자신감에서 나오는 미소가 맺혀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정말 빠르다.’

에르크록시에게 미리 언질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뛰어넘은 속도에 아쿠리네는 살짝 당혹감에 차 있었다.

물론.

쿠구구구-

콰과과과-!

그렇다고 해서 키쿨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파앙!

미리 준비했던 대로 아쿠리네가 물의 정령 방어술을 사용하자 키쿨의 주먹과 아쿠리네의 사이로 장막이 생성되며 방벽이 주먹을 튕겨냈다.

키쿨은 자신의 팔이 튕겨져 나오자 아쿠리네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더욱 짙은 미소를 보였다.

“하하! 순수하게 내 주먹을 막아내다니 뭐지 그 물의 방벽은? 신기하네?”

[......]

“나랑은 한 마디도 섞기 싫다 이건가? 좀 섭섭하군. 그래도 같은 물의 종족의 수장인데 말이야~”

키쿨이 천천히 팔을 추켜올렸다.

그러자 그의 주먹과 발엔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물이 휘감기기 시작했다.

키쿨의 장기 스킬.

[싸이클론]

“자~ 그럼 계속 간다?”

슈슉-

재차 아쿠리네의 앞으로 고속 이동해온 키쿨이 재차 주먹을 내질렀다.

아쿠리네는 방금 그랬던 것처럼 재차 물의 방벽을 사용해 막아보려 했지만...

트드득-

싸이클론은 키쿨의 주먹에 엄청난 관통력을 선사하고 있었다.

이건...

‘못 버틴다!’

쨍그랑!

방벽이 설탕처럼 산산조각 부서져 내린다.

이에 아쿠리네는 만회하기 위하여 더더욱 많은 방어 정령술을 사용했지만...

“하하하! 그런 거로는 못 막는다고?”

파바바밧-

키쿨의 주먹은 막을 수 없었다.

“이거 조금 실망인데? 이러면 기껏 찾아온 보람이 없잖아?”

후웅-

마지막 방어 정령술을 뚫은 키쿨의 주먹이 아쿠리네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그곳은 그녀의 코어가 있는 장소였다.

[큭!]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아쿠리네의 육체에 닿기 직전, 아쿠리네가 미리 퍼트려둔 물로 이동하는 이동술, 수신술을 사용해 다급히 회피했다.

그녀가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져 멀찍이 등장하자, 키쿨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그 정도는 해줘야 할 맛이 나지~”

[이...]

아쿠리네는 입술을 질끈 곱씹고는 곧장 반격을 취했다.

자신과 싸우면서 저런 장난스러운 태도라니...

쿠구구구-

아쿠리네가 손짓하자 대기에 존재하는 물의 마나가 전부 물로 뒤바뀌며 어마무시한 물보라가 일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키쿨을 가리킨 순간이었다.

콰과과과-

송곳처럼 날카로운 수많은 물의 비가 키쿨을 향해 쇄도했다.

키쿨의 주력기가 물을 이용한 근접 전투라면 아쿠리네의 주력기는 막대한 물의 세례로 적을 찍어 누르는 원거리 공격이었다.

파바바밧-

티디디디팅-!

키쿨의 손과 발이 송곳을 전부 쳐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여유가 있는지 그의 얼굴은 아직 웃고 있었다.

아쿠리네는 키쿨이 대응할 수 없도록 더욱더 거세게 몰아쳤다.

콰과과과-

마치 범람하는 해일이 모든 것을 쓸어버리듯.

높은 파도가 키쿨의 전신을 집어삼킨다.

그리고는 채 그가 균형을 잡을 틈도 없이, 물의 칼날, 물의 폭풍 등등 수많으면서도 강력하기 짝이 없는 각양각색들의 스킬들이 키쿨을 향해 쏟아졌다.

파바밧-

쿠구구구!

물론.

“하핫! 정말 이런 걸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건가? 정령왕?”

키쿨은 이런 것으론 죽지 않았다.

아니 생각보다 더 쉽게 대처하고 있었다.

그 또한 물의 종족의 수장.

물에 대한 저항력이 타 대리자에 비해 무척 강할 뿐만 아니라 물에 대한 스킬의 이해도가 높아 대응이 무척이나 빠르기 때문이었다.

[하아... 하아...]

아쿠리네의 입에서 거친 숨이 새어 나온다.

아무리 물과 동화되어있는 그녀라 한들 이토록 끝없이 집중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생전 처음 하는 일.

정신력에 보통 부담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대로면 공격하는 자신이 되레 먼저 지쳐 나가떨어질 수 있는 상황.

‘후... 어쩔 수 없군요.’

그렇기에 아쿠리네는 놈을 죽일 수 있을 확실한 방법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비장의 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패를 숨기기 위해 이곳을 잃을 수는, 패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후우...]

숨을 크게 들이 쉰 아쿠리네가 푸른 두 눈동자를 번뜩 뜬 순간이었다.

스스스스-

쩌적-

하늘이 갈라지며 휘황찬란한 금빛의 광채가 아쿠리네의 육신을 향해 떨어졌다.

마치 세계가 의지를 지니고 아쿠리네를 응원하듯.

“뭐야 저건?”

키쿨의 눈동자의 비치는 아쿠리네의 전신은 어느새 황금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일생에서 단 두 번 밖에 사용할 수 없는 정령신의 가호.

[신수]

“어이, 그 기술은 뭐... 음?!”

아쿠리네가 키쿨을 쓰윽 쳐다보자 그가 뭐라 더 말을 내뱉을 틈도 없이 사방에서 황금빛 물결이 그를 향해 쇄도했다.

쿠구구구-

그 물결은 밀도나 속도나 이전과는 한 차례 차원이 다른 물결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이 물질을 물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것이긴 한 것일까?

촤자자작-

“이게...”

갑작스럽게 강화된 공격에 여태까지 줄곧 미소를 띠고 있던 키쿨의 인상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정령왕이라 한들 어차피 클리어 될 유적의 수호자.

이 정도의 발악은 키쿨로서도 상정 외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회귀 전 이 세계가 대리자들의 타겟이 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정령의 세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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