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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58화 (54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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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표를 찔린 것일까?

유세현의 말에 신의 답변이 일순간 뚝 멈췄다.

바로바로라는 애매한 표현을 썼기 때문이란 것을 깨달은 유세현은 바로 정정했다.

“신이시어, 제 질문에 앞으로 제 시간 기준으로 1초 안에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끝.]

언제까지고 꾹 침묵을 유지할 것만 같았던 공간이 잔잔하게 울리며 단어 한 개가 울려 퍼졌다.

끝.

그저 단순히 듣기엔 아주 짧을뿐더러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는 단어.

그렇기에 보통의 생명체라면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그저 고개를 갸웃거렸을 터지만, 유세현은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뇌에 벼락이 내려치는 쇼크를 받았다.

감히 어떻게 [대리자]로써 눈치 채지 못할 수 있겠는가.

끝, 그것은 대리자들에게 있어서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자, 목숨을 건 전투를 버텨내게 만드는 희망이자 동시에 절망이기도 하였다.

그거 아는가?

대리자들은 신이 비치해놓은 이 대리전쟁의 서사가 담긴 석판을 읽곤 이 전쟁이 왜, 어째서 시작되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관련 석판이 발견된 적이 없었기에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회귀자 이강호조차도 말이다.

유세현이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1천 개에 달하니, 뿌리가 사라지자 줄기는 뿌리가 되고자 한다.”

지금 그가 읊은 것은 대리전쟁이 시작된 서사.

“하지만 줄기는 천 개요. 뿌리는 하나이니. 똑같은 줄기가 서로 뿌리가 되기 위해 얽히고설켜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이파리들만 거칠게 요동치며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

“이윽고 끝없이, 무한히 이어지는 얽힘에 부질없음을 깨달은 줄기는 서로 합의하여 맹약했다. 태초의 뿌리가 만든 이파리들을 선택하여 자신을 대체하도록. 살아남은 이파리의 주인이 다음 뿌리가 되는 것으로... 신, 당신은 자웅을 겨뤄 당신 포함 1천 명의 신들 중 일인자가 되려 했으나 지니고 있는 힘과 능력이 완전히 동일했기에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 대리전쟁, 그것도 자신들이 만든 피조물이 아닌 이전엔 분명 존재했을 절대신의 피조물로 전쟁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제 말이 완벽히 맞습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신,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유세현의 그 말에 그의 주위가 잔잔히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공간 자체가 긴장하기라도 한 것처럼.

“신, 제가 이 대리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당신은 다른 신들을 제치고 그들의 위에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신, 그때 제가 얻게 되는 건 무엇입니까.”

대리자들이 그렇게 알아내고 싶어 했던, 그러나 결코 알아낼 수 없었기에 그저 추상적으로만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여겼던 모든 것이 끝난 이후의 일.

[......]

공간의 흔들림이 더욱 커진다.

정확히 1초가 지났을 때 신이 답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쿵-

순간 싸늘하면서도 고요한 정적이 일었다.

대리자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답변.

아니, 승리하여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니?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세현은 동요하거나 낙담 한다던가 등의 큰 심정의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신의 입에서 끝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그는 내심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유세현이 보고 있는 것은 이 너머에 존재할 다음.

유세현은 그 너머로를 위한 화두를 던졌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 굉장히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답변이군요 신. 이렇게 되면 누가 우승하던지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렇지 않다. 본래라면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지만 나의, 신의 맹약 아래 너에게는 특별히 보상을 하사하도록 하겠다.]

신이 유세현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유세현의 입꼬리는 순간 피식 말려 올라갔다.

이 반응...

“특별히... 말입니까?”

[그렇다. 네가 만약 이 전쟁에서 우승하게 된다면 너와 너의 동료들을 원래의 세계로 무사히 돌려보내 주도록 하겠다. 어떠하느냐?]

원래 세계로의 복귀, 그것은 대리자가 줄곧 꿈꾸던 바람.

그러나 유세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죽은 자는...”

[이 전쟁에 휘말려 죽은 자도 되살려 주도록 하겠다.]

“혹여나 또 다시 이러한 대리전쟁에 강제 동원 될 일은...”

[이번 전쟁은 일인자를 가리는 전쟁. 일인자가 가려지게 된다면 앞으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흠, 당신이 아닌 타 차원신이 저희를 사용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내 관리하에 네가 속해있는 세계는 타 신들이 절대 건들지 못하도록 하겠다. 맹약하도록 하지.]

“맹약... 말입니까?”

[그렇다. 맹약은 존재를 걸고 서로에게 하는 맹세. 서로간의 합의가 없다면 절대 중간에 말을 바꿀 수도 취소할 수도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그렇습니까... 그럼 혹시 이 대리전쟁도 맹약을 걸고 하고 계신 겁니까?”

[당연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으니.]

“......”

[어떠하느냐, 이제 의지가 좀 생기느냐?]

처음 아무것도 없을 거라던 말과는 다르게, 거의 퍼주다시피 맹약한 신이 말했다.

유세현은 잔잔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의지가 많이 생기는군요.”

[그래, 그러면 되었다. 앞으로 우승을 위해 전력을 다해주길...]

“아 그런데 말입니다. 신.”

[뭐지?]

“대리전쟁이니 만큼, 저를 제외하고도 다른 대리자들도 선택하셨을 텐데. 저는 그중에서 가능성으로 봤을 때 몇 순위에 드는 대리자입니까?”

[그건 왜 묻는 거지? 네가 2순위다.]

“2순위... 말입니까?”

[그렇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1순위부터 50순위 안에 드는 인물들의 종족과 이름을 간결하게 말해주십시오.”

[아니, 그걸 왜 묻는 것이냐고 내가 지금 묻고 있지 않... 1순위는 알베타스 종족의 알베타스다. 2순위는 인간종족의 유세현, 3순위는 블루드래곤의 제루웬 베루, 4순위는......]

순위는 판도라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기에 신은 제대로 따지지도 못한 채 결국 유세현이 요구한 50순위까지 전부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제외한 50명의 인적사항을 받아 적은 유세현은 그들의 이름을 보며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그렇군. 종족의 최강자나 그에 준하는 급은 잘해봐야 1명 선택할 수 있는 건가.’

[네 이 자식... 왜 순위 명단을 물은 것인지 내가 지금 묻고 있지 않느냐!]

이윽고 공간에 신의 노여움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지만 유세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할 일만 할 뿐 신경을 전혀 주지 않았다.

그저 놈이 신이었기에, 행여나 생길지 모르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비위를 맞춰준 것이었을 뿐 유세현은 진즉부터 신을 신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

‘알베타스라... 어쩌면 이거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유세현은 이곳에 들어온 이후부터 쭉 켜놓고 있던 마법영사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만약 이게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는 이것을 알베타스에게 보여주고는 딜을 할 생각이었다.

치지직-

허나 마법영사기는 화면은커녕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신과의 대화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모종의 조치가 되어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깝군.’

[네 이놈! 지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노여움 가득한 신의 목소리가 재차 울려 퍼졌다.

유세현은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그제야 반응했다.

“신.”

[그래, 왜 그것을 물은 것인지 답...]

하지만 그것은 신의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맹약 조건을 바꾸고 싶다.”

유세현이 눈을 번뜩 빛냈다.

* * *

신이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보상을 선심 쓰듯 준다고 했을 때 유세현이 신에게 든 감정은 고마움이 아니었다.

어차피 이렇게 줄 거 왜 이에 대해 숨기려 한 것일까.

신은 정확하게 무엇이 두려워 이렇게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난 나를 포함한 이 대리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차원의 독립을 원한다.”

[...뭐라고?]

“못 들었나 신? 나를 포함, 이 대리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차원의 독립을 원한다고 했다.”

[...불가능하다. 차원에는 관리자가 필요하다. 관리자가 존재하지 않는 차원은 멸망...]

“석판에 따르면 애초에 이 차원은 사라진 뿌리, 유일신의 차원. 애초에 관리자가 없었을 텐데?”

[그렇다. 우리 천의 신을 만드신 위대한 존재께선 관리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도록 완벽하게 차원을 창조했기에 관리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차원에 손을 대어버렸기에 이젠 관리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신의 말에 유세현의 눈썹이 분노로 순간 꿈틀거렸다.

이놈들이 애초에 자신들이 만든 생명체로 대리전쟁을 했다면 이강호나 김주희가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 터인데.

“...왜, 어째서 우리를 대리자로 사용한 거냐. 너희가 창조한 생명체로 대리전쟁을 했다면...”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언제까지고 끝이 나지 않겠지. 최강의 존재로 만들어 대리전쟁에 내보내면 되니까.]

“......”

유세현의 입이 잠시 굳게 닫혔다.

그는 사실 석판을 읽은 그때부터 어떠한 연유에서 자신들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대리자로 선정되었는지 내심 알고 있었다.

우리들은...

[너희들은 어떠한 신의 손도 타지 않은 순수하기 그지없는 예측불허의 존재. 그렇기에 선택된 것이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가 끓어오를 수밖에 없는 불합리.

그러나 유세현은 빠르게 감정을 추슬렀다.

지금 중요한 건 놈에게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알겠다. 신. 그렇다면 요구 조건을 다시 바꾸겠다. 내가 우승자가 된다면 이 대리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차원을 독립시켜줌과 동시에 관리권을 나에게 넘겨라.”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차원의 관리는 한낮 미물인 생명체 따위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얌전히 이전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웃기지 마라 신. 일인자가 되고 싶어 하는 주제에, 그 따위로 맹약한 주제에 내가 네 생각을 모를 성 싶으냐? 넌 그저 다른 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자신의 발아래 두고 싶어 할 뿐이다.”

일인자가 될 시 여타 신들이 유세현의 차원을 못 건들게 하겠다 맹약했던 신이지만, 자신이 건들지 않겠다고 그는 구태여 맹약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유세현의 차원을 정말 놓아줄 생각이 있었다면 그는 스스로 나서 자신 또한 건들지 않겠다는 맹약을 했어야만 했다.

괘씸하기 그지없지 않는가.

누구 때문에 이런 가시밭길을 걸어온 것인데.

같잖은 말장난 따위를 하며 얼렁뚱땅 넘기려 하다니.

“자, 신. 답해라. 대리전쟁에 참여한 모든 차원을 독립시켜줌과 동시에 관리권을 나에게 넘길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인지.”

유세현이 하늘을 바라보며 눈동자를 번뜩 빛냈다.

그것은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눈동자였다.

유세현이 이어 말했다.

“신, 네가 이 제안을 거절해도 상관없다. 그것은 너의 자유니까. 하지만 만약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다음 유세현의 말을 들은 신은 자신이 완벽하게 당했음을 비로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결코 죽어도 일인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유세현이 신이 뽑은 여타 대리자들의 순위와 종족, 이름을 굳이 알아낸 이유.

신이 마음속으로 탄식했다.

‘제길... 완전히 당했군.’

지능이 보통의 생명체 급으로 강제로 낮춰진 게 이렇게 작용할 줄이야.

본래 차원신들은 인공지능을 아늑히 초월하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연산할 수 있는 연산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본래라면 유세현의 꾐 따위 단번에 꿰뚫어 봤을 터지만.

그런 연산력을 지니고 대리자를 뽑을 시 여타 신들 또한 당연하게도 확률이 가장 높은 한 명의 대리자를 선택하려 할 것이 분명.

그렇기에 신들은 대리자를 뽑기 전 서로 합의하여 지능을 보통의 생명체 급으로 낮췄다.

그 때문에 상황을 단순하게만 생각한 신은 유세현의 계략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유세현... 관리자의 힘은 일개 생명체인 너에게 있어서 축복이 아닐 것이니... 너는 승리한다 한들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답은?”

[...맹약하겠다. 나는 네가 이 대리전쟁에서 승리할 시 이 대리전쟁에 참여한 모든 차원을 독립시켜줄 뿐만 아니라 관리권을 유세현, 너에게 넘기도록 하겠다.]

퀴르벨과 세레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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