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56화 (54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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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

트드드득-

수십, 수천만 권의 책들이 책장에서 비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이곳, 이 공간의 붕괴를 알리는 명백한 징후.

‘이런, 당했군...’

유세현의 시선이 책이 제조되고 있던 공간을 향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상이었었던 그곳은 현재 곳곳이 균열이 가 책장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것이 세레나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던 정보까지 밝혀가며 시간을 끈 진정한 이유.

[상관없다. 너를 포획한 뒤 너에게 들으면 되니.]

루시뷀트와 유세현이 동시에 세레나를 향해 검을 치켜세웠다.

이 순간만큼은 개인사고 자시고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다.

‘세레나, 이 드래곤을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놔두면 절대로 안 된다.’

인간의 절박함을 이용해 이 거대하기 짝이 없는 그림을 그린, 어쩌면 모든 일의 배후.

‘지금 놓치게 되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모른다.’

어마무시한 두 존재가 합심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세레나가 말했다.

“안타깝지만 이곳은 곧 붕괴한다.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우리 모두 죽게 되지. 그러니 지금은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을...”

[지금까지 시간을 끌어온 주제에 네가 그딴 말을 지껄이는 의도를 내가 모를 성 싶으냐?]

슈슉-

세레나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 무섭게 움직인 루시뷀트의 대검이 그녀의 목을 향했다.

“흠...”

이에 세레나는 연속적으로 블링크를 사용하며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스슥-

마치 미리 예상했다는 듯 바로 옆에서 유세현이 나타났다.

‘...음? 이 위치를 예상했다고?’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세레나의 발 아래로 펼쳐지는 어둠의 영토.

[영역전개]

루시뷀트가 전개한 영역이었다.

쿠구구-

보다 강해진 암흑투기가 순간적으로 세레나에게 쏘아진다.

생명체인 이상 본래라면 갑자기 강해진 중압감에 약간의 이상이라도 보여야 정상.

그러나.

스슥-

아슬아슬하게 유세현의 공격을 회피하는 세레나의 움직임에는 약간의 그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루시뷀트가 비로소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어쩐지 처음에도 좀 이상하더라니. 네놈... 역시나 투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구나.]

“......”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말해라.]

투기는 마왕의 강력한 무기중 하나, 지금까지는 신성빛을 이용한 파훼법만이 유일한 파훼가 무척이나 어려운 기술이었다.

저런 식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회피할 수 있는 그런 어정쩡한 기술이 아닌 것이다.

만약 세레나가 파훼법을 전파하는 것으로 모든 이가 저런 식의 파훼가 가능하게 된다면 마왕은 큰 능력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되는 셈.

때문에 마왕에게는 세레나가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인지 알아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세레나가 미소 띤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흠... 내가 왜 그래야하지? 당신은 나를 죽이려고 하고 있는데.”

[......]

뻔한 도발.

그렇기에 본래라면 전혀 통하지 않았을 도발이었다.

[이... 도마뱀 따위가...]

쿠구구구-

그러나 인간의 습격부터 시작하여 여태까지 이용당했다는 것을 내심 느끼고 있던 루시뷀트는 이번만큼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치지지직-

그의 검에 강력한 어둠이 모인다.

“잠깐. 루시뷀트! 멈춰라! 지금 그런 큰 기술을 사용하게 되면...”

유세현이 다급히 말렸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죽어라.]

쿠구구구-

콰아아아앙-

분노가 가득 찬 루시뷀트의 흑뢰가 공간에 내리쳤다.

그리고 그 순간.

쩌적-

[음?!]

마치 종이가 반으로 양단 되듯 무너지고 있던 세계가 반으로 쩌적 갈라졌다.

* * *

솨아아아-

마치 폭포가 지면으로 흘러내리듯, 세계가 갈라진 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블랙홀을 연상케 하듯 실로 엄청난 흡인력!

‘이런...’

그리고 이것이이야 말로 세레나가 줄곧 노리고 있던 것이었다.

슉- 슉- 슉-

세레나는 연속적으로 블링크를 사용하여 갑작스런 붕괴로 인해 순간 틈을 보인 둘에게서 빠르게 멀어져갔다.

그녀에게는 사실 이곳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이곳보다 더 깊은 장소에만 존재하는... 회귀 전에는 정보가 부족해 안타깝게 다다르지 못했던 장소.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건 사실 아까 전에도 할 수 있던 일이었지만 그러지 않고 그들을 상대해준 것은, 전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함이었다.

둘을 떼어내고 그곳에 다다른다.

그것이 세레나의 최종목적.

[놓치지 않는다.]

유세현과 루시뷀트가 다급히 뒤를 쫓았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늦은 뒤였다.

대기가 불안정해져 수많은 책장들이 빙글빙글 휘몰아치는 그 속에서 연막, 회오리 등 시야를 가리는 수많은 자연재해 마법을 사용한 뒤 책장에 섞여 모습을 감춘 탓이었다.

[어디냐... 어디...]

단순히 육안으로는 식별 불가능!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둘을 보며 세레나는 그곳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거의 다 왔군.’

하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통로를 찾기 직전.

피윳-

세레나의 목옆으로 강력한 냉기가 담긴 창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선배님! 이쪽이에요 이쪽! 얘 찾고 있던 거 맞죠!”

여태까지 길을 헤매고 있던 김주희였다.

“음? 김주희?”

“빨리 오세요! 제가 붙잡고 있을게요!”

그렇게 말한 김주희가 순식간에 질주하여 세레나에게 따라 붙었다.

“야, 너 어딜 혼자가려고! 넌 못가!”

“......”

스슥-

김주희의 창이 맹렬하게 세레나를 향해 쇄도했다.

웬만한 대리자들은 반응하기조차 힘들어 할 정도의 하나하나가 예리함을 자랑하는 창술이건만.

‘흠... 설마 딱 지금 발각 당할 줄이야. 운이 없었군. 이렇게 되면 그냥 저들의 눈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한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

생각에 잠긴 채로 공격을 전부 흘리고 있는 세레나의 표정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뭐, 뭐야 이 녀석... 내 창을 어떻게 이렇게 쉽게... 아니 그보다도 저 녀석...’

도무지 생명체를 상대하는 것 같지 않는 그 기이한 감각에 장난치듯 웃고 있던 김주희의 표정이 서서히 굳는다.

“이 자식이 나를 무시해?”

김주희는 더욱 투지를 불태워 창에 마력을 모았다.

적이 강할지언정 악으로 깡으로.

허나 그녀가 절기를 사용하려던 찰나.

“세레나님!”

저편에서 등장한 드래곤들이 김주희를 향해 마법을 날렸다.

이곳의 붕괴가 시작됨에 따라 김주희가 유세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적들 또한 이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김주희는 절기를 취소하곤 재빨리 뒤로 몸을 뺄 수밖에 없었다.

“군주시어!”

그 사이 마족들도 몰려들었다.

“어이! 유세...”

유세현을 부르려던 벨제뷔트가 루시뷀트를 확인키 무섭게 입을 꾹 닫았다.

‘아, 아니 어떻게 루시뷀트가 이곳까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조우.

벨제뷔트는 유세현을 향해 지금 처리할거냐고 묻는 시선을 보냈다.

유세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흠... 그렇단 말이지.’

“군주시어. 도우러 왔습니다.”

[그래, 잘 왔다 벨제뷔트. 저 드래곤을 붙잡아라.]

“저 드래곤 말씀이십니까.”

벨제뷔트의 시선이 세레나에게로 향했다.

‘유세현, 루시뷀트. 두 놈의 의식이 전부 저 도마뱀을 향해 가 있다. 저 도마뱀... 뭔가 있는 게 분명하군.’

핵심을 순식간에 파악한 벨제뷔트가 함께 온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도마뱀을 잡아라!”

“예... 예! 아, 알겠습니다!”

수하들은 이에 굉장히 떨떠름한 모습을 보였다.

루시뷀트를 치겠다고 유세현과 동맹을 맺는 것을 그들은 뻔히 보았다.

그런데 루시뷀트를 만나기 무섭게 자연스럽게 다시 복종이라니?

그렇다면 이전의 그것은 목숨을 부지하려고 한 거짓말이란 것인가? 아니면 진심?

“제길, 이거 마왕님께 보고를 하는 게 맞는 거냐 아니면 안 맞는 거냐?”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현재에나 집중해라. 저놈들... 전부 강자다. 잘못했다간 여기서 목이 날아가게 될 거다.”

“그... 유세현은... 공격 안 해도 되는 거겠지?”

“우리에게 떨어진 명령은 드래곤을 잡는 것뿐이니 안 해도 될 거다.”

“다가갔는데 유세현이 먼저 우리를 공격하면 어쩌지?”

“야, 지금까지 같이 다녔으면서 아직도 유세현 성격 몰라? 아직 동맹 중이다. 우리가 선공을 취하지 않는 이상 공격해오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 만약이란 게 있잖냐...”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린... 죽음 목숨이겠지. 우리가 현재 유세현의 손에서 도망칠 방법은 없으니까...”

“...젠장...”

“그냥 믿어 이 자식아! 어쩔 수 없어! 지금 도주하게 되면 어차피 마왕님에게 찍혀 죽게 된다!”

“제기라아알-!”

마족들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세레나와 드래곤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벙-

콰과과광-

화염과 폭발, 각종 스킬들이 뒤엉키며 안 그래도 무너져가는 공간은 순식간에 혼돈으로 변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후우... 다행히 아직 늦지 않은 모양이군.”

엘프의 카시우스와 블러드 소울의 크라베스.

그리고 델바람의 카그네프까지 모습을 드러낸 탓이었다.

“쳐라! 반드시 붙잡아라!”

“젠장! 이강호! 이강호는 어디냐! 놈도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다! 반드시 찾아라!”

쿠궁!

쾅!

콰과광!

콰과과과광-

투드드-

공간은 언제 소멸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세레나! 저 도마뱀에게 붙어라! 그러면 적어도 이곳에서 죽진 않는다!”

수하들의 도움으로 인해 이제는 보다 여유롭게 세레나에게 접근한 루시뷀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더는 도망치지 못하게 되었구나 세레나.]

세레나는 그 말에 인상을 와락 구겼다.

“확실히... 더 이상 도망은 못 치게 되었군.”

마치 정말 짜증난다는 듯.

아니, 그건 누가 봐도 정말 진심이 담긴 듯한 표정이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김주희가 말했다.

“선배님 저 세레나라는 드래곤...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어떤 부분이?”

“음...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좀 힘든데... 뭔가 전체적으로 삐그덕거리는 느낌이랄까...”

그것은 과거 평생토록 남과 자신을 속이는 연기를 해왔었던 여우, 김주희이기에 느낄 수 있는 그런 감각이었다.

물론 그녀 스스로도 확신은 없지만.

유세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통하지 않는 암흑투기.

그리고 김주희의 저 말...

‘...설마? 저 세레나라는 드래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세레나는 현재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유세현이 그렇게 생각한 찰나였다.

치직-

치지지직-

강렬한 자기장이 일어남과 함께 모든 것을 삼키고 있던 블랙홀, 그 속에서 불쑥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붉은 손톱과

크롸롸롸롸-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드래곤 피어.

한 마족이 경악하여 외쳤다.

“저, 저놈은!!”

“일이 잘 안 풀리나 보구나. 세레나.”

그곳에는 균열의 틈을 찢고 진입해 들어온 세레나의 부친, 광룡 퀴르벨 레퀴아르크가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 * *

“후욱... 후욱... 후욱...”

편치 않은 몸을 간신히 움직여 신의 회중시계가 있는 공간에서 빠져나온 이강호를 제일 먼저 맞은 것은...

“이강호...”

이벨린이 천천히 그의 이름을 읊조리자, 이강호는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걸 보니. 모든 기억을 되찾았나 보군 이벨린.”

이벨린은 대답하는 것 대신 그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후욱... 후욱... 이벨린...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크윽...!”

“이런! 강호 오빠! 괜찮아요?”

걸어오던 이강호가 몸을 비틀거리자 유혜인이 다급히 튀어나와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이강호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상황은...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상황 말인가요?”

“그래... 세레나... 세레나는 어디 있는지 발견했나?”

이강호의 물음에 이벨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곳으로 오면서 발견하진 못했어요. 세레나를 만났었나요 이강호?”

“그래, 만났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

이강호의 말에 이벨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곧 답을 내놓았다.

“다른 장소로 향했겠군요. 우리조차도 모르는... 자신만 아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 빨리 뒤쫓아야... 크윽...”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이대로 복귀해서 치료를 받으세요. 레피아... 아니 레피아씨...”

“과거엔 편하게 불렀었다며? 그냥 편하게 불러~ 난 상관없으니까.”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강호를 데리고 홀로 무사히 복귀할 수 있는 건 현재 당신밖엔 없어요. 레피아. 강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어. 너희는? 바로 이동할거냐?”

“예, 아까 퀴르벨이 향한 방향이 대충 어딘지 알고 있어요. 분명 세레나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었을 테니 지금이라도 추격한다면 아마 늦게나마 도착할 순 있을 거예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고. 그럼 난 바로 간다.”

레피아는 이강호를 짊어지기 무섭게 자리에서 벗어나 고속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도중 레피아의 얼굴을 흘끗 살핀 이강호가 넌지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레피아... 미안하다.”

“...허, 오래살고 볼 일이네. 천하의 이강호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게 되고 말이야. 회귀 전 나한테 부탁했던 일 때문에 내가 죽어서 그러는 거야?”

“......”

“그런 일 때문이라면 미안해할 필요 전혀 없어. 어차피 난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인 걸 뭘. 그리고 그 일도 내가 선택한 일이었을 테고...”

레피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강호는 그런 레피아의 행동에 피식 실소를 내뱉었다.

그래 이것이 그녀다.

인류를, 자신들을 위해 기꺼이 전장으로 나가 죽음을 맞이한...

“조금... 쉬겠다 레피아.”

“예예~ 그러시죠. 마력이나 새나가지 않게 조심하고.”

이강호는 그 말에 정말 오랜만에 편히 눈을 감았다.

신의 궁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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