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7/606 --------------
콰과과광-!
스킬로 인한 후폭풍이 일대에 휘몰아친다.
후폭풍은 어찌나 강력한지 웬만한 스킬을 뛰어넘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
그곳에 위치해 있던 대리자들은 그런 후폭풍 따위엔 조금의 신경조차도 쓸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쾌롤란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어마무시한 위압.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쾌롤란카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사.라.져.라.]
파앗-
쾌롤란카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발산된 강렬한 빛의 파동이 순식간에 일대로 퍼져나갔다.
“...!!”
잔뜩 긴장하여 대비하고 있었던 카시우스와 크라베스는 가까스로 그것을 회피할 수 있었으나...
“크아아악!”
미처 회피하지 못한 대리자 일부는 그 파동에 영락없이 적중당하여 그대로 신체 일부를 잃는 신세가 되었다.
“에루아!”
“올리크네!”
“크윽! 저, 저는 괜찮습니다. 한쪽 팔이 당했을 뿐입니다!”
엘프, 에루아가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부상부위를 다급히 살폈다.
왼쪽 팔이 있던 부분은 마치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하게 삭제되어있었다.
“조, 조심하십시오! 저것에 맞으면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알고 있다 신경을 기울...”
[버.러.지.들.이. 어.딜.]
또 다시 발산 된 강렬한 빛.
“크으!”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해 움직였지만, 안타깝게도 쾌롤란카의 공격은 이 한번이 끝이 아니었다.
트드드득-
쾌롤란카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거대 비늘 일부가 마치 탈피하듯 벗겨져 우수수 떨어진다.
거대 비늘은 마치 의지를 지니고 있기라도 한 것 마냥 분산되어 대리자들을 쫓았다.
“크윽, 젠장 이 무슨...!”
슈슈슈슉-
투두두둑-!
대리자들은 쾌롤란카의 꼬리치기를 회피함과 동시에 비늘을 제거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스킬을 날리며 안간힘을 썼다.
허나.
퍼버벙-!
“크윽, 처, 처리한 건... 무슨?!”
비늘 하나하나의 경도는 가히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촤악-!
“크악!”
이윽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비늘을 감당하지 못한 한 마족의 몸이 거대 비늘에 그대로 짓뭉개졌다.
쾌롤란카는 마족의 몸에서 코인이 뿜어져 나오기 무섭게 또다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날아오는 빛의 파동.
파앗-
쿠구구구궁!
대리자들은 어떻게든 기회를 봐 반격을 취했다.
오직 그것뿐만이 이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으아아!! 죽어라! 괴무우우울-!”
“하아아압!”
마력을 있는 데로 끌어모아 시전한 어마무시한 스킬들이 쾌롤란카의 머리를 향해 날아간다.
쾌롤란카가 또다시 콧김을 불었다.
후우-!
휘이이이잉-
그러자 일전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의 스킬 또한 허무하게 궤도가 바뀌어 사라졌다.
대리자들의 안색은 순식간에 질려 창백해졌다.
“무슨...”
“이, 이렇게 쉽게...”
그들의 눈에 쾌롤란카는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공격도 회심의 스킬도 전혀 통하지 않다니 너무도 불합리한 존재다.
‘그래 맞다. 저 가디언은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인원이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진 이때,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한 이가 있었다.
[그렇지 않나? 도마뱀. 아니, 세레나?]
마왕 루시뷀트와.
“......”
레드드래곤 세레나.
그들은 살아남기도 벅찬 현재의 상황 속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전투까지 벌이고 있었다.
[아마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은 길을 찾는 것일 뿐일 터. 세레나. 그렇게 입을 닫고 있다 한들 난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
역시나 만만치 않은 존재.
세레나는 쫓아오는 루시뷀트를 보며 그리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순식간에 그런 결과를 도출해 내다니.
‘과연 죽음의 권능을 다루는 존재라 이건가...’
허나.
“정말로 끝까지 나를 쫓을 수 있을 거 같나. 루시뷀트.”
세레나가 툭 입 열어 말했다.
[...?!]
슈욱-
퍼엉-!
그 순간 세레나와 루시뷀트 사이에 쾌롤란카의 독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 순간 만들어진 약간의 틈.
“다크 에어리어(Dark area), 라이트 에어리어(Light area)”
세레나가 작게 읊조리자 그녀와 루시뷀트의 주위가 일순간 새까맣게 어두워졌다 강렬한 빛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루시뷀트가 강자라곤 하나, 맞으면 사망하는 쾌롤란카의 공격을 회피하면서 모든 것을 신경 쓰는 건 불가능.
일시적으로 거리를 벌린 세레나가 팔을 뻗더니 허공을 움켜쥐었다.
트드드득-
그리고 손목을 돌리자, 차원이 비틀리며 새로운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저건...!]
누가 봐도 다음 장소로 향하는 길!
‘이 도마뱀이...!’
스스스-
루시뷀트는 재빨리 어둠을 날렸지만 제 시간 안에 도착하기에는 누가 봐도 거리가 멀었다.
‘늦었다.’
그러나.
화륵- 화르륵-
쿠구구구-
세레나가 넘어가려는 찰나, 그녀의 발밑에서 화염이 거칠게 치솟았다.
“...음?”
도무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의 열기.
살짝 뒤로 거리를 벌린 세레나의 시선이 곧바로 어느 한 곳을 향한다.
“허억... 허억... 허억...”
“...이강호.”
그곳에는 한 팔을 치켜든 채 헐떡이고 있는 이강호가 있었다.
“크크크! 잘했다! 이강호!”
“방심하지 마라 카그네프, 이 공간은...”
이강호가 지그시 충고했다.
카그네프는 적이기도 했지만 쾌롤란카가 등장해버린 현재, 자신을 지켜줄 든든한 우군이기도 했다.
“저 쪽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겠지? 이강호!”
“허억... 허억... 그렇다. 머지않아 공간이 닫힐 거다. 빨리...”
“알고 있다!”
카그네프가 이강호의 갑주 뒷자락을 붙잡기 무섭게 질주를 시작했다.
목표물은 당연히...
[어딜, 델바람 따위가...]
“꺼져라! 루시뷀트! 지금 네놈하고 싸울 마음은 없으니!!”
스스스-
콰과광!
무수히 많은 마력탄들이 맞부딪치며 거칠게 폭발이 일어난다.
“카시우스!”
“나도 봤다 크라베스! 전군! 돌진하라!”
그들의 목표는 전부 세레나가 만든 균열이었다.
[어.딜. 감.히.]
스스슥-
파앗!
퍼버버버벙!
침입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그 거대하고도 거대한 몸을 움직이는 쾌롤란카.
균열로의 접근이 생각보다도 쉽지 않자, 이강호를 휙 던진 카그네프가 말했다.
“이강호! 다시 찾으러 올 것이니 일단 살아남는 데만 전념하고 있어라!”
“뭐, 뭐라고? 자, 잠깐 기달...”
카그네프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균열을 둔 종족 최강자들의 전투.
펑!
퍼버버벙!
“크아아악! 루, 루시뷀트님!”
“세, 세레나님!”
눈 하나 잘못 깜박하는 순간 최상위 대리자가 사라진다.
그야말로 지옥보다 더한 지옥.
그 속에서 이강호는 어떻게든 버티고 버티려 안간힘을 썼다.
허나.
‘큭, 젠장할... 체력이... 빌어먹을 카그네프 자식... 나를 그냥 던져두고 가다니...’
세레나를 제지하기 위해 억지로 능력을 사용한 탓에 이강호의 상태는 스스로 체크했던 아까 전보다도 훨씬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균열을 여는 장소도 알고 있는 것으로 보건대 이곳을 빠져나가게 되면 세레나는 하이패스로 그 장소에 다다르게 될 테니까.
‘젠장...’
지금 쾌롤란카가 광역기술이라도 사용하는 날엔 이강호는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그러니 그전에 어떻게든 균열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때였다.
치직-
머리가 깨질듯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이, 이건...!’
기억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강호 너도 알고 있지만 이건 정말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수단이다.]
[왜냐하면... 이건...]
치지직-
[이건... 우리의 미래를 너가 **한 **에...]
“크아아악!”
하필 지금 이 현상이 나타나다니!
이강호가 고통에 괴성을 지르자 마치 그의 음성을 인식이라도 한 듯이 쾌롤란카의 눈이 이강호를 향해 쓱 돌아갔다.
쾌롤란카가 말했다.
[돌.아.왔.군. 운.명.의. 선.택.자.여.]
“음?!”
“인간?”
그런 쾌롤란카의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대번에 이강호에게 쏠렸다.
여태까지 대리자는 그저 적대적으로만 보던 쾌롤란카가 이강호만은 다르게 취급하다니?
“내 세계... 크람베르때도 그렇고... 역시 저놈... 뭔가 있는 놈이었어! 카시우스!”
“놈을 붙잡도록 하지!”
[운.명.의. 선.택.자.여. 계.약.에. 따.라. 네.가. 선.택.한. 운.명.을. 확.인.하.라.]
많은 이들이 움직였지만 그보다 빠르게 쾌롤란카가 그 거대하면서도 기다란 몸으로 이강호의 전신을 휘감았다.
“큭!”
“무슨!”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강호의 눈앞으로 생성되는 균열.
이강호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일개 대리자인 자신을 신의 회랑을 지키는 파수꾼이 지켜준단 말인가.
이 세계에서 단 한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EX아이템, 신의 회중시계.
그것이 존재하던 그 자리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과거의 자신은 대체 어떤 운명을 선택했기에!
아무쪼록 함정이고 아니고를 떠나, 더 이상 체력이 없었던 이강호는 그 균열로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스슥-
그리고 그 순간, 모두가 잠시 넋이 나간 찰나의 틈을 타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세레나가 마찬가지로 자신이 연 균열로 순식간에 몸을 던졌다.
[이런!]
이에 제일먼저 알아챈 것은 마왕.
[세레나...!]
루시뷀트는 어마무시한 기세로 균열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의 빛나는 붉은 안광 속에는 가로막는 것은 그 무엇이든 베고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이에.
스슥-
균열 속으로 무사히 진입하는데 성공하는 루시뷀트.
“우리도 들어가자!”
나머지 인원들 또한 허겁지겁 균열이 닫칠 세라 그들을 뒤늦게 따라붙었다.
허나, 균열을 넘었을 때 루시뷀트와 세레나는 이미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 * *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기억의 피리의 정보가 갱신됩니다.]
아이템명: 기억의 피리
등급: 에픽 [SSS Rank]
상세정보: 태초의 정원에서 만들어져 수많은 기억들을 먹고 자란 피리입니다.
세상의 모든 기억을 담고 있는 영구기관, 아카식 레코드의 일부 기억 파편 조각을 담고 있습니다.(조건충족 활성상태)
태초의 기억으로 향하는 길이 내장 되어있습니다(조건충족 활성상태)
강력한 사념이 깃들어있습니다. 희생당한 영혼이 인정한 종족만이 사용 가능합니다.
사용능력: 태초의 길로 향하는 포탈 생성.
특수조건: 종족이 인간, 레드 드래곤일 것.
‘......’
말없이 피리의 정보를 살핀 유세현이 살며시 턱을 짚었다.
자신이 이곳에 들어와서 한 것이라고는 끝없이 헤맨 것뿐이건만 조건이 충족되었다니...
‘굳이 내가 충족시키지 않아도 되는 외부 조건인 건가. 그렇다면 방금 일어났었던 엄청난 진동이 조건이었을 가능성이 크군.’
그렇다면 이 조건을 충족시킨 자는 과연 누구일 것인가.
이강호? 아니면...
세레나, 그 무미건조한 드래곤의 얼굴을 떠올린 유세현은 이것을 지금 사용해야 될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지금 현재 자신은 벨제뷔트와 동맹을 맺은 상태.
포탈을 열면 당연히 같이 진입해야 된다.
자칫 잘못했다간 괜히 귀찮은 이들을 끌어들이는 것만 되어버리는 격인 것이다.
‘하지만 만약 강호가 연 게 아니라면...’
한 번 사용된 신의 회중시계가 이번에도 존재할지는 모르는 일이나, 최악의 경우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버리는 수가 있다.
그렇기에...
인원들을 쓱 한번 살핀 유세현은 결론을 내렸다.
‘사용한다.’
유세현이 의지를 가지자 뿔피리가 반응하며 그의 앞에 동그란 포탈을 생성했다.
“호오, 그건?”
“또 반응했군.”
“나에게도 이런 식으로 온 건가.”
“그렇다. 벨제뷔트.”
“그 피리, 길을 알려주는 물건인 거냐?”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정보가 잠겨있어서... 다만 포탈을 통해 여태까지 지나온 길들은 그리 나쁘지 않은 길이었다.”
“흠... 들어가 보는 편이 좋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로군.”
“그렇다. 어떡할 테냐. 벨제뷔트. 진입할 거냐? 아니면 여기서 기달...”
“크크크! 우리는 이미 한 배를 탄 몸이 아니더냐! 당연히 가야지! 앞장서라!”
“...그러지.”
그렇게 유세현을 선두로 하여 모두가 포탈 안으로 발을 내딛은 순간이었다.
슈우욱-
갑자기 생긴 어마무시한 흡인력.
“...?!”
“이건?”
순식간에 다른 장소로 옮겨졌었던 이전과 달리 이번 포탈은 곧바로 그들을 목적지에 보내주지 않았다.
마치 특수 차원을 경유하듯, 그들은 회오리치는 공간 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점차 바람이 강해지자 이상하게 느낀 벨제뷔트가 다급히 물었다.
“크으으! 유, 유세현 이거 정말 맞는 거냐?”
“지, 지금까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벨제뷔트님!”
“크으으! 뭐, 뭐라고? 단 한번도? 유세현! 너 설마 나를 속... 아니 그럴 필요는 없을 텐...!”
“나도 모르는 일이다 벨제뷔트! 떨어지지나 않게 가능하면 서로를 꽉 붙잡아라!”
“이런 미친! 이미 늦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서로를 붙잡... 으아아악! 유세혀어어언-!”
갑자기 불어온 강풍에 튕겨져 나간 벨제뷔트가 저 멀리 날아가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으, 으아아아! 마, 말도 안돼! 내, 내가 고작 이딴 바람에 저, 저항할 수가 없다니...! 아, 아르펜니이이임-!”
“침착하게만 움직인다면 괜찮을 거다 제루웬! 잘 살아남아서 보자!”
“아, 아니 뭐 그렇게 태평하게 말을.... 으아아아아-!”
담백하게 말을 마친 아르펜이 손을 흔들자 제루웬 또한 저 멀리 떨어져나갔다.
그렇게 그들은 차곡차곡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회오리에 의지가 있기라도 한 것 마냥 그들은 단 한명도 붙어 떨어질 수 없었다.
유세현은 차분히 정면을 응시했다.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던 아르펜이 막 떨어져 나감에 따라 이제 남은 인원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저 멀리 밖으로 이어진 포탈이 보인다.
슈욱!
바깥으로 빠져나와 바닥에 착지한 유세현이 주위를 살피기 위해 재빨리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건?!”
그 순간, 그의 두 눈에는 놀라움이 깃들 수밖에 없었다.
“무슨...”
동서남북.
광활하기 그지없는 이 거대한 공간을 빈틈없이 빼곡히 메우고 있는 수많은 책장.
한없이 고요하여 그 흔한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이 공간은 도서관이라도 된 것 마냥 책장 속에 책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신의 회중시계와 진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