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5/606 --------------
“토퀴마!!”
스토크는 추락하여 지면에 처박힌 선봉 부대의 부지휘관인 토퀴마에게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가 다가가자 토퀴마가 힘겹게 입 열어 말했다.
“스, 스토크님... 빠, 빨리 병력들을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십시오.”
“토퀴마! 어떻게 된 거냐! 누구에게 당한거야!!”
“커, 컥... 노, 놈들은 괴물...”
“크으!”
스토크가 다급히 토퀴마의 갑주를 들추고 상처부위를 살폈다.
복부관통.
심각한 중상이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체력 스텟을 고려하면 죽을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다.
“토퀴마! 응급처리를 해주겠다. 그러니...”
“크... 아,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지금 회복 불가능입니다...”
“뭐?! 무슨!!”
“그보다도 빨리 병력을 물리십시오... 이대로 있다가는 전... 멸... 크윽!!”
쉬이이익-
다음 순간, 뚫린 토퀴마의 복부로부터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스토크는 그것이 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부패의 어둠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채고는 입술을 곱씹었다.
‘큭! 그래서 회복 불가능이라고...’
스토크의 머릿속에 어느 한 남성이 떠올랐다.
그 인물 말고는 그 능력을 사용한 자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기에.
‘크... 이제 우리는 동맹 가치가 없어졌다 이건가!! 이놈들...’
선봉부대는 이전의 일 때문에 인간에 대한 신뢰가 높아져 방심하고 있다가 당했을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았다.
역시 아무리 급해도 타 종족과 동맹을 맺는 게 아니었다.
‘내 탓이다. 아무리 그래도 방심은 말라고 좀 더 당부를 철저하게 해뒀어야 했는데...’
스토크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인간에 대한 그의 전의는 어느새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자 토퀴마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스, 스토크님... 틀렸습니다...”
“음? 지금 무슨 말이냐 토퀴마!”
“저, 적은 지금 스토크님이 생각하고 계신 그자들이 아닙니다...”
“뭐?!”
“저, 적들은... 어둠의 종족... 빨리 병력을...”
그 순간이었다.
“절벽 위! 미확인 생명체 등장!!”
“나... 낙합니다!”
쉬이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순식간에 토퀴마의 머리 위로 드리웠다.
“...!!”
스토크는 순간적으로 토퀴마를 안아들고는 재빠르게 자리에서 거리를 벌렸다.
휘이이잉-
쾅-
이윽고 거대한 육체가 지면에 툭 떨어지자 주위를 모래폭풍이 휩쓸었다.
딸그락- 딸그락-
사방이 전부 스토르 벤들로 가득하건만, 놈은 천천히 그 속에서 걸어 나왔다.
실로 무척 여유로운 발걸음이었다.
“......”
스토르 벤들은 이에 순간 얼어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모래폭풍 속에서 비치는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지며 마침내 형체가 드러난다.
스토르 벤들의 시선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거대한 양날도끼였다.
“호오? 제법이군. 얼어붙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다니.”
허나 완벽하게 놈이 모습을 드러내자, 스토르 벤들은 감히 도끼에 시선을 둘 수 없었다.
전신을 뒤덮고 있는 갑주 안으로 드러나 보이는 새하얀 뼈.
거기에 끝없이 불타고 있는 붉은 안광.
“스, 스켈레톤?”
“......하, 감히 이 몸을 그따위 하찮은 것들과 동급으로 여기다니.”
거대한 해골, 레오릭이 등에 짊어지고 있던 자신의 양날도끼, 그라프쉬르를 향해 팔을 들어올렸다.
이에 스토크를 포함한 모든 스토르 벤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즉각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전군! 놈을 향해 공...”
“네놈들... 여기서 전부 뼈가 되어 죽어라.”
피잉-
붉은 안광을 번뜩인 레오릭이 그라프쉬르를 치켜세웠다.
스토크와 스토르 벤들은 그 순간, 몸을 강력하게 짓누르는 중압감을 체감해야 했다.
‘이것은...!!’
캬아아아악-
동시에 수많은 구울들이 자신의 몸 따윈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는 듯 절벽위에서 스토르 벤들을 향해 뛰어내렸다.
스토르 벤들로서는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흠, 꽤... 아니 상당히 할 게 많네. 바쁘게 움직여야겠어.”
“그렇지.”
7층 인간진형, 8층으로 향하는 문을 앞에 두고 이강호에게서 세부 설명을 들은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회랑.
그곳은 과거 EX등급의 아이템이 잠들어있었던 대단한 장소인 만큼, 향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번거로운 수고를 많이 들여야만 했다.
8층의 여러 지대를 돌며 모은 재료를 이용하여 회랑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
“모두 준비 됐습니까? 각 팀 순차적으로 보고 해주시기 바랍니다.”
“1팀 완료됐습니다.”
“2팀도 완료됐습니다.”
“저희 팀도 완료됐어요! 선배!”
“이쪽도 완료...”
그 중에서도 그들이 처음으로 향하는 장소는 칼바람이 부는 계곡지대였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의 스테이터스를 빠르게 증가 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플란의 핵을 얻은 드래곤들의 움직임이 무척 신경 쓰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된다.’
안전한 길을 걷는 건 이미 예전에 끝났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이강호가 8층으로 올라가는 문을 작동시키자, 문은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하늘로의 길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떠나기 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후... 8층이라...’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도 이건 긴장이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었다.
쉬이익-
파앗-
이강호가 제일먼저 뛰어들자 사람들은 뒤처질세라 곧장 빛에 몸을 맡겼다.
* * *
휘이이잉-
촤자자작-
“피, 피해라!”
사람들은 8층에 도착하자마자 허공을 떠도는 칼바람을 피해 혼비백산 움직여야 했다.
‘이런 미친!’
‘제대로 몇 방 맞으면 중상이다.’
미리 정보를 전해 들었음에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극악의 환경.
그 속에서 이강호는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 안전한 장소를 찾아 진형을 일단 한번 재정비했다.
그들이 현재 있는 장소는 양쪽이 메워져 바람이 잘 들지 않는 협곡 속이었다.
“이벨린... 나와 유세현, 김주희 이렇게 셋이서 정찰을 나갔다 오고자 한다. 그동안 사람들을 잘 부탁한다.”
“흠... 고작 셋으로 괜찮으시겠어요? 레피아씨라도 같이...”
“괜찮다. 아까도 봤듯이 이곳에선 다수로 움직이는 게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하다. 레피아야 함께 간다면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이곳 주변 경계를 확실히 할 자는 필요하니 남겨 두고 가겠다.”
“...음, 뭐 당신의 뜻이 그러하다면...”
이강호는 이벨린의 대답을 듣기 무섭게 즉각 김주희, 유세현과 함께 길을 나섰다.
몬스터가 있는 장소를 찾을 생각이었는데, 그는 사실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둘과 함께하는 게 눈치 볼 것이 없어 가장 속이 편했다.
유세현이 물었다.
“어디로 갈 거냐 이강호? 여기가 어딘진 알겠어?”
“음... 아니, 아직 잘 모르겠다. 높은 곳으로 가보자. 위에서 내려다보면 알 거 같아.”
“오케이.”
그들은 일단 주위에서 가장 높은 장소로 향했다.
휘이잉-
촤좌좌좍-
“어우, 선배 이 칼바람 너무 거슬리는데요?”
“여기서 거닐기 위해서는 익숙해져야 돼.”
“네엡...”
그들은 곡예를 펼치듯 아슬아슬하게 칼바람을 계속 회피해가며 지상을 내려다봤다.
동서남북 전체를 살핀 이강호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알았다.”
“오, 정말?”
“응. 여기 북쪽 부근이야.”
“오~ 운이 좋았네.”
몬스터의 서식지가 북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이건 정말 운이 따라주었다 할 수 있었다.
김주희가 박수를 짝 쳤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되겠네요!”
“그렇지.”
“바로 귀환할까?”
“아니, 조금 더 정찰하자.”
계곡지대의 지형지물 중에는 허공을 부유하는 대지도 있었다.
그곳에 적들이 숨어 있다가 기습을 가할시 자칫 심각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이강호는 주변에 있는 부유하는 대지를 한 번씩 전부 살펴보고 갈 생각이었다.
이동하는 도중 이강호가 물었다.
“야 세현아.”
“응?”
“너 이젠 마력의 흐름 잘 읽을 수 있냐? 부작용이 생긴 뒤론 줄곧 힘들어 했었잖아.”
“아, 그거?”
유세현이 정신을 집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힘들어 했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마력의 흐름이 무척이나 잘 느껴졌다.
“응, 이젠 잘 읽을 수 있어.”
“호오. 그럼...”
“근데 이곳은 좀 힘들어. 7층보다도 훨씬 짙은 농도의 마력이 난잡하게 꼬여 섞여있거든. 그래서 육안으로 확인이 될 정도여야 판단이 가능할 것 같아.”
“흐음. 그래?”
역시 쉽지 않다.
이강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유세현이 마력의 흐름을 읽어 이전처럼 적을 판단하는 게 가능했더라면 적과 싸우기 전 훨씬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을 터인데.
대리전쟁을 치루는 신은 유세현의 이러한 능력도 예상하여 이 세계를 이렇게 창조해 놓은 것일까.
“유세현, 김주희. 좀 더 빨리 움직이자.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야 해.”
“오케이.”
“알겠어요. 선배!”
셋은 주위에 있는 부유하는 대지를 빠르게 살폈다.
그들이 5번째 부유섬의 중간부분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스륵-
“...!!”
아주 미세한, 그들이 아니었다면 감히 느끼지 못했을 인기척이 바로 앞 수풀에서 흘러나왔다.
셋은 동시에 3방향으로 퍼져 순식간에 수풀을 포위했다.
“끄, 끄윽...”
고통에 범벅된 신음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접근하기 전 유세현은 정신을 집중하여 수풀에 몸을 숨기고 있는 생명체의 마력을 읽었다.
‘이 마력의 흐름... 전기 종류의 마력이다.’
놈은 벼락을 다루는 블루드래곤과 흡사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설마 정말 블루인가?’
이강호와 김주희에게 수신호를 보내자 말을 알아들은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호가 불길을 일으켜 수풀을 향해 쏜 순간, 셋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크으으!”
파지지직-
그러자 힘겨운 고함과 함께 수풀 속에서 강력한 전류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것은 아무리 봐도 최후의 발악이었다.
일행은 잠시 뒤로 물러섰다.
생각보다도 엄청나게 강한 전류였다.
발악한 자가 비로소 힘겹게 몸을 일으켜 주위를 흘겼다.
그 자는 셋을 보기 무섭게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다.
“허억... 허억... 너, 너희들은...”
유세현과 김주희, 이강호도 마찬가지로 굳었다.
그 자는 아는 인물이었다.
“스토크?”
동맹종족 스토르 벤.
다 죽어가던 자는 그 스토르 벤의 최고 지도자였다.
* * *
[후... 이제야 통신이 가능해졌군. 어이, 제르오펜. 응답해라. 어이 제르오펜!!]
“허억!”
협곡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제르오펜은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난데없는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기상했다.
이 목소리는...
‘아가레스?’
그렇다.
이건 분명 벨제뷔트가 참패한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연락이 끊겼었던 아가레스의 목소리였다.
[어이, 제르오펜. 지금 내 말이 들리는 거 다 알고 있다. 빨리 답 안 하나?]
아가레스가 닦달했다.
제르오펜은 주위를 두리번거려 살피는 반면 과거였다면 감히 하지 못 했을 쌍욕을 마음속으로 아가레스에게 퍼부었다.
‘이런 미친놈이! 내가 어떤 상황일지 뻔히 알면서 이런 개소리를!!’
마왕 vs 마왕(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