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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정원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스테이터스를 강제하고 있던 법칙이 사라졌습니다.]
[스테이터스가 정상화 됩니다.]
뚝-
한 방울 흘러내린 눈물로 인해 미묘하게 흐릿해진 유세현의 시야로 그토록 바라고 바랐던 정상화를 알려주는 작은 알림창이 나타났지만 지금 그는 그런 건 전혀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현재 그의 눈앞에는 그보다 훨씬 눈길이 가는 것이 떠 있었다.
[진정한 죽음을 깨우쳤습니다.]
[어둠의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100%가 되었습니다.]
[고유특성 마(魔)가 진(眞)마(魔)로 변환됩니다.]
특성명: 진(眞)마(魔)
상세정보: 죽음 그 자체, 마(魔)가 된 자에게 나타나는 특성입니다.
특성효과: 죽음의 권능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룰 수 있습니다.
유세현이 왼손가락 하나를 쓱 휘저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던 어둠은 신기하게도 그의 손을 따라 마치 수족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어둠을 다루는 것이 이리도 쉬운 일이었던가.
왠지 모를 허탈감과 함께, 순간 이전 루시뷀트가 내뱉었던 말이 유세현의 뇌리에 울렸다.
[넌... 스스로의 손가락도 제대로 못 다루는 재능 없는 놈이다.]
‘...큭...’
유세현은 허무함이 섞인 실소를 터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악담인 줄 알았던 그 말의 진짜 의미를... 김다혜가 희생하고 나서야 알아채게 되다니.
손가락... 감정...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순간 아른거렸다.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그녀를 추모했다.
‘다혜야, 네가 구해준 목숨 헛되이 쓰지 않을게... 고맙다.’
그녀가 들었으면 참 좋아했을 만한 다정한 말투였다.
‘그럼...’
쿠구구구구!
감정을 추스른 유세현은 곧장 주위를 향해 어둠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가 그가 태초의 정원에서 나온 뒤 0.5초도 채 흐르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 * *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순식간에 뻗어나간 어둠은 순식간에 보랏빛 지대를 새까맣게 물들였다.
드래곤들은 뜬금없이 등장한 어둠에 순간 큰 당혹감을 보였다.
“뭐, 뭐냐? 대체 갑자기 무슨 일이...”
유세현이 어둠의 마력 사용자라는 걸 진즉 전해 들어 그에 대해 알고 있던 드래곤들이었지만, 단순히 말로 듣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체감이 확연히 달랐다.
“이런, 무슨... 죽은 게 아니었다고?”
그리고 당황하긴 퀘루안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게 그의 입장에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꽃이 개화되는 것을 분명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멀쩡히 살아있다니?
‘설마... 설마?!’
비상한 머리로 순간 아리우스와 김다혜를 떠올린 퀘루안의 아랫입술이 질끈 말아 올라갔다.
‘그래, 그렇게 된 거라면 마지막 꽃이 뜬금없이 개화된 것도 말이 된다.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젠장.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스스로를 질타한 퀘루안은 감정을 조절해 빠르게 흥분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놈이 죽지 않고 나온 건 어찌 생각해보면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든 놈은 폭주하는 것일 뿐 정상인 상태가 아니다. 스텟이 돌아와 피해는 조금 입을지도 모르겠지만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아. 그래, 어찌 보면 차라리 잘된 거다.’
유세현은 인간세력의 주축. 그렇기에 지니고 있는 결정의 양은 일반 인간 대리자에 비할 바가 못 될게 분명했다.
놈을 죽이고 모든 것을 빼앗는다!
“놈이 나왔군요. 저희 쪽에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행여나 선수를 빼앗길라 퀘루안은 애써 태연한척하며 드라프나우어에게 최대한 공손히 통보를 날렸다.
이에 잠시 유세현이 있던 방향을 응시한 드라프나우어가 말했다.
“정말 가능하겠느냐? 저 강대한 마력을 내뿜는 자를 상대로?”
“예, 가능합니다.”
퀘루안은 괜히 부연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그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스슥-
퀘루안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고, 드라프나우어는 그런 그를 굳이 붙잡지 않았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그가 다른 이유를 붙여 퀘루안을 막아서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그는 지금 유세현에게서 굉장히 기이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루시뷀트의 기운과 단 하나도 다른 게 없다.’
정말로 퀘루안이 저자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인가.
‘흠...’
한번 지켜보기로 마음먹은 드라프나우어는 팔짱을 낀 채 퀘루안이 향한 장소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 * *
“뭐하고 있는 거냐! 보고만 있을 거야? 공격해!!”
한 블랙드래곤의 외침에 순간 정신을 차린 드래곤들이 유세현을 향해 마법을 시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세현은 마력만 내뿜고 있을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슈슈슈슉!
좌표를 정확하게 맞춰 날린 수많은 마법이 유세현을 향해 거세게 나아간다.
‘오른팔은 역시 이 싸움에선 못쓰겠군.’
이에 잠시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던 유세현이 비로소 발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가볍게 한 보.
쿠구구구구-
파앙!
가득 마력을 실은 천마군림보가 운용되자 유세현의 신형은 마치 튕겨져 나가듯 순식간에 움직여 자리에서 이탈했다.
‘...!!’
이에 화등잔만하게 커지는 드래곤과 유세현의 눈동자.
유세현은 자신이 운용한 천마군림보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판도라에 떨어진 후, 지금까지 전체를 통틀어 몸이 이토록 날쌔게 움직여졌던 적이 있었던가.
‘가볍다. 깃털보다도 훨씬 더. 이 정도의 상태라면...’
파앙!
허공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아 곧장 방향을 튼 유세현의 신형이 가장 근처에 있던 블랙드래곤에게로 향했다.
‘왼손만으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다.’
미끄러지듯 날렵하게 움직인 유세현의 검이 곧장 블랙드래곤, 카르페리온의 목을 노렸다.
“...무슨!!”
이에 표적이 된 카르페리온은 드래곤답지 않게 짧은 비명을 토해냈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그걸 전부 회피하고 그 상황에서 반격을!!”
스스슥-
그는 황급히 블링크로 거리를 벌렸으나, 안타깝게도 카르페리온이 지정한 자리에 나타난 순간 무엇인가가 그의 가슴을 관통하며 뚫고 지나갔다.
“커허어억!! 무, 무슨...”
유세현이 미리 날려두었던 천마혈사장(天魔血死掌)의 응용 천마혈사지(天魔血死指)였다.
“대체, 언제... 아니 어떻게?”
카르페리온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빠르게 진동했다.
그는 스텟이 스텟인 만큼 즉사하진 않았으나, 본체화 할 의지조차도 잃은 상태였다.
‘벗어날 수 없다. 주...죽는다!’
카르페리온으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무력감.
“크아아악!”
서걱-
결국 카르페리온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유세현의 검에 최후를 맞는 신세가 되었다.
머리를 박살낸 뒤 튀어나온 코인을 재빨리 흡수한 유세현이 다른 드래곤들을 스윽 응시했다.
“...큭!”
그저 응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드래곤들은 꽁꽁 얼어붙어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리 결정 때문에 스탯의 차가 난다지만 카르페리온이 저렇게 쉽게 당하다니... 그들의 머리로 이해하기엔 좀처럼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무슨...’
한순간에 반전되는 분위기.
그리고 그 분위기는 정신없이 싸우며 퇴각을 해나가던 사람들에게까지 곧 전파되었다.
“대체 갑자기 무슨 일이...”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저, 저 사람은?”
그리고는 곧 이 사태의 원인이 유세현임을 깨닫기 무섭게 환호를 내질렀다.
“세, 세현씨다!”
“뭐? 팀장님? 어디! 어디!”
“저, 정말이다! 팀장님! 팀장님이 돌아오셨다!!”
“와아아아아아-!!”
무저갱에 울려 퍼지는 거센 함성.
‘지, 진짜 선배님이?’
갑자기 나타난 어둠의 마력을 보고 반신반의해 하던 김주희의 안색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무슨...’
반면, 레드드래곤들을 이끌고 유세현을 다가가던 퀘루안은 한없이 충격에 휩싸인 얼굴이 되었다.
내부에서부터 유세현의 상태를 줄곧 봐 왔던 그에게 있어서 그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더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던 것.
‘그 힘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됐다고?’
이렇게 갑자기? 이유도 없이?
‘젠장... 이게 무슨 일이냐...’
짜증이 들끓는다.
안 그래도 좋지 않던 퀘루안의 얼굴은 순식간에 더더욱 일그러졌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니야. 좀 귀찮아 졌을 뿐 그래도 아직까진 괜찮다. 병력은 우리가 훨씬 많으니까. 서서히 피를 말리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그래 어떻게든 잡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퀘루안은 우선 굳어버린 드래곤들을 본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포효를 날렸다.
[뭐하고 있는 거냐! 이 머저리들아!]
“...!!”
“퀘, 퀘루안님?”
그 사자후에 블랙, 레드, 실버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다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록 성격이 개판이고, 지금은 지원군의 입장일지언정 그는 퀴르벨 레퀴아르크가 가장 신뢰하는 드래곤 중 한명으로 영향력 대단한 실로 굉장한 인물이었다.
[놈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고작 한 명이다! 결정을 지닌 이들을 필두로 협공을 가해라! 그렇게 하면 놈도 별수 없다!]
그렇게 외친 퀘루안이 곧장 고유특성, 기척제거를 발휘했다.
거리를 유지하며 상황을 보다가 유세현이 틈을 보이면 일격에 끝장을 내려던 심산이었지만.
스스스-
콰아아앙!
정확히 퀘루안이 숨은 장소를 향해 유세현이 날린 천마혈사장이 날아왔다.
그의 고유특성을 의식한 유세현이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먼저 선제타를 가한 것이었다.
‘...이런.’
퀘루안은 그 위력에 순간 흠칫 하면서도 재빠르게 회피했다.
‘칫, 방금 그 포효 때문인가? 멍청한 놈들. 주눅 들지만 않았으면 그나마 쉽게 잡을 수 있었을 것을... 이렇게 되면 급습은 무리겠군.’
그는 어쩔 수 없이 유세현의 앞으로 나섰다.
파바박!
간단한 공격으로 유세현에게 인사한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운이 좋았군. 유세현. 거기서 살아남다니.”
“......”
유세현은 이에 여느 때처럼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퀘루안은 미세하게 인상을 구겼다.
‘칫, 짜증나는 놈.’
그는 유세현이 저런 행동을 취할 때마다 알고 있음에도 참기 힘들 정도로 기분이 더러웠다.
“크크크. 아리우스가 너에게 당했을 리는 없고. 그 김다혜라는 여자가 희생했나 보지?”
허나, 그는 추후 전투를 위해 애써 미소를 유지했다.
“네가 아무것도 못 할 때도 그렇게 지극정성이더니 정말 대단한 사랑이야~ 보통이라면 목숨이 아까워 사랑하는 사람이라 한들 포기하고 버렸을 텐데 말이지~”
유세현이 김다혜를 꺼려한다는 것을 내심 파악하고 있었기에 퀘루안은 계속 김다혜를 운운하며 유세현의 속을 슬슬 긁었다.
“어이, 그새 벙어리가 되기라도 했나? 뭐라고 말 좀 해보지 그래? 너 대신 죽은 김다혜가 불쌍하지도 않나?”
“......”
“크크크, 너 같은 놈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다니 그 여자도 참 머저리야~”
유세현의 눈썹이 일순간 꿈틀거렸다.
허나 그뿐이었다.
인간세력의 상황은 한눈에 봐도 최악이었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최중요 사항은 최대한 많은 인원을 살려서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크크크, 희생한 여자는 정말 안중에도 없나 보군.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걸 보니.”
“......”
“네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성 싶으냐?”
퀘루안이 손가락을 튕기자 사방에서 튀어나온 레드드래곤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전부 결정을 양도받은 이들로써, 그들은 내부에서 활동했던 드레보스보다 정예인 자들이었다.
“넌, 못가.”
퀘루안이 툭 선언한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쭉 침묵하고 있던 유세현이 입 열어 말했다.
“가능하다면 해보시지.”
진마眞魔(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