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00화 (48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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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잉-

열기가 섬광처럼 스치자, 인원들의 입에선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있는 마력 없는 마력을 전부 끌어모아 만든 배리어.

“크으으으!”

“버텨라! 한 명이라도 포지션이 무너지면 끝장이다!”

“어이! 인간 암컷!! 좀 더 힘을 써봐라! 밀리지 않느냐!”

“이게 최대한하고 있는 거야 쨔샤! 너나 더 힘줘봐 망할 도마뱀아!”

착 밀착한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지탬목이 되어주며 단 한 명도 리타이어 되는 일이 없도록 안간힘을 썼다.

그들은 폭풍이 지나치기 무섭게 잔뜩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하아... 하아...”

“사, 살았다.”

“으... 온몸이 삐걱거리는군.”

“산 게 어디냐...”

생존한 것이 감격스러운지 저마다 한마디씩 감상평을 내뱉는 인원들.

그들은 그렇게 한동안 그 상태 그대로 휴식을 취하다 비로소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물체, 비석을 응시했다.

비석은 너무나도 거대하였기에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야에 한눈에 들어왔다.

“저, 저건...”

비석을 확인한 드래곤들의 눈빛이 일순간 변화했다.

비석 중간지점부터 돋아있는 거대한 넝쿨.

넝쿨의 끝, 땅에 박힌 비석의 맨 꼭대기에 거대한 꽃봉오리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저거...’

‘플란인가?’

난데없이 이 공간으로 떨어진 덕택에 지금껏 잊고 있었으나, 본래 그들이 이 보라색 지대에 온 이유는 플란의 핵을 얻는데 방해가 되는 인간들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즉 인간의 목숨은 어디까지나 부과적인 것이며, 결국 원하는 것은 플란의 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플란이 꽃이라는 정보를 진즉 전달받은 터라 잘 알고 있었다.

‘이 공간의 명칭이 태초의 정원일 때부터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일순간 눈빛을 번뜩인 퀘루안의 시선이 차분히 유세현 일행을 향했다.

플란이 꽃이라는 정보는 드래곤인 자신들조차도 힘들게 얻어낸 엄청난 고급정보, 혹시나 그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반응을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세현씨, 괜찮아요?”

“후욱... 후욱...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보다도 저건...”

“제 눈엔 꽃봉오리...처럼 보이네요.”

강희수가 툭 말했다.

유세현은 마치 긍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지지대로 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 확실히... 제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군요.”

“뭐, 뭐니 뭐니 해도 이 공간의 명칭이 태초의 정원이잖아요?”

“세현씨, 저기로 가면 우리 나갈 수 있는 걸까요?”

“가능성이... 없진 않겠죠. 콜록! 콜록!”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대상을 분석하는 것 마냥 대화를 이어나가는 유세현과 일행!

그들이 이토록 능청스러울 수 있었던 이유는 드래곤과 합류하기 전 미리 말을 맞춰놨기 때문이었다.

퀘루안은 당연히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연기? 아니면 진짜?’

그리고 퀘루안이 그렇게 생각에 잠기자 유세현의 반응을 지켜보던 그와 마찬가지로 퀘루안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라플라스 자식... 역시 퀘루안에게 모든 걸 털어놓진 않았군.’

라플라스가 6층에서 있었던 전투에 대해 퀘루안에게 전부 밝혔더라면 경계를 더했으면 했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변명을 한 건진 모르겠다만 신뢰가 완벽하게 두터워지진 않았겠어.’

유세현은 그리 생각하며 퀘루안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석으로의 이동을 권하기 위해서였다.

“퀘루안.”

“응? 뭐냐. 유세...”

퀘루안은 툭 답하려했으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치직-!

치지지직-!

또 다른 이변이 발생한 탓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이번에는 또 뭐야!”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성을 지르는 퀘루안.

다급히 주위를 살핀 드래곤 한 명이 외쳤다.

“퀘, 퀘루안님! 따, 땅 아래에서 강력한 전류가 치솟고 있습니다!”

“뭐? 땅 아래에서?”

“예! 당장 이 곳을 벗어...”

“말 그만하고 뛰어!”

타다닥-

현재 낮은 속성 저항력으로 전류에 당하면 그대로 끝장일 확률이 높기에, 그들은 다시 온힘을 다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치지직-!

펑!

전류는 비단 그들이 있던 장소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튀어 올라 하늘을 향해 뻗어나갔다.

마침내 하늘에 닿자, 기둥이 된 전류는 곳곳에 위치해 있는 것들과 하나로 합쳐지며 비석을 중심으로 마치 감옥을 연상케 하는 듯한 어마무시하게 큰 막을 만들어냈다.

전류의 막은 이윽고 새카맣게 타버린 대지를 다시 한 번 휘저으며 서서히 그들을 추격해왔다.

“후욱! 후욱!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군!”

“허억... 허억...”

전류는 다행히도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이동을 멈췄다.

퀘루안의 명령으로 전류의 막 저편을 살피고온 드래곤, 비야크가 좋지 않은 낯빛 그대로 보고했다.

“저편은 원자분해가 되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원자분해?”

“예, 재조차도 남지 않았습니다. 만약 닿게 된다면... 누구라 하더라도 그 즉시 죽음을 면치 못할 겁니다.”

“......”

비야크의 단언에 모두가 침묵했다.

시간제한, 빌어먹을 환경, 파수꾼조차도 충분히 역겨운 수준인데 이제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전류의 막까지 등장하다니.

‘대체 플란의 핵이라는 게 뭐기에...’

퀘루안은 치를 떨었으나 현재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가자. 저 비석에 다다르게 되면 뭔가 알 수 있겠지.”

퀘루안이 이동을 개시했고, 유세현이 심장을 쥐어 잡은 채 그 뒤를 따랐다.

* * *

고오오오-

내부에서 울려 퍼져 나오는 괴음과 함께 지금까지 어떠한 스킬에도 꿈적 조차하지 않던 장막이 물결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팀장님!”

이에 인간 측은 물론이거니와 레드드래곤 진형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에 깜짝 놀라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알아낸 사실은 지금껏 전혀 보이지 않던 막의 내부가 서서히 선명해지며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얼마 뒤면 내부가 훤히 보일 정도로 밝아질 겁니다.”

“그 말뜻은...”

“예,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

“...적들도 준비를 하겠군요.”

“예.”

“알겠어요. 나가보세요. 수고 하셨습니다.”

“예, 혹시나 내부가 비치게 될 시 즉각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스스슥-

조사대원이 모습을 감췄다.

루시펠은 그 즉시 각 조의 조장들을 긴급 소집했다.

“팀장님, 갑자기 우리 모두는 왜...”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예? 그 말은... 허면...”

“예, 놈들을 치겠습니다.”

놈들이란, 당연히도 인원들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실버와 골드를 뜻하는 것이었다.

놈들은 거취를 들키지 않았으리라 여기고 있지만, 루시펠은 습격당한 대원들의 희생덕택에 그들의 행동 패턴까지 분석을 끝낸 상태였다.

앞에 레드와 블랙이 있어 줄곧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놈들이 장막에 정신이 팔린 지금이 기회야.’

본때를 보여준다.

경계를 서다 허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럼, 예의 그 작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루시펠의 명령하달과 동시에, 각 조의 조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알리크스와 실라우벨.

둘은 현재 기분이 꽤나 좋은 상태였다.

지금까지 그들이 인간 사냥에 성공한 총인원의 수는 골드가 일곱, 실버가 여섯으로 생각보다 적은 수이긴 했으나, 전리품인 결정이 예사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쪽에 전혀 피해가 없는 것은 덤.

“후후후. 이대로 계속 갉아먹으면 놈들은 조만간 절반도 남지 않게 되겠어. 그렇게 되면...”

“얻어낸 결정과 화력으로 찍어 누르면 되겠지.”

지금껏 작전이 순탄히 먹혀왔던지라, 그들은 확고한 자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스스슥-

각기 다른 지점에서 온몸이 난자당한 그들의 수하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크윽. 알리크스님...”

“실라우벨님...”

알리크스와 실라우벨은 그 순간 당황을 금치 못하고 눈이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알세이라! 무슨 일이냐!”

“그게 인간들이... 인간들이... 저희의 은신처에 습격을 감행해왔습니다.”

알세이라의 말에 안 그래도 커졌던 알리크스의 눈이 더더욱 커졌다.

“어떻게! 그곳은 결코 발견할 수가 없었을 텐데!!”

알리크스의 골드와 실버가 은신처로 자리 잡은 곳은 썩은 호수의 바닥이었다.

물의 가호를 지니고 있는 실버 드래곤들이 종족특성을 모아 만들어준 장소이기에 일반적인 마법이나 스킬로는 감지되지 않아 발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 특수한 탐지 고유특성조차 무효화시키기에 방법이라고는 오로지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행여나 들킬라 그 흔한 감시마법도 주위에 설치해 두지 않았다.

결정을 한 번 얻는데 성공한 이후로는 줄곧 소수 정예로 움직여 흔적을 아예 남기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알세이라!”

“모,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어마무시한 위력의 스킬이 정통으로 떨어지더니...”

“크윽! 됐다! 거기까지!”

아무쪼록 알리크스는 허겁지겁 텔레포트하여 본대가 있을 호수로 되돌아왔다.

기다리는 건...

“드디어 왔군요. 알리크스.”

변장을 푼 루시펠이었다.

알리크스는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저, 저놈은... 루, 루시펠!’

과거 루시펠이 아직 천사였던 시절, 알리크스는 그녀에게 참패한 이력이 있었다.

이를 으득 간 알리크스가 중얼거렸다.

“너, 대체 어떻게... 분명 찾지 못했을...”

“예, 찾지는 못했어요.”

“...뭐? 그럼 어떻게...”

“찾지 않아도 알 수 있었거든요. 아니 찾아지지 않아서 알 수 있었죠.”

“......”

찾아지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그 한마디에 명석한 알리크스는 자신의 실수를 단박에 깨우쳤다.

‘그렇군, 저 빌어먹을 천사... 우리가 있는 곳을 직접 알아낸 게 아니라 사라진 병사들의 동선과 위치를 이용해 장소를 추측한 거로군...’

인간을 은밀하게 습격하기 위해서는 은신처와 습격할 인간과의 거리가 적당히 가까울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야 신출귀몰하게 증거를 남기지 않고 사라질 수 있으니까.

대충 위치를 특정한 루시펠은 인간 대리자들의 우월한 스테이터스를 이용해 광역공격으로 일격에 모든 근처 호수를 날린 것이다.

‘젠장... 확실히 알아내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불찰이다.’

알리크스는 후회했지만, 이미 떠나간 배였다.

‘결정 때문에 스텟에 차이만 안 났어도 내 수하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끄드득-

“루시펠... 두고 보자...”

알리크스는 어쩔 수 없이 얼마 남지 않은 부하들을 이끌며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고, 루시펠은 그렇게 멀어지는 놈들을 보며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버에게 간 인원들이 잘만 해주었으면 당분간은 한시름 놓은 셈이었다.

이윽고 승전 보고가 들어오자, 루시펠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났다.

태초의 정원(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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