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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 말에 유세현과 일행의 시선이 김다혜를 향해 쓱 돌아갔다.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없다가 이렇게 갑자기?
잠시 그녀를 묵묵히 쳐다보던 유세현이 차분히 입 열어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강희수씨 쪽이 좀 더 적합한...”
“확실히 단순 던전 공략을 가정한다면 특성의 효율 면에선 희수씨보다 제가 더 떨어질지 몰라요. 하지만 여긴 일반적인 판도라의 던전이 아닌 탑의 내부, 지옥 같은 곳이잖아요? 분명 절대 회피할 수 없는 전투가 벌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제 특성이 더 도움이 될 거예요.”
마구잡이식 우기는 말이 아닌 꽤나 논리정연한 말이었다.
“그러니 제가 들어가게 해주세요.”
말을 마치고 일행을 응시하는 김다혜의 눈빛은 확고한 의지가 서려 있는 눈빛이었다.
“음...”
이에 강희수와 유승혜는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했다.
김다혜가 그녀들의 조장이라는 이유도 있었고, 유세현과 동행 이후 김다혜가 이렇게 의지를 확고히 보인 적은 처음인 탓이었다.
이내 두 사람이 말했다.
“판단은... 세현씨에게 맡길게요.”
“저도요.”
유세현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걸 가정한다면 그녀의 말도 충분히 맞다.’
그녀는 특성, 검술 등 모든 전투면에서 강희수보다 우위에 있었으니까. 스텟이 동일해진 지금 그녀를 보내는 건 썩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평소의 유세현이었다면, 이쯤에서 생각을 바꿔 그녀의 말을 따라주었을 터였다.
현재 유세현의 선택에 제동을 걸고 있는 건 다른 쪽이었다.
이전 퀘루안의 말이 머릿속을 울린다.
[그 여자, 너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는 거잖나. 열심히 하는 척! 응?]
분명 김다혜는 그녀에게서 진즉 마음이 떠난 유세현과 달리 그를 많이 의식하고 있었다.
퀘루안에게 조차도 들킬 정도로.
그게 이것과 뭔 상관이냐 그러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유세현은 사적임 감정이 임무 수행을 하는 데 있어 결코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어떻게든 도움이 되야 된다는 그 마음은 무리를 할 가능성을 높이게 되고, 페이스를 잃게 만든다.
실제로 최근 김다혜의 컨디션은 무리한 페이스로 인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하고 있는 그때였다.
“세현아, 나 진짜 자신 있어.”
“......”
유세현은 다시금 김다혜의 눈을 응시했다.
평소 그와 눈을 마주치게 되면 감정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내 시선을 회피하게 되는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결정을 내린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김다혜씨가 들어가는 걸로 하도록 하죠.”
* * *
“어이~ 누가 들어갈지 정했나?”
“그렇다.”
“좋아! 좋아! 그럼 바로 진행하자고!”
퀘루안이 고개를 살짝 흔들자, 그의 뒤에 있던 드래곤 중 한 명이 앞으로 뚜벅 뚜벅 걸어 나왔다.
“이쪽에서는 내가 들어간다.”
레드드래곤, 아리우스 토레우.
그는 사람 입장에서 판단컨대 다른 드래곤에 비해 꽤나 괜찮은 성품을 지닌 드래곤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을 깔보듯이 대하지 않았고, 오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으니까.
거기에 퀘루안의 짜증 섞인 투정도 군말 없이 받아주는 건 덤.
‘저놈이 들어가기로 한 건가... 그나마 괜찮군.’
아리우스라면 협동하는데 있어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그쪽은?”
“내가 들어갈 거야.”
이번에는 김다혜가 앞으로 나왔다.
아리우스와 김다혜, 둘은 벽을 막고 있는 암석의 앞으로 가 섰다.
아리우스가 물었다.
“준비됐나? 김다혜?”
“물론.”
“좋아,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트드드드득-
두 존재가 의지를 보이자 문이 열리며 입구가 드러났다.
“그럼 갔다 올게요.”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퀘루안님.”
둘은 이내 뚜벅뚜벅 걸어 내부로 모습을 감췄다.
퀘루안은 그렇게 두 인물이 던전으로 사라지자, 팔짱을 낀 채 유세현에게 다가왔다.
“어이, 유세현.”
“뭐지?”
“이제부턴 어떡할 생각이냐.”
“앞으로 말인가?”
“그래. 솔직히 말해서 그저 막연히 저 둘의 복귀를 기다리기건 너무 도박이지 않나 해서 말이지.”
“아무것도 못 얻어올 수도 있다... 그건가?”
“그래, 맞아. 뭐, 솔직히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김다혜가 이곳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엄청난 집념과 운, 두 가지가 동시에 따라주었기 때문이었다.
즉, 아무리 집념이 대단했을지언정 운이 없었더라면 아무런 단서도, 감지스킬에도 반응하지 않는 이곳을 찾는 건 불가능했을 거란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발견한 곳에서 상식적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가능성이 0%는 아니지.”
“이들을 두고 움직이겠다는 건가? 애매할 텐데?”
“그래서 친히 이 몸께서 지금 이렇게 묻고 있는 거 아니냐 유세현.”
그렇다. 퀘루안은 좀 더 둘러볼지, 아니면 기다릴지 유세현의 의견을 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자존심 높은 드래곤이!
“너도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나보군. 나에게 의견을 묻다니.”
“하! 당연하지! 그래서? 넌 어떻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으냐? 수색? 아니면 대기?”
“흠...”
본래라면 동료가 던전 공략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대기하는 게 정석이었다.
허나.
‘던전 공략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시간제한이 걸려 있는 그들에게는 1분 1초가 중요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만약 그들이 엄청나게 늦게 복귀하게 된다면?
정보를 얻음에도 불구하고 타임아웃이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수색을 하자니...’
이곳 한 곳을 알아내기까지 걸린 기간이 50일을 넘긴다.
이것을 고려한다면 수색을 재개해도 인원이 2명 줄어버린 현재, 다른 걸 찾아 낼 수 있다는 보장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게다가 수색 도중 그들이 클리어하게 되면 괜히 합류가 늦어질 것이기에 자칫 자충수를 둔 셈이 된다.
‘흠...’
무엇을 선택하기에도 애매한 상황.
퀘루안도 이러한 결과에 봉착했기에 필히 의견을 물어온 것이리라.
“역시 뭘 해도 애매하군.”
“역시 그렇지?”
“한 시간 정도는 더 생각을 해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러냐. 그것도 나쁘지 않지. 그런데 말이다... 유세현.”
“응? 뭐지?”
“이곳을 찾은 기념으로 육포 하나만 내놔 봐라.”
“......”
퀘루안의 뜬금없는 말에 유세현을 제외한 다른 드래곤과 사람들의 표정이 와르르 무너졌다.
아니, 그렇게까지 해서 먹고 싶을까?
“어휴... 저 또라이 자식. 진짜 드래곤 체면 다구기는 군...”
라플라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나머지 드래곤들은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이변이 일어난 것은.
치지지지직-
동굴의 입구를 막고 있던 암석에서 특수한 문자가 떠오름과 동시에 강렬한 스파크가 주위로 비산하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던 대리자들은 모두 당혹을 금치 못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설마 뭐 건드렸냐?”
특수한 문자는 곧 빛을 발산하기 시작하더니 하늘 위로 길게 뻗어나갔다.
그리고 그 빛이 하늘에 닿는 순간, 모든 대리자들의 눈앞에 두 개의 알림창이 나타났다.
[태초의 정원을 지키는 정원의 파수꾼이 침입자들의 존재를 눈치 챘습니다.]
[파수꾼이 잠에서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쿠오오오!
쾅!
콰과과광!
쾅!
일행들이 뭘 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하늘에 적란운이 끼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벼락이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트드득!!
그리고 점차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땅.
마치 괴수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세상을 뒤흔들며 요동친다.
고오오오-!
이를 들은 퀘루안의 입에선 대번에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미친! 설마 저 던전... 함정이었어?”
그 후 더 이상 말할 시간 따윈 없었다.
휘이이잉~!
폭우와 함께 불기 시작한 강풍은 도저히 F랭크 10%의 스테이터스를 가진 이들이 버틸 수 없는 것이었다.
“젠장! 뛰어! 숨을 곳을 찾아야 한다!”
퀘루안과 유세현을 선두로 그들은 이윽고 갈라지기 시작한 숲을 질주해가며 피신을 시작했다.
“제기랄! 땅이!”
“쓰러진 나무위로 올라가!”
쩌저저적!
그들은 어찌저찌 필사적으로 계속해서 움직였다.
허나.
‘이런, 균열이 점점 더 커진다.’
거목 한그루의 두께는 어림잡아 1.5m, 높이는 최소 30m는 넘었다.
그런데 갈라진 땅의 폭이 어찌나 넓은지 그런 나무들조차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만약 마법이나, 보법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들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터였다.
뛰고 뛰고 또 뛰고.
얼마나 뛰었을까.
너무 달려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내가 느껴지지 않게 될 무렵, 달려 나가던 강희수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저 맞은편은 왜인지 몰라도 땅이 괜찮아요!”
“뭐라고!”
대번에 반응한 퀘루안의 시선이 강희수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곳을 향했다.
이곳에서 2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 느껴질 정도로 정말 멀쩡한 땅이었다.
문제는...
‘너무 멀다!’
무너져 내린 땅의 폭이 너무 넓어 도무지 가기 힘들어 보인다는 것.
트드득!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뒤는 나락의 끝, 죽음이었기에 다른 방법 따윈 없었다.
“하아압!”
사람과 드래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거목에서 도약하여 맞은편을 향해 뛰어올랐다.
고작 F랭크 10% 능력치로는 150m가 넘는 곳을 단번에 도약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떨어져 내리는 파편을 발판 삼아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선보였다.
“이런!!”
하지만 중간쯤 이르렀을 때 강희수와 유승혜가 밟으려던 발판이 주위에서 튄 파편에 의해 예측장소에서 이탈하게 되며 둘은 미처 발판을 밟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꺄악!”
결국 두 사람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
이에 그 둘보다 살짝 아래에 있던 유세현은 순간적으로 재빨리 움직여 오른쪽 어깨로 떨어지는 강희수를 받아냄과 동시에 유승혜를 왼팔로 낚아챈 뒤 마력을 끌어올렸다.
두근-
“큭!”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감각이 몸을 죈다.
허나,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죽는 건 매한가지였기에 유세현은 피를 토해내면서도 억지로 천마군림보를 운용했다.
“세, 세현씨...”
“꽉... 붙잡고 있으세요.”
터엉!
그들은 정말 턱 끝에 닿을락 말랑, 땅을 구르며 아슬아슬하게 맞은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직후 이어서 도착하는 드래곤들.
퀘루안의 등에는 소형의 날개가 돋아나 있었는데, 다른 드래곤들은 그의 다리와 허벅지에 매달려있었다.
“이런 쓸모없는 놈들 같으니...”
“죄, 죄송합니다.”
“나중에 풀뿌리나 캐와 이놈들아!!”
유세현은 퀘루안이 착지하자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휘청-
다리가 후들거리며 중심이 잘 잡히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점점 심각해지는 통증.
‘으...’
그러자 그 모습을 본 퀘루안이 손을 절레절레 휘저으며 한마디를 했다.
“어이어이, 니 상태 정상 아닌 거 이미 다 알고 있거든? 응? 그러니까 그러지 말고 그냥 누워나 있어라. 지금 공격할 마음 따위 1도 없으니까.”
“......”
유세현이 침묵하자, 퀘루안은 완전히 무너진 땅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퀘루안은 벼랑 끝에 서서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을 내려다보며 진저리를 쳤다.
‘후우... 떨어졌으면 정말 끝장이었겠군.’
고오오오-
절벽 밑에선 한차례 세상을 울렸던 괴음이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퀘루안이 이만 수하들에게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문득 그의 시선에 빠르게 지상을 향해 융기되고 있는 무엇인가가 포착됐다.
‘뭐지?’
언뜻 보기에는 점이었다.
허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점은 사각형이 되었고, 사각형의 물체는 점점 빠르게 거대해지며 퀘루안의 시야를 가득 채우는 존재가 되었다.
퀘루안은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갔다.
‘이, 이거... 설마?’
설마는 얼마지 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이런!!’
어느새 퀘루안의 코앞까지 다가온 물체.
물체의 크기는 이미 퀘루안의 전체 시야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퀘루안이 뒤돌며 다급히 외쳤다.
“수, 숲으로 뛰어라!!”
동시에 절벽에서 솟아 올라온 산채만 한 크기의 물체가 하늘을 덮으며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태초의 정원(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