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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하루를 시작하기 전, 언제나처럼 풀뿌리로 배를 채우고 있던 퀘루안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빌어먹을 풀떼기 같으니!! 퉷!”
그는 질겅질겅 씹고 있던 풀뿌리를 뱉어냄과 동시에 마찬가지로 풀뿌리를 먹고 있는 유세현에게 성큼성큼 접근했다.
유세현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하자, 퀘루안이 잔뜩 험악해진 표정 그대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이, 아직 육포 가지고 있지?”
“그렇다만.”
“좀 넘겨라.”
“거절한다.”
유세현은 이에 그 어느 때처럼 단호하게 잘랐다.
동맹을 맺은 이후로 퀘루안이 반 농담 어조로 심심찮게 육포를 요구해왔었기에, 사실 유세현은 이젠 별 감흥조차도 들지 않았다.
“크... 우리가 탈리스만도 제공해주지 않았냐!”
“그건 이미 예전에 확실한 정보교환을 위해 조율된 이야기 아닌가. 왜 그 얘기를 꺼내는 거지? 게다가 값도 여타 아이템으로 확실히 지불했지 않나.”
“아 진짜! 야 이 자식아! 그럼 차라리 신경 쓰이지 않게 먹어서 없애기라도 해!”
퀘루안의 언성이 더욱 높아졌다.
도무지 끊이지 않는 굶주림에 육포 생각이 자꾸 떠올라 더 짜증이 올라온 모양이었다.
“가지고 있는 식량을 언제 먹을지는 내 마음이다.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으아아아! 이 빌어먹을 자식이이이-!!”
결국 퀘루안은 조곤조곤 답하며 결코 지지 않는 유세현의 언변에 폭발하는 감정을 막기 힘들었는지 포효를 질러대며 반쯤 발광하기 하기 시작했다.
그게 사람들로서는 참 어이없으면서도 웃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자존심 높은 드래곤이 고작 육포 따위 때문에 저런 행동을 보이다니.
지금까지 드래곤들은 힘겹게 생존해온 여타 종족과 달리, 그 강력한 힘 때문에 단 한 번도 굶어본 적이 없던 탓인지 그들은 사람들보다 분명 배는 힘들어하고 있었다.
“워워, 퀘루안 진정해 임마.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 더 배고파지기만 한다니까?”
“아오-!! 막지 마 라플라스! 저 팔 장애자식, 그냥 확 죽여 버리고...”
“어이어이, 그랬다간 우리도 다 같이 끝장인 거 알지?”
총 경과일 51일, 그들은 여전히 무엇 하나 발견하지 못했기에 무척이나 낙담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공멸을 바라지 않는 이상에야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결코 서로가 서로를 치는 행동은 할 수 없는 것!
“참아라, 퀘루안. 고작 해봐야 육포지 않냐. 이곳에서 탈출한 뒤 마음껏 먹으면 돼.”
“아오... 어쩌다 천하의 내가...”
스스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는지 퀘루안이 관자놀이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표정이 돌아온 퀘루안이 주위 인물들을 향해 물었다.
“후... 못 볼꼴을 보였군. 그래, 식사는 전부 끝냈나?”
“예.”
“인간, 너희들은?”
“우리도 끝냈다.”
“후... 그렇단 말이지. 좋아, 그럼 다시 수색을 개시해보도록 할까?”
“예.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지.”
그들은 그렇게 답하기 무섭게 마치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팀 마냥 순식간에 갈라져 각자 맡은 영역으로 자취를 감췄다.
* * *
스슥-
스스스슥-
“후우... 후우...”
얼마 없는 마력으로 보법과 감지스킬을 필사적으로 운용해 나가며 수색을 하고 있던 김다혜는 한계가 다가오자 쉬어가기 위해 잠시 뜀박질을 멈췄다.
“후우우...”
정지한 그녀의 몸에서는 땀이 흡사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김다혜는 거목에 등을 살며시 기댄 채 미리 마법으로 만들어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과 몸이 축여지며 갈증은 확 나아지는 것에 반해, 기분 나쁜 공복감만은 더 심하게 배를 자극해왔지만 김다혜는 퀘루안과 달리 그런 것에는 조금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현재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오직 성과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단서를 찾아야 해.’
유세현을 이런 곳에서 죽게 만들고 싶지 않다.
이것은 현재 그녀를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비록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다 할지라도...
비록 그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을지라도...
‘후우... 다시 시작해볼까.’
그녀는 어떻게든 반드시 찾아낼 것을 각오하며 재차 필사적으로 수색을 해나갔지만, 현실은 냉정한 법이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며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약속 장소로 집합해야 될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오늘도 허탕인가...’
이제는 발을 돌려야 할 때.
‘아니, 아니야. 아직 아슬아슬하게나마 시간이 있어. 하나만... 저기 있는 거목 하나만 더 살펴보자.’
김다혜는 잔뜩 무리를 하여 지끈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거목에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조사를 위해 손을 쭉 뻗었다.
스스슥-
그 순간이었다.
트드득!
쨍그랑!
거목으로 둔갑해있던 특수한 결계가 와장창 무너지며 지름10m의 암석으로 막혀져 있는 동굴이 그녀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잔뜩 피곤에 찌들어있던 김다혜의 안색이 환하게 펴지는 순간이었다.
* * *
어둠침침해진 밤, 복귀한 인원들을 쓱 훑은 퀘루안은 맥이 빠진 목소리로 결과를 묻기 시작했다.
“어이, 라플라스?”
“어제랑 똑같다.”
“어이, 유세현.”
“나도 마찬가지다.”
당연한 일이었다.
룰이기에 형식적으로나마 하는 것일 뿐, 표정으로 보건대 어차피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으니까.
“강희수?”
“이하동문.”
때문에 퀘루안은 인원들이 보여주는 탈리스만도 잘 살피지 않고 있었다.
봐서 뭣하겠는가. 어차피 봐봤자 나오는 것이라고는 끝없이 이어진 숲 뿐일 텐데.
“그... 김다혜? 김다혜?”
퀘루안이 마지막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김다혜를 불렀다.
그녀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퀘루안이 귀찮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얘는 또 지각인가... 어이 유세현.”
“뭐지?”
“김다혜라는 인간... 관리 좀 잘해라. 시간 좀 맞추게 해. 거의 맨날 5분 정도씩 늦지 않나. 응?”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우리에겐 좋은 거 아닌가? 그리고 그녀는 아직 늦지 않았어. 오차는 플러스 마이너스 10분이지 않나.”
너무도 정론적인 반박.
때문에 본래라면 퀘루안의 입이 꽉 다물어져야 될 상황이었다.
허나...
“하...”
퀘루안은 되레 어깨를 으쓱거리며 기분 나쁜 조소를 머금었다.
그가 이내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유세현을 향해 말했다.
“뭐, 그래. 네 말이 옳아. 정론적으로는 전부 맞는 말이야. 인정해. 하지만 그 여자... 다른 의도가 섞여 있는 게 너무 뻔히 보여서 말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역겨울 정도다, 유세현. 내가 지금 뭘 말하고 있는지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무슨 뜻이지?”
“후후, 알면서 모르는 척 하긴. 그 여자, 너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는 거잖나. 열심히 하는 척! 응?”
“......”
“이야~ 자기가 먹을 풀뿌리도 갖다 바치고, 물 만들어서 바치고. 대충 봐도 아주 그냥 지극 정성이더만. 내 수하들도 그렇게까진 안 하는데 말이지?”
퀘루안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들의 수하들을 노려봤다.
수하들은 멋쩍게 중얼거리며 퀘루안의 시선을 애써 회피했다.
“그게 저희도 많이 배고픕니다 퀘루안님...”
“누가 뭐라냐?”
“......”
“아무쪼록 유세현, 오차 범위를 두었다지만 웬만해선 시간 딱 맞출 수 있도록 그 여자에게 언질 해...”
김다혜가 숨을 몰아쉬며 나타난 것은 딱 그때였다.
그녀의 얼굴을 본 퀘루안이 하던 말을 끊고 물었다.
“그래 열심히 하느라 매일 늦는 우리 김다혜. 뭐 발견한 것...”
“발견 했어! 세현아!”
퀘루안이 채 말을 끝낼 새도 없이 김다혜가 숲이 떨어져나가라 외쳤다.
“?!”
퀘루안을 포함한 나머지 인원들의 눈동자는 순식간에 토끼처럼 화등잔만해졌다.
“뭐, 뭐? 그게 정말이냐! 인간!!”
언제 그녀를 욕했느냐는 듯 퀘루안이 순식간에 그녀의 곁으로 날아갔다.
이어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녀의 앞에 가 섰다.
김다혜는 당당히 탈리스만을 내밀었다.
* * *
“김다혜가 말한 정보... 진실이냐 라플라스?”
“진실이다.”
퀘루안의 질문에 라플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다혜가 발견한 동굴은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총인원이 정해져 있었는데, 결정을 지니고 있는 자들은 입구를 막고 있는 바위에 손을 대는 것으로 몇 명이 들어갈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그 인원수는.
[진입 가능 인원: 2명]
고작 두 명 뿐.
“흐음...”
답을 들은 퀘루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한 번 입구에 손을 얹어봤지만 역시나 처음 힌트를 얻지 못했던 것처럼 아무런 힌트도 얻을 수 없었다.
그에게도 이전 벌어진 무저갱 전투에서 인간 한 명을 죽이고 빼앗은 결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역시 양이 부족해서인가.’
때문에 퀘루안은 유세현을 제외한 강희수와 유승혜, 김다혜를 재평가했다.
‘저 여자들도 인간들 중에선 꽤나 정예에 속한다.’
만약 정예가 아니라면 저들 또한 자신에게 죽은 인간처럼 힌트를 얻지 못할 정도의 결정을 소지하고 있었을 테니까.
‘혹시나 나머지 두 년들이 김다혜에게 몰아주고 김다혜가 운이 좋아 찾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높게 평가하는 게 맞다.’
방심은 금물이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퀘루안은 이만 생각을 접었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눈앞에 있는 동굴형 던전의 공략이었다.
퀘루안이 먼저 입을 열어 유세현에게 제안했다.
“유세현, 각 측에서 한 명씩 뽑아 들어가는 거로 하는 게 어떻겠나.”
“그렇게 하도록 하지.”
유세현은 망설이지 않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작 2명밖에 들어갈 수 없는 동굴, 사람 측에서 두 명이 들어 가버리게 되면 두 명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남겨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안 그래도 안 좋은 비율이 더욱 깨져 남겨진 두 사람의 신변이 매우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높았다.
비율만 따지자면 드래곤 두 마리를 내부로 보내는 게 낫겠지만... 드래곤만 내부로 보내게 될 시 후에 놈들이 배신을 해도 이쪽은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기에 대응을 할 수가 없다는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되는 수가 있었다.
그러니 유세현이 생각하기엔 이게 최선이었다.
퀘루안도 그렇게 생각하고 제안을 한 것이었고.
“좋아, 유세현. 그럼 5분 만에 빠르게 뽑고 다시 모이도록 하자고.”
“알겠다.”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퀘루안은 자신의 수하들을 이끌고 숲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사람들은 드래곤이 떠나기 무섭게 곧장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강희수가 먼저 자신의 의견을 표했다.
“제가 들어가는 게 어떨까 해요. 제 고유특성은 동굴 같이 좁은 곳에서는 더욱 유용해지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녀의 특성이라면 함정도 미리 파악하는 게 가능할 터였다.
“승혜씨는...”
“제 특성은 그곳에선 별 도움이 안 돼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김다혜는 생각에 잠겨 그저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고 강희수와 유승혜, 유세현은 열띤 토론을 나눴다.
“흠, 제가 들어가는 건 역시...”
“별로라고 생각해요. 세현씨는 팔 때문에 전투력을 많이 잃었으니. 무조건 남으세요.”
“......”
그렇게 얘기는 점점 진행될수록 강희수가 들어가는 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흠... 그럼 강희수씨가 들어가는 걸로...”
그렇게 마침내 결정되려는 순간이었다.
“잠시만요. 던전에는 제가 들어갈게요.”
지금까지 쭉 가만히 있던 김다혜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태초의 정원(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