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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이 내려앉은 밤, 난데없이 눈을 번쩍 뜬 유세현의 시선이 다급히 지면을 향했다.
스륵-
스르륵-
주위 수풀은 움직이지 않는 반면, 어느 특정 위치의 수풀만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움직임.
‘적? 아니면 아군? 그것도 아니면... 몬스터?’
유세현은 순간 마력을 읽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현재는 스테이터스가 전부 동등하게 변환된 상황.
마력 읽기 능력이 격하된 지금 읽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읽어봤자 피아를 구분할 수 없을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괜히 집중력 사용으로 인해 컨디션만 안 좋아질 수 있는 것.
육안으로 확인키로 마음먹은 유세현은 루베르크를 조심스레 뽑으며 놈이 모습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며 차분히 기다렸다.
스륵-
스르륵-
흔들림이 가까워짐에 따라 소리는 점차 커졌다.
마침내 흔들림이 수풀 끝에 다다랐을 때였다.
‘......’
파앗!
난데없이 수풀 속에서 던져진 단검이 유세현이 위치해있는 나무 위로 정확히 날아왔다. 유세현은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있는 곳을 이미 특정하고 있었다고?’
유세현은 단검을 쳐냄과 동시에 마치 날다람쥐와 같은 날랜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나무를 탔다.
육체는 일반인으로 돌아갔지만 그간 쌓아온 경험과 감각은 튜토리얼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게다가.
‘놈도 나와 조건은 똑같다.’
그렇기에 만약 1:1이라면 그는 결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스르륵-
유세현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자 난데없이 바로 아래에 있는 수풀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검을 던진 놈은 뒤에 있건만.
유세현은 혀를 쯧 찼다.
‘역시, 혼자가 아니었군.’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고 있었다는 건, 애초부터 알고 접근했다는 뜻.
뒤에 놈은 미끼였던 것이다.
만약 유세현이 적이 한 명이라 치부하여 반격에 나섰다면 그대로 협공을 당했을 것이다.
‘후우, 어떡한다.’
유세현은 최대한 머리를 굴려 방도를 찾아보려 했으나 역시나 딱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이것을 최악의 상황으로 상정하지 않았던가.
‘어쩔 수 없군.’
유세현은 장기전을 할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지치는 만큼, 놈들도 지칠 터다.
그리고 지치게 되면 자연스레 협공에도 틈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걸 노린다.’
심장이 발작을 일으키면 끝장이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유세현은 우선 놈들의 수를 정확히 특정했다.
‘뒤에 한 명, 좌측에 한 명. 우측에 한 명, 이게 전부군.’
그나마 다행스런 일.
쿵쾅- 쿵쾅-
심장이 격렬하게 뛴다. 유세현은 조마조마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20분이 흘렀다.
“허억... 허억...”
입에서 단내가 올라온다.
허벅지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고, 몸에서는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유세현은 아늑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힘겹게 뒤를 흘끗 살폈다.
줄곧 10m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던 놈과의 거리가 꽤나 벌어져 있었다.
우측에서 따라오던 자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뒤쳐진 상황.
지금 가까이 있는 것은 좌측뿐이었다.
‘기회다!’
유세현은 깨닫기 무섭게 그대로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좌측 풀숲을 노렸다.
“...!!”
파앙!
풀숲에 있던 자는 힘겹게 검을 들어 반응했다.
마침내 대면하게 된 적.
얼굴을 확인한 둘의 행동이 동시에 멈춰 섰다.
“어... 유세현...씨?”
“......”
그 자가 유세현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유세현이 천천히 검을 거뒀다.
그 자가 유세현을 알고 있듯이 유세현 또한 그 자를 익히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유세현 또한 그녀의 이름을 읊조렸다.
“...김다혜씨.”
김주희의 팀에 포함되어 있던 과거 유세현의 여자친구 김다혜, 그녀가 이끄는 인원들이 습격자들의 정체였다.
* * *
“후... 진즉 알았다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됐을 텐데... 내 실수야. 미안...해요...”
존대와 반말이 섞인 이상한 어투.
유세현은 이를 괘념치 않아 하며 김다혜의 맞은편에 앉아 어떻게 된 것인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게... 도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퍼져온 보랏빛에 휘말렸어...요. 눈을 뜨니 나... 아니 저랑 희수씨랑 승혜씨만 덩그러니...”
이상한 말투 때문에 흐름이 자꾸 끊긴다.
지금의 그녀는 뛰어난 리더십과 명석함으로 소규모 팀을 이끌 온 김다혜스럽지 않았다.
유세현은 답답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판도라로 빠르게 넘어감으로써 구름섬 이후 자연스레 연락이 두절 되었던 김다혜, 그런 그녀와 다시 조우하게 된 때는 언더월드에서 진지로 복귀 했을 때로 시간으로 계산하자면 사실 꽤 오래전이었다.
다만 유세현이 그녀를 사적으로 만나려 하지 않았고, 이강호가 이벨린에게 미리 언질해 둠으로써 공적으로도 최대한 부딪치지 않게 설계 했기에 구름섬 이후 마땅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을 뿐.
“그래서... 일단 주위를 탐색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탐색을 시작했는데...”
그 때문일까?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는 김다혜는 아무리 봐도 긴장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보다 못한 유세현이 말했다.
“김다혜씨.”
“아... 예.”
“그냥 편하게 반말로 하셔도 됩니다.”
“아... 저, 정말? 아, 아니! 그럴 수 없어요!”
김다혜가 무심코 좋아하다가 황급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말은 사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어야 가능 한 것.
이 일이 끝난 이후, 사적이 대화를 거부하는 유세현이 아예 자신을 무시해버리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유세현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다혜씨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그냥 말 놓으세요.”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추후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럼... 알았어. 말 놓을게.”
결국 유세현의 뜻대로 김다혜가 말을 놓기로 했다.
이후 김다혜는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고, 이야기가 끝나자 자신의 팀원을 소개했다.
“이쪽분이 유승혜씨. 그리고 이쪽분이 강희수씨.”
두 사람은 유세현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유승혜에요.”
“강희수입니다.”
유세현은 왠지 모르게 두 사람의 얼굴이 낮이 익는 다는 것을 느꼈다.
어디선가 한 번 본 듯한...
그때 강희수가 말을 이었다.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세현씨. 저희 누군지 혹시 기억나세요?”
“어? 세현이랑 이전에 만나 적이 있어요?”
“아, 예. 정말 아주 오래전이지만...”
강희수가 멋쩍게 웃었고, 유세현은 그 순간 떠올릴 수 있었다.
“마도철...”
“...아직까지 기억하시고 계시네요.”
두 사람은 튜토리얼 2단계인 크낙사스의 초원에서 마도철에게 협박당해 수작을 부렸던 여성들로, 마도철을 처리한 이후 유세현이 선처해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인물들이었다.
“그때의 일, 다시 한 번 사죄할게요.”
“맞아요. 정말 죄송했어요.”
“아닙니다. 그 이후 마왕성에서 도움을 주셨지 않습니까.”
“호호, 그것도 기억하시고 계시네요.”
유세현은 가볍게 미소 짓는 둘을 보며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둘은 당시에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최약자에 속하는 대리자였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상위 10% 안에 꼽히는 존재가 되다니...
“세분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데요?”
“뭔데?”
“제가 있던 곳을 정확히 특정하셨던데. 어떻게 한 거죠? 추적스킬로는 감지되지 않았을 텐데.”
유세현이 제일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답은 강희수가 했다.
“아, 그건 제 고유특성이에요. 특별한 울림을 감지할 수 있어요. 심장의 박동 같은 거요. 범위가 좁아서 평소엔 그리 도움 되는 능력은 아니지만...”
“좋은 능력이군요.”
“뭐, 확실히 없는 것보단 낫긴 하죠.”
강희수가 코를 쓱 훑었다.
유세현은 화제를 돌려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겁니다만... 간단히 의견을 듣고 싶군요.”
“전 우선은 수색하여 사람을 더 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간 포지션에 있던 우리가 휘말릴 정도였으니 거기 있던 대부분이 이곳에 빨려들어 왔을 게 분명해요. 빌어먹을 드래곤들도...”
“다혜씨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승혜씨도 마찬가진가요?”
“예.”
유세현도 그리 생각하는 부분이었기에 방향은 순식간에 정해졌다.
“상당히 지쳤으니 조금 이동해 휴식한 후 아침이 되면 본격적으로 움직이도록 하죠.”
“그렇게 하도록 해요.”
그들은 불침번을 정한 뒤 잠을 청했다.
유세현이 막 잠에 빠지려 하던 때였다.
“세현아 자?”
“...아직 안잡니다만.”
“아, 그럼 잠깐 이것 좀 봐봐. 아까 전엔 까먹고 미처 말 못 했는데 바깥에서 승혜씨가 찾아냈었던 글귀야.”
김다혜가 내민 수정구슬은 글귀를 비추고 있었다.
글귀를 찾아낸 게 유승혜였었나.
‘운이 좋군.’
유세현은 그것을 빠르게 읽었다.
[태초의 꽃은 태초의 힘을 양식 삼아 피어난다.]
이곳이 태초의 정원이라는 것을 감안하자면 꽤나 직설적인 힌트.
“태초의 힘이라... 100일내에 어떻게든 이걸 찾아내 꽃을 피워야 된다는 거로군.”
“우리도 그렇게 해석했어.”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막연한 힌트이기도 했다.
태초의 힘이 의미하는 게 과연 무엇인가.
특수한 아이템?
유세현은 그것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다가 잠에 빠졌다.
* * *
“제기랄! 이게 대체 무슨 꼬라지야!”
짜증이 듬뿍 담긴 고함을 내지른 퀘루안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소리는 동굴 내부에 울려 퍼지지 않았다.
라플라스 때문이었다.
“어이 퀘루안, 너무 그렇게 짜증내지 말라고. 이 손톱만한 마력으론 사일러스도 얼마 유지 하지 못하니까.”
“으으으으...!! 젠장할!”
현재 퀘루안의 옆에는 라플라스를 포함하여 4명의 드래곤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결정을 지니고 있지 않아 유세현처럼 약간의 힌트도 얻지 못했기에, 그의 심정은 답답하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가!
이에 라플라스가 제안했다.
“어이, 퀘루안. 이렇게 된 거 그곳에 한 번 가보는 게 어떨까 생각하는데.”
“아까 그 소동이 발생한데 말이냐?”
“응. 가면 뭔가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
퀘루안은 성격과 달리 의외로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그의 스텟도 유세현과 똑같이 F랭크 10%였기 때문이었다.
망설이고 있자 라플라스가 도발했다.
“왜, 쫄리나? 천하의 퀘루안이?”
퀘루안은 이를 뿌득 갈았다.
‘젠장... 이 몸이 어쩌다...’
퀘루안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 자식이... 적당히 도발해라? 그러다 죽는다?”
“어이쿠 무서워라~ 그래서 답은?”
“쳇! 그래, 가보자. 가!”
퀘루안이 몸을 휙 돌렸다.
도발하는 라플라스가 얄밉긴 그지없었지만 확실히 여기 있어 봤자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시간을 축내느니 그의 말처럼 접근해 보는 게 좋으리라.
퀘루안이 동굴 밖으로 나서자, 라플라스의 입에서 작은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후우... 그나마 다행이군.’
퀘루안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는 퀘루안에겐 보이지 않는 알림창이 보이고 있었다.
100일안에 이곳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그대로 사망하게 된다는, 결정을 지닌 자만이 볼 수 있는 알림창이.
‘어떻게든 빨리 탈출 조건을 알아내야 된다. 임무는 그 다음이다.’
태초의 정원(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