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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뭐야?”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드래곤과 인간,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느새 보랏빛 바다가 된 무저갱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소린 퀘루안님께 듣지 못했는데?”
“뭐, 뭐라고? 그...그렇다면!”
“젠장할! 이상 현상이다!”
이상 현상.
그것은 스스로 최강이라 자부하는 드래곤들의 간담조차도 충분히 쪼그라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휩쓸리면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기에.
게다가 이곳은 다른 장소도 아닌 최악의 탑의 내부, 그것도 7층 아닌가.
“다,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야 돼!”
“이곳에서 이탈해라!”
두려움을 느낀 드래곤과 인간들은 언제 맞붙었냐는 듯 순식간에 갈라졌다.
단번에 본체화 하여 상공으로 솟아오르는 드래곤들과 숲의 내부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
유세현이 발작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자, 김주희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선배님! 가야 돼요! 빛이 점점 더 밝아지고 있어요! 곧 뭔 일이 일어날게 분명해요!”
“머, 먼저가! 곧 따라갈 테니!”
“그럴 시간 없어요! 제가 가서 도와드릴게...”
“오지 말라고 했지!”
유세현이 잔뜩 격앙된 고함을 내질렀다.
이런 모습은 대체 얼마만일까.
이에 부패의 어둠을 피해 오기로라도 접근해보려던 김주희의 몸이 움찔 멈춰 섰다.
“하,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절대 오지...”
“제가 가볼게요! 저는 그의 권속이니 괜찮을 거예요!”
그때 적의 도주로 인해 견제에서 풀려난 루시펠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와 김주희의 옆을 스쳐 지나쳤다.
“그러니 주희씨는 세현씨 말대로 먼저 가세요!”
“......”
김주희의 손이 일순간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유세현을 두고 먼저 떠나는 것이 죽도록 싫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으드득-
이내 김주희가 침통한 마음을 뒤로한 채 사람들의 뒤를 쫓아 자취를 감췄다.
그러자 그것을 본 유세현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루시펠씨... 당신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세요. 이 힘은 당신도 삼켜버릴 겁니다.”
“으으윽...”
김주희가 있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했을 뿐, 권속인 루시펠도 다가가면 갈수록 사실은 점점 삼켜지고 있는 상태였다.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한 어둠저항력을 지니고 있는 그녀였지만 지금 유세현이 내뿜는 힘 앞에서는 큰 소용이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팔, 얼굴 등등 어둠에 노출된 피부 표피가 갈라져 부서져 내리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다간...
“...유세현씨... 난 당신이 이겨낼 거라 믿습니다.”
루시펠이 몸을 돌렸다.
그렇게 그녀가 떠나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저갱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광활하게 퍼져나가며 온 세상을 뒤덮었다.
* * *
[태초의 정원에 입장하셨습니다.]
[태초의 힘에 의해 스테이터스가 태초의 수치로 강제 전환됩니다.]
[태초의 제1 법칙에 의해 존재하는 모든 대리자들의 스테이터스 수치가 하나로 통일됩니다.]
눈을 뜬 유세현의 시야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세 개의 알림창이었다.
‘으... 폭주는... 멈춘 건가...’
유세현은 천천히 움직여 몸 상태를 확인했다.
폭주의 여파로 팔과 다리를 포함해 부서질 것처럼 안 쑤신 곳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후... 그나마 다행이군.’
비록 홀로 남겨졌다지만 목숨을 잃지 않았다.
만약 판도라가 붕괴하듯 땅이 무너지기라도 했으면 자신은 그대로 끝이었을 터였다.
유세현은 루베르크를 지지대로 삼아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띠링-
[신비의 결정이 감지되었습니다. 일정 수준을 소지하고 있으므로 힌트가 제공됩니다.]
[이 공간은 특정 조건을 달성해야만 탈출이 가능합니다.]
[100일 내에 조건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영역내 존재하는 대리자 전원이 사망합니다.]
또 다른 알림창이 나타났다.
꽤나 유용한 정보였다.
‘100일 이내에 탈출하지 못하면 사망이라...’
유세현은 일단 나무위로 올라가기 위해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100일, 그건 짧은 기간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긴 기간도 아니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조건이 무엇인지 찾아내어야 되니까.
‘게다가 존재하는 대리자 전원이라고 했다.’
그 의미를 해석해 본다면 이곳에 자신을 제외한 다른 대리자가 무조건 존재한다는 뜻이 되었다.
만약 같은 사람이라면 다행이지만, 드래곤일 경우에는...
‘후우...’
그는 꼭대기로가 주위 지형만 대략적으로 확인한 뒤 그대로 풀에 몸을 숨긴 채 휴식을 취할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어?’
꽤나 힘을 주어 도약했음에도 그의 도약은 채 1m가 못 됐다.
본래라면 족히 100m 이상은 도약 되어야 정상이건만...
‘아, 맞아 스테이터스가 수치가 전환 됐었지.’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사고가 느리다.
다급히 스테이터스 창을 확인한 유세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런...’
점프력에서 짐작할 수 있었듯이, 모든 스텟이 엄청나게 떨어져있었다.
F랭크 10%.
이건 처음 판도라에 떨어졌을 때의 수치였다.
‘태초의 수치라는 게 이 뜻이었나...’
덕분에 유세현은 최악의 상태에서 나무를 힘겹게 기어올라야 되는 신세가 되었다.
“크으...”
몸이 굉장히 무겁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것은 기본이고 움직일 때마다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내질렀다.
“후우... 후우...”
그렇게 간신히 꼭대기로 올라간 유세현은 주위를 두리번 살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숲이 눈에 꽉 찬다.
유세현은 자신의 생각보다도 상황이 더 최악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아연실색했다.
‘큰일이다. 이 스텟으로는 제한 시간 내에 나 혼자 이 숲을 전부 살필 수 없어.’
어떻게 해야 될까?
‘나처럼 휘말렸을 사람을 찾아야겠군.’
조금 아래로 내려온 유세현은 나뭇가지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몸에 피로가 쌓여서인지 그는 금방 수마에 빠져들었다.
* * *
어둠침침한 공간.
“쯧쯧쯧. 내 그렇게 될 줄 알았지.”
유세현은 누군가가 혀를 차는 목소리에 다급히 눈을 떴다.
“...!!”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자신은 분명 나무에서...
꽤나 당황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의 시야에 두 존재가 잡혔다.
유세현은 둘을 본 순간 돌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사부님?”
“끌끌끌! 그래 제자야! 오랜만이로구나!”
구부려 앉은 천마가 재미있다는 듯 유세현의 이마를 손으로 툭툭 쳤다.
유세현은 고개를 휘휘 털어내며 물었다.
“사부님 여기는 제 내면인 겁니까?”
“끌끌끌, 제자야 넌 언제나 냉정하구나. 그때 이후로 처음이니 꽤나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바로 그것부터 묻다니.”
천마의 낄낄 웃었다.
유세현은 이에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는 스승님도 여전히 괴팍스러우시군요.”
“예끼! 괴팍이라니! 이놈 짜슥이 다 죽어간다고 못하는 말이 없구나!”
“......”
다 죽어간다는 말에 유세현의 낯빛이 변했다.
그래, 지금 중요한 것은 회포가 아니었다.
우습게도 이곳은 그가 오고 싶다고 마음대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유세현의 시선이 조심스레 다른 한쪽을 향했다.
유세현은 차분히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루시뷀트...”
[......]
루시뷀트는 그저 묵묵히 유세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유세현이 말을 이었다.
“루시뷀트, 모든 걸 각설하고 묻고 싶은 게 있다.”
[어떻게 해야 발작을 멈출 수 있는지 말이냐?]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루시뷀트는 곧바로 핵심을 찔러왔다.
유세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군. 나는 지금 꽤나 심각한 상태다. 마력을 조금만 격렬하게 운용하면 금방 발작이 오지. 집중을 해도 마찬가지고. 만약 이걸 완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일러줄 수 없...”
[안타까운 말이다만 현재로선 난 네게 알려줄 게 하나도 없다.]
“......”
[마심원을 품고 있던 건 너의 생명, 너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넌 그런 생명의 반을 잃었다. 아니 스스로 깎아내렸지. 너는 지금 두 손으로 받치고 것을 한 손으로 받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사용에 무리가...”
[그건 네가 지금까지 무리하지 않아 괜찮았던 것이다. 아직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진 못했다지만 너도 마왕이니. 한 손으로도 간신히 버틸 수 있던 것이지. 하지만 넌 지금 무리하여 마심원을 폭주시켰다. 본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이탈한 것이다. 마심원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는데 너는 이제 한 손 밖에 없군.]
꽤나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마왕이었지만, 유세현은 그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안타까움, 아쉬움, 그리고 분노.
“...그럼 내가 힘을 키우면 다시 들어 올릴 수 있나?”
그렇게 질문하자 마왕이 뭐가 웃긴지 대뜸 조소했다.
[큭큭큭.]
“뭐가 웃기지? 루시뷀트?”
유세현은 한없이 심각한 표정이었다.
허나, 그런 유세현의 모습에도 마왕은 웃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되려 더욱 폭소했다.
[큭큭큭큭! 크하하하하하!]
지금까진 단 볼 수 없었던, 그 답지 않은 모습.
그건 분명 유세현을 조롱하는 모습이었다.
마왕이 이내 입을 뗐다.
[크하하하하! 이거 이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군. 그래도 공간의 일부를 할애해주고 있는 고마운 숙주에게.]
“...루시뷀트...”
[유세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솔직히 말하도록 하마. 난 후회한다. 이 따위 질문 밖에 못하는 너 같은 놈에게 나의 권능을 넘겨준 것을.]
“......”
[넌 나의 권능이나 저 늙은이의 무공이나 무엇 하나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완벽히 만들지 못했다. 넌... 스스로의 손가락도 제대로 못 다루는 재능 없는 놈이다.]
폭언이 쏟아진다.
마왕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주위 어둠이 마치 수채화에 물을 뿌리듯 흘러내렸다.
유세현은 흘끗 천마를 응시했다.
천마도 지금만큼은 뒤돌아 선 채 그를 외면하고 있었다.
쿠구구!
거친 흔들림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울렸다.
주위를 훑어본 마왕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여기까진 거 같군. 유세현. 처절하게 괴로워하다가 스스로의 힘에 짓눌려 죽음을 맞이하거라.]
“루시뷀...”
스스스-
유세현은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공간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지금껏 뒤돌아 외면하고 있던 천마의 어깨가 들썩였다.
천마는 몸을 돌려 루시뷀트를 응시하기 무섭게 폭소를 터트렸다.
“끌끌끌...끌꺌꺌꺌걀!”
[......]
천마가 죽겠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꺌꺌꺌꺌!!”
[...노친네...]
“아... 미안 미안~ 하지만 웃길 걸 어쩌냐! 그 자존심 강한 네놈이 갑자기 연기를 하는데!! 꺌꺌꺌꺌!”
[...웃지 마라.]
“꺌꺌꺌꺌! 이게 멈추라고 해서 멈출 수 있는게... 꺌꺌꺌꺌!”
[......]
“꺌꺌꺌, 그래서 어떻느냐? 네가 의도한 대로 잘 될 것 같으냐?”
[...솔직히 잘 모르겠다.]
스스로 자각 하지 못할 뿐 유세현은 권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며 사실 지금까지 많은 부담을 덜어온 상태였다.
처음에는 100의 생명으로 간신히 권능을 품었다면 지금은 55의 생명으로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마왕이 보기에 유세현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은 상태였다.
마지막, 딱 한 단계만 넘어선다면 마심원은 완벽히 녹아들어 유세현의 몸은 정상을 되찾을 터였다.
그리고 이게 바로 그가 유세현에게 폭언을 한 이유였다.
[놈은... 이성이 너무 강했다.]
마심원을 어떻게든 자신의 몸의 일부처럼 여기려 노력하고는 있었지만, 그 노력보다도 이성이 앞설 정도로.
“끌끌끌! 그래,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게로군.”
천마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천장에 어느새 뚫린 환한 빛 속에는 유세현이 보고 있는 시야가 비쳐 보이고 있었다.
“그럼 어디 한번 계속 지켜보자고. 제자 놈이 과연 넘어서는지 못 넘어서는지 말이야.”
[......]
루시뷀트는 천마를 따라 조용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태초의 정원(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