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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88화 (47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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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륵-

스르륵-

유세현이 손을 뻗어 풀더미를 옆으로 밀쳐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것도 아니건만.

‘제길,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혹시나 플란의 핵이 특수한 마력을 내뿜을지도 모른다 생각하여 마력의 흐름을 읽기 시작한지 어연 5분.

몸 상태가 빠르게 악화됨을 체감한 유세현은 발작이 찾아옴과 동시에 집중력을 풀었다.

“큭!”

“괜찮으세요? 세현씨?”

“...예, 괜찮습니다.”

“땀이 많이 나시는데...”

“집중을 풀었으니 곧 나아질 겁니다. 저는 정말 괜찮으니 저보단 팀원을 이끄는 것에 좀 더 신경 써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그러나 그런 유세현의 차분한 대답에도 루시펠의 걱정 어린 표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유세현의 권속.

자신에 힘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유세현은 모르고 있었지만, 유세현의 상태가 좋지 않은 현재 루시펠은 그의 상태가 완벽했을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던 것들을 여럿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본래 최상위 대리자로서 여타 팀의 팀장이 되었어야 될 루시펠이 이 팀에 배정받은 결정적인 이유였다.

[세현이를 부탁한다 루시펠. 쟨, 걸림돌이 되기 싫어하는 성격이니까... 아마 어떻게든 남들만큼 하기 위해 애를 쓸 거야. 잘 보필해 줘라.]

“......”

그녀가 느끼기에 유세현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강호가 했던 말마처럼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닌지.

그렇기에 무리를 하면 겪기 싫은 격통이 찾아 올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익숙해지기 위해 그는 일부러 스스로를 한계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루시펠은 유세현이 이마에 난 땀줄기를 훔치기 무섭게 곧장 팀원들에게 명령을 전파했다.

“여기서 일단 한 번 휴식 갖도록 하겠습니다.”

“...?!”

“예!”

쉬는 건 조금 이르지 않은가라고 순간 생각 한 팀원들이었지만 그들은 군말 없이 루시펠의 지시에 따랐다.

그것이 룰이었다.

파앗!

순식간에 산개하여 맡은 바 영역을 경계하는 팀원들.

유세현이 그럴 필요 없는데 왜 그랬냐는 표정으로 루시펠을 쳐다보자, 루시펠은 딱 한 마디 했다.

“이게 제 판단이에요.”

“...그렇습니까.”

유세현은 수긍했다.

루시펠에게 총 지휘권을 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다.

본래라면 팀장이 지니고 있어야 하는 권한이었지만 자신은 중요한 순간에 격통으로 인해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는...’

유세현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루시펠의 눈에는 굉장히 씁쓸해 보였으나 그녀는 그저 자리를 지킬 뿐 아무런 위로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건... 그가 대리자로서 극복해내야 할 일이었다.

* * *

보랏빛 지역.

무저갱 중심부의 근처.

수하에게 인간세력이 등장했다는 보고를 들은 블랙 드래곤로드 드라프나우어는 차분히 턱을 짚었다.

“흐음... 인간들이?”

“예.”

“그래서 어떻게 대처했지?”

“일단은 로드님께서 미리 지시해두셨던 대로 동포들을 뒤로 물렸습니다.”

“놈들은?”

“동포를 발견한 집단은 그 자리에서 진지를 구축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경계만 하고 있다는 건가...”

“예. 어떻게 할까요? 칠까요?”

수하의 물음에 드라프나우어가 엘라뉘스의 충고를 떠올렸다.

[드라프나우어, 만약 인간들을 발견하거든 조심해서 접근하길 바란다. 놈들은 결코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니.]

오만한 퀴르벨이 한 말이라면 보기 좋게 무시했을 터지만, 후대 로드로서 과거 어릴 적 엘라뉘스와 함께 생활한 적 있던 드라프나우어는 엘라뉘스의 성격을 아르펜 만큼이나 무척이나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엘라뉘스님은... 아니 엘라뉘스는 결코 헛된 말을 내뱉을 인물이 아니지.’

그래서 그런 명령을 내려놨던 것이고.

드라프나우어가 이내 서서히 입을 뗐다.

“아니, 감시만 하도록 해라. 놈들이 뭘 하는지 보는 족족 내게 보고할 수 있도록.”

“...로드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수하, 드레구스는 왠지 모르게 탐탁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신중하신 거 아니야? 아무리 7층까지 올라왔다지만 그래봤자 인간인데...’

드레구스가 퇴장하자 드라프나우어의 옆에 서 있던 최측근, 트랄바루체가 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드레구스는 로드님의 명이 맘에 안 드나 봅니다만?”

“그럴 만도 하지.”

“이렇게까지 신중할 필요가 있을까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나. 그리고 또...”

“걸리는 것이 있으신가 보군요.”

그 말에 드라프나우어의 눈이 일순간 번뜩 빛났다.

확실히 있었다.

“루체야.”

“예?”

“넌 여타 종족이 이곳에 떨어질 확률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 일곱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거니... 1/7 아닙니까?”

“보통이라면 그렇지. 하지만...”

[놈들은 내 부대 최심부에 침입한 이력이 있다.]

엘라뉘스가 구태여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거기까지 들었을 때 드라프나우어는 인간들의 목표가 무엇이었을지 대번에 예상이 갔다.

‘아이템.’

그렇지 않고서야 미쳤다고 용의 둥지에 머리를 들이밀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도출컨대.

‘놈들은 아래층에서 올라올 때부터 아이템의 대한 걸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엘라뉘스가 그 유적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힘겹게 얻었는지는 드라프나우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 맞았지만, 지금 드라프나우어에게 어떻게? 라는 건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결과.

결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1/7의 확률로 우연히 이곳으로 올라 왔다고 보기 보다는 알고 왔다고 보는 편이 옳다.’

드라프나우어가 손가락을 툭 튕기자 그의 앞으로 한 남성이 등장했다.

“플레아루스, 블루를 제외한 전 연합에게 전령을 보내라. 내용은 장애물의 등장, 성룡급의 지원을 요청한다고.”

“...로드님. 고작 인간들 따위 때문에 지원을 요청하는 건 체면이...”

“플레아루스.”

“...로드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슈슉-

플레아루스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드라프나우어가 트랄바루체를 향해 말했다.

“너도 내가 하는 행동이 별로 달갑지 않느냐? 종족의 체면을 깎는 것 같아서?”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로드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아닙니까.”

“......”

드라프나우어의 머릿속에서 과거의 기억이 거칠게 물결쳤다.

전대 로드 드라우프누스와 로드 후보였던 데프하우어.

드라프나우어는 그들을 잃음으로써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체면이나 겉치레 따윈 아무 쓰잘데 없다.’

과거 데프하우어의 딸 카실리아가 벨제뷔트에게 붙잡혔을 때 사실 그녀는 붙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전대 로드, 드라우프누스가 체면 때문에 블루드래곤들에게 증원을 청하지 않았기에 아슬아슬하게 붙잡힌 것이었다.

그 결과 데프하우어를 잃었고, 추후 드라우프누스도 죽음을 면치 못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 얼마나 웃긴 일이 아닐 수 있단 말인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하지 않아 그런 결과를 맞다니!

이용 가능한 것은 뭐든 이용한다.

이것이 그 사건 이후 생긴 드라프나우어의 행동 방침이었다.

“드라프나우어님, 방금 설치해둔 감시 트랩에 또 다른 인간이 걸렸습니다.”

“위치가?”

“이번에는 이 근처입니다.”

“흐음... 그래?”

“예. 다른 재료는 어느 정도 모았다 쳐도 플란의 핵은 꽃 자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만... 이건 위협을 하여 밀어낼까요?”

“흐음, 쳐놨던 감시 마법 네가 직접 친 감시 마법이냐?”

“예. 그러니 아마 눈치 채지 못했을 겁니다.”

“놈들의 수가 어떻게 되지?”

“약 50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흠... 50명이라... 그냥 놔둬.”

“예, 그럼 지금 당장 습격을... 예?”

트랄바루체가 무척이나 당황해하자 드라프나우어가 눈을 빛냈다.

“우리가 지금까지 못 찾는 걸 놈들이 찾을 수도 있지 않느냐.”

“그 말씀은...”

“어디 한번 내 가설이 맞나 틀리나 확인해 보자고. 만약 놈들이 그걸 찾아낸다면...”

드라프나우어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후후... 증원군은 언제쯤 도착하려나?”

* * *

찌릿-

유세현은 무엇인가가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기묘한 감각을 느끼기 무섭게 주위를 잽싸게 살폈다.

‘뭐지?’

그러나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현씨 왜 그러세요?”

‘......몸 상태 때문에 착각...한 건가?’

유세현은 고개를 휘휘 턴 뒤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수색이 재개되었다.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지치지 않는 스테미나를 이용해 거의 잠도 자지 않으며 무저갱 서쪽 주위 숲을 샅샅이 뒤진 그였지만 발견되는 것은 없었다.

나온 것이라고는 달갑지 않은 몬스터 정도?

그렇게 3일이 더 흘렀을 때였다.

“선배님!!”

그는 다른 팀과 조우할 수 있었다.

김주희의 팀이었다.

“운이 좋았어요! 근처에 떨어지다니!”

“그러게 정말 운이 좋았네.”

“지금 저와 만난 게 처음인거 맞죠?”

“응.”

유세현이 짧게 답하자 김주희가 히히히 소리를 내며 밝게 웃었다.

루시아보다 빨리 찾아낸 게 어지간히도 기쁜 모양이었다.

“김주희, 정보 공유 하자. 너흰 어디 쪽을 뒤지면서 왔어?”

“아, 제 팀은 말이죠.”

대화가 이어진다.

“저희는 이쪽을 쭉 지나쳐 왔어요. 딱히 특이한 점은 발견 된 게 없...”

김주희와 이야기를 나누는 유세현의 안색은 이 층에 올라오고 나서 제일 화사했다.

그의 표정을 확인한 루시펠은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역시 내가 아니라 김주희씨가 이 자리를 맡았어야 했어.’

자신이 김주희보다 유세현의 상태를 보다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곤 하나, 지금 그녀가 보기에 유세현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인 안정.

그리고 그녀가 느끼건대 그런 안정을 줄 수 있는 인물은 현재로선 단 3명뿐이었다.

유세현이 사적인 감정을 100% 터놓을 수 있는 인물들.

이강호, 김주희, 루시아.

신뢰와 사적인 감정은 다른 것이다.

이건 씁쓸하기 그지없으나 인정해야 될 부분이었다.

“아, 맞아. 그런데 선배님, 출출하지 않으세요?”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배고프면 싸울 힘도 없잖아요~ 이거 제가 직접 만든 건데 드셔보세요!”

김주희가 난데없이 불쑥 육포를 내밀었다.

유세현은 어이가 없어 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먹었다.

“어때요?”

김주희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유세현은 작게 실소를 내뱉으며 답했다.

“...맛있네.”

“히히, 정말요?”

“응. 네가 직접 만든 거라 더 맛있는 거 같아.”

“......”

순간 김주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다급히 손 부채지질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아... 아 그래서 뭐였죠?”

“뭐 단서 같은 거 발견 했냐고.”

“아, 아뇨, 전혀요.”

유세현의 물음에 김주희가 고개를 다급히 저었다.

플란의 핵.

다른 재료는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 전부 알고 있던 이강호였지만 플란의 핵만큼은 이강호조차도 획득 위치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것은 알지 못했다.

그 당시엔 뺏어서 얻었었기 때문.

이강호의 말에 따르자면 위치를 알아내는 것 만해도 천운이 따라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한다.

아무쪼록.

“흠... 그럼, 이 주위를 한 번 더 샅샅이 수색해 볼까요? 뭔가 놓친 게 있을 지도 모르니.”

“일단은 그렇게 할까?”

“예!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럼!”

김주희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도망치듯 풀숲 저편으로 달려갔다.

유세현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마냥 덧없이 실소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손부채질한 김주희였지만 그녀의 얼굴은 아직 목 뒤까지 붉게 물들어 있는 상태였다.

7층 무저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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