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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86화 (47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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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을 짚은 나르슈나가 고개를 살짝 들어 벨제뷔트를 쓱 쳐다봤다.

마치 말해줄지 말지 고민을 하는 듯한 묘한 느낌의 눈동자였다.

‘......’

벨제뷔트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나르슈나가 반응할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이럴 때 자극하는 것은 되려 역효과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차분히 기다리자 마침내 나르슈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니가 이걸 안다 해도 이제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말해줘도 상관없겠지.”

벨제뷔트의 눈빛이 번뜩였다.

‘역시... 뭔가가 있었군.’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말을 내뱉을 리 없을 테니까.

나르슈나는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쿠니아칸은 쿠룬의 수장인 리네리아의 친위대야.”

“친위대?”

“그래.”

“호오, 대단한 놈을 포획했군.”

벨제뷔트가 살짝 과장된 모습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상대방의 경계를 누그러뜨리기 위함이었지만, 그렇다 해서 거짓된 표현은 아니었다.

‘친위대를 잡았다는 건 쿠룬을 주력부대를 완전히 개박살 냈다는 뜻이니...’

의구심이 더욱 증폭된다.

어떻게 했기에 별 피해도 없이 놈들을 박살낼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또 수장은 어떻게 됐을까.

“......뭐, 그렇지. 아무튼간 쿠니아칸의 특징은 불이야. 왜인지는 모르지만 쿠니아칸은 전신에 화염을 두를 수 있어.”

“화염? 희귀한 능력이군. 고유특성일 가능성이 높겠어.”

“뭐, 그렇겠지.”

“후후후. 화염이라니... 동화시키면 꽤나 쓸만하겠군. 좋아! 좋아! 더 말해봐라.”

“그리고...”

나르슈나의 말꼬리가 일순간 늘어졌다.

그리고 튀어나오는 말.

“이게 끝이야. 가족 관계나 상관과의 관계 같은 건 전혀 몰라.”

“......”

벨제뷔트의 미간이 일순간 꿈틀거렸다.

“나르슈나. 거짓말치지 말아라. 이게 전부일 리가 없지 않냐.”

“믿기지 않겠지만 진짜야.”

“하아... 나르슈나. 나는 마왕님의 명으로 쿠니아칸을 작업하고 있는 거다. 네가 이렇게 행동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보고를...”

“야야. 말은 좀 끝까지 들어. 그런 거 아니니까.”

“아니긴.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야.”

나르슈나가 잔뜩 정색하여 벨제뷔트를 노려봤다.

‘......’

진심을 느낀 벨제뷔트는 잠시 한발 물러났다.

그러자 그녀가 지긋한 긴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하아... 벨제뷔트. 넌 지금 우리가 쿠니아칸을 계책을 써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나 본데 전혀 틀렸어.”

“...뭐?”

“쿠니아칸은 사실 포획한 것도 뭣도 아니야. 그냥 주운거야.”

그 말에 벨제뷔트의 표정에 의문이 생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웠다니? 친위대를?

그건 거의 존재할 수 없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나르슈나. 납득이 가도록 자세히 이야기 해봐라.”

“걱정 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 우리가 유적에 진입했을 때였어...”

마왕군이 막 제4 유적에 돌입했을 무렵, 그곳에는 서로 맞붙고 있던 세력이 있었다.

전사의 종족 쿠룬과 자연의 종족 샤크아크.

“놈들은 시나리오의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어. 우리 군세가 생각보다 너무 늦게 도착한 거지.”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마왕 쪽은 다른 곳에서 이미 증표를 하나 획득한 상태였으니까.

“우리는 그래서 일단 관망했어. 그 유적의 시나리오는 특수한 증표가 있어야지만 참가가 가능했는데, 쿠룬과 샤크아크가 미리 수작을 부려놔서 당장 모으기는 불가능이었거든.”

“머리 좀 썼군.”

“뭐, 그렇지. 아무쪼록 우리가 나타남으로써 막바지에 다다랐던 놈들은 우리의 눈치를 보느라 제동이 걸렸어.”

“그렇겠지. 마구잡이로 치고받아 피해가 커지면 신물 파편이고 자시고 우리 군의 먹잇감이 될 테니 말이야.”

벨제뷔트는 나르슈나의 말에 답하면서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만으로 보자면 딱히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던 탓이었다.

‘두 세력 다 마왕군을 주시하고 있었을 테니 정면으로 맞붙지는 않았을 테고 대체 이후 뭐가 어떻게 되기에...’

마왕군 측에서 쿠니아칸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어떻게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지?”

“두 세력이 부딪쳤어. 정면으로.”

“...?! 무슨 말도 안 되는... 방금 네가 말하지 않았나. 눈치를 보느라 제동이 걸렸다고. 그런데 두 세력 다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에야 그럴 수가 없지 않...”

“그런데 짜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나르슈나가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벨제뷔트는 그 행동에서 되레 농담이 아니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어라? 의외네? 이건 의심하지 않는 거야?”

“물론이다. 네가 이따위 말을 지어낼 머저리라곤 생각하지 않으니.”

“흐음...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지.”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이나 해봐라.”

“후, 알았어. 알았으니 재촉 좀 하지 마. 그런데 그전에 벨제뷔트 너 말이야 ‘알베타스’라는 것에 대해 알아?”

“...알베타스?”

벨제뷔트의 고개가 일순간 갸웃 꺾였다.

그로서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해봤던 명칭이었다.

“아니, 모른다. 뭐 어떤 종족인가? 아니 그보다도 그걸 왜 지금...”

벨제뷔트의 말이 뚝 끊겼다.

우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왜 지금 구태여 나르슈나가 알베타스에 대해 물어봤겠는가.

벨제뷔트의 표정을 본 나르슈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기하나 없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 맞아. 놈들... 아니, 놈이야. 샤크아크와 쿠룬을 파멸시킨 자가.”

* * *

제4 유적.

쿠궁!

쿠구구궁!

강력한 스킬에 의해 대기가 뒤흔들리고 지축이 요동치고 있는 통칭, 뒤틀린 숲의 내부.

감시 명령을 받아 두 세력을 지켜보고 있던 나르슈나의 눈앞으로는 샤크아크와 쿠룬의 군세가 격렬하게 치고받으며 싸우고 있었다.

전조현상 따윈 전혀 없었던, 너무도 갑작스러운 전투.

콰직!

콰광!“크악!”

무수히 많은 비명이 울려 퍼지고, 피가 숲을 붉게 물들인다.

상위 종족의 총 전면전은 군단장인 나르슈나를 섬뜩하게 만들 정도로 무척이나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젠장! 저놈들 왜 갑자기... 펠라스! 당장 레오릭님께 전령을 띄어라!”

“이미 출발 시켰습니다!”

휘이이잉!

전투의 여파가 수 km나 떨어져 있는 나르슈나의 진형에까지 몰아친다.

나르슈나는 수하들과 함께 잔뜩 굳은 얼굴로 그들의 혈투를 관망했다.

만약 이대로 계속 싸워 두 세력이 공멸해버릴 경우, 사실 좋은 것은 그들이었다.

어부지리로 신물파편을 획득할 수도 있는 것.

그러나 나르슈나는 그래도 놈들이 끝까지 가진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친 짓이니까.

생각이란 게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않는 이상, 어느 누가 돌았다고 전멸을 택하겠는가.

그러나 우습게도 전투는 멈추지 않았다.

“...전군, 돌격할 준비를 해라.”

나르슈나는 기회를 잡고자 했으나, 그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쿠구구구구!

“나르슈나님! 후방에서 대군이 돌격해오고 있습니다!”

처음 보는 형태의 군세였다.

3m가 넘는 거대한 키에 전신을 뒤덮고 있는 가시와 뒤로 길게 뻗은 괴상한 머리통.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에 붙어있는 손이 아닌 날카로운 날붙이.

[놈들을 감싸라.]

폭풍이 몰아치는 상공에서 나타난 거대 괴수가 명령을 내리자, 무지막지한 속도로 움직이던 괴물들은 마치 프로그램 된 기계마냥 순식간에 분산하여 마군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나르슈나는 순간 당황을 금치 못했다.

“펠라스... 저놈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냐. 왜 지금까지 파악하지 못했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자리 잡기 전 분명 이 일대를 싹 조사했습니다만...”

“......”

나르슈나는 어쩔 수 없이 진격을 포기하고 대응에 나섰다.

괴물들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약했다.

“이놈들... 마력이 없군. 스킬을 사용하지 못해.”

“스텟도 별거 아닙니다만...”

문제는 어마어마하기 짝이 없는 양이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

스킬을 난사할 경우 쉽게 처리가 가능할 테지만, 뒤에 뭐가 더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나르슈나나 다른 마족들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끌리는 사이 다른 장소에서 나타난 괴물들의 군세가 샤크아크와 쿠룬을 덮쳤다.

[알베타스님을 위하여!]

쿠구구구!

놈들이 하는 짓은 그야말로 개미떼 그 자체였다.

자신이 죽거나 말거나,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끊임없이 덤벼온다.

“이놈들... 지능이 없는 건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르슈나님. 솔직히 이정도 수준이라면 10만이든 100만이든 위협이 못됩니다만...”

“......”

나르슈나는 결정을 내렸다.

“뚫어라. 격전지로 향한다.”

쿠구구구!

촤악!-키애애액!

나르슈나와 군세는 달려오는 괴물을 사정없이 박살내며 진군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격전지.

“...저놈은 뭐지?”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쿠룬과 샤크아크의 시체 위로 거대한 6쌍의 날개를 지닌 인물이 두둥실 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여성체.

등을 돌리고 있던 놈이 몸을 움직여 나르슈나를 응시하자, 괴물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르슈나를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줄곧 주시하고 있던 나르슈나는 볼 수 있었다.

날개로 가려져 있는 놈의 등에 신물 파편의 증표가 박혀 있다는 것을.

“마족인가.”

그때 그렇게 말한 놈이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한번 손짓했다.

-캬아아악!

그러자 마치 신호라도 받은 마냥 괴물들이 일제히 돌격해왔다.

“......”

그녀의 군세는 곧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나르슈나는 덤벼든 괴물 한 마리의 머리통을 깨부수기 무섭게 곧장 자신의 부관, 펠라스에게 명령했다.

“저 놈을 붙잡는다.”

“해보시려는 겁니까?”

“이 정도 수준이면 충분히 가능하잖아?”

그녀가 그렇게 말한 찰나였다.

쿠구구구구!

콰아아아아아앙!

저편에서 어마어마한 고열의 레이저가 날아와 마군을 휩쓸었다.

[어딜 감히 여왕님께...]

마군은 마군답지 않게 당혹해했다.

방금 전 일격에 휩쓸린 건 마군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강한 마군은 건재하고 놈들의 수하 괴물만 죽었다.

아무리 버리는 패라지만 이렇게 취급하다니?

“이놈들 아무리 봐도 좀 이상해.”

“나르슈나님...”

“펠라스와 호위관 10명만 나를 따르고 나머지는 잔재 소탕에 전념해라!”

나르슈나를 포함한 그녀의 호위관들이 단번에 알베타스를 향해 도약했다. 무수히 많은 알비론들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딜...”

콰직-

힘의 차이는 극명.

그러나 안타깝게도 복병은 따로 있었다.

“어딜 가려고~”

알비론의 틈 사이에서 한 인물이 툭 튀어나왔다. 나르슈나와 호위관들의 눈이 순간 화등잔만 해졌다.

이 형태는...

“인간?”

“아쉽게도 지금은 아니야.”

쉬익-

남자가 검을 휘둘렀다. 호위관 한 명이 재빠르게 검을 들어 방어했으나 소용없었다.

서걱-

날 째로 잘려나간다.

호위관의 몸은 그대로 반토막이 나는 신세가 됐다.

호위관이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중얼거렸다.

“마... 말도 안돼... 어떻게 이 검을...”

“...!!”

나르슈나를 포함한 나머지 인원들이 잔뜩 경악하는 반면 호위관을 처리한 장본인, 에반은 눈을 더욱 살벌하게 빛냈다.

[대라무위신공]

[제 8식]

“마, 막지 말고 회피해라!”

후우우웅!

빛과 같은 속도로 검격이 나르슈나를 향해 날아왔다.

7층 무저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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