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73화 (45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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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

그는 지니고 있는 자체만으로 특수하다고 할 수 있는 고유특성 중에서도 특별하기 그지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자였다.

“!!”

쿠구궁!

지면에서 불쑥 융기된 반투명한 막이 일행 사이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른다.

막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눈 순식간에 증식해가며 개개인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강호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잽싸게 도약함과 동시에 지그시 혀를 찼다.

‘내심 이곳에 없길 바랐는데...’

이강호는 그대로 공중을 한 바퀴 돌며 순식간에 정황을 살폈다.

라플라스의 능력과 타개책을 미리 일러주었기에 동료들의 반응은 전혀 느리지 않았다.

문제는 집중 포화를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응을 해야 했던 터라 대응법을 알아도 즉시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는 것.

“큭! 젠장!”

콰앙!

제넥이 자신을 둘러싼 막을 부수기 위해 있는 힘껏 창을 내질렀다.

폭음이 일어날 정도의 위력.

허나 막은 부서지긴 커녕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제넥이 탑의 패널티를 받지 않는 최상의 상태인 것을 고려하자면 본래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은 라플라스가 지니고 있는 고유특성의 특별한 특수성 때문이었다.

특성명, 공간단절.

라플라스는 최대 10개의 정육면체의 막을 만들어 걸린 이를 단절시킬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보통 조건 같은 게 붙지 않는 일반적인 고유특성과는 다르게 놈의 능력은 조건이 붙는 대신 보통의 고유특성과는 남다른 힘을 발휘하는 게 가능했다.

“그 룰... 첫 번째.”

라플라스가 특성에 걸린 제넥과 태백무, 김주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희는 앞으로 그곳에 정확히 20분간 격리 된다.”

“......”

“룰 두 번째, 만약 20분이 지나기 전에 벗어나기를 희망한다면 나를 그곳으로 소환해 쓰러뜨리면 된다. 너희는 나를 소환할 자격을 지니고 있고, 너희가 원한다면 나는 그것에 무조건적으로 응해야 된다.”

룰.

라플라스는 특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인 본인이 룰을 확실하게 지켜야만 했다.

지금 그가 설명하고 있는 이유도 설명이 룰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

“맞붙는 것은 기본적으로 1:1이지만 만약 너희가 원한다면 너희의 수에 맞춰 단체전도 가능하다.”

라플라스가 떠들고 있는 와중 제넥과 태백무, 김주희가 일순간 일행을 응시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행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먼저 가라.]

“쯧.”

날아오는 화염구를 회피한 이강호는 입맛을 다시며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라플라스의 고유특성은 이강호가 생각하기에 귀찮기 그지없는 능력 중 베스트 10순위 안에 드는 능력이었다.

걸리면 놈을 쓰러뜨릴 때까지 말 그대로 그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니까.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의 김주희와 제넥은 드래곤에게 당하지 않을 만큼 강하다는 것과 이곳이 놈들이 준비한 전장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강호는 과거 직접 본 적이 있었다.

라플라스, 놈의 특성에 걸린 동료가 얼마나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는지.

‘제넥...’

20분이라는 시간의 격리는 아군을 불러 모아 배치시키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격리에서 해방되는 순간 일제공격을 당해 그 흔한 발악도 하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아무쪼록 제넥과 김주희가 이곳에 발을 묶이게 된 건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김주희는 방어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기에 진군속도는 다소 느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유리한 건 우리다.’

그만큼 패널티를 해제한 것과 그러지 못한 것은 그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후...”

이강호가 추격자들과 함께 시야에서 사라지자 제넥이 숨을 크게 한 번 들이 쉰 뒤에 라플라스를 응시했다.

라플라스는 때마침 룰 설명을 끝낸 상태였다.

“여기까지가 내 특성의 룰이다. 어떻게 할 테냐. 선택은 너희의 몫이다.”

“뭐? 선택은 우리의 몫?”

반문하는 제넥의 눈동자에는 화가 잔뜩 서려있었다.

‘젠장... 타개책을 미리 언질 받았음에도 걸리다니...’

제넥은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쪽팔림이 치솟아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재수 없게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 김주희도 걸렸다는 점에서 제넥이 그런 감정을 느낄 필요는 없었지만, 그는 자존심이 굉장히 높은 인물이었다.

제넥이 김주희를 향해 말했다.

“김주희씨 1:1로 놈과 붙어 쓰러뜨리고 싶습니다만...”

“예? 2:2로 붙는 편이 나을 텐...”

“5분... 5분 안에 반드시 끝내겠습니다.”

제넥의 호언장담에 김주희가 머리를 긁적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세현과 줄곧 함께 해온 김주희로서는 가끔 제넥의 저런 돌발적인 부분이 별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2:2로 싸운다면 훨씬 유리할 뿐만 아니라 더 빨리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뭔 자존심을 내세운단 말인가.

‘하지만 확고해 보이네... 후... 별로 마음엔 들진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왈가왈부 떠들 시간에 차라리 빨리 진행하는 게 나으리라 판단한 김주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넥은 대번에 라플라스를 향해 손짓했다.

“내려와라.”

“크큭.”

라플라스는 그런 그를 비웃듯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지금 뿐이다. 5분도 필요 없다. 3분 안에 처리해 주마.”

“크크크크. 가능하다면... 한 번 해보...”

파앗-

말을 채 다할 새도 없이 라플라스와 제넥이 격돌했다.

* * *

루시아는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새카만 어둠 속을 계속해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영혼이 이정표가 되어 길을 밝혀주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스스로가 걷고 있는지조차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어둠이었다.

친숙하면서도 한편으론 낯선 감각이 반복되며 코끝을 간지럽힌다.

‘대체 얼마나 걸어야 끝이 나는 걸까.’

그녀가 느끼기엔 몇날 며칠은 계속 걸은 느낌이었다.

“......”

얼마의 시간이 더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는 뛰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도하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설마... 함정에 빠뜨린 건가?’

루시아는 그런 의구심까지 들었다.

재해가 도와준다 하긴 했지만 진심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도는 그녀에게 없으니까.

루시아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만약 이대로 영영 계속 이렇게 반복되기만 한다면?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아...”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사고를 감싸기 시작한다.

‘아니야 정신 차리자.’

루시아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의 뺨을 툭툭 쳤다.

그리고 길을 밝혀주는 망령이 있을 장소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

망령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 * *

[길을 잃었군.]

“예? 그게 무슨 말씀...”

[말 그대로다. 그녀가 길을 이탈했다.]

그림자의 말에 대리자들의 표정이 꿋꿋이 굳었다.

육체가 온전한 것과는 별개로 정신이 파괴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걸 지금까지 많은 경험을 한 대리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다가온 스토크가 물었다.

[말이 짧구나. 미천한 버러지가.]

그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그림자가 스토크를 향해 적의를 내비쳤다.

스토크를 포함한 대리자들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흠...]

그러나 그림자가 스토크를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그림자는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재차 입 열어 말했다.

[아마도 한눈을 판 것 같다. 이젠 그녀하기 나름이다.]

“...여기선 손쓸 방도가 없다는 거... 겁니까?”

[그렇다. 없다.]

“......”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다 못해 꽁꽁 얼어붙었다. 그림자가 함정에 빠뜨린 거 아닌가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입을 잘못 놀릴시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뻔했기에 따지고 들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와중 그림자가 대뜸 몸을 돌렸다.

“잠깐! 어디 가...시는 거죠?”

[본체가 공격받고 있다. 사실 좀 되었지.]

“예?”

[이제 나는 여기까지라는 거다. 놈들은 강하다. 난 패배하게 되겠지.]

“...노, 놈들이 누구길래...”

[너희들이 드래곤이라 부르는 족속이다.]

드래곤.

그 한 마디에 안 그래도 얼어붙어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무튼 난 이만 가보겠다.]

“......”

[아, 그리고 마지막이니 일러주는 거다만 앞으로 10분 넘게 깨어나지 않으면 그 여자는 포기하는 편이 좋을 거다.]

스르륵.

그림자가 어둠에 녹아 완전히 사라졌다.

스토크는 그가 가기 무섭게 자신의 단단한 돌 이마를 싸맸다.

“어떡하죠? 스토크님? 이 앞에 정말 드래곤이 있다면 지금의 저희로는 승산이...”

“지금까지 온 길로 보건대 외길은 아닐 테니 운이 좋다면 마주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당최 길을 찾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닙니까.”

“...인간 분들은... 뭐 의견 있으십니까?”

스토르 벤들이 물었으나, 사람들이 의견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그 재해가 말하길 10분이라고 했죠? 일단은 기다려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금은 그게 최선이겠군요.”

그들의 입에서 긴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 * *

“세현아 어느 정도 남았어?”

“거의 다 왔어!”

어두운 통로를 통과하자 공명하는 마력들이 유세현의 피부에 와 닿았다.

유세현은 그 마력의 흐름에서 의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막을 수 있다.’

유세현은 좀 더 속도를 내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바로 그때였다.

슈우웅!

후방이 아닌 전방, 상공 300m의 위에서 검은 불길이 뒤덮인 운석들이 낙하해 일행을 덮쳤다.

마지막 방어라인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발현한 마법이었다.

“이 정도쯤이야...”

눈을 번뜩 빛낸 이강호의 창이 풍차처럼 회전했다.

트드드드특!

운석은 순식간에 잘게 바스러져 지면에 흩뿌려졌다.

후우웅!

이번엔 자신의 차례라는 듯 이강호의 창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그걸 본 레드드래곤들은 동공이 대번에 확장됐다.

“...과연...”

파앗!

쿠구구구구구!

불꽃과 불꽃이 격돌했다.

처음에는 막상막하인 것처럼 보였으나...

“훗.”

이강호의 비릿한 실소와 함께 주홍빛의 불꽃, 신의 불꽃이 드래곤들이 만든 불꽃을 잡아먹으며 그들을 향해 휘몰아쳤다.

“큭!”

그로인해 발생된 틈.

유세현과 레피아, 아퀼라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산개하여 질주해 나갔다.

지금까진 먼 길을 가야하여 집결하여 뚫었으나, 이곳은 딱 봐도 적의 마지막 방어선.

한 명이라도 통과하여 방해하면 목표는 달성하는 것이었다.

패널티의 격차는 월등히 크기에 목적을 이룬 뒤에 다시 뭉쳐서 싸우면 패배하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래곤들도 그것을 알기에 더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막아! 절대로 보내면 안 된다!”

“렉카! 트레스트! 너희 둘은 본체화를 해서 브레스를 사용해라! 놈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엄호하겠다!”

후웁!

크라라라라!!

지면을 녹여버릴 정도의 고열의 브레스가 일행을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에 명중당하는 일은 없었다.

환영 속에 숨어있던 아퀼라가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와 검을 휘두르자, 타겟이 된 레드드래곤이 사색이 되어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큭! 무슨! 내가 간파하기 힘들 정도의 환영술이라니!”

“흥! 넌 나한테 안돼! 그러니 좀 비켜주지 않을래?”

“이... 이 년이...”

수모를 당한 레드드래곤 케리우스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지만 그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너무 빠르다...!!’

‘역시 놈들은 패널티를 해제한 상태가 분명하다.’

푸쉿!

콰과과광!

수많은 폭발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며 흙먼지가 일었다.

유세현은 눈을 번뜩 빛냈다.

‘기회다.’

천마군림보를 극한으로 운용하여 단번에 돌파한다. 그가 상공을 밟은 찰나였다.

크롸롸롸롸!

녹빛의, 독액이 거세게 그의 머리로 쏟아졌다.

무공 창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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