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72화 (458/612)

-------------- 466/606 --------------

“그렇지 뭐.”

만약 잠입이 가능했다면 일을 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겠지만, 자리 잡고 있는 드래곤에게 발각당하지 않는다는 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

이에 지금까지 은밀하게 움직여왔던 일행은 대놓고 기세를 드러내며 질주를 시작했다.

쿠우웅!

바람이 폭풍이 되어 몰아친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

얼마나 빠르게 적의 의표를 찌르냐가 승부를 좌우할 터다.

“...?!”

드래곤들은 예측대로 즉각 반응했다.

“......”

그러나 그것이 전부, 그들은 예상보다는 훨씬 늦게 대응해왔다.

“마, 말도 안 된다.”

“그곳은 레쿠리우와 라이시리아가 있던 장소... 그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뚫리다니?!”

많은 드래곤들이 당황을 내비쳤다.

그 시간은 고작 5초 정도에 불과했지만, 최정상 대리자에게 5초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시간이었다.

“이놈들 대응이 느린데?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했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나 보군.”

“저... 전부 파악이 가능하신 겁니까?”

다시 한 번 경외를 내비치는 태백무를 뒤로하고 이강호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병력이 그렇게 많지 않은 상황에서 몬스터 토벌로 인해 분산까지 되어 있어선지 생각보다 더 방어진이 허술하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쉽게 일이 끝나겠어.’

지잉!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양 측에서 나타난 드래곤 두 마리가 검은 불꽃을 날려 왔다.

마법명, 헬 파이어.

상당한 마력을 머금어 적중 당하게 된다면 꽤나 큰 타격을 입을 터지만, 일행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산개하며 그것을 회피했다.

“...!!”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반격.

“헉!”

유세현과 이강호를 필두로 하여 순간적으로 나뉜 두 팀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접근해오자 두 드래곤의 낯빛은 대번에 사색이 되었다.

‘빠, 빠르다!’

슈슉!

유세현의 검이 잔상을 베며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가른다.

만약 드래곤이 블링크로 공간을 도약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목을 내주었을 터였다.

드래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마, 말도 안 된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이 정도의 속도를...”

“말 돼. 임마.”

“!!”

그러나 그 자리에는 이미 이 상황을 예측하여 한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김주희가 어느새 다다라 있었다.

후웅!

빡!

머리를 노린 김주희의 창대가 다급히 가드를 올린 드래곤의 팔목을 후려쳤다.

“크악!”

가격당한 드래곤은 인상이 구겨지다 못해 심각히 일그러졌다.

에픽 방어구와 높은 물리저항력 수치 덕택에 어마어마하게 데미지 감소가 이뤄졌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팔이 부러진 것만 같은 충격이었다.

‘비, 빌어먹을!! 뭔 놈의 파괴력이...’

그 순간 두 드래곤, 레온와 레이무크는 깨달았다.

레쿠리우와 라이시리아가 어떻게 당한 것인지.

‘레... 레쿠리우는 기습 때문에 당한 게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압도적인 힘에 찍어 눌렸다.

‘젠장! 말도 안돼... 탑의 영향을 받는 이상 절대로 이런 힘을 낼 수 있을 리가 없을 텐... 서, 설마?’

쿵!

“크아악!”

또다시 공격이 쇄도해왔다

레온은 순간 소름이 끼쳐 더는 그 무엇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다... 당한다! 버, 벗어나야 해!’

그는 허겁지겁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그 순간 흙먼지 속에서 유세현이 튀어나왔다.

슉!

파앙!

“크악!”

검격과 함께 발길질이 날아온다.

뻐억-

쿠구구구구!

그것을 정통으로 맞은 레온은 그대로 바닥을 휩쓸며 데굴데굴 수십 미터를 날아가는 굴욕을 맛봐야만 했다.

그리고 채 태세를 정비할 새도 없이 레피아의 단검이 치고 들어왔다.

‘브... 블링크!!’

레온은 뒤는 생각하지 않고 모든 마력을 블링크에 퍼부었다.

“허억... 허억...”

출혈로 인해 발생한 철 내음이 코를 찌른다.

불과 2분전까지만 해도 정상이었던 레온이었지만 한차례 공격을 쳐맞은 그는 현재 피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도... 도망쳐야...’

레온은 동료도 뒤로한 채 다급히 몸을 돌렸다.

덜덜덜...

두렵다.

잘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다리가 미친 듯이 떨려온다.

레온은 그것을 깨닫고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내, 내가 지금 떨고 있는 건가? 만물의 포식자인 내가?’

그리고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생각이었다.

슈욱!

서걱!

“후우... 엘프나 드래곤이나... 마법 종족은 이게 싫다니까요. 공간이 꼬여있어 쓰기 쉽지 않을 텐데 용케 사용하네요.”

“아마도 특수한 마법으로 좌표를 미리 확정해놓은 거겠지.”

“아...”

귓가를 울리는 여러 목소리와 함께 레온의 세상이 회전했다.

* * *

레온과 더불어 레이무크까지 당하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인지 레드드래곤들은 집단을 이룬 뒤에야 일행을 막아섰다.

그 수가 무려 열다섯.

“어떻게 할까 강호야.”

“돌파하자.”

유세현의 물음에 이강호가 생각할 것조차 없다는 듯 답했다.

드래곤들이 주는 코인은 분명 무척이나 짭짤했지만, 중요한 것은 메인 디쉬, 후식은 아무리 달콤해도 후식에 불과하다.

“태백무, 잘 따라와라. 놓치면... 아마 죽게 될 거다.”

“존명! 마존께 폐를 끼치지 않도록 사력을 다하겠습니다!”

유세현과 김주희가 선두에 나란히 자리를 잡자 나머지 사람들이 그 뒤로 정렬했다.

드래곤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의도를 깨치지 못했다.

“뭐하는 거지? 저놈들?”

그들에게 있어서 저런 형태의 진형은 그저 집중포화를 맞기 딱 좋은 진형에 불과했다.

“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세현이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발을 뗐다.

쿠구구구!

음속을 아늑히 뛰어넘는 속도로 드래곤을 향해 쇄도하는 7인.

“온다!”

“공격해!”

드래곤들은 각자 특기 마법을 사용하며 곧장 대응을 시작했다.

“불에 타 죽어라! 헬 스크림 오브젝트!”

“스플래쉬 파이어!”

무수히 많은 종족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화염계 마법이 눈앞에 드리웠다.

“후우...”

그러나 일행의 눈빛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법이 코끝까지 다가오자 유세현과 김주희가 기다렸다는 듯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천마반탄기.’

후웅!

검에 적중한 무수히 많은 마법이 휘둘러진 궤적을 따라 되돌아가고.

‘빙쇄옥.’

방패처럼 생성된 거대한 얼음구체에 막힌다.

그리고 이어서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마치 잔반을 처리하듯 최소한의 동작으로 약화된 마법을 쳐내자 드래곤들은 그 능력과 협동심에 내심 경탄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렇게 깔끔히?’

‘엄청난 협동심이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야. 아니 그보다도 헬 스크림을 저 따위 얼음 구체로 막아내다니...’

‘저 빙계마법... 단순한 빙계마법이 아니다...’

‘과연 저 속도... 레온이 순식간에 당한 것도 이해가 가는군.’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찰나의 순간 뿐.

“이것도 막아봐라!”

질세라 후속타가 쏟아졌다.

일행은 그것을 전부 방어해냈다.

“큭! 견고하군!”

마침내 일행이 근처에 다다르자 자연스레 공격을 예상한 드래곤들이 일단 한번 서있던 자리를 떴다.

슝!

그러나 그것으로 끝.

일행은 그들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닌 그대로 저편으로 사라졌다.

“무슨...”

머릿속으로 여러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던 드래곤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무시라니?

뿌득-

“쫓아!”

분노 섞인 한 드래곤의 고성과 함께 추격이 개시되었다.

* * *

쿠우웅!

전투의 여파로 인해 동굴의 외벽이 연이어 거칠게 흔들렸다.

이에 카실리아는 불안한 눈빛으로 데프하우어가 잠들어 있을 신전을 응시했다.

‘점점 흔들림이 커지고 있어.’

행여나 이 흔들림이 추후 데프하우어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안되겠어.’

뭔가 잘못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카실리아는 곧장 세레나에게 다가갔다.

“세레나님. 이 흔들림은 대체...”

“적이 쳐들어 왔단다.”

“적... 말입니까?”

그 말에 카실리아의 눈빛이 일순간 흔들렸다.

몬스터가 아니고 적이라니?

세레나는 그런 카실리아의 눈빛을 쓱 관찰하기 무섭게 침착하게 이어 말했다.

“그래. 적... 어떤 종족인지는 아직 모르겠다만 보통 강한 자들이 아니다.”

“얼마나 강하길래...”

“레쿠리우와 라이시리아, 레온과 레이무크가 당했다.”

“예?”

카실리아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그들이 누구인가?

드래곤 중에서도 상위의 존재들이 아닌가?

게다가 흔들림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렇다는 건 순식간에 당했다는 소리인데...

“말도 안돼...”

그런 말이 튀어나오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세레나님께선 질 나쁜 농담을 하실 분이 절대 아닌데...’

“세레나님...”

“잠깐, 놈들의 정체를 알아냈다.”

“예? 누구...”

“인간이다.”

“...?!”

세레나의 말에 카실리아의 동공이 순간 지진을 일으켰다.

인간?

인간이라니?

그들은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를 텐...

‘서... 설마? 추적당한건가? 나 때문에?’

나중에 이곳에 들어온 인원은 세레나와 카실리아, 그리고 데프하우어 뿐.

그렇기에 걸릴 게 있다면 상태가 좋지 않아 자의로 기척을 숨기지 못하는 데프하우어뿐이었다.

‘이런 망할...’

카실리아는 즉시 고개 숙여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아니야. 아니야. 아직 그거 때문이라 확실하게 정해진 건 아니란다. 게다가 그렇다 해도 내가 도와주겠다 해서 일어난 일이잖니. 그러니 네가 그렇게 고갤 숙일 필요는 없단다.”

“하지만...”

“정말 괜찮아.”

세레나가 카실리아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자 카실리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레나님 저도 돕고 싶습니다. 가서 싸우겠습니다.”

“아니다. 네가 굳이 그럴 필요는...”

“저 때문에 일어났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니, 그것을 제쳐두고서라도 제 아버님을 살려주신 세레나님의 힘이 되고 싶습니다.”

“흠...”

이에 세레나는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카실리아의 안위를 걱정하듯.

“세레나님... 제발 허락해 주십시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고맙구나.”

결국 마지못한 얼굴로 세레나가 허락했다.

카실리아는 사건 현장으로 떠나기 위해 곧장 등을 돌렸다.

“아, 잠깐만...”

그런 카실리아를 세레나가 잠시 붙잡았다.

“이걸 가져가렴.”

세레나가 모종의 물품을 카실리아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세레나님... 이건...”

물품의 정보를 읽고 매우 당황스러워 하는 카실리아.

“후훗...”

세레나는 그저 포근한 미소로 화답했다.

* * *

콰앙!

퍼버벙!

한발 한발, 핵폭탄의 위력 따윈 가뿐히 뛰어넘는 마법들이 비처럼 일행에게 쏟아졌다.

“젠장!”

그러나 여유가 없는 쪽은 일행이 아닌 드래곤 쪽이었다.

“저놈들... 분명 우리의 계획을 알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침입자들은 마치 지리를 꿰고 있기라도 한듯 계속해서 최심부를 향해 최단거리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리 머지않아 다다르게 되는 것!

슈슉-

“쓸모없는 놈들 같으니.”

그때 한 드래곤이 일행의 머리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강호는 그 드래곤의 모습을 확인하기 무섭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라플라스다!”

무공 창시(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