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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펑!
퍼퍼펑!
[크윽.]
처음 기습과 딱히 다른 공격방식도 아니건만 우습게도 데프하우어는 이번의 공격은 완벽하게 방어해내지 못했다.
구사일생한 에르비아크가 잔뜩 환색하며 목소리의 주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카실리아!]
리뷔크 젠 카실리아.
과거 리뷔크 젠 데프하우어가 스스로를 버려가면서까지 지킨 그의 딸.
[뭐하고 있어? 공격해! 에르비아크!]
[아... 카실리아...]
데프하우어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에르비아크가 그녀의 말마 따라 재차 공격을 시도하며 물었다.
[카실리아,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
[그럼 왜 이곳으로 왔나. 엘라뉘스님 쪽으로 가야...]
[만약 그랬다면 넌 지금쯤 죽어있었겠지. 바로 저자에게.]
[......]
슈슈슈!
펑! 펑! 펑!
마법이 맞부딪치며 발생한 충격파가 천재지변 급으로 주위를 뒤흔들었다.
카실리아가 데프하우어를 향해 날아들며 에르비아크를 향해 마지막으로 말했다.
[안심해라 에르비아크. 엘라뉘스님쪽으론 그 두 놈들이 갔으니까.]
두 놈.
에르비아크의 인상이 미약하게나마 펴졌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그러니 전투에 집중해라. 놈을... 이곳에서 없앤다!]
카실리아는 살기, 그 이상의 적의를 내뿜으며 데프하우어를 향해 몰아쳤다. 데프하우어는 그 답지 않게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평소였다면 방어한 뒤 곧바로 틈을 노려 가했을 반격을 취하지 않았다.
[카실리아...]
[그 얼굴로... 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지마아아아!!]
피잉!
파바방!
카실리아가 생성한 수많은 불의 창이 데프하우어를 향해 사방에서 쏟아졌다.
데프하우어가 잽싸게 수직으로 활강하여 회피했지만 그 이동경로에는 이를 예측한 에르비아크가 만들어둔 마법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
파앗!
트드득!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발생할 수 없는 냉기가 뿜어져 나오자 데프하우어는 마력의 소모를 감수하고 블링크를 탈 수밖에 없었다.
50m 밖으로 이동한 데프하우어가 순간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으...]
뇌를 쥐어짜는 듯한, 강렬한 두통이 머리를 뒤흔든다.
정신계 마법으로 이해 발생한 두통이 아니었다.
[카, 카실리아...]
상반된 의견이 그의 머릿속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귀찮은 블랙드래곤을 죽이라는 의견과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으으으! 으아아악!]
데프하우어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벨제뷔트에게 완전히 동화된 그는 본디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이상 현상은 곧장 벨제뷔트에게도 전달되었다.
‘뭐, 뭐지? 데프하우어와 연결되어있는 끈이 요동치고 있다.’
[크아아아아!]
이윽고 폭주하듯 데프하우어가 울부짖었다.
[카실리아아아아!]
쩌저적-
그의 입이 쫙 벌어졌다.
[응?]
그건 누가 봐도 브레스를 사용하기 전의 사전 동작이었다.
[큭! 미친 건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카실리아의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블랙드래곤인 데프하우어의 브레스는 같은 블랙드래곤이 카실리아에겐 그리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드디어! 드디어! 아버님의 육체를 놈의 손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카실리아가 외쳤다.
[에르비아크! 저건 내가 막아줄 테니 네가 일격을 가해라!]
[알았다!]
에르비아크와 카실리아가 곧장 양측으로 갈라져 포위하듯 날아들었다.
이윽고 데프하우어가 입김을 내뿜은 순간이었다.
[...?!]
[피해라!]
그건 일반적인 녹빛을 띄는 브레스가 아니었다.
한없이 새까맣기 그지없는, 오랜 시간을 살아온 에르비아크나 카실리아로서도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브레스.
콰과과과과!
[읏!]
그건 드래곤의 힘과 마기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힘이었다.
카실리아가 순식간에 수십 겹의 배리어를 만들었지만, 배리어는 마치 없었던 것 마냥 순식간에 부식되며 사라졌다.
‘말도 안돼, 어떻게 브레스의 종류가 바뀔 수가...’
브레스안에 내재되어있는 강대한 힘을 느낀 카실리아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슈슈슈-
브레스는 그녀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딱 그녀의 바로 앞에서 그쳤다.
[카실리아!]
깜작 놀란 에르비아크가 데프하우어와 카실리아 사이를 가르며 그녀의 곁으로 돌아왔다.
카실리아는 그저 눈을 끔뻑였다.
방금 전은 분명히 자신을 처리할 수 있었던 절호의 찬스였을 터인데...
‘왜...’
정신을 차린 그녀가 데프하우어가 있던 장소를 재차 주시했을 때쯤에는 눈앞에 있던 데프하우어는 어느새 자취를 감춘 뒤였다.
에르비아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봐준... 건가?]
[......]
[카실리아, 아까전의 그 이상한 행동도 그렇고 어쩌면 데프하우어님은...]
[... 엘라뉘스님께 향하자.]
카실리아가 애써 얼버무리며 몸을 돌렸지만, 그녀도 내심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정말로 아버님을?’
정말로 잘만 한다면 데프하우어를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닌지.
* * *
“으윽... 윽...”
자리를 이탈하여 인간 형태로 폴리모프한 데프하우어의 육신이 일순간 비틀거렸다.
머리통을 깨부수고 싶을 정도였던 두통은 조금 가라앉은 상태였지만 그는 아직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후우... 후...”
한편으로는 벨제뷔트의 모습이, 또 한편으로는 카실리아의 모습이 계속 교차하며 떠오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데프하우어는 가슴 한편이 욱신거렸다.
결국 그는 모든 걸 잊기 위해서라도 본분에 충실하기로 했다.
“벨제뷔트님께 가야한다.”
데프아우어의 몸이 마치 상처 입은 늑대처럼 고독히 움직였다.
* * *
쫓고 쫓기는 도그파이트가 펼쳐지고 있는 전장.
[엘라뉘스님을 지켜라!]
드래곤들의 고서클 마법과 마족, 그리고 블러드소울의 스킬들이 난무하는 그곳은 지옥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캬아아아악!]
그 듣기 힘들다던 드래곤의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공포의 화신이라 불리는 마족들의 절규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코끝까지 접근해 왔었던 엘프와 델바람이 더 이상 추격 해오지 않는 것은 드래곤들에게 있어선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안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도 목적을 지니고 왔을 터... 그냥 순순히 물러갈 리가 없다.’
엘라뉘스는 그래서 최대한 힘을 보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허나.
“그만 좀 튀어라!”
후웅!
크라베스가 날린 거대한 망령이 쫙 찢어진 날카로운 입을 쫙 벌린 채 엘라뉘스를 향해 쇄도했다.
[어딜 감히!]
그것을 막기 위해 그린 드래곤 한 마리가 재빠르게 마법을 사용했지만...
“렘벨크!”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렘벨크가 검날처럼 된 검은 입자를 날려 상쇄시키자 그린드래곤은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5서클의 마법이라지만 내가 시전한 마법을 저리도 쉽게 방어하다니...’
렘벨크와 이브를 포함해 크라베스를 따르는 수많은 추종자들.
그리고 벨제뷔트를 따르는 마군들.
사방에서 치고 들어오는 적을 막으며 진즉 피해를 많이 입은 드래곤들은 점점 따라잡히고 있었다.
1분가량이 더 지났을 때였다.
[전군. 브레스를 발사하라.]
구름위에서 대뜸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 편대가 동시에 입을 쫙 벌렸다.
“?!”
콰아아아!
연옥을 연상케 하는 화염이 두 종족을 덮친다.
레드드래곤, 카스디아가 이끄는 드래곤 부대였다.
[카스디아님!]
고전하고 있던 그린 드래곤들은 대번에 환색했고, 반대로 두 종족들은 인상을 구겼다.
“큭, 파견되어있던 레드드래곤 부대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우측 구름에서 나타난 또 다른 드래곤 편대가 브레스를 사용한 것이다.
쉬쉬쉬!!
당장이라도 세상이 얼어붙을 듯한 한기.
[제루웬 베루님까지!]
블루드래곤 제루웬 베루가 이끄는 편대가 휩쓸고 지나가자 마족들이 치를 떨었다.
불과 얼음.
언뜻 보면 서로에게 있어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상극의 상성이었지만 그건 사용하기 나름이었다.
고열로 가열된 철을 차가운 물에 집어넣어 급랭 식히면 형태가 뒤틀리듯, 급격한 온도변화는 대리자들의 육체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죽지는 않을지언정 큰 체력적 손실을 발생하게 만드는 것.
‘하지만...’
벨제뷔트와 크라베스가 눈동자를 번뜩 빛냈다.
‘그럼에도 유리한 건 나다!’
그들이 모종의 행동을 취한 순간이었다.
쿠구구구!
콰아아아앙!
우측과 좌측에서 거의 동시에 거센 칼날 폭풍이 몰아쳤다.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벨제뷔트님.”
좌측에서 등장한 건 마족이었다.
본래라면 이곳 말고 동쪽에 위치해 있어야 될 존재들.
아크샤, 파라간, 그리고 그 휘하 정예들.
그들은 마지막까지 인간을 뒤쫓지 않았다.
일정 시간이 흐름에도 인간진형에서 목표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곳으로 오라는 명을 사전에 통보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모습을 보여줘 다른 종족을 교란시키는 건 덤.
동시에 동쪽에서도 거구를 지닌 이들이 소수 모습을 드러냈다.
“크라베스, 너무 빨리 부른 거 아닌가?”
하지만 마족과 달리 그들은 크라베스와 동족이 아니었다.
붉은 크라베스의 피부색과는 대조적인 푸르스름한 피부색.
“흥! 패는 쓸 수 있을 때 써야 되는 법이지. 카그네프.”
이 말에서 벨제뷔트는 크라베스와 카그네프가 맹약을 맺었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이런... 앙숙 같은 두 놈들이 맹약을 맺을 줄이야...’
물론 벨제뷔트도 델바람을 아예 고려하고 있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이곳까지 와서 그냥 빠지는 건 수지타산에 맞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델바람이나 엘프가 모종의 수를 쓸 수 있으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게이트가 등장함으로써 뭐가 되었든 늦게 움직이며 말짱 도루묵이었기에 괜찮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라 크라베스의 수하들 속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니...’
맹약 내용은 대충 어림짐작이 되었다.
‘이곳에서 만큼은, 혹은 이 층에서 만큼은 절대로 적대하지 않는다... 뭐 이런 거겠지.’
벨제뷔트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이렇게 되면 벨제뷔트 쪽이 되레 열세였다.
‘하지만...’
벨제뷔트도 이제와 그만 둘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삼파전.
‘만약 엘프가 끼어들지만 않는다면...’
드래곤을 잘만 이용하면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만약 엘프도 델바람처럼 숨어있는 거라면... 아니 그놈들은 숨겨주는 이가 없으니 그럴 확률은...’
으드득-
벨제뷔트의 손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짚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하기에는 선택지가 없을 뿐더러,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그때 크라베스가 카그네프에게 물었다.
“엘프놈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둘의 대화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그 이후는 알아서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제일 옳다는 것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야 되지 않겠나 크라베스?”
“물론이지.”
퍼엉!
마치 폭발하듯 뛰어오른 카그네프가 가장 가까이 있던 그린드래곤의 등짝을 그대로 발등으로 후려쳤다.
[캬아아아!]
보통이라면 마법을 사용해서라도 막았겠지만, 끊임없이 싸워온 대다수의 드래곤들은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그렇게 2분.
[엘라뉘스님!]
저편에서 날아온 카실리아와 에르비아크가 전장에 합류했다.
진리의 반지(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