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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48화 (43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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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은 도마뱀 놈들...”

“커, 컥! 네, 네놈은... 벨제뷔트? 어떻게 벌써 여기까지 도달...”

“알 거 없고. 얌전히 죽기나 해라.”

콰득-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던 벨제뷔트가 신경질적으로 손아귀에 힘을 주자 붙잡혀있던 그린드래곤의 목뼈가 그대로 박살났다.

“으으... 네...놈...”

이에 높은 육체적 능력에 의해 숨이 단번에 끊어지지 않은 드래곤은 한없이 응어리진 눈빛으로 벨제뷔트를 노려봤다.

‘힘을 소진한 상태만 아니었더라도...’

그도 그럴게 지금 이 그린드래곤은 몰려드는 적을 상대하느라 힘의 대부분을 소진한 뒤 타겟이 될 수 있는 큰 육체를 숨기기 위해 폴리모프 상태로 휴식을 취하던 도중 기습을 당한 것이었다.

뭣하나 제대로 해보지 못했으니 그린드래곤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이없고 분할만 한 것이다.

“뭐,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건데?”

콰직!

그러거나 말거나 벨제뷔트는 머리를 짓밟아 단번에 마무리를 지은 뒤 사원 내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수가 부족하여 전전긍긍하고 있는 드래곤 따윈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다.

현재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는 건 일개 드래곤이 아닌 다른 존재들.

사원의 내부에서 밀려 나오는 진동이 사원 자체에서 발산되어지고 있는 고유의 진동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한 벨제뷔트가 인상을 살짝 구겼다.

‘쯧, 역시 놈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건가.’

이 진동이 사원의 변화로 인한 진동이 아니라면 이가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제길, 눈치만 빨라가지고... 이래서는...’

내부로 모이는 훼방꾼들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드래곤들의 빈틈은 필연적으로 커지게 되어 침입한 자들의 활동 제한은 자연스럽게 완화되게 된다.

드래곤이 바짝 긴장하여 눈을 불을 켜고 있을 땐 타깃인 인간들이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침투가 불가능했을 테지만, 지금은 또 모르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한다...’

때문에 벨제뷔트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들어가? 아니면...’

들어가거나 이 주위를 샅샅이 뒤지거나.

‘제길...’

흔적만 발견했어도 벨제뷔트는 일단 후자를 택했을 터였다.

확률이 높아졌을 뿐이지, 드래곤의 경계는 여전히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인간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교묘한지 뒤를 추적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적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

‘대체 이 사원에 뭐가 있기에...’

정확한 걸 알지 못하기에 벨제뷔트의 입장에서는 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망설이고 있다가 인간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목표를 달성하고 튀어버리 게 된다면 그는 분노로 인해 몇 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아가레스.”

“예.”

벨제뷔트가 부르자 데프하우어의 옆에 자리 잡고 있던 아가레스가 차분히 답했다.

“잠입해 있는 부하의 말은 여전히 똑같나?”

“예, 놈들은 여전히 복귀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 말에 벨제뷔트는 잠시 고심하다가 결국 선택을 내렸다.

“진입한다.”

아가레스의 입장에서는 지옥행 열차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 *

‘이런. 어쩌다가...’

아가레스는 본디 적당히 하다 빠질 생각이었다.

허나 탑의 환경은 그에게 타이밍을 주지 않아 결국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고, 이곳은 그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크롸롸롸롸!]

브레스가 이곳저곳을 헤집고, 폭음이 연신 울려 퍼진다.

하늘은 기상까지 변화시키는 고위 마법에 장악되어 있었고, 주위에서는 쉴 새 없이 충격의 여파가 밀려들어 왔다.

고위 대리자가 만들어낸 것인지라 위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제 아무리 배짱이 좋은 아가레스라고 할지언정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사원 내부로 진입하다니?

‘이건 진짜 위험하다.’

아가레스는 벨제뷔트의 행동을 막고 싶었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목숨이 날아갈 것임을 알기에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족!!”

사원 내부를 지키고 있던 드래곤들이 개떼 같이 몰려들자 아가레스는 마음속으로 온갖 욕을 내뱉었다.

‘이런 미친 벨제뷔트!’

벨제뷔트가 정예를 이끌고 왔기에 실력이나 화력이나 상대에게 결코 밀리진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스탯이 낮은 아가레스의 입장에서는 회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미칠 지경이었다.

“크윽!”

대가로서는 코인이 지급됐지만 그는 결코 기뻐할 수 없었다. 이대로면 목숨이 백 개라도 남아나질 못할 게 너무도 뻔했다.

‘이 경계를 인간이 뚫었을 거라 생각하다니.’

동시에 그는 벨제뷔트가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지금까지 어렴풋 느끼고는 있었지만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

“빨리 정리해라.”

“......”

그러나 자신의 입장을 알고 있는 아가레스는 이를 충고할 수 없었다.

그는 벨제뷔트의 부하들이 뭔가 언질을 해주길 바랐지만, 부하들은 잠자코 명령을 이행할 뿐이었다.

‘...뭐지?’

이에 아가레스는 뭔가 커다란 위화감을 느꼈다.

‘왜 아무도 의구심을 가지지 않는 거지?’

게다가 인간에 대한 벨제뷔트의 집착은 거의 광기 어린 수준이었다.

아무리 마왕과 비슷한 권능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 포함되어 있다지만 이토록 집착을 하다니?

잡아봤자 힘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 지도 잘 모르는데.

이건 벨제뷔트 답지 않았다.

‘대체 왜...’

그런 생각을 이어나가던 아가레스는 문득 여타 종족들의 행동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우쳤다.

그리고 그 순간 아가레스의 머릿속에 폭풍이 내리쳤다.

‘설...마? 설마?’

동요를 일으킨 아가레스의 눈동자는 흡사 갈대같이 흔들렸다.

‘신물 파편을 놈들이?!’

그때 저편에서 거대한 육체를 지닌 그린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벨제뷔트.]

에르비아크, 여태껏 지켜보기만 하던 그가 마침내 벨제뷔트의 앞에 나선 것이다.

* * *

[벨제뷔트, 감히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네놈이 죽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구나.]

“허세는 작작 떨어라 에르비아크. 사방에서 몰려온 놈들 때문에 너희들의 진형 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다.]

에르비아크는 벨제뷔트와 조우하기 무섭게 신경전을 펼쳤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이었고 속마음은 달랐다.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된다.’

5분 정도만 지나면 의식은 끝이나 퇴각이 가능해지기 때문인 게 그 이유였다.

[벨제뷔트, 솔직히 네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쳐들어올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유가 뭐지?]

“흥! 대화로 시간을 끌려는 속셈인가? 거길 비켜주면 특별히 말해주도록 하마.”

그러나 벨제뷔트는 만만치 않은 자였다.

의중을 읽힌 에르비아크는 마음속으로 혀를 차며 그 거대한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흠, 그렇게 나온다면 더는 할 말 없지.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둬라.]

“도마뱀이 말이 많...”

[너희들은 우리 영역 안에 있음을.]

에르비아크가 살기를 내뿜기 무섭게 수많은 마법이 동시다발적으로 발동됐다.

쿠구구구구!

콰과과광!

그리고 그렇게 발현된 마법의 위력은 그 누가 봐도 드래곤 한 마리가 선보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칫!”

때문에 벨제뷔트도 지금만큼은 모든 걸 제쳐두고 다급히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콰광!

주위는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그야말로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드래곤이 수적 열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밀려 들어오고 있는 종족들을 상대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제길... 이렇게 많은 마법을 준비해두고 있었다니!’

영역 내에서의 드래곤은 마족, 천족 그 어떤 종족보다도 강했다.

[......]

잠시나마 여유가 생긴 에르비아크가 마법을 상쇄하고 있는 데프하우어를 응시했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이내 데프하우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데프하우어. 명예로웠던 블랙드래곤이여, 당신은 벨제뷔트를 돕고 있는 자신 스스로가 수치스럽지 않나?]

이에 데프하우어가 정말 일순간 멈짓거렸다.

“......”

허나, 그것이 끝.

더 이상의 반응이 없자, 말을 듣고 있던 벨제뷔트가 대놓고 조롱했다.

“크크크! 멍청한 도마뱀 같으니! 설마 그딴 말 때문에 데프하우어의 마음에 동요가 일을 것이라 생각했나?”

에르비아크는 그저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네가 발현 시켰던 마법, 이제 거의 끝나간다만... 만약 더 이상 준비해둔 게 없다면 각오해야 될 거다.”

[흥! 이게 끝이라 생각하나? 보여 주마! 아직 남아있는 수는 많...]

쿠구구구구!

바로 그때였다.

꺄아아아-

비명 같은 괴성과 함께 상공 저편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망령들이 사원 중심부로 밀려들기 시작한 것은.

“?!”

에르비아크와 벨제뷔트의 입장에서는 반응하지 않을 래야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런...”

지금까지 버텨오던 드래곤들의 방어가 기어이 부서졌다!

* * *

미묘한 기류가 감돌고 있는 사원이 내부, 그곳에서 엘라뉘스는 현재 한 생명체와 마주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곳이 목적지인 것 같은데. 여기 혹시 인간이 오지 않았나?”

침입자임에도 불구하고 어이가 없을 정도로 능청스럽게 묻고 있는 남자는 무척이나 붉은 피부를 지닌 존재였다.

“...인간?”

이에 어이가 없어진 엘라뉘스가 혼잣말하듯 반문했지만, 남성은 이를 대답한 것으로 착각했는지 곧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간. 나는 지금 인간을 찾고 있는 거라서 말이지.”

“......”

엘라뉘스로서는 정말 할 말이 없어지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까지 찾아온 게 아이템을 강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찾기 위해서라니?

말이 되는가?

“미안하지만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그러나 그녀는 도발과도 같은 그 말에 걸려들지도, 품위와 여유를 잃지도 않았다.

이 정도로 동요하기에는 엘라뉘스는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엘라뉘스는 유적이 완전 개방되기까지 2분 남았다는 것을 머릿속에 재차 각인시키며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기 위해 말을 이었다.

“그보다도 네 정체는 무엇이냐. 처음 보는 종족이구나.”

“흐음, 그거야 그렇겠지. 뭐, 이 상황에서 내 소개를 하긴 좀 그렇고 그냥 블러드소울이라는 종족이라고만 알아둬라.”

“...이름은 어떻게 되지?”

“크라베스.”

크라베스, 망자들을 몸에 칭칭 두른 채 스스로를 소개한 그가 엘라뉘스의 눈동자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는 지금 어떻게 행동을 할지 내심 고심하고 있는 중이었다.

‘쳐? 아니면 말아?’

크라베스 또한 다른 종족들과 똑같이 정확한 정보 없이 이곳에 온 것이었다.

당연히 이 사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엘라뉘스가 왜 이 장소에 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베스트는 유세현과 놈들을 중간에 발견해내는 것이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혹시나 했지만 이곳에도 역시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하지만 놈들은 분명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

지금도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사원은 이곳에서 뭔가가 행해지고 있다는 증거였고, 그 결과물은 탑의 난이도를 고려할 때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이강호가 충분히 노릴 만 한 가치를 지닌 것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크라베스가 마음을 정한 순간이었다.

“크라베스여, 인간을 찾으러 왔다 들었는데 안타깝게도 이곳엔 인간이 없다. 그러니 이제는 어쩔 셈이냐. 물러날 것이냐? 아니면 싸울 것이냐?”

“흠, 물러난다고 하면 곱게 보내줄 거냐?”

“그러도록 하마.”

“큭! 하긴, 엘프나 델바람 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을 테니 너희에겐 차라리 좋은 일이겠군.”

“그래서 결론은?”

“좋아. 물러나도록 하지.”

“잘 선택 했...”

“그런데 그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크라베스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뭐지?”

“아 별 건 아니니 걱정 하진 않아도 돼.”

그러나 그러한 태도도 한순간뿐.

“너... 왜 계속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거냐?”

말과 동시에 순식간에 눈빛이 돌변한 맹수가 엘라뉘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진리의 반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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