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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31화 (41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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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술... 대체 당신 정체가 뭐지?”

제넥이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그는 이강호와 김주희라는 이름은 알고 있어도 유세현이란 이름은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제넥은 인간측이 판도라 내부로 들어오고 나서야 인간진형에 합류한 인물이었는데, 유세현이 이강호와 합류한 이후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표면적인 부분에서 전혀 활동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거론될 이유가 없으니 무림인들과 인연이 있었던 자들을 제외하고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

“......”

챙!

그러나 유세현이 이에 답하는 일 따윈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그는 제넥의 말이 전혀 들리고 있지 않았다.

검법의 탐닉.

그는 이 한정된 조건에서 오직 검법만을 구사해 강력한 적에게 맞서는 것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런 기회는 좀처럼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챙!

채재쟁!

유세현의 검이 더더욱 가속했다.

“큭!”

정확히는 가속이 아닌 빈틈을 보다 예리하게 파고들고 있는 것이었지만, 상대하는 제넥의 입장에서는 유세현이 갑자기 빨라진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제넥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대로라면...’

위험하다.

위기감을 느낀 것!

“하압!”

챙!

파아앙!

이윽고 몇 번의 합을 나눈 제넥이 있는 힘껏 창을 휘둘러 가까스로 유세현을 밀쳐냈다.

마침내 유세현을 자신에게서 떨어뜨리는데 성공을 한 것이다.

“와...”

제넥이 창을 고쳐 잡자 관중들이 그제야 마른침을 목 뒤로 넘겼다.

그들끼리 이어지고 있던 품평은 어느새 쏙 들어간 상태였다.

“와... 저 제넥이라는 자 정말 대단한데요? 세현 선배와 저 정도로 박빙으로 싸울 수 있다니...”

“그래, 대단하지. 하지만...”

이강호가 중얼거리기 무섭게 일순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그들의 접전이 다시금 펼쳐졌다.

“어딜! 이젠 절대 못 달라붙는다!”

제넥은 절대 거리를 내주려 하지 않았으나, 다음 순간 유세현은 마치 전부 읽기라도 한듯 창극을 회피하더니 쏜살 같이 파고드는데 성공했다.

“큭!”

검격을 받아낸 제넥의 인상이 미미하게 구겨졌다.

그는 지금 스스로가 마음을 재차 다잡고 모든 집중을 다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밀리고 있다는 게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이강호가 말을 이었다.

“더 대단한 건 유세현 쪽이야.”

“네?”

“그 천마의 검법을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잖아.”

이강호가 보기에 유세현이 천마의 검법을 이 정도로 깨친 데는 엄청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재능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큰 두각을 보였을 것이기에.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유세현은 천마의 검법을 습득하고도 활용하기 어렵다 판단하여 한동안은 줄곧 해왔던 자신의 스타일대로 싸웠었다.

그가 전투 방식을 바꾼 건 스스로의 방식에 한계를 느낀 이후부터.

그러니 이건...

‘유세현의 고심과 노력, 피와 땀의 결정체다.’

판도라는 모든 제한이 풀린 세계다.

때문에 본래의 세계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범인은 천재를 당해낼 수 없었지만, 이곳은 범인이 천재를 뛰어넘는 게 가능했다.

에디슨은 99%의 노력이 있다 해도 1% 채워 주지 못할 뛰어난 영감, 천재성이 없다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라 했지만, 이 세계에서는 굳이 1%의 천재성을 지니고 있지 못해도 괜찮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범인이 천재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천재의 수 배 더 나아가 수백 배에 달하는 노력이 필요했기에 사실상 뛰어넘는 자는 손에 꼽다 못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유세현은 해냈지.’

운도 따라주었다.

후우웅!

파앙!

결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격해졌다.

“허억... 허억...”

“후우... 후우...”

사람들은 거칠게 몰아쉬는 둘의 호흡에서 결투가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흐압!”

제넥의 창이 재차 예리하게 파고든다.

제넥은 자신이 순수한 체술 실력만큼에선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 만큼 유세현을 이기기 위해 모든 기량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과연 제넥은 강했다.

퍼엉!

회전의 묘리가 쏟아진다.

수많은 변초가 섞여 유세현에게 날아오는데, 하나하나가 전부 목숨을 위태하게 만드는 그런 초식이었다.

유세현이 재빨리 몸을 틀어 받아쳤다.

그리고 그 또한 제넥을 죽일 기세로 임했다.

둘은 이제 이 결투에 최선을 다하다 못해 목숨을 걸고 있었다.

제넥이 일순간 눈을 빛냈다.

그는 창의 바깥쪽을 이용해 검을 돌려막음과 동시에 안쪽으로 찍어 눌러 유세현의 다음 움직임을 봉쇄했는데 기회가 왔음을 깨닫고는 승부수를 던졌다.

“난 지지않아아아아!”

제넥의 창끝이 커다란 기합와 함께 유세현을 향했다.

절학, 회축(廻蓄)을 담은 회심의 일격!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이게 유세현이 노리고 있던 한 수였으리라고는.

파앙!

“크윽!”

창끝에 닿기 직전 유세현이 손바닥으로 창대를 툭 밀치자, 그의 창은 회전력을 잃고 손에서 떨어져나가 지면을 그대로 나뒹굴었다.

동시에 균형이 깨진 제넥 또한 스스로가 준 회전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땅에 처박혔다.

제넥의 눈빛이 파르르 흔들렸다.

승부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 *

“이, 이럴 수가...”

제넥의 무릎이 털썩 굽혀졌다.

“내... 내가 지다니...”

그건 천재인 그가 이 트레이닝 룸에서 처음으로 맛본 패배였다.

“마,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자신감과 자만감으로 똘똘 뭉쳐있던 그로써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유세현이 땀을 훔치기 무섭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기고만장하던 상대를 찍어 누른 것 치고는 상당히 예의바르면서도 한편으론 무심한 태도였다.

이에 제넥은 고갤 들어 유세현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그는 유세현의 표정을 보는 순간 자신이 왜 패배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자는... 나에게 아무런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 제넥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유세현을 찍어 누르는데 연연했었다.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스탯만 믿고 나대는 자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싶어서.

아무리 결투에 집중을 했다 해도 당연히 미미한 잡념이 없을 래야 없을 수가 없었다.

“당신... 정말 강하군.”

제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마냥 적대적이었던 처음과는 사뭇 다른 말투였다.

“당신도 정말 강했습니다.”

유세현이 대꾸해주자, 제넥이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하하, 강하다라...당신, 이름이 유세현이라고 했었나?”

“예, 약속은 지켜주시는 거겠죠?”

“물론이다. 우리 팀 스피어는 너희들을 따르겠다.”

제넥이 팔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유세현이 손을 맞잡자, 제넥이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유세현, 하나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질문해도 되겠나?”

“예, 말씀하시죠.”

“그 검법, 당신이 직접 창안한건가?”

“......”

유세현이 잠시 머뭇거렸다.

이미 무림인들에게 알려져 있다곤 하나 구태여 꺼내 설명하기가 별로 탐탁지 않았던 것인데 우습게도 그가 답변하기도 전에 제넥이 괜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 괜한 걸 물어봤군. 성취가 중요하지 누가 창안했는지는 별 의미가 없는 건데...”

“......”

“아무튼, 한 수 잘 배웠다. 너희들을 만만히 여기고 깔본 거 진심으로 미안하다.”

제넥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유세현은 이 사과를 받아준 뒤 인사를 나누고 동료들의 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주희가 자리에서 방방 뛰며 그를 맞이했다.

“선배님! 엄청 멋있었어요!”

“후, 그래? 난 자칫 죽는 줄 알았다 야.”

유세현이 장난으로 혀를 내두르자, 김주희가 날이 선 눈빛으로 일순간 제넥이 있는 곳을 훑었다.

이내 김주희가 조곤조곤한 어조로 속삭였다.

“선배님... 제가 가서 몰래 몇 대 때리고 올까요? 압도적인 힘으로 순식간에 제압하면...”

“야야, 아서라 아서. 너가 몇 대 때리면 쟤 죽는다.”

“쳇, 나약한 놈 같으니...”

김주희가 아쉬움의 입맛을 다시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쪼록, 잘 했다 세현아.”

“후후, 봐봐 나 믿으랬지?”

“그래, 정말 잘했어 임마.”

그중에서도 특히나 표정이 좋은 건 이강호였다.

[이강호, 과거로 돌아간다면 꼭 나를 찍어 눌러라. 그래야만 내가 너의 말을 따를 거야.]

과거 제넥이 부탁했었던 것을 유세현이 대신 이뤄준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병력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 * *

전 병력은 이강호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비록 모든 길드와 무림인들이 시합에 통솔권을 건 것은 아니었으나, 소수의 인원으로 언더월드에 남겠다는 것은 곧 죽음과 직결되는 것이었기에 걸지 않은 이들도 일단은 이강호의 지시에 따랐다.

많은 사람들이 마족의 습격을 두려워하며 이동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움직임을 파악 당하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총괄자인 아가레스가 공격을 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뱀프리안이 세상 답답한 얼굴로 총괄자인 아가레스를 향해 말했다.

“아가레스, 언제까지 감시만 하고 있을 생각이냐. 이대로라면 놈들이 이 지역을 벗어나게 된다. 마왕님께서 한번 이탈한 너를 다시 받아 준 이유를 잊은 건 아니겠지?”

“흥! 알고 있다, 뱀프리안. 하지만 다시 말했듯이 지금은 방도가 없다. 현재는 놈들을 당해낼 수 없어.”

그 말에 뱀프리안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놈의 인간이 뭐가 무섭다고.”

“뱀프리안, 찢긴 병사들의 시체를 보고도 그 말을 할 수 있다니 정말 아둔하기 그지없구나.”

“뭐? 지금 감히 나를 우롱해?”

뱀프리안이 아가레스의 목을 움켜잡았다.

덩치는 아가레스가 더 컸지만, 스탯은 뱀프리안이 월등히 높았기에 그가 힘을 주면 아가레스는 끝장이었다.

그러나 아가레스는 그러한 위협 속에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아니 되려 지그시 읊조렸다.

“뱀프리안, 이곳의 총괄자는 나다. 그리고 지금 넌 내 수하에 불과하지. 좋은 말로 할 때 이거 놔라.”

“......”

“지금 마왕님이 친히 하사해주신 직급을 무시하는 거냐?”

“...쳇! 네놈 나중에 보자.”

결국 뱀프리안은 분해하면서도 손을 놓았다.

아가레스가 달래듯 말했다.

“걱정마라. 내가 요청한 지원군만 당도한다면 네가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

“흥! 그때쯤이면 이미 놈들은 이곳을 빠져나갔을 텐데? 그리고 지금 놈들의 수준으로는 바깥을 돌아다니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아. 이동이 빨라질 텐데 추적할 자신이 있나?”

“물론, 있고말고. 난 놈들의 우두머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간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한번 얘기해봐.”

뱀프리안이 빈정거리자, 한숨을 내쉰 아가레스가 손을 들어 지도를 가리켰다.

“지금 놈들이 향하고 있는 출구는 북서쪽이다. 이쪽은 빙한지대 지역과 연결되어 있지.”

“그래서? 그건 나도 알아.”

“그 빙한지대에서 더더욱 올라가면 꽤 크게 인간세력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나온다.”

“흠... 그러니깐. 네 말뜻은... 놈들이 그 세력과 합류 할 거다?”

“합류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무슨 말이냐?”

“크크 뱀프리안, 머리를 너무 쓰지 않아 돌대가리가 돼버렸나? 그 정도는 알아서 생각해라.”

“......”

뱀프리안이 침묵했다.

그러자 아가레스는 곧장 병력을 통솔하는 장군들을 불러 세웠다.

“이동 준비를 해라.”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설산지대, 우리가 놈들보다도 한발 빠르게 이곳을 빠져나간다.”

명령을 내린 아가레스의 입꼬리는 비릿하게 올라가 있었다.

아르카드 제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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