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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26화 (41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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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잉-

파앗!

유적 내 존재하는 모든 대리자들을 향해 하늘에서 빛이 쏟아졌다.

그 어떤 간섭도 차단시켜주는 그 빛은 어떤 대리자에게는 희망에 빛이었고, 어떤 대리자에게는 머리끝까지 분노를 솟구치게 만드는 절망의 빛이었다.

“크아아악악악! 안돼! 안돼에에에에!”

그중에서도 제일 끓어오르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한 이는 바로 보랏빛의 괴물이었다.

“크아아악! 유세현! 유세혀어어연!! 그놈만 없었어도오오오!”

카시우스와 카그네프 그리고 크라베스 등의 강적들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벨제뷔트는 좀처럼 격정을 떨쳐내지 못하고 하늘이 터져나가라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벨제뷔트가 얼마나 간사하고 냉철하며 이성적이라는 것을 알고 이들로써는 많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노릇이었으나, 지금만큼은 벨제뷔트에 대해 잘 모르는 크라베스조차도 벨제뷔트의 감정에 공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단 6명.

아니, 루시펠이 중도 합류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고작 5명의 인원이었다.

반면 이곳에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병력을 대동했었다.

특히나 마족은 모든 걸 쏟아 부어왔던 만큼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승리를 손에 거머쥐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었다.

루시아를 죽인 뒤, 한순간 만들어진 틈을 타 서로 격렬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던 크람베르와 크라베스를 무시하고 달려 나갔더라면 위치를 알고 있었기에 100%는 아닐지언정 높은 확률로 정수는 벨제뷔트의 것이었다.

유세현 일행만 없었다면, 아니 유세현만 없었다 하더라도 그는 지금쯤 웃고 있을 터였다.

“루시뷀트... 루시뷀트으으으!!”

벨제뷔트의 울부짖음이 이제는 멈춰버린 공간 속에 다시 한번 울려 퍼짐과 동시에 모든 대리자들이 서 있던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 * *

슈슈슈슉-

휘몰아치던 어둠이 잦아들었다.

어느새 마을로 강제 이송된 루시뷀트가 주위를 흘기자 주위에서 전투를 하고 있던 김주희가 단숨에 달려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선배니이이임!!!”

“......”

“정말... 정말 다 끝인 줄 알았어요.”

그런 김주희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담담하게 싸우긴 했지만 그녀도 내심 힘들다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죽고 싶은 생명체는 없을 것이기에, 사실은 도우러 오지 않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는데...

“부럽군.”

김주희의 감정을 읽은 벨제뷔트가 말을 흘렸다.

“...예? 아, 아아! 죄, 죄송해요!!”

이에 김주희가 순간적으로 의문을 보였지만 이내 꽉 끌어안고 있다는 걸 의식했는지 얼굴이 벌겋게 변하며 다급히 떨어졌다.

“저... 선배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

벨제뷔트는 이번에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막연히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금껏 세계를 어둠침침하게 만들고 있던 시커먼 구름이 절반으로 갈라져 새하얀 빛이 새어 들고 있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빛으로 보일지 몰랐으나, 기능을 소실했었던 생과 사의 경계가 본래대로 되돌아오고 있음을 알리는 빛이었다.

‘잠시 동안의 생도, 자유도 이젠 끝인가...’

루시뷀트가 속으로 되뇌었다.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고 약간의 욕심도.

그러나 그는 모든 감정을 뒤로 한 채 눈을 감았다.

그는 스스로를 볼 수 없어 잘 몰랐으나 스스로 생각한 마음과는 다르게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 선배님?”

그 표정에서 이상함을 느낀 김주희가 재차 말을 걸어왔지만 루시뷀트는 더 이상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왜인지 점점 희미해지는 감각 속에서도 눈꺼풀 뒤로 쏟아지는 햇살만큼은 루시뷀트에게 뚜렷이 와 닿았다.

정말로 화사한 햇살이었다.

* * *

“선배님? 선배님? 선배님!!”

김주희의 외침과 함께 유세현의 의식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때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의식이 끊기기 직전 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처럼, 다시 한번 일시적으로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제자 놈아 어디 가서 좀 쳐 맞고 좀 다니지 말아라. 보는 사람 눈살 찌푸려진다.]

[...상대가 강해 어쩔 수 없었던 겁니다만......]

[예끼! 그건 네가 나약했기 때문이지 상대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무공을 100%로 펼칠 수만 있다면...]

[이 노친네... 또 시작이군. 그만해라. 너의 무공 찬양은 이젠 귀에 이골이 날 지경이니.]

마왕이 진저리난다는 어조로 끼어들었다.

그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는데, 부상하고 있던 유세현은 그와 아주 찰나 동안 마주 할 수 있었다.

[바깥은... 바깥은 어떻게 됐지? 모두는? 무사한거야?]

[그건 나가보면 알지 않겠나?]

[...그건 그렇지.]

유세현은 그리 답했지만 내심 잘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루시뷀트는 마왕.

천마를 제치고 스스로 직접 나서겠다고 한 이상, 최고의 답안을 내놓았을 터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럼 그보다도... 만족 했나?]

유세현이 물었다.

두서를 전혀 붙이지 않은, 정말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루시뷀트는 훗 하고 옅게 웃더니 입을 열어 답했다.

[재미있었다.]

[그러냐.]

[그렇다.]

유세현의 눈빛과 마왕의 눈빛이 서로 교차했다.

지금 이 순간 유세현은 마왕에게 고마워하고 있었고, 마왕도 유세현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유세현은 동료들을 위해 나서준 것을, 마왕은 믿고 맡겨준 것을.

그리고 더 나아가 마음속에서 밀쳐내지 않은 것을.

셀론과의 전투에서 아가레스가 작동시킨 특수 스크롤에 의해 혼돈 속으로 빠져 들어 아이템의 효과를 받을 수 없게 된 천마와 루시뷀트는 이제 그의 내면이 아니면 존재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것도 유세현이 무의식적으로 허락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 둘에게 안 좋은 마음과 경계심을 품고 있었더라면 진즉 사라졌을 터다.

그리고 이것은 유세현의 능력과도 관련이 있었다.

자유를 얻지 못해 갈망하여 자살까지 하려 한 마왕과 제자들에게 배신당해 죽은 천마의 처량한 마음을 마음속에서부터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유세현... 네가 강철의 성에서 얻은 그 힘은 진정한 너의 힘이 아니다.]

그렇기에 마왕은 충고했다.

[뭐?]

[네가 과거를 부수고... 나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 힘은 네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애매하게 돌려 말하지 말고...]

[제자야, 이건 말해줘서는 의미가 없는 거란다.]

[......]

[그리고 제자야 이전에 내가 한 말 기억하느냐? 제자는 스승의 부탁을 세 가지 들어줘야 된다는 말 말이다.]

천마가 물었다.

유세현이 답했다.

[기억합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때의 그것은 그만큼 강렬한 것이었었다.

아니, 천마와의 만남 자체가 강렬하다. 마왕도 그러하고.

[그래, 그럼 지금 이전 시간이 부족해 하지 못했던 마지막 세 번째 부탁을 하도록 하마.]

[...말하십시오.]

[제자야 앞으로 고유특성은 두 번 다시 사용하지 말거라. 설명 무슨 일이 닥친다 하더...]

후우웅!

천마의 말이 귓가를 윙윙 울리며 유세현은 눈을 번쩍 떴다.

“허억!”

동시에 엄청난 고통이 몸을 엄습했다.

마심원을 무리하게 돌린 부작용과 새크리파이스로 날린 생명력, 한계를 넘어서도 계속 움직인 대가가 한 번에 찾아왔다.

“크아아아악!”

유세현은 그대로 쓰러져 무려 2주 동안이나 깨어나지 못했다.

* * *

“그래서... 파편을 손에 넣었다고?”

“응, 전부 네 덕분이다. 세현아.”

정신을 차린 유세현의 몸은 이강호의 등에 업혀 있었다.

유적이 클리어 되긴 했지만 마을 체류 제한시간이 사라진 것도 아닌데다가, 타 종족이 진형을 다잡아 포위망을 형성하기 전에 빠져나와야 했기에 그들은 그 이후로도 제대로 된 휴식 한 번 하지 못한 상태였다.

“내 덕분은...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마왕이 나서 주지 않았다면 끝이었을 거야.”

“그것도 너이기에 마왕이 나서줬던 걸 거야.”

“뭐?”

“난 루시뷀트의 성격을 잘 알아. 그는 오만하고 포악하고 무자비하지. 네 안에 있다는 마왕이 비록 복제라고는 해도 베이스가 루시뷀트인 이상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지는 않을 거야. 아니 어쩌면 그는 제한이 풀려 성격이 변질된 지금의 마왕보다도 되려 순수한 마왕일 가능성이 높아. 그런 그가 목숨 때문에 자존심을 버려가며 나설 것 같아?”

“......”

“전혀 그렇지 않아. 너도 잘 알잖아?”

과거 자살을 결심하고 있던 루시뷀트는 유세현이 기만을 한 것일시 유세현을 포함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죽여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었다.

확실히 그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다 못해, 뚫을 정도인 것이다.

“루시뷀트는 너를 인정한 거야. 아마 다른 맘에 안 드는 놈이 숙주였다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을 완전 장악하려고 난리를 피웠겠지.”

“...음... 뭐, 아무튼 잘 끝났으니까. 그보다도 지금 우리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일단은 언더월드요!”

유세현의 물음에 옆에 자리 잡고 있던 김주희가 끼어들어 답했다.

“역시, 일단은 그곳밖에 없나? 우리가 만약에라도 복귀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일러줬던 플랜대로 잘하고 있을지 모르겠네.”

“그건 가봐야 알겠지.”

이강호가 저편을 응시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파편을 손에 넣어서인지 이강호의 발걸음은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경과해 마침내 지정해뒀던 장소에 도착했다.

* * *

휘이잉-

숲에서 불어온 싸늘한 바람이 유세현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정해두었던 장소에 도착했음에도 사람은 코빼기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아예 머문 흔적이 없었다.

“아예 오질 않은 건가?”

이에 일행은 시간을 들여 던전을 찾았다. 클리어하기 위해 찾은 게 아니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강호가 레피아에게 일러준 던전들은 하나 같이 꼭꼭 숨겨져 있는데다가 입장을 위한 조건이 까다롭기에 훗날까지도 대다수가 잠겨져있는 던전들이었는데, 클리어 되어있을시 어찌 됐건 동향을 파악하는데 용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흠... 5번째까지는 클리어 된 상태로군.”

그들은 능력을 고려해 던전 공략의 순서도 정해놓았었기에 곧장 6번째 던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6번째는 개방이 되어있지 않았다.

즉.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보면 조만간 오지 않을까요?”

“흠... 그렇게만 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5번째 던전 주위를 누구보다도 세심히 살펴봤었던 이강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다.”

나뭇가지나 주위 환경으로 보건데, 던전이 클리어 된 후 시일이 꽤나 지났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래라면 진즉 6번째 던전을 공략중이거나 클리어 했어야 하는 것.

“뭔 일이 발생했을 거라는 거야? 단순히 쉬었다 오는 거일 수도 있지 아닐까?”

“아니, 이 던전과 5번째 던전은 내가 웬만하면 연이어서 클리어 하라고 특별히 일러뒀었어. 공략만 숙지하면 얼마 걸리지 않으니까. 웬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건...”

“야 이 자식아!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하하, 그러네. 미안. 아무튼 본격적으로 수색을 해보자. 이제 웬만한 대리자들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하니까 무리만 안한다면 괜찮을 거야.”

“오케이. 어디부터 가볼 생각이냐?”

“일단은 마력이 제일 밀집되어있는 지역 혹은 마력 사용에 의해 변동이 크게 일어나고 있는 곳. 찾아 줄 수 있겠냐?”

“후... 그런 건 진즉 찾아놨지만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

유세현이 머리를 박박 긁었다.

그는 내색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지만 초조함이 완전히 숨겨지진 않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어야 될 텐데...’

“일단은 가장 가까운 장소로 가보자. 어디야?”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50km 떨어져 있는 곳.”

“좋아. 바로 이동하자.”

파앗-

말이 끝나기 무섭게 6명이 자리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세력 붕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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