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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읍... 후우...”
숨을 크게 들이쉰 유세현이 차분히 숨을 내뱉었다.
가쁘던 호흡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되돌아오고, 피가 끓는 듯한 강대한 힘이 혈관을 타고 체내를 맴도는 게 느껴졌다.
지금은 그 누구라도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은 감각.
파앗-
일순간 유세현의 신형이 벨제뷔트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경계를 놓지 않고 있던 벨제뷔트로서는 황당무계한 일이었다.
‘뭐, 뭐냐?! 설마 블링크?’
그러나 그게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벨제뷔트님! 좌측입니다!”
“좌측?”
콰아아앙!
붉은빛, 생명의 파도를 몸에 두른 유세현의 검이 데프하우어가 만들어준 방어막을 순식간에 가르고 벨제뷔트의 거대한 팔뚝에 생채기를 냈다.
벨제뷔트 또한 가만히 당하지 않고 다급히 대응을 한 것 치고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데프하우어와 벨제뷔트가 2대1의 상황에서 밀리다니?
‘뭐 이런 미친 스피드가!!’
퍼엉!
퍼버벙!
상상할 수 없는 묵직함이 벨제뷔트를 향해 연속적으로 쏟아졌다. 데프하우어가 방어에 모든 능력을 돌리지 않았다면 벌써 목을 내주었을 만한, 실로 압도적인 힘이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존재에게도 겪어보지 못했던 위기.
“크! 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
아니, 과거에 있긴 있었다.
멋모르던 시절, 호기롭게 마왕 루시뷀트에게 도전했을 때.
“크으으!”
벨제뷔트가 다급히 손짓을 하자 허공에 공간이 열리며 그 속에서 머리가 세 개 달린 마수가 튀어나왔다.
크람베르를 부활시킨 이후 정말 만약을 대비해 숨겨두고 있었던 비장의 패였으나, 지금 벨제뷔트는 그 패를 사용하고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젠장... 저 붉은빛... 대체 뭐기에 저렇게 신체능력이 올라간 거지!?’
그때 데프하우어가 추측한 것을 말했다.
“자신의 생명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생명을?”
데프하우어는 마법이 종주이자 무척 오랜 시간을 살아온 드래곤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드래곤은 사용하지 않는, 인간 마법사가 정말 가망이 없을 때나 사용하는 라이프 번이란 마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뿜어져 나오는 빛과 비슷합니다! 아니 똑같습니다!”
“크윽! 라이프 번이라... 나도 몇 번 보긴 했지. 하지만 그건 단발성인데다가 저 정도까지는 아닐 텐... 크악!”
유세현의 발이 벨제뷔트의 견갑골을 그대로 뻥 걷어찼다.
바로 옆에 있던 데프하우어가 깜짝 놀라 다급히 7서클 단일 바람마법을 날리고, 켈베로스가 불을 내뿜었으나 유세현의 움직임이 너무도 빨라 적중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힘겹게 루시아를 보호하고 있던 루시펠이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대, 대단해...”
3대1.
유세현은 무려 3명을 압도하고 있었다.
크람베르도 크라베스도 이 모습에는 마찬가지로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아아-
명령에 따라야 될 망령들도 공포를 느꼈는지 비명을 내지르며 둘의 제어에서 벗어나 이곳을 뜨려했다.
이 순간, 이들에게 유세현은 패왕이었다.
감히 누구도 견줄 수 없는 패왕 말이다.
그러나.
“후욱... 후욱...”
정작 패왕은 조급하기 그지없었다. 생명의 힘은 그 엄청난 힘을 선사한 만큼이나 빠르게 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지금 끝낸다.’
켈베로스를 후려차자, 날아간 켈베로스가 크람베르가 있던 곳을 덮쳤다.
“이, 이런!”
크람베르는 1초도 되지 않아 다급히 켈베로스를 밀쳐냈으나, 크라베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푹-
크라베스의 손이 크람베르의 복부를 관통한다. 크람베르가 다급히 크라베스의 팔을 붙잡았다.
“크으으으, 이러어어언!! 저 빌어먹을 개 때문에...”
“전투 중에는 주위를 항상 조심해야 되는 법이지. 넌 너무 부활하는 게 늦었다. 경험이 부족했어. 그러니 그만 포기하고 죽어라!”
“웃기지 마라! 고작 추종자 주제에...”
“하! 내가 추종자라면 넌 그보다 못한 짜여진 프로그램이다!”
크라베스가 눈을 번뜩이자 꿰뚫려 분쇄된 크람베르의 육체 일부가 손을 타고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놈이 어딜!!”
그러나 크람베르가 저항하자 흡수된 일부가 다시 육체로 되돌아왔다.
둘은 마치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 마냥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좀처럼 쉽게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크라베스가 나직이 혀를 찼다.
‘젠장... 유세현도 처리해야 되는데...’
그는 이제 크람베르보다도 유세현을 더 의식하고 있었다.
크람베르가 버티고는 있다지만 방금 전의 일격은 그만큼 치명적인 것이었기에 결국엔 자신이 승리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걸리는 시간.
푹-
“흐아아아압!”
슈컥-
유세현이 켈베로스의 흉부에 박아 넣은 루베르크를 있는 힘껏 들어 올리자, 몸과 함께 켈베로스의 중간 머리가 그대로 반으로 쩍 갈렸다.
유세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곧바로 왼쪽 손만 손잡이에서 뗀 뒤 천마혈사장을 날렸다.
파아아앙!
[캐개개개개갱!]
켈베로스의 육신은 이윽고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완전히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유세현의 육체가 코인을 흡수하기 곧바로 무섭게 다음 목표를 향했다.
“데, 데프하우어!!”
벨제뷔트가 아연실색하여 데프하우어를 찾기 무섭게 그의 앞에 거대한 방어막이 생성됐다.
치지직-
쨍그랑!
물론 그것도 순식간에 박살났지만, 그 잠깐 동안 벨제뷔트는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벨제뷔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단순히 지쳤기에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유세현이 과거의 루시뷀트와 겹쳐 보이고 있었다.
뭔 짓을 해도 이길 수 없었던, 판도라에 떨어지기 전의 절대적 존재였던 마왕 말이다.
때문에 지금 벨제뷔트에게 작용하는 암흑투기의 위력은 더 증가한 상태였다.
‘젠장... 내가... 이 벨제뷔트님께서 겁먹었다고?’
그때 루베르크가 머리 위부터 수직으로 떨어졌다.
벨제뷔트는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방어했다.
카앙!
후우우웅!
콰앙!
벨제뷔트의 몸이 그대로 지면에 처박힌다. 그의 주 무기가 건틀릿이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것이었다면 필히 손목이 잘려나갔을 만한 위력과 예기였다.
허나.
“크으...”
바닥자재를 털어내고 일어나 고개를 휘휘 턴 벨제뷔트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모종의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위력이... 약화됐다?’
정말 미묘한 차이였다.
그러나 벨제뷔트는 힘의 크기를 확실히 잴 줄 아는 최상위 대리자였기에 스스로의 판단을 의심치 않았다.
‘저 능력... 역시 오래 유지할 수는 없는 모양이군.’
“큭! 벨제뷔트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다. 그보다 놈의 위력이 약화됐다.”
“그럼...”
“놈이 스스로 무너질 때까지 버틴다! 정신계 마법을 준비해라!”
벨제뷔트의 명령에 데프하우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미, 미친 장소네요 선배.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세현 선배를 찾죠?”
카시우스와 카그네프, 그리고 격전을 치르고 있는 다른 수많은 이들을 본 김주희가 치가 떨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에 주위를 보다 더 열심히 훑어보던 이강호가 일순간 어깨를 움찔거리더니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길 봐.”
“아...”
그곳에는 익숙한 인물이 있었다.
뇌쇄적인 몸매와 높이 솟아있는 뿔, 그리고 보랏빛 머리칼.
“아퀼라!”
거리는 약 100m정도였는데, 그녀는 추종자와 합세하여 괴물과 대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죽이기 위해 싸우고 있다기보다는 서로를 이용해서 저 통로를 통과하려는 것 같아 보이는군.”
“그럼 저편에 선배님이?”
“그럴 확률이 높지. 그리고...”
크람베르와 크라베스도 있을 테고.
“흠...”
이강호가 고민에 잠겼다.
본래 이강호는 동료들과 조우할 시 곧장 이곳을 이탈할 생각이었다.
이용할 만큼 이용한 엘프와 델바람의 눈에서 벗어나, 다른 어떤 이들보다 먼저 핵심에 다다른다는 계획이 어긋난 이상, 신물 파편에 집착한다는 것은 죽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유세현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저편에 루시아씨가 있었나 보군.’
이강호는 판단을 내렸다.
“가자.”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은 위기를 무릎 써야 할 때라고.
파앗-
김주희와 이강호가 이종족들을 향해 돌진하자 카그네프와 카시우스가 즉각 반응했다.
“저들은?!”
“이강호!”
이강호를 잡고 싶어 했던 카그네프는 그를 막기 위해 다급히 몸을 돌렸다.
허나.
“어딜 가시려고!”
“이러어어언!”
여태껏 그를 상대하던 아크샤가 막아섰다.
“비켜!”
빡-
카그네프가 아크샤를 물러서게 만들기 위해 위협을 가했지만 아크샤는 벨제뷔트의 최측근답게 길을 내어주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방어했다.
“호호호, 천하의 카그네프도 별거 아니네? 가고 싶어? 그럼 뚫어봐.”
아크샤가 깐족거렸다.
그녀가 막는 데만 치중할 뿐 딱히 카그네프를 쓰러트릴 생각이 없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었다.
“이런 한 줌 거리도 안 되는 게...”
“호호, 그러니깐 그렇게 자신 있으면 한번 뚫고 가보라니까~”
“이...”
카그네프의 미간에 힘줄이 뿔룩 돋았다.
그는 당장에 전력을 발휘하여 쳐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럴 시에는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 차마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너, 저놈들이 만에 하나라도 넘어가게 되면 벨제뷔트가 얼마나 귀찮아질지 알고 그러는 거냐?”
“몰라, 난 단지 명령을 이행할 뿐이라고. 그리고 내가 받은 명령은 너를 붙잡아 두는 거지.”
“이, 이...”
그렇게 카그네프가 아크샤와 티격태격 하는 사이, 이강호와 김주희는 어느새 아퀼라의 근처에 다다라있었다.
아퀼라가 둘을 보자 반색했다.
“이강호! 김주희!”
“아퀼라! 세현 선배는 저편에 있는 거 맞지?”
“맞아.”
“이놈은?”
“정확히 무슨 존재인지는 모르겠어, 이곳을 지키는 수호자 같은데...”
처음 한 마리였던 수호자는 어느새 분열까지 하여 5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아마, 뚫릴 때마다 그리고 주위 적이 늘어날 때마다 강화되는 것 같아. 군주께서 넘어가셨을 때는 3마리였다.”
“으음...”
공격을 감행해 본 김주희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격차를 단번에 느낀 것이다.
‘하기야 저 추종자들이 애를 먹고 있는 정도니...’
그때 이강호가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그럼 나만이라도 그걸 사용해 넘어갈 테니 틈을 만들어 봐라.”
“알겠어요 선배!”
“최선을 다해보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퀼라에게 몰아치던 수호자 한 놈의 몸이 반으로 쭉 나뉘더니 6마리가 되었다.
* * *
후우우웅!
파앗!
생자와 사자의 경계가 무너진 공간, 격렬한 전투가 이뤄지고 있는 그곳에 광명이 일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데프하우어가 시전한 강력한 정신계 마법이 퍼져나가는 현상이었다.
[10서클마법, 스피릿 브레이크]
이에 정면으로 응시한 유세현의 눈가에 미미한 주름이 생겼다.
“큭...”
골이 흔들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골이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가 요동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일순간 그의 눈에 일대를 까마득히 메우고 있는 망자들이 비쳤다.
색으로 보건데 그건 여태까지 보아온 망령들이 아닌, 르벤이나 람델과 같이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영혼이었다.
‘이런...’
물론, 이는 유세현의 입장에서는 결코 좋지 않은 일이었다. 반투명하게 보이긴 하다만 망령의 수가 너무 많아 겹치고 겹쳐있던 지라 적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파악하기 힘들었기 때문.
그가 다급히 눈을 깜빡이자 시야가 순식간에 본래대로 되돌아왔다.
후웅!
퍼엉!
유세현은 또다시 격렬하게 공격을 이어갔다.
이에 또다시 배리어를 만들어 대응한 데프하우어가 쓰디쓴 신음을 삼켰다.
“큭, 설마 했지만 움찔거리지도 않다니...”
게다가 이젠 절대 메마르지 않을 것 같던 마력도 거의 다 거덜 난 상태였다. 상대방이 약화될 때까지 버티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한정된 공간에서 저런 적을 향해 대놓고 본체화를 한다는 건 목숨을 끊어 달라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본체화도 못하고... 과연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그걸 써보는 수밖에...’
직접 접촉 정신계마법.
그건 어느 정도 통하리라.
데프하우어가 마법을 준비한 찰나였다.
“크으으으! 크아아아아악!”
크람베르의 육신이 우수수 부서져 내리며 그 파편이 전부 크라베스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마왕 강림(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