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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18화 (40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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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알고 있어.”

답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을 뿐, 유세현은 대답 자체는 회피하지 않았다.

본디 어떤 가치관이던 스스로가 그리 방향을 정했기에 그리 형성된 것이다.

이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그건 자신의 열등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변명하는 것일 뿐 자신이 이 길을 선택한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유세현은 스스로 이 길을 선택했다는 걸 무척이나 잘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렇기에 되려 상대를 향해 되물었다.

“내게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설마 뭐... 마음을 열라...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사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누군가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언제 당할지 모르는 사기, 그리고 뒤에서 이루어지는 험담.

겉은 웃고 있어도 속은 아닌 게 사람이다.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벽을 가지고 있다. 단지 높냐 낮냐의 차이일 뿐.

유세현은 경험한 일로 인해 벽이 올라간 것일 뿐이었다.

단지 턱없이도 많이.

하지만 이런 사람이 과연 자신뿐일까?

60억 이상이 존재했었던 그 세계에서?

아닐 터다.

분명 한 명 내지에서 두 명, 아니 어쩌면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유세현은 상대방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의미를 파악 할 수 없었다.

이건 단지 꿈속이라 몽롱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왜 알지도 못하는 자와, 수상한 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

이에 영혼을 관장하고 그 깊은 내면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스템, 사람들의 광기에 의해 망가져버린 크람베르가 아닌, 때묻지 않은 순수한 크람베르는 탄식했다.

크람베르가 읽은 유세현의 재능은 공감능력이었다.

그건 단순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것이 아닌, 순수한 의미에서 상대방이 느끼는 기분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었는데, 지금 그는 마음의 벽을 너무 높이 쌓은데 더해 일부러 타인을 배척하며 그 능력을 일부러 억누르고 있었다.

공감 능력을 발휘할 때는 오직 사람을 의심하고 원하는 해답을 얻어내고 싶을 때.

이건 결국엔 결과만을 위한 것이기에, 유세현에게는 되려 악영향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크람베르는 그가 무의식 상태인 것을 이용해 심기를 긁는 식으로 이끌어나가 어느 정도 벽을 허물려 했지만, 그는 가치관이 너무도 확고했다.

스스로의 상태를 무척 잘 알고, 이를 인정하기까지 하며, 이 일에 한에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에 이래서는 어떤 식으로든 뭘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넌 앞으로도 줄곧 그리 살아갈 거냐? 좋은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일부러 배척해가며?]

“...배척이라... 난 굳이 누구를 배척하진 않아, 단지 믿지 않을 뿐.”

[그게 배척이라는 거다.]

“아니, 사람의 관계란 적당한 수준에서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지가 된다. 그 자가 좋은 품성을 지닌 인물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싫어도 자연스레 드러나게 되지. 그런데 내가 왜 굳이 그자의 세심한 부분까지 알려 해야 하지?”

유세현의 말에 크람베르의 연산시스템이 격렬하게 돌아갔다. 유세현이 하는 말은 전부 일리 있는 말이었다. 대체로 많은 생물들이 그리 살아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능력을 이끌어낼 수 없다.

크람베르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현재로선 그 누구도 이 두꺼운 벽을 허물 수 없다.’

그래서 크람베르는 어쩔 수 없이 유세현에게 존재하는, 그의 또 다른 가능성을 깨워주기로 했다.

[너의 가능성을 깨워주지.]

그 순간 유세현의 눈동자의 생기가 돌아왔다.

크람베르가 공간을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식의 세계로 전환한 탓이었다.

이제야 이곳에 들어온 목적, 목표를 확실히 떠올린 유세현이 잔뜩 반색하여 말했다.

“정말인가?”

[물론... 본래라면 불가능하지만 이 힘은 원래부터 깨어있었기에 가능하다.]

“...원래부터라고?”

[그렇다. 너는 사실 이 힘을 일깨운 지 꽤 되었다. 단지... 너의 힘이, 그리고 몸이 거절하고 있었기에 사용하지 못했을 뿐.]

“몸이?”

유세현의 고개가 갸웃 꺾였다. 그는 지금 시스템이 하는 말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 몸이 거절한 것이다. 너의 곁에 있는 영혼들도 네가 이 힘을 사용하지 않기를 바랐지.]

“영...혼?”

[자, 이제 돌아가라. 너는 이제 네가 일깨웠던 그 파멸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잠깐, 영혼이라니? 그건 무슨 뜻이지? 내 의지를 말하는 거냐?”

[돌아가라.]

크람베르의 단호한 외침이 공간에 울려 퍼졌다.

후우욱!

의식이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간다. 유세현이 눈을 떴을 땐, 이미 캡슐의 문이 완전히 개방된 상태였다.

[고유특성: 새크리파이스(sacrifice)를 개방하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이용해 발현할 수 있습니다.]

[대가는 생명의 1/2 입니다.]

유세현의 눈동자가 고유특성 창을 멍하니 응시했다.

새크리파이스, 자신의 생명을 바쳐 사용하는 특성.

“하...”

그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미 개방되어있지만 몸이 거절한 능력이 뭘까 했는데 딱 그 단어에 맞는 힘이었다.

엄청난 대가.

이건 생에 단 두 번 밖에 쓰지 못하는 능력이었다.

게다가 그 한 번마저도 사용하면 그만큼 수명이 줄어들건 불 보듯 뻔했다.

두 번 사용하고 나면 아마도 능력이 종료된 뒤엔 생명이 다해 사망할 터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어차피 이 세계에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이 보험은 나쁘지 않다.

꾸욱-

주먹을 움켜쥔 유세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답은... 얻었나?]

망령이 물어왔다. 유세현은 그런 망령의 말을 무시하며 되려 반문했다.

“그보다도 당신은 누구지?”

[후후, 그걸 이제 묻는 건가?]

“답해줄 수 있나?”

[물론, 난 자네를 위해 안배된 장치니 말이지. 난 람델 아루브리스다.]

“람델 아루브리스...”

육체는 지니고 있진 않지만, 4명의 과학자 중 한 명이 틀림없었다.

[뭐, 그렇다 해도 본체는 이미 소멸했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짜에 불과한 존재다.]

“흠, 그런가. 그럼 네 스스로 안배된 장치라고 했으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혹시 이 연구소 최심부로 향할 수 있는 최단거리도 내게 알려줄 수 있나?”

유세현의 물음에, 이 상황을 언짢아하고 있던 연합군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들었다.

만약 놈이 가능하다면 이건 무척 큰 수확이었다.

람델이 말했다.

[...가능하다.]

그러나 뭔가 많이 불편한 기색이었다. 마치 말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랄까?

‘하긴, 그렇겠지.’

람델은 도박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핵심 멤버로서, 처음부터 지금 상황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만에 하나라도 연합군이 그곳에 가 크라베스를 소멸시키게 될 시, 그들의 종족은 부활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니 사실은 가르쳐 주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있는 람델은 본체가 아닌, 안배되어있는 장치.

과거 마왕조차도 이 세계를 만든 신의 법칙만큼은 깨지 못해 마왕성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고려했을 때 그가 거역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0%나 다름이 없었다.

[코드를 주겠다. 손을 내밀어라.]

유세현이 요구에 따라 손을 내밀자, 손등에 빛이 떨어지며 보이지 않는 글귀가 새겨졌다.

“이건?”

[코드를 사용하겠다고 의식해봐라 그럼 알 수 있을 거다.]

“흐음...”

유세현이 사용하겠다고 생각하자, 손등에서 빛이 새어나오며 연구소 모형을 띄고 있는 3D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세세하게 길이 나타나 있는 게 누가 봐도 지도였다.

‘호오...’

유세현의 마음속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솔직히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람델에게 질문 해본 것이었다.

그런데 고유특성을 개방시켜주고, 지도까지 제공해 주다니?

‘이게 신물 파편 조각의 위력인가...’

이 정도라면 스텟 상승을 제외하고도 리스크를 짊어질 가치가 충분히 있다.

아니, 사실 신물 파편 소유자라 할지라도 이곳까지 도달하기는 무척이나 힘들 터이기에 어쩌면 이 정도는 타당한 보상일 수도 있었다.

아무쪼록.

“세세하군.”

“이 정도라면 적을 피해 움직일 수도 있겠어.”

어느새 유세현의 곁에 철썩 붙어 지도를 살핀 엘프와 델바람들이 반색했다.

이에 유세현은 아예 뽕을 뽑기 위해 뭔가 더 얻을 수 있는 게 없나 또다시 물어봤지만 람델은 더 이상 줄 것이 없다고 완전히 쐐기를 받았다.

지이잉-

들어 온 입구 반대로 출구가 개방된다.

[이곳으로 나가면 지하 2층에 있는 N-3지역이다.]

“알았다. 고맙군.”

연합군이 발길을 밖으로 향하자, 내부의 전원이 서서히 다운되기 시작했다.

텅!

터텅!

조금씩, 칠흑 같이 내부가 어두워진다.

[아... 부디 제발...]

람델의 잔잔히 울리는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연구실에 메아리 쳤다.

* * *

특별히 대리자들에게 붙여놓은 망령들에게서 정보를 취합하던 크라베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뭐지?”

카그네프 제벨에게 붙여뒀던 망령에 이어, 이제는 유세현에게 붙여뒀던 망령까지 소멸한 탓이었다.

“흐음...”

크라베스는 유세현에게 우회하는 길 만큼은 확실히 일러줬었다.

때문에 망령이 없어도 결국 도달은 할 것이나, 이렇게 되면 소통이 불가능했다.

‘싸움에서 내 망령을 방치했다는 건가...’

지금까지 유세현은 적을 이용해 망령을 소멸시키려하긴 커녕 은연중에 보호했다.

그 또한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자각 하고 있는 만큼 크라베스가 다급해졌을 때, 보다 빠른 길을 알려올 거라는 걸 알고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유세현을 따라다니던 망령 10마리가 전부 소멸했다.

이건 고의가 아니고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다른 길을 알아냈다는 건가?’

이제와 갑자기 알아낸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했으나,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도가 딱히 없었기에 크라베스는 그리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카그네프도 그렇고... 짜증나는군.’

마음 같아선 전부 죽여 버리고 싶은 심정.

그러나 아직은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

‘조금이다... 조금만 더 가면...’

쿠구구궁!

그때 대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편에서 나타난 망령들이 크라베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건...’

스스슥-

새까만 그림자와 함께 크람베르와 추종자, 그리고 마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하아, 안 만나길 바랐는데 말이지...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벨제뷔트가 크라베스와 사도들을 보며 귀찮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크람베르가 그를 향해 명령하듯 말했다.

“내 하인들을 일부 붙여 줄 테니 놈들을 맡아라. 나는 정수가 있는 곳으로 향하겠다.”

“......”

이에 벨제뷔트의 심경이 뒤틀리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크람베르가 부활한 이후 지금까지 놈의 만행을 줄곧 참아오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놈이...’

하지만 그는 티를 내지 않았다.

이 유적에서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핵심으로 보이는 정수에 다가서기 위해서.

“알았다. 가봐라.”

크람베르가 한 단계 낮은 등급의 추종자 여섯과 수많은 망령을 붙여주고 사라졌다.

“어딜...”

크라베스가 손짓하자 이브와 클락 등 고위 사도들이 나섰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지금은 너희를 보낼 순 없다.”

“...벨제뷔트라는 이름이었나? 멍청한 놈. 넌 지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는 알고 있는 거냐?”

“...알지...”

중얼거린 벨제뷔트의 보랏빛 눈동자가 살의를 발했다.

“그러니 잠시만 같이 놀아보자고!”

“멍청한!”

쿠웅!

크라베스와 벨제뷔트의 세력이 격돌했다.

정수 전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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