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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17화 (40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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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람베르의 망령을 반으로 가른 유세현의 눈동자가 흉흉한 빛을 발했다.

현재 그가 위치해있는 장소는 지하 1층으로, 안내에 따라 내려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유세현의 기분은 그것과 별개로 무척 좋지 않은 상태였다.

‘강호와 주희가 공격당했다.’

다행히도 죽지는 않은 것 같았으나, 어느 수준의 타격을 입었을지는 감도 잘 안 잡힌다.

‘어쩌면 어디 사지 하나가 잘려나갔을지도...’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력은 고사하고 체력조차도 거의 고갈됐을 테니까.

뿌득-

유세현의 이가 악물렸다.

그는 지금 마음이 급했다.

‘빨리... 최대한 빨리 가야해.’

이 연합군이 전장에 제대로 뛰어든다면 그 강함에 의해 자연스레 시선을 끌게 될 테고, 이강호와 김주희가 회복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유세현의 큰 바람일 뿐이었다.

‘제길, 이 망령... 역시 빙빙 돌아갈 생각인가 본데...’

또 다른 전투가 끝이 났다.

유세현은 초조함에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박박 긁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

“세현씨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이에 위화감을 느낀 루시펠이 물어왔다.

유세현은 이마를 붙잡은 채 고개를 저었다. 보는 눈이 있는 이상 대놓고 얘기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머리가 지끈거려.’

그 느낌은 흡사, 통로에서 심장이 두근거리던 것과 같은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감정조절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째 나아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거 같은데...’

처음에는 심장, 이번에는 머리, 혹시 자신도 모르는 새에 무슨 스킬에라도 걸린 것일까?

그가 재차 이동을 시작한 망령을 뒤따라 어떤 연구실의 내부로 들어갔을 때였다.

파앗-

난데없이 유세현의 전신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어?”

“지금 뭐 하는 거냐 유세현?”

순간적으로 놀란 천사, 엘프, 델바람들의 시선이 너나 할 것 없이 유세현에게 쏠렸다.

허나 이 순간 정작 제일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유세현이었다.

‘뭐...뭐지?’

이건 유세현이 발산한 스킬 같은 게 아니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유세현,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다.”

“......”

유세현은 당연히 연합군의 의문에 답해줄 수 없었다. 원인을 알아야 뭔가 꾸며서라도 말할 터인데, 이건 정말 난데없이 발생한 일이었다.

‘뭐, 뭐지? 설마 르벤 하트루프의 일지 때문에? 아니야, 만약 그런 거라면 내 몸이 아니라 일지에서 빛이 새어 나왔어야 해.’

“유세현... 우리말이 우습게 들리나? 네가 아무리 길을 잘 찾아내고 있다 하더라도 현 상황에서만큼은 이런 식으로 행동해선 안 된다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을...”

그런데 경고를 보내고 있던 인원이 채 말도 다 끝마치지 못했을 때였다.

지이잉-

철컥-

여태까지 연합군이 진입하면, 천장에서 불쑥 튀어나와 공격하기 바빴던 레이저병기가 다시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응?”

동시에 외벽 곳곳에 박혀 방을 장식하고 있던 기기장치에 불빛이 들어왔다.

“뭐, 뭐지?”

누가 봐도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양상.

이윽고 톱니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방의 구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트드득-

바닥에서 레일이 융기된다.

기기장치들은 곧 이 레일에 맞춰 한곳으로 차곡차곡 정렬되어갔다.

연합군은 원의 형태로 진형을 다잡고 등을 맞댄 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마침내 기기장치가 전부 옮겨지자, 이제는 깔끔해진 벽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새로운 길이 개방된다.

그건 어딜 봐도 통로였다.

“...유세현?”

연합군 대다수가 동시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해명하라는 것이었지만 당연히 본인조차도 왜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하는 유세현은 그저 가보자고 고개를 으쓱 거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네가 선두에 서라.”

“그러지.”

저벅. 저벅.

유세현은 연합군의 요구대로 앞으로 나섰다. 내심 불안하긴 했으나 확실히 이건 자신 때문에 발생한 일이 맞았음으로 선두에 서야하는 게 맞는 것이었다.

계단이 아래로 곧게 뻗어있다.

외벽에서는 빛이 새어나와 길을 밝혀주고 있었는데 길게 선처럼 되어 계속 이어져 있는 것이 이정표라는 느낌을 자아낸다.

여태까지 겪어온 것에 비하자면 상당히, 아니 무척이나 친절한 길이었다.

‘하지만 이게 만약 함정이라면...’

본디 함정은 대놓고 목숨을 노려오는 것보다도, 이런 쪽이 더 무서운 법이다.

뭐가 도사릴지 몰라 그가 주의하고 또 주의하며 서서히 나아가자 그 신중함에 연합군들도 긴장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계단의 끝.

“여긴?”

당도한 장소는 꽤나 협소한 공간이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종류의 수많은 기기장비가 놓여있었고, 전방에 위치한 투명유리로 된 거대한 벽 너머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이전 봤던 포르말린에 들어있던 액체와 똑같은 빛깔이군.’

두리번거리던 연합군 한 명이 말했다.

“뭔가 실험실 같군.”

“흠... 그럼 일단 좀 둘러보도록 하지. 함정 같은 건 없는 거 같으니.”

연합군은 더 이상 유세현에게 따지지 않았다.

유세현이 숨기고 싶은 게 있든 없든 그가 이곳에서 뭔가를 하게 될 시 어차피 같이 있는 자신들도 함께 알게 될 테니 지금은 그냥 덮기로 한 것이다.

만약 이를 의식해 아무것도 안한다면?

공유하는 것보다 손해인데 그럴 리가 없었다.

여러 장비를 만져보던 유세현이 특정 기기장비에 손을 얹은 순간이었다.

[대리자 인식 완료.]

우우웅!

이전과 같이 방 전체에 불빛이 들어오며 기기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연합군은 이때를 놓칠 새라 잽싸게 유세현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스스슥-

땅이 갈라지고 그곳에서 원통이 올라온다.

그건 포르말린 병이었는데, 내부에는 라벤 때와 같이 오염되지 않은 망령이 들어있었다.

눈을 뜬 망령이 이 상황이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호오, 마침내 약속의 때가 찾아 온 모양이군.]

“...약속의 때? 그게 뭐지? 아니, 우선 당신의 정체부터 밝혀라.”

[미안하지만 내가 반응할 수 있는 자는 오직 단 한 명뿐이다.]

“뭣?”

망령의 시선이 한 인물을 똑바로 응시했다.

누가 봐도 유세현이었다.

“나 말인가?”

[그렇다. 나를 깨운 장본인. 나는 너를 위해 이곳에 줄곧 잠들어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유세현이 의문어린 목소리를 토해냈다. 아까 전에도 그렇고, 그는 이 상황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니?

이는 특별대우가 분명했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이 특별대우를 받을 만한 꺼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너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어서 이곳을 찾은 게 아니었나?]

“...능력?”

[그렇다. 흠... 왜 모르는 척을 하는 거지? 설마 아무 생각 없이 이곳을 찾았다는 거냐? 이 세계의 가장 깊고 깊은 곳에 위치해 있을... 100억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이 강철의 성을?]

‘?!’

순간적으로 유세현의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100억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강철의 성.

뿔뿔이 흩어진 동료들의 안위에 정신이 팔려, 마냥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맞아... 이곳이 바로 강철의 성이었지.’

퍼즐이 순식간에 맞춰진다.

이것이라면 왜 자신의 몸에서 빛이 새어나왔는지도 설명이 가능했다.

[아무쪼록... 만약 아무 생각 없이 도달한거라면 정말 운이 좋구나 대리자여...]

망령이 감탄했다.

유세현은 온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있다는 것을 느끼며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럼 나의 능력을 향상시켜줄 수 있는 건가? 지금 바로?”

[모르지... 그건 네 손에 달려있는 거다. 너의 의지, 그리고 마음... 나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일 뿐 직접적으로 관여하진 못한다.]

망령이 시선을 돌리자 그 끝에 위치해 있던 캡슐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저곳에 들어가라. 그리고 시험해봐라 자신을.]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지?”

유세현이 물었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만약 오래 걸릴시 포기할 생각이었다.

지금 동료들은 1분 1초를 앞다투고 있을 테니까.

[시간이라... 얼마 걸리지 않는다. 길어봐야 1분 정도겠군.]

“1분? 확실한가?”

[그렇다.]

망령은 단언했다.

이에 유세현은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그가 내부 신물 파편을 지니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종족은 천족과 티탄, 그리고 스토르 벤 정도뿐인데, 스토르 벤과 티탄은 이 장소엔 없었고 천족은 함정에 빠져 오르엠이 죽은 상황이었다.

함정일 확률은 거의 없는 것!

그렇다면 1분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고도 남는다.

유세현이 발걸음을 옮기자, 주위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뭐냐? 어째 서지? 왜 유세현만 저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거냐!!”

“대답해라! 당장 죽기 싫으면!”

[......]

몇몇은 협박까지 해왔지만 망령은 이전 자신이 한 말을 고수하듯 반응하지 않았다.

들어가기 전, 아퀼라가 한쪽 무릎을 꿇고는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

“군주께서 나오실 때까지 제가 목숨을 걸고 옆에서 보필하겠습니다.”

“저도 자리를 지켜드릴게요. 세현씨.”

루시펠도 거들었다.

“크으...”

천족을 제외한 연합군 일부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천족은 이 와중에 유세현의 몸에서, 정확히는 등에서 터져 나온 광휘와 망령의 반응으로 깨달은 것이다.

‘깃털 때문이군.’

그러나 천족은 그 알아낸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다.

지금 말을 하는 순간 불화가 생길 것은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나아가는데 차질이 생길 것이고, 내분으로 인해 자칫 전멸로 이어지는 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파편을 앗아간 유세현이 증오스럽긴 했으나 지도자의 생명을 빼앗아간 벨제뷔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후우...”

유세현이 심호흡을 하며 캡슐에 누웠다.

신물 파편 조각을 지닌 자를 위해 안배되어있던 장치. 과연 자신은 이 장치를 통해 더 강해질 수 있을까?

고유특성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지이잉-

캡슐이 닫히기 시작하자 어느새 유세현의 근처 포르말린 통으로 이동한 망령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것보다 재미있구나...]

‘...응?”

[한 몸에 세 개의 영혼이 함께 존...]

철컥-

유세현은 중간 이후부터는 듣지 못하고 그대로 의식의 끊겼다.

* * *

쿠구구구구!

기억의 폭포가 콰르르 떨어진다.

유세현은 그 폭포 한가운데서 멍한 눈초리로 물줄기를 맞고 있었다.

‘어... 이건...’

여러 광경이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또렷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의 공존, 그건 실로 묘한 기분이었다.

그중에서도 선명히 보이는 것은 동료의 얼굴.

같이 시작한 이강호와 김주희, 그리고 판도라에서 조우한 이태광.

계속해서 루시아와 그의 아버지인 지드먼 아인셰르 등등이 보이다가 갑자기 장면이 전환된다.

파앗-

그는 난데없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 껴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왼쪽으로는 친구들과 적당히 어울리며 활기차게 활동하던 자신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자신이 서 있었다.

‘대체 이게 뭐지?’

유세현은 그 두 개를 두리번거리며 번갈아봤다.

말도 안 되는 일도 꿈에서는 전혀 자각하지 못하듯이 그는 지금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파앗-

장면이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동료들이 정겹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세현씨.”

“유세현!”

“선배니이임!!”

유세현은 그들을 웃으며 맞아주었다.

파앗-

이번에는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유세현은 볼 것도 없다는 듯 그들과 벽을 쌓았다. 대놓고 무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떤 물음에도 딱 중간 정도로만, 그저 적당히 넘어갔다.

그러자 바로 귓가에서 누군가가 속삭이듯 말이 들려온다.

[왜 배척하지?]

무의식 속이기에 몽롱하기 그지없던 유세현은 바로 답했다.

“가치가 없으니까.”

믿지 않는다. 이건 그 사건 이후 유세현이 줄곧 살아온 방식이었다.

[모순이군. 이들에게는 그러지 않는 주제에.]

동료들의 얼굴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이들은 다르니까.”

[뭐가? 신뢰가? 그렇다면 너는 처음부터 이들에게 신뢰가 있었나?]

“......”

[너는 단지 두려운 것일 뿐이다. 검증되지 않은 자를 믿음으로서 추후 입을 지도 모르는 마음의 상처를 말이지.]

고유특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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