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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하하하하!]
[낄낄낄낄!]
튀어나온 망령들은 허공을 유영하며 무작위로 공격을 가했다.
이에 마족과 천족은 잔뜩 당황하여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싸우고 있던 상대를 계속 상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놈들부터 먼저 처리해야 하는가!
“이런 젠장할! 망령들이 왜 갑자기...”
“빌어먹을! 마족놈들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상황이건만...”
원래부터 아수라장이었던 이곳은 지금에 들어서는 연옥보다 더한 생지옥으로 변모해있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닥친 시련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망령들과 함께 균열 속에서 마침내 사도들과 크라베스, 그리고 델바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크라베스가 팔을 쭉 뻗으며 세상을 다가진 것 마냥 포효했다.
“하하하하하! 내가 왔다 렘벨크!”
이에 벨제뷔트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빠르게 장소를 이탈하고 있는 렘벨크에게 물었다.
“놈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파악하고 있었지.”
“그런데 이렇게 접근할 때까지 몰랐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
렘벨크의 시선이 한순간 등 너머에 있는 크라베스를 향했다. 잔뜩 굳은 표정과 잔잔히 떨리는 입가가 그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비춘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놈이 모종의 수를 쓴 거다. 본래라면 이곳에 하루가 지나도 당도하지 못했어야 정상이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던전에선 여러 가지의 이유로 항상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어떤 완벽한 작전이든 실행 5분 만에 개판이 되는 꼴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는 변수를 원천 차단한다. 완벽하게 정복하지 않으면 당최 그 장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병력들로 길목도 막았고, 얻어놓은 여러 아이템들로 감시술식을 작동시켜 놨는데 그걸 전부 피해서 접근하다니?
‘게다가 타이밍이 너무 완벽하잖아?’
노리지 않은 이상에야 이렇게 될 수가 없다.
만약 노리지 않았음에도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건 나가 죽어야 될 정도로 운이 나쁘다는 뜻이다.
‘아니... 정말 어쩌면...’
정말 운일지도 모른다고 벨제뷔트는 생각했다.
놈들이 나타난 곳이 다름 아닌 대천사들이 만든 균열이었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이고 미카엘이고 빌어먹을 대천사 놈들!! 렘벨크! 크람베르를 부활시키면 당연히 상황을 역전할 수 있는 거겠지?”
“아니, 역전은 무리고 비등해질 거다.”
“비드으응?”
벨제뷔트의 눈썹이 팔자로 휘며 미간에 험악한 주름이 잡혔다. 그는 당장에 폭발할 기세였다.
그러자 렘벨크가 이를 눈치 챘는지 오해라는 듯 재빨리 말을 이었다.
“부활한 크람베르님은 곧바로 본래의 힘을 발휘하지 못 하신다. 잠들어있는 정수를 흡수해야 온건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시지.”
“정수?”
벨제뷔트의 고개가 일순간 갸웃 꺾였다.
지금까지 추종자들과 많은걸 함께하면서도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벨제뷔트는 추종자가 지금까지 말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수가 예사 물건이 아니라는 걸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도출해냈다.
‘어쩌면...’
“정수가 뭐지? 뭔데 굳이 그걸 흡수해야 하는 거냐?”
“......”
벨제뷔트가 묻자 렘벨크의 입이 한순간 꾹 닫혔다. 벨제뷔트가 폭발할 것 같아 일단 말하긴 했으나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표정이었다.
벨제뷔트가 쓰윽 눈동자만 돌려 의구심의 찬 눈초리를 보내자 렘벨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크람베르님께서 봉인당할 때 떨어져나간 힘이다.”
“힘?”
“그렇다. 자세한 건 말해봤자 모를 테니 생략하지.”
“흐음... 그렇단 말이지.”
벨제뷔트는 별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했다. 하지만 그는 겉모습과는 달리 재차 느끼고 있었다.
‘그 정수야말로 어쩌면...’
이 유적 공략의 핵심이 될 수도 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먼저 그걸 챙겨 잘 만 이용한다면...’
모든 걸 얻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벨제뷔트는 이를 악물고 뒤를 돌아봤다.
“크아아악!”
“퇴각해라!”
“천사와는 싸우지 마! 저놈들부터 상대해! 천사! 너희도 우리를 공격하지마라!”
크라베스의 참전으로 인해 수많은 부하가 목숨을 잃고 있었다.
게다가 저곳에는 잔뜩 공들인 루시펠도 기절하여 쓰러져 있는 상황.
으득-
욕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는 단순히 신물파편만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막대한 손해를 최대한 메우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 *
“하하하하하! 죽어라!”
“크윽!”
퍽-
카그네프의 일격에 마족 두 명의 몸이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상당한 힘을 갖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천사들을 상대하느라 힘을 많이 소진하여 차마 막지 못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현재 이곳에서 카그네프는 완전 살판이었다.
“죽여라! 죽여! 전부 때려눕혀라!”
적이 쓰러질 때마다 코인이 터져 나온다. 스텟이 높으면 높을수록 잘 올라가지 않기에 좋을 게 있나 싶지만, 그럼에도 간간히 떨어지는 스킬이나 속성저항력 코인 같은 건 카그네프로써도 상당한 수확이 아닐 수 없다.
“크흐흐, 여자! 우리 코인에 손대면 끝장날 줄 알아라!”
“......”
이에 루시아도 카그네프를 따라 일단은 적을 죽여 나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도주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천사와 마족들의 스텟은 상당하다. 힘과 민첩을 제외하고 낮은 축에 속하는 그녀에겐 이 난장판이 스펙업을 하기에 절호의 찬스인 것이다.
이런 기회는 결코 흔치않다. 아니, 아마 이런 기회는 다신 돌아오지 않을 터.
게다가...
‘지금 도망쳐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럴 바엔 차라리 따라다니며 정보를 최대한 모아두는 게 추후 동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도주하는 적을 응시한 크라베스가 망령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쫓아라!”
[캬아아아아!]
망령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적에게 달라붙어 죽을 때까지 놔주지 않았다.
“염별할! 부상자는 그냥 버려라!”
“마기병들은 다가오지 못하게 놈들을 막아!”
고래싸움에 새우등 휠라, 근처에서 길목 차단 역할만 하고 있던 마족의 군대가 대거 투입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기방패가 된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열심히 분투했다.
“이 싸움에서 살아남는 자! 대악마도 결코 꿈이 아니리!”
“죽여라! 너희들이 죽인 놈들의 코인은 다 너희 것이다!”
지휘자의 말처럼 보다 순도 높은 코인을 먹고 이 전장에서 살아남을시 그들도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세계는 본래부터 약육강식이었다.
“귀찮은 놈들! 가라 사도들아! 추종자들을 절대 놓치지 마라!”
“예!”
“카그네프! 너도 성의를 보여라!”
“크크큭! 하고 있지 않나!”
“잔챙이들 말고!”
“그럼 원하는 대로!”
퍼엉!
퍼버벙!
수많은 스킬들이 얽히고설키며 허공을 수놓자, 이윽고 공진을 더한 폭발이 일대를 광활하게 날렸다.
* * *
“......”
유세현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재가 된 천사와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내장이 드러난 채 죽어있는 악마가 수도 없이 많이 보인다.
현재 유세현은 격류의 중심지였던 전장에 서 있었다.
전투를 치르던 데프하우어와 마족들이 갑자기 다급하게 물러남에 따라 마침내 이곳에 다다를 수 있던 것인데... 드람이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심각하군.”
이에 엘프 델바람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이정도의 대규모 전면전은 결코 흔치 않는 일이었다.
판도라의 외부, 또는 내부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낮은 스텟을 지니고 있는 종족들은 아직도 많은 전면전을 벌인다지만, 그건 그들의 스텟 복구가 쉽기 때문이기에 이들과는 입장이 아예 달랐다.
고위 대리자들은 피해가 나면 치명적이기에 전면전은 웬만해선 기피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양측, 아니 천족이 특히 엄청난 손실을 입은 것 같군.”
“대체 뭘 걸었기에 이렇게 미친 듯이 싸운 거지?”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한 엘프가 툭 말했다.
“뭐긴 뭐겠어. 이런 종족전을 벌였으면 답은 하나지.”
“신물파편인가...”
“아마도.”
연합군의 눈이 일체 빛을 발했다. 뿔뿔이 흩어져 그들의 상황도 비록 좋지 않다고는 하나, 이건 확실한 희소식인 것이다.
잘만하면 어부지리로 운 좋게 이 게임에서 이길지도 모른다.
시체를 살피던 데르프푸스가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정말 급하긴 급했나봐? 아이템도 회수하지 않고 그냥 갔는데?”
“호오... 쓸 만한가?”
“레전더리 C랭크 갑주야.”
“그럼 그냥저냥 이군.”
“좀 더 찾아볼까?”
탐욕이 솟구쳤는지 델바람들이 시체 더미를 뒤지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드람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이를 제지했다.
“정신 차려라. 지금 한낱 아이템에 정신 팔릴 땐가? 자칫하면 우리도 위험할 수 있다.”
“하, 알고 있다고. 그냥 해본소리야. 해본소리.”
그러면서도 데르프푸스는 자신이 발견한 갑주를 시체에서 빼내 포켓에 집어넣는 행동을 보였다.
유세현은 그게 어이가 없어 실소를 내뱉음과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했다.
‘현재 크라베스는 마족을 추격하고 있다.’
천족은 뿔뿔이 흩어진 상황.
이에 놈들의 뒤를 따라가는 건 충분히 가능한일이었다.
문제는 크라베스에게 발각 당할 수가 있다는 것.
유세현은 루시아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놈이 단번에 공간을 뛰어넘어 이곳에 도착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지 못하는 모종의 수를 쓴 게 분명하니, 지금의 마족처럼 난데없이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결코 없는 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다.’
저쪽에는 루시아가 잡혀 있으니까. 게다가 동료들과도 합류해야 된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어쩔 수가 없다.’
유세현이 뒤를 밟자고 연합군에게 말하려던 때였다.
트드드드드-
시체의 산이 우르르 무너지며 수많은 시체들이 굴러 떨어진다. 그중에는 유난히 독특한 차림새를 한 생명체가 있었는데 드람이 확인하기 무섭게 반응했다.
“어? 이놈은?”
“루시펠?”
데르프푸스도 익히 그녀를 잘 알고 있는지 중얼거렸다.
유세현은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응시했다.
몇몇 델바람들의 그녀를 비웃는 목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크크, 정말 비참한 꼴이군.”
“루시펠도 결국엔 이 정도였다는 거지.”
찢어진 날개, 부서진 갑주위로 내비치는 그을린 살결.
곧 우악스러운 델바람들의 손이 그녀의 육신으로 향했지만 유세현은 가만히 있었다.
고인을 유린하기 위한 행동이 아닌, 아이템을 빼내기 위한 일련의 작업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흐흐, 대천사의 갑주는 강력한 자가수복 마법이 걸려있지. 이 정도면 아직 쓸 수 있을게 분명하다.”
“무기는... 무기는 없나? 근처를 찾아봐!”
“포켓은 내가 뒤지지.”
유세현은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말없이 그녀의 얼굴만을 응시했다.
문득 보고 있자니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뱉었던 말이 떠오른다.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
유세현은 이내 시선을 휙 돌렸다.
과연 복수에는 성공했을까? 그렇다면 만족스러웠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어차피 다 끝난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계약 때문에 함께 행동했던 것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동료가 아니었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치기에는 그녀는 동료의 구출할 때 유세현에게 너무나도 많은 조력을 해주었다. 굳이 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아마 그래서 마지막 작별할 때 자신이 씁쓸하게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후우...”
유세현은 머리를 박박 긁었다. 뭔가 감정이 복잡 미묘해서 죽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때.
“어?”
루시펠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살아있다고?”
데르프푸스의 눈동자에도 놀라움이 감돌았다. 드람이 말했다.
“대박이군.”
* * *
“하하하! 이런 행운을 봤나!”
데르프푸스가 곧장 철퇴를 높이 치켜세웠다. 그의 얼굴은 루시펠의 코인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잔뜩 상기되어있었다.
그러나.
슈욱-
탁-
행동이 막힌다. 데르프푸스가 자신의 팔을 붙잡은 유세현을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응시했다.
“뭐지? 왜 막는 거지?”
“아...”
이에 드람이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많은 일이 있어 순간 까먹고 있었는데 루시펠이 이전 유세현 일행과 같이 다녔다는 걸 상기한 것이다.
두 번째 권속(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