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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놈들...”
오르엠이 사방팔방으로 신성력을 난사하며 분개했지만 딱히 적중당하는 이는 없었다.
육체의 강제 회복과 수많은 광역 강화마법의 난사, 그리고 신성력을 남발한 대가로 이제 그는 힘은 물론 집중력까지 다해가고 있었다.
아니 사실 신성력은 진즉 예전에 바닥났어야 정상이었다.
그는 현재 무리를 해 힘의 근원에서 강제적으로 신성력을 쥐어짜내고 있는 중이었다.
불지옥이 펼쳐진 대지위로 홀로 외줄을 타는 나그네처럼... 그것은 무척이나 아슬아슬하다.
조금이라도 정신력이, 그리고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면 오르엠은 그대로 쓰러질 터다.
“많이 느려졌군.”
“크크크! 제 아무리 대단해 봤자 결국엔 피조물이라는 거지!”
그런데 그런 그의 귓속으로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수많은 목소리가 울렸다.
벨제뷔트는 물론이고, 처음 보는 추종자들까지 오르엠이 무너지도록 자존심을 박박 긁고 있는 것이다.
오르엠은 열이 오를 때로 올랐지만 놈들의 의중을 알았기에 인내하기 위해 애썼다.
허나, 본디 몸이 힘들고 고달프면 올곧은 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것이 바로 생명체다.
괜히 짜증이 나고, 누군가에게 화풀이하고 싶고, 당장 목을 찢어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이 끓어오른다.
하지만 그 순간.
“하하하하! 빈틈!”
빠악-
“크으으윽!”
잡념에 의해 생긴 한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여지없이 벨제뷔트가 공격을 가해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많은 스킬의 세례.
[망자의 울음소리.]
[혼돈의 관.]
쿠구구궁!
쾅!
“크아아아아!”
정말 딱 죽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오르엠은 자신을 상대하는데 있어 힘 조절을 한다는 게 너무도 치욕스러웠지만 언급했다간 되레 조롱해올 것이 뻔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크루아크!”
“알았다!”
시선을 교차한 제2 추종자 크루아크와 제3 추종자 람이 곧바로 제압을 위해 오르엠의 양팔을 노렸다.
지금상황에서 붙잡히면 정말 끝장이었기에 오르엠은 다시 한 번 무리하여 신성력을 폭발시킬 수밖에 없었다.
쿠우우웅!
“흡!”
위력에 놀란 두 명의 추종자가 뒤로 물러나고, 오르엠의 어깨가 거친 숨으로 인해 들썩거린다. 오르엠은 곧바로 재차 신성마법을 사용하려했다.
그러나.
두근-
“컥!”
무리를 하여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던 통증과는 한 차례 차원이 다른 통증이 왼쪽 가슴팍에 일었다.
마치 심장이 갈기갈기 찢긴 느낌.
오르엠이 자신의 심장을 움켜쥐자, 그것을 본 가브리엘은 더 이상 조금의 시간도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미카엘! 라파엘! 내가 대폭관을 사용하여 시선을 끌겠다! 그사이 너희 둘이 모든 걸 쏟아 부어 균열을 만들어라!”
대폭관.
그 말을 듣자마자 미카엘과 라파엘의 표정이 일순간 착잡하게 변했다. 그건 천사로서의 근원을 버리는, 사실상 생명을 바치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걸 사용하면 정말 운이 좋아 이곳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재기불능의 상태가 되기에 두 번 다시 대천사, 아니 천족로서의 활동은 불가능하다.
천사에게는 죽으면 죽었지 절대 시전하고 싶지 않은 기술인 것이다.
“너의 충성심은 그 정도인거냐 가브리엘...”
미카엘이 중얼거렸으나 가브리엘은 이미 전신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쉬쉬쉬쉬-
푸른 물결이 은은하게 공간 전체로 퍼져나간다.
이것이 뭔지 경험해보지 못한 마족들은 의문의 찬 얼굴을 했고, 과거 대천사의 희생을 겪어본 이들은 입에 거품을 물었다.
“이, 이런 미친놈이!! 저걸 사용해?”
“자 버텨봐라 악마들아. 나의 모든 걸 담은 이 일격을.”
쿠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앙!
파동이 뻗어나갔다.
그건 열팽창에 의한 폭발 같은 것이 아니었다.
마의 힘을 정화시키는 정화의 힘.
마족에게만 작용하는 강력한 힘!
그 대단한 벨제뷔트도 이것만큼은 일단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방어에 전념해야 한다.
“큭! 과거라면 몰라도 판도라에서 저걸 사용하다니... 오르엠에게 그 정도의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나?”
오르엠도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가브리엘?”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미카엘과 라파엘이 움직였다.
신성의 힘이 각자의 무기로 집약 된다.
그걸 본 가브리엘은 대폭관을 사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좀 더 무리를 했다.
‘대폭관은 마족에게만 영향을 행사한다. 저 괴상한 놈들은 당황해서 저러고 있을 뿐 아마 움직일 수 있겠지.’
방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
스르르-
콰아아아-
신성으로 이루어진 푸른빛의 파도가 마족의 갑작스런 변화로 당혹해하고 있는 추종자들을 덮쳤다.
“이건?”
“단순한 물이 아니다! 벗어나라!”
추종자들이 힘을 방출하자 망령이 엄청난 기세로 물줄기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가브리엘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힐끗 웃었다.
스킬이 파해 되고 있음에도, 힘이 다해 몸이 추락하고 있음에도, 더 이상 살 수가 없다 해도 자신은 할 일을 다 한 것이었으니까.
“신이시어. 신께 받은 목숨, 지금 돌려드립니다.”
“가브리엘...”
동시에 미카엘과 라파엘이 일장을 힘껏 내질렀다.
“하아압!”
쿠우우웅!
미카엘의 신성염과 라파엘의 강화 신성이 합세하여 용솟음친다.
한곳에 집약되자 일순간 공간에 균열이 일었다.
이를 본 벨제뷔트는 낭패어린 표정이 되었다.
“이런!”
설마 저런 짓을 하려할 줄이야?
아니, 그보다도 대체 언제 저걸 눈치 챈 것이지?
“신이시어! 균열을 부수고 그곳으로 들어가십시오!”
“큭!”
벨제뷔트가 미카엘과 라파엘을 향해 다급히 마력을 쏘아댔다. 저런 종류의 신성마법은 약간의 방해를 줌으로서 해제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트드득-
대천사와 오르엠이 균열이 부수는 속도가 더 빠르다.
벨제뷔트가 입술을 곱씹으며 낭패어린 얼굴을 했다.
‘당했다! 저런 걸 노리고 있었다니! 피해를 일부 감수하더라도 무시하고 몰아쳤어야 했는데!’
심리를 읽혔다.
가브리엘은 벨제뷔트가 스스로의 몸을 무척 아낀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대폭관을 사용하면 필히 일단 방어태세로 전환할 것이란 걸 당최 염두하고 있던 것!
트드득-
자그맣던 공간의 균열은 어느새 머리 넓이 수준으로 커져있었다.
어깨까지 통과할 크기가 되면 몸 전체가 통과할 수 있기에 균열을 붙잡고 늘리는 오르엠의 팔에 힘이 더욱 들어간다.
‘앞으로 조금만... 조그만 더 하면...’
마침내 오르엠의 눈가에 이채가 띠는 순간이었다.
퍼버버벙!
“크악!”
수많은 망자들이 미카엘과 라파엘에게 날아들어 그들의 몸을 난자했다. 스킬이 뚝 끊기며 균열이 다시 닫힌다.
오르엠이 필사적으로 막아보려 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벨제뷔트가 탈출을 막은 주인공을 향해 잔뜩 반색하여 외쳤다.
“렘벨크!”
“후, 아슬아슬했군...”
스틱스 다음가는 제사장답게 그들의 계책을 파해한 렘벨크가 손을 털었다.
이젠 그가 봐도 다 끝난 상황이었다.
대천사들은 방금 전의 일격으로 힘을 다 소진했을 테고, 밑을 받쳐 주고 있던 고위천사들도 많이 죽고 다쳤다.
특히나 이 공간은 안에선 나갈 수 없지만 밖에서는 들어올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에 천사들이 계속해서 투입되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진입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병력이 다했거나 천사들도 오르엠을 포기했다는 뜻.
“끝났군. 오르엠.”
“......”
오르엠이 이죽거리고 있는 벨제뷔트를 말없이 응시했다.
당장이라도 날아가 한 대 쳐주고 싶은 얼굴...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고 추락한 가브리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쓰러져있는 가브리엘을 보자 수많은 감정이 그의 속을 가득 메운다.
그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심란, 착잡, 그리고 슬픔.
그로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감정이 완전 해금된 이후, 자신이 진짜 신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난 뒤부터는 일부러 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애썼기 때문이다.
과거 인자했던 자신은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
그렇다, 그때의 감정은 진짜 자신이 원해서 느꼈던 게 아니다.
때문에 그는 지금까지 반대로 분노하고 모질게 행동했다.
허나, 이런 상황이기 때문일까?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것조차도 자신이었다는 것을.
“후우...”
황금빛 눈동자 속에 깃들어 있던 탁함이 사라진다.
심호흡을 내뱉은 오르엠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청렴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걸 본 벨제뷔트는 순간적으로 등골에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뭔가가 바뀐 듯한, 과거 신마대전 때 자신감에 앞서다가 압도적인 힘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그때의 오르엠을 보는 것 같은 감각.
“벨제뷔트...”
오르엠이 그의 이름을 넌지시 부르자 벨제뷔트가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벨제뷔트는 스스로 그 행동을 하고도 스스로가 믿기지 않았다.
다 죽어가는 놈에게 지금 자신이 겁을 먹었단 말인가? 천하의 자신이?
“렘벨크! 마무리를 짓...”
그런데 그때 오르엠이 한쪽 손을 높이 치켜 들어올렸다.
슈우우우-
손끝으로 순식간에 막대한 신성력이 몰려들며 태양처럼 거대하게 자리 잡는다.
있을 수 없는 일에 모두의 시선이 일순간 오르엠에게 쏠렸다.
태양을 본 고위 마족 일부가 시퍼렇게 질린 채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저... 저건!”
10티어, 최강의 공격 신성마법.
과거 마족의 땅에 강림한 오르엠이 마족에게 지옥 그 자체를 선사했던 천상의 업화.
“신일염(神日炎)!!”
“벨제뷔트, 가브리엘의 목숨 값. 너의 목숨으로 대신 받아가겠다.”
은은하게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태양이 낙하했다.
* * *
새카맣게 타버려 재가 되어버린 공간.
수북이 쌓인 재속에서 육중한 보랏빛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손이 우악스럽게 재를 밀쳐낸다.
벨제뷔트는 바깥으로 빠져나오기 무섭게 쓰러져 있는 오르엠을 보며 이를 갈았다.
“크... 오르엠...”
마지막에 멋지게 엿을 먹여줬다. 방금 전의 일격으로 무려 10명의 고위마족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렘벨크, 다른 추종자와 합세해서 방어하지 않았다면 본인도 자칫 소멸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에 이런 힘을 발휘하다니... 역시 만들어진 신일지언정 신은 신인가?
“크, 짜증나는 놈.”
벨제뷔트는 감정을 추스르며 오르엠의 머리를 짓밟았다. 죽이기 위함이 아닌 모욕을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가 발을 움직이자 오르엠의 머리가 땅에 비벼진다.
“크크크, 어떠냐? 넌 지금 내 발밑에 있다고? 이래도 내가 너보다 아래냐?”
“......”
답은 당연히 돌아오지 않았다.
“쳇! 재미없구만.”
흥미를 잃은 벨제뷔트가 손가락을 튕겨 부하를 불렀다.
여러 일이 있긴 했지만 결국 본래의 계획대로 목표를 잡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부터는 빠르게 수습을 해서 일을 진행시켜야 될 차례였다.
“큭... 신께서 당하시다니...”
온 힘을 다해 전투를 지속하고 있던 천사들의 기세가 축 쳐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천사와 신까지, 믿을만한 인물은 모두 당한 것이었으니까.
반면 벨제뷔트의 입은 언제 기분이 나빴냐는 듯 쫙 찢어졌다.
손해가 제법 있긴 했지만 이건 실보다는 득이 훨씬 많은 전투였다.
지금 반항하는 고위천사들을 전부 처리하게 되면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충복들의 스텟이 크게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손해를 메꾸고도 남는 것!
게다가 신을 잡고 일을 완벽히 성사시켰으니 고위마족들의 충성심도 더욱 올라갈 것이다.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
현재 추종자들은 벨제뷔트에게 굴러들어온 복덩이였다. 일을 이렇게 만들어준 다른 대리자에게 감사를 표한다.
렘벨크가 오르엠을 둘러업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부터 제단으로 가서 의식을 진행하겠다. 나머지 제사장들은 잔당을 소탕하기 편하도록 계속 여기에 붙여주지.”
“크크크, 드디어 크람베르가 부활하는 건가? 나도 따라가겠다.”
“뭐, 좋을 대로...”
렘벨크가 몸을 휙 돌린 순간이었다.
트드드드득-
난데없이 허공에 갑자기 거대한 균열이 일었다. 이전 대천사들이 한 번 부서 놓은 바로 그 장소였다.
깜짝 놀란 벨제뷔트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지금은 아무도 힘을 가하고 있지 않는데 저런 현상이 발생하다니?
물어보려는 순간 아차한 표정이 된 렘벨크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런! 피해라! 놈이 왔다!”
“뭐?”
[크하하하하하하!]
균열 속에서 망령들이 쏟아져 나옴과 동시에 싸늘한 광소가 일대를 쩌렁쩌렁하게 뒤흔들었다.
두 번째 권속(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