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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01화 (6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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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그 순간 카그네프의 주위를 지키고 있던 델바람들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들이 손을 휘젓자 녹빛으로 이루어진 사각형 벽 모양의 방어결계가 카그네프와 루시아 사이를 막아선다.

두개의 힘이 부딪치자 카그네프가 히죽 웃으며 눈을 빛냈다.

“후후후.”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

그러나 그 자신만만한 얼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쩌적-

“?!”

가로 막고 있던 벽에 미세한 금이 간다. 그 균열은 순식간에 커져갔다.

“아니?”

이에 술식을 펼친 델바람들도 한순간 당황하여 헛바람들을 들이켰다.

그도 그럴게 지금 그들이 사용한 술법은 Lv10로 이루어진 용인술 중 7Lv에 해당되는 상급 용인 방어 술식이었다.

혼자라면 몰라도 최상위 대리자 두 명이 합동으로 펼친 이 방어술은 그 능력이 배가 된다.

그런데 그게 이토록 빨리 깨부숴지려 하다니?

“과연 그놈들이 노릴만한 인물이라는 건가.”

처음 카그네프는 N3연구소에서 루시아가 다른 공간으로 끌려간 걸 알았을 때 의아함을 느꼈다.

어둠의 마력사용자나 화염의 강자는 그렇다 쳐도, 루시아는 단순한 그들에게 들러 붙어있는 허접한 대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접 전투능력도 발군이 아니었고, 사용하는 스킬도 죄다 조잡해서 보석속의 돌멩이인줄만 알았는데...

“그래, 이 정도는 해줘야 들춰볼 맛이 나긴 하지.”

카그네프의 신형이 일순간 사라졌다.

“?!”

깜짝 놀란 루시아는 입을 악뭄과 동시에 재빨리 뒷걸음질을 쳤다.

이렇게 빠른 속도라니?

퍼벙!

공기가 찢어 발겨지는 굉음과 함께 어느새 접근한 카그네프가 손을 뻗는다.

무기도 사용하지 않는, 상대를 깔보는 듯한 터무니없는 공격이었지만 루시아에게는 그 손이 무엇보다도 더한 흉기처럼 보였다.

‘이건 못 피해!’

루시아는 깨닫기 무섭게 방어결계를 펼쳤다.

치지지직-

고유특성을 잔뜩 머금은 반투명한 장막이 아슬아슬하게 루시아의 체내를 감싸고 카그네프의 날카로운 손톱을 막아선다.

카그네프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호오... 이걸 막아?”

그러나 이 일격은 시작일 뿐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그녀의 주위에는 수많은 델바람들이 몰려있었다.

하나하나가 루시아의 신체능력을 웃도는 힘을 지닌 자들.

하나도 힘든데 이 전부를 상대해야 하다니!

“흥! 그 알량한 재주도 여기까지다.”

“얌전히 기절해라.”

그런데 한 델바람의 공격이 닫기 직전 카그네프가 말했다.

“손대지 마라. 내가 한다.”

“......”

단 두 마디, 고작 단 두 마디었음에도 델바람들은 토 달지 않고 그대로 멈춰 섰다.

루시아는 이걸 순수하게 좋아할 수 없었다.

놈은 탑 중의 탑.

그녀가 크라베스와 한 기본적인 거래는 그와 그의 병력들로부터 신변의 안전 보장이었기에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그가 도와줄 의무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꼬였다는 걸 느끼자마자 선제타를 가한 것인데...

크라베스의 웃음소리가 일대에 광활하게 울렸다.

“크크크, 혼자 하겠다는 건가? 재미있군, 재미있어! 하지만 빨리 끝내라.”

“크라베스!!”

루시아가 그 목소리에 분노해서 외쳤다.

그러나 크라베스는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왜? 나는 너와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게다가 죽이지는 않는 다잖나?”

“으으으!!”

“크크크, 그러니 그냥 얌전히 잡히라고?”

파바바바박-

개틀링건 보다도 빠른 카그네프의 주먹이 잔상을 남기며 방어스킬을 후려 갈겼다.

루시아의 방어마법이 아무리 단단하다고 하나, 이 계속되는 연속공격을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이대로는 안돼! 어떻게든 반격을 해야!’

후웅!

루시아가 다급하게 악몽의 검 가르쉬우스를 휘둘렀으나 그녀의 자세는 이미 상당히 무너져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검격은 어설플 수밖에 없었고 카그네프에게는 닿지 못했다.

“후후! 역시 근접전은 별거 아니군.”

빠악-

“허억!”

카그네프의 주먹이 복부에 들어와 박혔다.

루시아의 몸이 자연스레 구부러진다.

제법 쓸만한 방어구로 치장하고 상당한 물리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였지만, 카그네프의 주먹은 그걸 뚫고 충격을 줄 정도로 차원이 남달랐다.

‘이게, 카그네프...’

티탄족의 케르트란 같은 델바람족의 최강자.

루시아는 고통을 뒤로한 채 검을 휘둘렀다. 살갗이 베여나가고 두드려 맞는 통증에는 이미 예전에 익숙해졌다.

어떻게든 놈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야 한다.

하지만...어떻게?

“하하, 어설퍼~ 어설퍼~”

카그네프는 노골적으로 복부만 노렸다.

루시아가 다양한 스킬을 사용해 대응했지만 어설픈 스킬은 그에게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했다.

아니, 피할 수 있음에도 과시하기위해 일부러 맞아주고 있다.

카그네프는 현재 루시아의 희망을 산산조각 내고 있는 중이었다.

절망을 선사하여 저항할 마음을 없애, 추후 내면을 보다 더 세세히 살피기 위해서.

‘이 정도면 됐겠지. 슬슬 끝내볼까.’

어린애 다루듯 압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던 카그네프가 주먹을 휘둘러 루시아의 양팔을 튕겨냈다.

순간적으로 카그네프의 비릿한 웃음이 그녀의 망막을 통해 파고든다.

‘이건?’

쉬이익!

강력한 뒤돌려차기가 만신창이가 된 루시아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팔이 순간적으로 튕겨져 나간 루시아에게는 방어불능의 공격이었다.

무조건 피해야 된다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 속을 가득 메운다.

그 순간.

후웅!

아슬아슬하게 볼을 스쳐지나가며 처음으로 카그네프의 공격이 빗나갔다.

카그네프의 고개가 한순간 갸웃 꺾였다.

‘뭐지? 왜 빗나간 거지?’

누가 봐도 정타로 들어갈 공격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직 크라베스만을 제외하고.

‘일순간 공간이 왜곡됐다.’

얼굴 주위로 아주 미묘하게.

덕분에 이 공간을 해석한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눈치 채지 못했다.

‘틈!!’

루시아는 놈이 실패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동을 이용해 검 손잡이 끝부분인 폼멜로 카운터를 날렸다.

빠악!

마음 같아선 목을 쳐버리고 싶었으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에 휘두를 간격이 나오지 않았다.

“하아... 하아...”

그녀는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단 한 번의 공격 성공.

상황은 여전히 암담하기 그지없다.

마력도 거의 다 떨어졌고, 체력도 남아나질 않는다. 게다가 얼마나 맞았는지 복부는 조금만 움직여도 찢어질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뚜둑- 뚜두둑-

안면을 강타당한 카그네프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목 관절을 풀었다.

“퉷!”

찢어진 입술에서 흘러나온 핏물을 내뱉은 그의 시선이 이윽고 재차 그녀를 향한다.

루시아는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했다.

답은 바로 나왔다.

‘자살... 자살뿐이다.’

지금 그녀는 현실적으로 이기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무리였다. 기억을 읽히게 된다면 동료들에게 엄청난 폐가 된다.

죽은 자의 기억은 엿보지 못한다는 것을 이강호에게 이미 들었으니 수는 그것밖에 없었다.

‘......’

0.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수만 가지의 오감이 교차한다.

악몽과도 같았던 인생.

유세현을 만나기전까지 그녀는 마지못해, 아버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고 있었을 뿐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또한 유세현의 동료를 만나고부터는 항상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동료들의 문제가 아닌 루시아 본인의 문제였다.

김주희와 이강호, 아퀼라는 지금껏 만났던 누구보다 뛰어나다. 절대 뒤쳐져선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항상 꿈자리에 매달려왔다.

특수특성까지 얻은 그녀였지만, 그걸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매번 짜증이 났다.

정말... 고통스럽다. 악몽이다.

그래, 악몽 말이다.

“하하...”

그녀가 역수로 검을 잡아 쥐었다.

그러자 약간 짜증나있던 카그네프와 지켜보고 있던 크라베스의 표정이 대번에 돌변했다.

“설마?!”

“막아라!”

“너희들에게 줄 기억 따윈 없어.”

루시아는 마지막으로 활짝 웃었다.

모든 것을 내려놔서 그럴까? 적을 엿 먹여서 그럴까? 무척 흡족스러운 웃음이었다.

푹-

그녀가 팔을 굽히자 가르쉬우스의 거대한 검면이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그대로 관통했다.

* * *

루시아는 자신의 죽음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현재 그녀는 어느 거대한 사원의 입구에 서 있는 상태였다.

“여긴...”

그녀는 이곳을 알고 있었다.

악몽의 사원.

그녀가 정말 우연히 특수특성을 얻게 된 장소.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손으로 쓰윽 훑자 거대한 문이 큰 마찰음을 내며 열린다.

루시아는 깜짝 놀라 잠시 뒤로 물러났다.

내부는 까마득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재차 천천히 다가서자 난데없이 어둠이 수직으로 갈라지며 거대한 눈동자 하나가 눈을 번쩍 뜬다.

어둠속에서 노란빛의 홍채가 그녀를 향하자 루시아는 기괴하면서도 묘한 느낌을 받았다.

“어...”

이건... 그래, 친근감이다. 동료에게서 느껴지는 그러한 느낌말이다.

눈이 말했다.

[너는 되다만 악몽.]

“...??”

[완전한 악몽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절망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야 하지.]

“무슨...”

[넌 관문을 통과했다.]

쿵!

문이 거세게 닫히고 그 장소가 루시아로부터 빠르게 멀어지며 작아져갔다.

슈우욱-

어느새 루시아는 원래의 장소로 돌아와 있었다.

다 놀란 얼굴로 루시아를 응시하고 있다.

루시아의 고사리 같은 목을 관통하고 있던 가르쉬우스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생채기하나 남기지 않고 지면으로 떨어지자 델바람 한 명이 마른침을 삼켰다.

“뭐, 뭐지?”

무기가 피아를 식별하다니?

한편 루시아는 뭔가가 변했음을 느꼈다.

[진정한 악몽에 한 발 다가섰습니다. 권능이 일부 개화 됩니다. 마력이 악(惡)과 함께 정말에 잠식당한 악령들을 품게 됩니다.]

[악(惡)에 관한 응용스킬을 생성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쉬이이-

그녀의 몸에서 마력이 정형화 되며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형태는 마치 악령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건... 망령?’

카그네프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그 순간 몸을 굽혀 떨어진 가르쉬우스를 주운 루시아가 검을 휘둘렀다.

이전과는 한차례 다른, 검붉은 폭풍이 몰아쳤다.

* * *

“크하하하! 그랬군! 그랬던 거였어!”

루시아의 머리에서 손을 뗀 카그네프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환희했다.

루시아는 결과적으로 카그네프에게 패배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권능의 개화와 별개로 스텟, 육탄능력 그리고 체력 등등 모든 상황이 좋지 않았으니까.

그 결과 카그네프는 현재 그녀의 머릿속을 전부 훑어본 상태였다.

다른 이들과 달리 안개가 자욱하게 껴있고 중간 중간 무엇인가 의문의 힘이 방해하여 쉽지는 않았지만 카그네프는 델바람의 수장이었다.

그 대단한 능력과 근성으로 필요한 것은 결국 전부 읽어냈다.

그가 녹안을 빛내며 이강호를 떠올렸다.

‘이강호... 그놈이 미래를 내려다보는 능력을 지닌 놈이었군. 아니, 모든 것을 알진 못하고 마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처럼 말하는 걸 보니 이 경우는 미래에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군.’

이강호는 루시아에게 자신이 회귀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허나, 루시아가 굳이 묻지 않아도 추측이 가능할 만큼 정보를 내뱉었기에 그걸 읽은 카그네프도 알아챈 것이다.

‘이건 크다...’

어마어마한 수확이다.

만약 이강호라는 놈을 잡아서 머릿속을 읽어낸다면?

천사사냥(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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