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우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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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륵- 스르륵-
새까만 어둠속을 헤쳐 나가고 있던 유세현의 고개가 왔던 길을 향해 홱 돌아갔다.
엘프 수색대에게 발각당한 이후 4시간이 경과된 상황.
보통 이정도 시간동안 공들여 은밀 기동을 했다면 이곳의 지형의 특색과 몬스터들의 특성상 엘프들이라고 한들 추적은 불가능하다 볼 수 있었다.
허나.
‘역시 느낌이 좋지 않아.’
유세현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로리엔...’
광기어린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머릿속에 자꾸만 떠오른다.
유세현이 느끼기에 그 표정은 흡사 범죄자들이 모략에 성공했을 때 짓는 그것과 동일했다.
그래, 그 옛날 튜토리얼 시절 김주희를 범하려고 했던 마도철이 이강호와 자신에게 약을 먹이는데 성공했을 때처럼...
‘그럼 뭘 성공한거지?’
사실 이건 지레짐작에 불과했다.
물적 증거 없이 단순히 표정만으로 추측한 것이니까.
허나, 그럼에도 유세현은 기억을 되살려 하나하나 꼼꼼히 짚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유세현은 로리엔을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추격당하고 있을 때였지.’
모든 엘프들이 운디네에게 속아 그녀를 쫓을 때 로리엔만은 경로를 이탈해 접근해왔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함정에 속은 리더에게 제지당하여 끝까지 확인하진 못했다.
‘그리고 이건 놈이 정말 단순 감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킬 같은 것으로 파악했던 것이었다면 확신을 가지고 보고를 했을 테니까.
유세현은 두 번째 만남을 상기했다.
‘그때는 잠시 멈췄지만 결국에는 그냥 지나쳤지.’
당시에는 적이 그냥 넘겨 집고 넘어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일행은 습격당했다.
그것도 대규모 광역마법으로.
아주 정확하게.
그리고 일행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그 습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아직도 영문을 밝혀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 방대한 양의 지식을 지니고 있는 이강호조차도 이것 만큼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도 내지 못했다.
그저 문라이트에서만 사용 가능한 아이템을 사용해 파악한 게 아닐까 막연하게 추측하는 정도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실 로리엔이 그때 우리의 정체까지도 완벽하게 알아낸 거였다면?’
유세현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자 그것을 본 김주희가 작은 목소리로 질문해왔다.
“선배님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계세요?”
“음...”
이에 유세현은 주위 경계를 늦추지 않는 반면, 생각한 바를 그녀에게 간단히 풀어 설명했다.
김주희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선배님의 기분은 충분히 이해해요. 저도 사실 좀 불안하거든요. 하지만 저번에 강호 선배님이 말했듯이 단순 스킬로 완벽한 추적은...불가능하잖아요?”
“그건 그렇지.”
상대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마력을 이용한 특수한 스킬들로 마킹을 붙이거나 해야 된다.
그런데 당시 로리엔은 그 어떤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었다.
물론, 냄새탐지 같은 감지 스킬은 마킹 같은 게 필요 없다.
허나, 일행은 이미 예전에 냄새를 지운상태.
그들은 적어도 냄새로 따라온 건 아니다.
마킹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다.
마력의 흐름에 관련된 것이기에 다른 이라면 몰라도 마력을 직접 볼 수 있기까지 한 유세현을 속여 넘길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동안 이 때문에 유세현도 로리엔의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만약, 정말 만약에 놈이 사용한 게 스킬이 아니라면?”
“예? 그게 무슨...”
“있잖아. 마력 없이도 발현이 가능한 능력이 딱 한 가지.”
유세현의 말에 김주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래 분명 존재한다.
딱 한 가지.
“설마 고유특성?”
“그래 맞아. 고유특성이라면 이 모든 게 설명이 가능하지.”
“그럴 리가 없어.”
지금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이강호가 말을 잘랐다.
“그런 놈이 판도라에서...아무튼 알지?”
루시펠 때문에 대충 얼버무렸음에도 이강호가 하고자 하는 의미는 일행에게 똑똑히 전달되었다.
극도로 먼 거리에 위치해 있는 생명체의 소재파악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의 정보를 회귀한 이강호 본인이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는 것.
유세현은 반박했다.
“미래는 바뀌는 거잖냐.”
“......”
이강호의 입이 한순간 꾹 닫혔다.
확실히 미래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많이 돌변한 상태였다.
쩔쩔 메며 간신히 외부를 나아가고 있어야 될 인간이 벌써 내부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우연일지언정 신물파편까지 손에 넣는데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이강호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맞는 말이긴 하다만. 동기가 없어.”
고유특성을 지니지 못했던 인물이 특성을 개화한다는 건 외부 요인으로 인해 특별한 조건이 갖춰진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김주희처럼.
허나, 일행이 로리엔에게 해를 끼친 것이라고는 로우윈드의 수장시절 대원들을 죽인 일 밖에 없었다.
“그리고 로리엔은 부하를 그렇게 위하는 자가 아니지.”
“확실히 그렇긴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부 옳은 말이었기에 말꼬리를 흘릴 뿐 유세현도 더는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로리엔이 일행을 발견한 게 세 번이다.
우연이 무려 세 번이나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걸 정말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
‘그럴 리가 없어.’
고민이 심층을 더해간다.
대체 뭘 놓친 걸까.
그 순간 고심하듯 생각에 잠겨있던 루시아가 고개를 번뜩 치켜세웠다.
그녀의 커진 눈동자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생각났어요!”
“응? 뭘?”
김주희의 재빠른 반문.
루시아가 말을 이었다.
“리-로버리족으로 인해 걸린 함정.”
“...??”
“그곳에서 조우한 엘프의 리더...”
루시아가 눈동자만 살포시 유세현을 응시했다. 유세현은 머리를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생각났으니까.
잦은 전투로 인해 지금껏 까먹고 있었던 그 이름을.
“...그 엘프의 이름은...”
“제르펠...디엘 라비에네크.”
유세현이 지긋이 읊조렸다.
그리고 그 순간.
휘이잉-
지금까지 고요하기 그지없던 대지에 잔잔한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일순간 어깨를 들썩인 유세현의 고개가 후미를 향해 재차 홱 꺾인다.
그가 다급하게 외쳤다.
“후방! 적습이다!”
피이이이!
쿠구구구!
놀랄 시간 따윈 없었다.
블랙홀 같은 어둠 저편에서 화살 한발이 공기층을 가르며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일행을 향해 날아왔다.
물체를 다듬어 만든 일반적인 화살이 아닌,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응축 된 화살이었는데, 장애물 때문인지 화살은 그들을 정확히 노리진 못했다.
잠시 뒤 일어날 일을 직감한 이강호가 외쳤다.
“루시아씨! 방어막을!”
피잉!
콰아아앙!
화살촉이 박히자 충격파와 함께 폭발이 주위를 잠식해 나갔다.
초토화 되는 일대!
잽싸게 반응한 루시아 덕에 피해는 없었지만...
“큭!”
유세현을 포함한 일행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놈들이 대충 화살을 날린 목적이 시야확보에 있었다는 것을 진즉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슈슈슈슉!!
아니나 다를까 일반 화살이 빗발쳤다.
언뜻 보기에는 전부 대처 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그 속에는 함정이 존재했다.
피빗!
아슬아슬하게 유세현의 옆구리를 화살 한발이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다.
다른 것과는 차원이 다른 빠르기를 자랑한 화살이었다.
“이건...”
순간적으로 캐치해낸 루시펠이 인상을 미세하게 구겼다.
이강호가 익히 상대를 눈치챘듯, 그녀 또한 알아챈 것이다.
“세현아 놈들의 수는 정확히 얼마나...”
“40명!”
“큭! 젠장! 뛰어! 이곳을 이탈한다!”
무려 6 대 40.
승산이 없다 판단한 일행은 장소를 벗어나기 위해 반대편으로 달렸다.
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또 다른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폭발로 인해 일행을 인식하게 된 몬스터들!
-크어어어!
4개의 팔에 4개의 다리를 지니고 있는 크기 5m의 괴물들이 일행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숫자는 총 10마리.
아무리 암흑지대에서 등장하는 몬스터가 강할지언정 네임드도 아닌 일반 몬스터.
대천사 루시펠이 껴 있는 마당에 상대는 당연히 가능했다.
문제는 기척만으로도 후미의 엘프들이 점점 접근해오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는 것.
유세현은 시간을 끌기 위해 후미를 향해 부패의 어둠을 날리는 등 여러 광역기를 시전 했지만, 엘프들은 대놓고 사용한 스킬을 순순히 맞아주지 않았다.
타닥-
이윽고 엘프 한 명이 나무 위에서 떨어지며 일행을 가로 막았다.
유세현은 곧장 뚫어보려 했지만 그들이 포위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놈들이 곧바로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기에 일행은 등을 맞대고 대치했다.
그러자 길이 열리며 하늘빛이 머리칼을 지니고 있는 장발의 남성이 앞으로 나왔다.
유세현은 이 자가 카시우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번 쭉 훑어본 카시우스가 흥미로운 표정을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간이 마족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도 놀라운데 대천사까지 팀을 이루고 있다니...정말 신비하군.”
“......”
“반갑다. 난 하이윈드를 이끌고 있는 카시우스 델 아르베이트라고 한다.”
자신을 소개하는 카시우스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가 스스로의 힘에 확신하고 있다는 증거.
유세현은 암흑투기의 효과를 생각해서라도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맞대응 했다.
“유세현이다.”
“호오. 유세현. 그런 이름인가...만나서 반갑군.”
카시우스가 손을 뻗는다.
마치 자신 있다면 잡아보라는 표정이었다.
유세현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지금 장난치는 거냐?”
“그럴 리가. 그나저나 볼수록 신기하군. 루시펠, 그대는 왜 이자들과 함께하고 있는 거지?”
카시우스의 시선이 루시펠을 향했다.
다른 이는 몰라도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만큼은 경계심이 잔뜩 묻어나왔다.
유세현은 왜 그가 곧바로 전투를 강행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루시펠을 신경 쓴 거로군.’
루시펠은 대천사다.
스텟이 미카엘을 웃돈다.
신성력의 순도를 떠나 따지면 사실상 오르엠을 제외하고는 천족의 2인자인 것이다.
게다가 그는 롱기누스까지 지니고 있지 않은가.
서로 구면인 것처럼 보이는 카시우스가 이를 알지 못 할리가 없다.
루시펠이 퉁명하게 반응했다.
“그대에게 설명해줘야 될 의무 따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