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63화 (363/612)

루시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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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세현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놀라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제 3세력에 의해 서로가 공멸에 위기가 닥쳤을 때, 대다수의 종족들은 투쟁을 멈추고 살 길을 도모한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찢어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죽고 싶은 생명체는 없기에 형식만 갖춰지지 않았을 뿐 이건 사실상 하나의 약속과도 다름이 없었다.

물론, 철천지원수라면 공멸을 선택할 수도 있겠으나...

루시펠은 일행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언더월드의 일도 모르고 있다는 뜻이 된다.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대체 왜...’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딱히 없다.

단지 미심쩍은 게 있다면, 루시펠이 했던 대화를 하고 싶단 말 정도.

하지만 단지 이것만을 위해 일행을 뒤쫓는다는 건 루시펠의 입장에서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러니.

‘역시 탈출수단을 지니고 있던 건가.’

유세현은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족이 추격해오고 있는 상황.

만약 루시펠이 난동을 피운다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그가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이강호가 루시펠을 향해 힘껏 외쳤다.

“우리에게서 당장 떨어져라! 아니면 공격하겠다.”

그 또한 결론을 낸 것이다.

갑작스레 루시퍼의 몸이 더더욱 가속했다.

이내 5m 남짓 하는 거리까지 따라잡은 그녀가 답했다.

“당신들은 제가 오르엠의 곁을 떠났다는 걸 알고 계시는군요.”

“......”

유세현이 살짝 놀라 어깨를 흠짓 들썩였다.

이강호의 말에서 충분히 유추해 낼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걸 알아채는 게 너무도 빨랐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당신들과 이야기를 잠시 나눠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우린 너와 할 말 따윈 없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눈앞에서 사라져라.”

그 말에 아름답기 그지없는 루시펠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지금 저와 싸우기 시작하면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으실 텐데요?”

“그렇게 되면 너도 결코 무사하지 못 할 텐데?”

“전 죽는 게 두렵지 않아요.”

루시펠의 은빛 눈동자가 한순간 번뜩였다.

각오와 진심이 비친다.

허나, 이대로 갈 경우 일행은 좋던 싫던 그녀와 함께 숨어야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그녀는 이 상황을 이용해 일행을 협박 할 확률이 무척이나 높았다.

유세현이 스르륵 검지를 들어올렸다.

급습을 가해 어떻게든 처리해보자는 신호였다.

이윽고 시작되는 공격.

콰아아앙!

나름 기습이라 할 수 있는 일격이었지만 루시펠은 이미 대비가 전부 되어있었다.

챙!

채재쟁!

루시펠은 철저하게 방어만 했다.

그리고 그게 노림수였다.

시간을 끌 경우 조급해지는 쪽은 목숨의 가치가 더 낮은 쪽이니까.

일행은 깨달았다.

완전히 잘못 걸렸다는 것을.

결국 1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이강호가 쓴 입맛을 뒤로한 채 말했다.

“여기까지 하지. 대화를 원한다고 했나?”

“예. 맞아요.”

루시펠은 담담히 답했다. 공격을 감행한 건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알겠다. 일단은 숨을 장소를 찾도록 하지. 대화는 그 다음이다.”

“알겠어요.”

루시펠이 수긍하자 일행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 * *

어둠침침한 공간.

일행이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루시펠을 포함한 유세현 일행은 바위를 쌓아올려 머리 위, 옆 할 거 없이 전체를 감싸 몸을 숨기고 있는 상태였다.

다른 지역이라면 조화가 맞지 않아 금방 발각될 것이기에 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이 지역의 지형지물은 빛을 반사하지 않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기에 재질을 알아볼 수 없어 이런 식으로 몸을 숨기는 게 가능했다.

“......”

루시펠은 일행의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천사가 가까이 근접하면 대화가 성사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인지, 루시펠이 자신을 소개하며 살며시 운을 뗐다.

“우선 통성명부터 하도록 하죠. 반갑습니다 여러분. 제 이름은 루시펠. 종족은 천사입니다. 여러분의 성함과 종족은 어떻게 되시죠?”

“......”

“아무도 답은 안 해주시면 대화가 시작 되지 않습니다만...”

멋쩍게 웃은 루시펠이 옆에 놔둔 창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답을 안 해줄 경우 깽판을 치겠다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김주희가 적의를 드러내며 톡 쏘아 붙였다.

“흥! 잘도 그딴 소리를 내뱉는군. 이게 어딜 봐서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자세지? 이건 협박 아닌가?”

“잘 알고 계시는군요. 협박 맞습니다. 당신들도 하지 않았나요?”

루시펠은 부정하지 않았다. 되려 몰아붙였다.

이는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

김주희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당연히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힘을 사용하게 된다면 이젠 천사들의 탐지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유세현이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에르브라고 한다. 종족은 인간.”

그러자 루시펠이 반색했다.

“그렇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에르브씨.”

이어서 각자의 소개가 시작되었다.

“레베카... 마찬가지로 인간이다.”

일행은 전부 본명을 속였다.

종족까지 속여 보려 했을 수도 있지만 천사는 본래부터 인간을 알고 있는 종족인지라 무리수였기에 하지 않았다.

아퀼라의 소개까지 끝나자 루시펠이 물었다.

“그녀는 분명 마족인데...어떻게 같이 다니고 있는 거죠?”

“계약 때문이다.”

“계약? 계약은 이제 힘을 발휘 할 수 없는 걸로 아는데...”

“일반적인 계약이 아니다.”

일행은 최대한 속여 말했다.

루시펠이 천사라고 해봤자 생명체, 마음을 읽은 수 없는 한 뭘 말해봤자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 따윈 없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고개를 끄덕인 루시펠의 손이 살며시 포켓으로 향했다.

“잠깐.”

유세현은 곧바로 제지했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더 움직인다면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공격을 가하겠습니다.”

진심이었다.

그녀가 무슨 아이템을 사용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공격하고 도망친다면?

물론, 막 대화가 시작된 마당에 그럴 리는 없겠지만 유세현은 잠자코 넘어가줄 성격이 못되었다.

“흐음, 불안하신 모양이군요.”

“......”

“그럼 에르브씨. 당신이 직접 다가와서 제 포켓에서 말하는 걸 꺼내주시기 바랍니다.”

“...뭘 꺼내려고 하는 거지?”

“이야기를 할 때의 필수품이죠. 제가 먼저 창을 놓을 테니 검을 놓고 다가와주세요.”

루시펠이 먼저 롱기누스를 놨다.

때문에 유세현은 어쩔 수 없이 라도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포켓이에요. 거기서 진실의 비도를 꺼내주세요.”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이강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진실의 비도라고?’

그도 그럴 것이 진실의 비도의 능력은...

한편, 포켓을 연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어떤 아이템을 지니고 있는지 최대한 많이 살펴보고 싶었는데 그녀가 말한 아이템이 거의 제일 윗부분에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빼기 쉽게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 분명했다.

“이거군.”

“예.”

유세현은 바로 아이템의 상세효과를 살폈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건!!’

진실의 비도.

그것은 검날의 떨림으로 진실과 거짓을 판단해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아이템의 랭크는 무려 에픽 SS랭크.

이 세상에 딱 두 개 존재하는 비보.

루시펠이 웃으며 유세현을 향해 말했다.

“다시 처음부터 하도록 하죠. 저는 루시펠. 종족은 천사입니다. 에르브씨 당신의 진짜 이름, 본명은 무엇인가요?”

* * *

진실의 비도는 사용자와 사용자가 지정한 대상자가 서로 동의를 했을 때 효과를 발휘한다.

거짓말을 하면 비도가 떨리게 됨으로 그 둘은 대놓고 거짓을 말할 수가 없게 된다.

루시펠에게 지목당한 유세현, 그가 안색 하나 바뀌지 않은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내 진명은 에르브다.”

진짜인지 아닌지 성능을 실험해보려는 의도였다.

지이잉-

비도의 검신이 잔잔히 울기 시작한다.

거짓.

루시펠이 고고하게 미소 지었다.

“의도는 알겠습니다만 효과를 직접 보셨으니 이제 거짓은 말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지.”

“본명이 어떻게 되시죠?”

“유세현.”

“종족은?”

루시펠의 눈동자가 재차 빛났다. 이 질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인간.”

유세현이 나직이 답하자 루시펠의 시선이 비도로 향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도는 울지 않았다.

루시펠은 정말 놀랍다는 표정이 되었다.

유세현의 종족과, 힘의 정체를 아는 자들은 대개 이런 반응을 보였기에 일행은 초지일관 덤덤한 모습을 유지했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정말로 인간이시군요.”

“그렇다.”

“어떻게 그 힘을 손에 넣으신 거죠?”

단도직입, 그리고 이미 반쯤 예상했던 질문이다.

유세현은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의무 따윈 없으니까.

이건 일종의 마지노선이었다.

더 파고들려 한다면 서로 간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잘 알고 있는지 루시펠도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이윽고 루시펠이 생각에 잠겼다.

유세현은 그런 그녀를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천사...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강호도 루시펠이 대악마의 편에 붙는 것만 알고 있지 그 외의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다.

때문에 정보를 들었던 맨 처음에는 루시펠이 야심가라서 오르엠을 배반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허나, 그건 곧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따로 세력을 이뤘다면 몰라도, 마왕도 아닌 대악마의 밑으로 들어가는 건 오르엠의 밑에 있는 것만 훨씬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이것만 알 수만 있다면 그녀의 의도를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루시펠이 재차 입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인간 유세현, 아까 보니 마족과 천족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던데...이미 그들과 한번 붙은 적이 있는 건가요?”

“......”

확 달라진 주제.

그리고 일행으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아니 심문이다.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다’라고 답하자 그녀의 손이 재차 창을 향했다.

“꼭 답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이 정도는 대답해 주실 수 있는 거잖아요?”

또 협박.

이대로라면 필히 계속 질질 끌려 다니게 된다.

이에 유세현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피할 수 없다면 절충안을 찾아야 된다.’

김주희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오려던 순간이었다.

“야 너...우리가 호구로 보이나 본데 적당히 대답 해줄 때 입 안 다물면...”

“그만.”

다르게 마음을 먹은 유세현이 그녀를 막았다. 그리고는 나직이 말했다.

“좋아. 대답을 해주겠다.”

“잘 선택 하신...”

“단.”

“...뭐죠?”

“우리만 대답하는 걸 대화라고 하진 않지. 그러니 기브 엔 테이크로 가자. 내가 한 번 답하면 너도 가치에 부합할 정도로 답해라.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리고 능력과 이곳에 온 목적에 관해서 묻는 건 거절하겠다. 대신 우리도 너의 능력과 목적에 관해서는 묻지 않도록 하겠다.”

“...좋습니다.”

“너가 지금까지 질문을 했으니 이번에 우리 쪽에서 먼저 질문을 하겠다.”

“그렇게 하시죠.”

루시펠이 수긍했다.

유세현은 다분히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는 너가 왜 우리를 뒤쫓은 건지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니 왜 우리를 뒤쫓은 건지 말해라. 의문이 생기지 않도록 상세하게.”

“......”

루시펠의 입이 한순간 굳게 닫혔다.

초강수.

처음부터 큰 것을 물음으로써 말문을 막는다!

대답하면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좋고, 답하지 못하면 질문을 할 명분을 잃게 하는 것이니 나쁘지 않다.

‘자 어떻게 할 거냐.’

유세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루시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마 곧바로 물어볼 줄은 몰랐는데...답해드리죠. 당신들에게 흥미가 있어서예요.”

“...뭐?”

“정확히는 당신의 힘에.”

루시펠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일행은 숨죽여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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