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45화 (345/612)

두 여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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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넌 여기 보스가 어떤 아이템 떨굴 거 같아?”

김주희의 물음에 루시아의 어깨가 들썩였다.

붉게 달아오른 귀가 현재 무척 당황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해준다.

“어...어...”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말까지 더듬는 루시아.

루시아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좀처럼 소용이 없었다.

평소였다면 던전의 특성을 고려하여 금방 답했을 텐데, 지금은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장 그 자체였다.

루시아가 간신히 답을 한건 30초라는 긴 시간이 경과한 뒤.

“그...글쎄요? 던전의 특성이 독이니...독과 관련된 아이템을 주지 않을까요?”

김주희는 마음속으로 쿡쿡 웃었다.

그녀가 보기에 지금의 루시아는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보통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다보면 어색함이 빨리 사라지기에 이런 말을 꺼낸 것인데 설마, 이렇게 반응할 줄이야.

면역이 없어도 보통 없는 게 아니다. 이건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평소 냉정하고, 똑 부러지던 여성의 행동이 이렇게 까지 변할 수가 있다니...게다가 어찌나 당황했는지 지금 그녀는 스스로가 존댓말을 쓰고 있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우리 말 놓기로 했잖아. 왜 존댓말이야?”

“아...”

부담이 가지 않도록 차분히 지적하자, 루시아는 그제야 스스로의 실수를 깨달은 표정이 되었다.

이게 상당히 부끄러운지 안 그래도 붉게 달아올랐던 피부가 완벽한 홍당무로 변한다.

씰룩이는 김주희의 입가.

김주희는 루시아의 볼을 꼬집고 싶은 충동을 참기 위해 정말 안간힘을 다해야만했다.

이후 김주희는 반말에 적응할 수 있도록 루시아를 리드해 해주었다.

그녀가 압박을 받지 않을 한도 내에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하게 하는 형식으로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30분의 시간은 정말 후딱 지나갔다.

“어? 벌써 30분 지났네?”

모래시계를 확인한 김주희의 말에 루시아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와 이야기 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피곤하다.

마치 고유특성을 남발한 느낌.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현재 루시아의 기분은 그 어떤 때보다도 좋았다.

“그럼 출발할까?”

“응. 그러자.”

땅을 짚은 루시아는 자리에서 일어서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루시아는 그때까지만 해도 단번에 일어서질 것을 전혀 의심치 않았다.

허나.

“어?”

휘청거리는 루시아의 몸.

아마 반사적으로 반응한 김주희가 부축해주지 않았다면 루시아는 그대로 쓰러졌을 터였다.

“루시아! 왜 그래? 설마...”

깜짝 놀란 외친 김주희의 말에도 루시아는 좀처럼 답할 수 없었다.

지금 보니 신경독에 당한 왼쪽다리에 감각이 없다.

루시아는 착용하고 있는 경갑과 레더아머를 다급히 벗었다.

하반신을 확인한 김주희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린다.

적중당한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샛노랗게 변색되어 있었다.

낫기는커녕, 더 침식 된 것이다.

“이런 썩을...보통 신경독이 아니었던 건가?”

김주희의 말에 루시아가 입술을 곱씹었다.

대화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해독은커녕 점점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지금까지 겪어 본 게 있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게 컸다.

이건 제대로 살피지 않은 자신의 불찰에서 이어진 치명적인 실수였다.

김주희가 필사적으로 루시아의 다리를 주무르며 말했다.

“어때? 조금이라도 느낌이 있어?”

느낌만 있다면, 그건 몸 전체에 확산되더라도 견뎌낼 수 있는 신경독을 뜻한다. 효력이 조금씩 없어져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낫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아니라면...’

루시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 무섭게 김주희는 그녀를 부축한 모습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제는 해독약을 무조건 구해야만 했다.

던전에 모종의 풀이 자라고 있었다면 그게 해독약이 될 가능성이 제법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던전은 암석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던전.

“가자, 루시아. 넌 지금부터 해독약을 먹기 전까진 절대 전투에 참여하지 마.”

몬스터가 해독약을 주리라 판단한 김주희는 곧바로 움직였다.

몬스터를 죽이고, 또 죽이고.

그사이 몬스터의 형태는 점점 거미로 바뀌어져갔는데, 아무리 죽이면서 나아가도 좀처럼 김주희가 원하는 해독약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김주희는 루시아의 상태를 살폈다.

독에 중독 된지도 어느덧 하루째.

독은 어느새 왼쪽다리를 벗어나 그녀의 오른발과 가슴 등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확산되는 속도가 이전에 비해 느려진 것이 눈에 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다.

길어봐야 5일.

그 안에 루시아의 몸은 독에 완전히 점령당한다.

초조해지는 마음속에서 김주희는 자책했다.

‘언더월드에 쉬운 던전은 없다’고 말한 이강호의 말이 뇌리 속을 맴돈다.

새 길로 들어선 이상 함정을 밟아서는 절대로 안됐었는데.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했는데.

또 하나의 방을 클리어 한 김주희는 땅에 떨어져 있는 독 저항력 코인을 전부 루시아에게 넘겼다.

“빨리 흡수해.”

“너 혼자 잡은 거잖아...그리고 너도 저항력이 필요...”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깐 빨리!”

머리까지 신경독이 올라간다면 되돌릴 수 없을 수도 있으니 증상은 늦출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늦춰야 한다.

좋아하는 유세현을 루시아에게 빼앗길 수도 있는 노릇이기에 김주희가 질투에 눈 먼 머저리였다면 이것을 기회로 삼았겠지만 김주희는 그런 바보가 아니었다.

게다가 김주희는 그것을 떠나 루시아가 죽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지 않았다.

그 고난을 겪고 살아남았는데 어이없게 이곳에서 허무하게 죽는다니.

이 얼마나 말도 안 되고 우스운 이야기란 말인가.

촤자작-

김주희는 더욱 빨리 적을 베어나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렸다.

20개 이상 되는 몬스터 군락지를 깨부수고, 중간 보스로 추정되는 네임드 몬스터를 3번 넘게 잡았다.

허나.

‘왜, 왜 안 나오는 거야!’

해독약은 여전히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뭘 놓친 건가?’

판도라 세계에 클리어 할 수 없는 던전은 없다. 해답 없는 함정도 없다.

반드시 공략법은 존재한다.

다만 그럼에도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죽는 이들이 존재하는 건, 그 방법을 찾기가 너무도 힘들어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애써 가다듬고 생각에 잠긴 김주희.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놓친 건 없어.’

그녀는 이강호를 따라다니며 착실히 배워왔다. 비밀통로를 찾는 법, 그리고 불가능할 것 같은 함정을 공략하는 법 등등, 이강호가 무려 20년에 걸쳐 쌓은 여러 노하우를 말이다.

기억의 명옥을 얻은 던전과 같이 사상 최악의 던전이라면 몰라도, 이곳에서는 놓친 게 없었다.

그러니.

김주희는 다음 장소로 연결되어있는 통로를 노려봤다.

‘해결책은 분명 이 앞에 있다.’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콰아앙-

또 하나의 거미군락지를 날려버린 김주희의 몸이 비틀거렸다.

체력적 한계에 봉착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강행군을 계속해온 그 여파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하아...하아...”

그럼에도 김주희는 앞으로 나아가려했다.

그녀는 현재 마력이 없어 운디네를 소환할 수조차도 없었다.

보다 못한 루시아가 말했다.

“쉬고 출발해.”

김주희는 짊어지고 있던 루시아를 힐끗 응시했다.

목과 얼굴을 제외하고 모두 독에 잠식된 육신.

이제 그녀에겐 정말로 시간이 얼마 없었다.

하루.

아니, 하루도 걸리지 않으리라.

“그럴 수는 없...”

“지금 바로 가봤자 당해내지 못 할 거야. 그건 너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김주희의 몸이 멈춰 섰다.

사실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의 상태가 정말 안 좋다는 것을.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허나, 그녀에겐 원인 제공자로서 이 사건을 해결해야 될 의무가 있었다.

살려야 될 의무가 있었다.

자신이 쉬어 간발의 차로 그녀가 독에 완전히 잠식된다면? 그래서 죽는다면?

“하루...하루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내 몸이라 잘 알 수 있어...그러니깐...정말로 쉬고 출발해.”

“...그럼 조금만...”

김주희는 결국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꾸부정한 자세로 눈을 감기 무섭게 곯아떨어지는 그녀.

루시아는 그런 김주희를 묵묵히 응시하다가 이내 깊은 한숨을 터트렸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되다니.

처음에는 빨리 해결이 될줄 알았다. 금세 해독약이 발견될 줄 알았다.

강한 적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죽는 건 많이 상상해봤지만, 이런 식의 죽음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위험한 수준에 달해있었다.

사람일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거라더니...

김주희가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루시아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이 세계는 원래 그런 세계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동료가 갑자기 사라지는...그런 비참한 세계.

유세현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갈라기지 전 더 많이 그의 얼굴을 봐두는 건데.

만신창이가 된 김주희가 제 시간 내에 해독약을 구할 수 있을까?

루시아는 차분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 * *

뚝-뚝-

김주희가 쥐고 있는 창끝으로 점액질이 섞인 푸른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주위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쓰러져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기뻐하는 내색 없이 눈앞에 존재하는 하나의 문을 응시했다.

그건 보스룸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하아...하아...”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이끌고 나아가자, 운디네가 잽싸게 앞을 가로 막았다.

“야! 설마 지금 바로 들어가려고? 못 이겨! 이곳도 간신히 정리했잖아!”

“...할 수 있어.”

“아 진짜. 못 한다니까? 딱 각 안보여? 못 비켜 짜샤! 너 지금 이거 죽으러 가는 거라고! 넌 할 만큼 했어! 저기 쓰러져 있는 루시아도 이해할 거라고.”

김주희가 루시아를 쳐다보다, 이제는 입까지 마비 된 루시아가 눈동자를 위아래로 움직여 동의를 표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지금 김주희는 한계 상황이었다.

할 만큼 하기도 했다.

그것을 보여줬다.

루시아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은 여기까지라는 것을. 자신도 죽어나간 여타 생존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허나.

“갈 거야. 정말 이길 수 있어.”

“아오!”

운디네는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야! 너 정말 할 만큼 했다니까?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저 여자가 사라지면...”

운디네는 말을 끝까지 다하지 않았다.

실언을 내뱉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아무튼 정말 왜 그러는데?”

김주희가 보스룸으로 향하는 문을 밀며 말했다.

“선배님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그리고 그걸 떠나 그녀가 죽으면...선배는 분명 많이 슬퍼 할 거야.”

운디네는 단박에 혀를 찼다.

“하이고. 정말 대~단한 순정파 소녀 납셨군.”

“호호, 내가 원래 좀 순수하긴 하...”

“그런 개뼈다귀 같은 소리를 잘도 내뱉는 거 보니 다행히 아직 정신은 멀쩡한가 보네. 그래 가자 가! 대신 무조건 이겨야 돼. 알았지? 네가 죽는 건 사실 내 알바아니지만 세현오빠랑 강호오빠를 보지 못하게 되는 건 정말 싫으니깐.”

“아니고 아주 잘~알겠습니다. 남자 밝히는 물의 정령씨.”

김주희는 내부로 들어가기 전 루시아를 향해 말했다.

“어떻게든 버텨. 보스는 분명 해독제를 가지고 있을 거야.”

그새 독이 눈까지 차올랐는지 루시아는 이제 아예 응답하지 못했다.

내부로 들어가자, 수많은 몬스터가 김주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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