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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330화 (330/612)

< 케르트란(2) >

명옥을 꺼내 넘겨주었다.

잠시 그것을 세심하게 살펴보던 알테라그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인계받았다. 약속은 꼭 지키도록 하지.”

알테라그는 무척 바쁜 몸이었기에 대면은 거기까지였다.

일행이 자리를 벗어나기 전 알테라그가 누군가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불러준 안내인을 뒤따라 걷자 곧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네놈들은...”

놈이 먼저 아는 체를 해왔다.

우레의 스토크였다.

본능적으로 검으로 향하는 손.

스토크도 조심스레 쌍검에 손을 얹었다.

분위기는 어느새 싸늘하게 가라 앉아 있었다.

당장에 전투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막은 것은 안내인의 충고였다.

“이 지역에서만큼은 부디 대립을 삼가 해주길 바란다는 폐하의 간곡한 부탁이 있으셨습니다.”

안내인은 그 말을 끝으로 물러났다.

허나, 주위에 있던 티탄들의 이목은 더욱 집중되었다.

“호오. 두 종족이 의기투합 했다고 들었었는데...사이가 그닥 좋아 보이진 않는데?”

“그러게나 말이야. 한판 붙으려나?”

싸움이 나면 필히 알테라그의 귀에도 들어갈 터.

그렇게 되면 두 종족에게는 하나도 좋을 것이 없었다.

유세현이 자세를 풀자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스토크도 마찬가지로 손을 내렸다.

이내 겉치레 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둘.

“유세현...이렇게 또 보게 되는군. 팔찌를 추적해 온 건가?”

“그렇다.”

“큭, 눈치 하나는 역시 장난 아니군.”

쓸모없는 대화를 이어나갈 동안 유세현은 스토크가 데려온 병력을 살폈다.

수는 약 100명 정도로 이전에 비해 많진 않았지만 훨씬 강자들이었다.

대박의 냄새를 맡고 강자들을 전부 끌어 모아온 것 같았다.

이윽고 끝난 대화.

서로 갈라서려는데 두 종족의 곁으로 한 인물이 다가왔다.

푸른빛을 띠고 있는 보통의 티탄족과는 달리 붉은 피부를 지닌 이 인물은 케르트란이었다.

“이전의 일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왔다. 내가 너무 성급했었다. 미안하다.”

티탄족은 아직까지 스트로 벤 종족과도 인간종족과도 맞붙은 적이 없기에, 놈은 철저하게 자신을 숨겼다.

일전의 일로 치솟았을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함이 분명해 보였는데, 유세현도 일단 거기에 모른 척 맞춰 주었다.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이지. 받아주마.”

왕인 알테라그나 대장군인 타르탄과도 말을 놓은 그다.

예우를 갖추는 것이 이상할 것이기에 일부러 반말조로 답하자 케르트란의 옆에 있던 부하의 안면근육이 미묘하게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실소를 내뱉었다.

처음부터 강했던 자들의 안 좋은 습관.

그들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살아왔기에 모욕을 잘 참지 못했다.

보스가 적을 속이기 위해 기껏 자존심을 버리고 머리를 숙였는데, 부하가 방해하는 꼴이라니.

그런 의미에서 케르트란은 대단한 놈이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표정이고 행동이고 그는 스스로를 다룰 줄 알았다. 만약 이강호가 일러 주지 않았다면 유세현도 놈의 표정만으로는 눈치 채기 힘들었을 것이다.

케르트란이 자연스럽게 운을 띄웠다.

“일전부터 폐하를 도왔다는 그대들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정말 작군.”

벗은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두라는 말이 있다.

유세현은 자를 것은 딱 자르고 받아줄 것은 받아주며 놈에게서 정보를 얻어냈다.

추후 타르탄에게 들을 수도 있었지만 정보란 것은 빨리 알아두면 알아 둘수록 좋은 법이었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운 좋게 놈이 실언을 할지.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되었군. 고마웠다. 우린 이만 가보겠다.”

놈은 실언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케르트란의 앞에서 떠나가는 일행.

스토르 벤 종족도 장소를 벗어나자 케르트란의 부하가 그제야 대놓고 치를 떨었다.

“크...감히 저놈들이...”

높은 충성심이 표정이 드러난다.

허나,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닌 주먹이었다.

퍽-

“크헉!”

놀란 눈이 되어 쳐다보는 부하.

케르트란이 싸늘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앞으로 저놈들 앞에서 그딴 표정 한 번만 더 지어봐라.”

“......”

“그땐 내손에 죽게 될 거다.”

* * *

일주일이 지났다.

그때까지도 고대병기나 거신이 잠들어있는 땅은 발견되지 않았다.

멍하니 기다리는 것만큼 시간이 아까운 것도 없기에 그들은 현재 할 수 있는 것을 찾아했다.

무공의 탐구.

천마신공의 숙련도가 마침내 80%를 넘겼다.

1%가 오를 때마다 속도, 크기, 위력이 달라지기에 기대가된다.

또한 유세현이 익힌 천마신공의 등급은 오리지널, 즉 에픽이다.

때문에 100%가 되면 타인에게 전수가 가능했다.

20%를 채워 이강호, 김주희를 비롯한 믿음직한 동료에게 전수해준다면?

아니 당장에 무공이 없는 루시아에게만 전수해줘도 엄청나게 전력이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100%에 도달하는 건 정말 힘들어.”

이강호의 말에 따르자면 숙련도 100%에 도달한 자는 거의 없다고 한다.

대부분 80~85%사이에서 숙련도가 멈춘다.

빙제나 천마.

무공의 창시자나, 정말 극한으로 무공을 탐구한 자만이 가능한 영역인 것이다.

“흠...80~85%라...딱 내 숙련도네...”

“응. 앞으로는 너 하기 나름이야.”

유세현이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적였다.

느낌만으로 보자면 이강호의 말과 달리 아직도 훨씬 많이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다시 수련을 시작한 유세현.

루시아가 그런 일행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이중에서 무공을 가지고 있지 못한 이는 그녀밖에 없었다.

무공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물론, 어설픈 무공이라면 떠나오기 전 익힐 수 있었다.

허나.

“한 번 익히면 딱 맞는 상승무공을 찾기 전까지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유세현의 말 때문에 참았다.

또한 그녀로서도 어설픈 힘은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무공을 생각하던 루시아의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

몸속에서 무엇인가가 심장을 쿡쿡 찌르는 느낌. 그건 마치 항의하는 느낌이었다.

‘뭐지?’

루시아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며 무시했다.

그러자 그것은 한 번 더 그녀의 심장을 꾹 찔렀다.

이어지는 가슴통증.

루시아는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되던 과거에는 종종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던 시간이 많았다.

물론, 자아를 탐구한 것이 아니라 친구와 어울려 노는 것 등등 망상을 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지드먼과 유세현에 대한 생각이 절반이상을 차지했다.

“후우...”

애써 떨쳐내고 의식을 몰입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녀는 내면에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그건 힘을 지니고 있지 않은 자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꼬리를 지니고 있지 않은 인간이 원숭이가 어떻게 꼬리를 움직이는 것인지 상상이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말한다.

그깟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을 보라고,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자신이 지니고 있는 권능, [악몽]과 대면했다.

* * *

타다다-

티탄족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좋은 정보를 습득하여 또 기습을 나가는 것이었다.

이에 일행은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적을 잡으면 코인을 주지만 언더월드의 티탄족은 코인을 먹지 않기 때문.

게다가 이번 출정하는 팀은 타르탄의 팀이라 무척 강하다.

잘만 이용하면 안전하게 모든 것을 챙길 수 있는 것.

타르탄이 떠나기 전 엄포를 놨다.

“너희들을 지켜주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이다. 알아서 하도록 하지.”

이윽고 시작된 작전.

꿀 냄새를 맡았는지 스토르 벤 종족도 따라붙었다.

작전지역인 골짜기에 도착하자 티탄들이 거대한 숲에 그 큰 육체를 숨겼다.

이 통로를 적이 빠르면 하루, 늦으면 사흘 내에 지나가게 되어있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지루할 법도 하건만 목숨이 오가는 전쟁터이기에 그 누구도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기척이 느껴진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크로마스.

크로마스는 일본의 괴물, 오니처럼 머리위로 뿔 두 개가 돋아있는 외눈박이가 특징인 종족이었다.

크기는 티탄족의 3/4 정도로 약간 작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크로마스는 판도라에 존재하지 않는 종족이기도 했다. 즉, 티탄족에게 멸망했다는 뜻인데 이유는 당연히 이강호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타르탄이 놈들의 씨를 말린 것일 수도 있다.

아무쪼록 기습이란 것은 수 적인 우위도 바꿔 버린다.

본래라면 완벽한 승리여야 했다.

허나, 크로마스에게는 놈들이 붙어있었다.

천사들이 흰 날개를 펄럭이며 주위를 탐색해나가자 살짝 구겨지는 타르탄의 인상.

이강호가 말했다.

“야 세현아, 특별한 놈이 있는 것 같아? 천사장의 신성력은 아마 느낌이 많이 다를 거야.”

“아니, 많이 강한 건 알겠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닌 거 같아.”

“그래?”

“응.”

“좋아...그렇다면...”

만원경을 내린 이강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이번전투는 꽤 수월하거야.”

타르탄이 팔을 들어올렸다.

“어쩔 수 없군. 지금 공격을 감행하겠다.”

후웅!

그가 힘차게 팔을 내리기 무섭게 수없이 많이 발현되는 스킬.

“적습이다! 막아라!”

잽싸게 신성력을 끌어올린 천사들이 결계를 쳤다.

콰아아앙-

온갖 스킬과 결계와 부딪치며 파공성이 일었다.

쩌적-

중상급의 신성력을 이용한 천사들의 스킬은 무척 단단했다.

하지만.

“큭! 고작 그까짓 것으로!”

타르탄이 철퇴를 휘둘렀다.

일반적인 철퇴가 아닌, 폭군 카르탄의 신의 철퇴였다. 정식으로는 왕만 사용할 수 있지만 알테라그가 보다 좋은 효율을 위해 잠시 하사해 준 것이었다.

수십 갈래로 갈라진 철퇴의 파편이 몰아치자 버티지 못한 결계가 부서지며 비산한 파편이 천사들의 몸을 갈기갈기 조각낸다.

과연 타르탄은 강했다.

“젠장...저 빌어먹을 놈이...”

천사들을 이끌고 있는 최상급 천사, 쥬리엘과 크로마스의 군을 이끌고 있는 대장, 크룩크라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반응을 보니 지금까지 한두 번 당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럴 것이다.

이 팀에는 타르탄 말고도.

“케르트란! 날파리들은 너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가능하겠지?”

“예! 타르탄님!”

현재의 왕이 있으니까.

그가 거대망치를 내리치자 공명한 파동이 천족들을 덮쳤다.

그 일격에 무려 5마리나 당했다.

그리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일행과 스토르 벤이 앞으로 질주했다.

목표는 적이 아닌 코인!

일행의 야비한 모습을 본 케르트란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재주는 티탄이 부리고 코인은 사람이 챙긴다.

비록 스텟이 너무 높아 코인을 흡수해도 간에 기별도 안온다고 할지언정 기분이 나쁜 것은 나쁜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흡수하고 싶지만 흡수하면 걸린다.

“케르트란님!”

“내가 말한 것 기억하고 있겠지?”

“...예.”

케르트란은 정체가 발각되기 전 놈들의 실력을 파악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스킬.

스킬을 어느 정도 파악해 둔다면 훗날 변수 없이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가능할 테니까.

이에 유세현과 일행은 일부러 묵혀두던 잡다한 스킬을 선보였다.

적이 너무 많아 자칫 위험에 쳐할 수 있었지만 티탄들을 이용해 위기를 무마시켰다.

케르트란과 타르탄의 곁에 쫄래쫄래 맴돌며 적을 상대하는 일행!

유세현이 날린 약해빠진 불덩이를 본 케르트란이 마음속으로 이를 부득 갈았다.

‘설마 눈치 챈 건가?’

아니면 진짜?

그때 유세현이 외쳤다.

“케르트란 위를 봐라!”

그 말에 고개를 들자 쥬리엘이 비친다. 케르트란은 살짝 혼란에 휩싸였다.

쥬리엘의 기습은 그도 진즉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유세현이 알려줄 것이라고는 차마 예상하지 몰랐다.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본능적이라도 그러지 못할 텐데.

‘젠장...아리송하군.’

< 케르트란(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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