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19화 (319/612)

< 거점(1) >

한쪽 면은 광택이 날 정도로 새하얬지만 다른 한쪽 면은 한없이 칙칙하고 어두웠다.

아이템명, 기적과 절망의 포츈카드.

레전더리 A랭크의 등급으로 일회성 아이템인 이것은 그 특이한 명칭과도 같이 특정지역에서 사용 시 50 대 50의 확률로 기적 혹은 절망을 선사한다.

즉.

이건 실로 말도 안 되는 도박성 아이템이었다.

절망이 걸릴 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 위험성에 사람들은 관리를 이강호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 이후 사람들은 동굴을 샅샅이 뒤졌다.

행여나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하여 취한 행동이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턱-

혹시 몰라 천장을 살피며 이동하고 있는 레피아의 발에 무엇인가가 채인다.

카리우엘의 팔.

레피아는 유세현과 카리우엘의 시체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전투가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1:1로 이루어진, 실력을 측정하기 위해 기습을 가하지 않은 전투.

유세현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카리우엘이 약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가 단지 너무 강했을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군요. 이만 복귀하도록 하죠.”

이강호의 말에 유세현이 몸을 돌렸다.

그 커다란 등이 레피아의 눈에는 한없이 무거워만 보였다.

* * *

합류지점으로 향하는 동안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대한 의견을 나눴다.

카리우엘에게 들은 바에 따르자면, 오르엠을 따르는 천사들은 언더월드라는 지역에서 신물 조각을 얻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중이었다.

언더월드.

땅 밑에 존재하는 지저의 세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그곳은 이강호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불의신, 아그니의 신전이 존재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3번 신물 조각이 숨겨져 있는 유적이기도 했다.

“지역 자체가 유적이라고?”

“응. 하지만 난 클리어 되기 전에는 그곳에 들어가 본 적이 없어. 모든 게 다를 거야. 지형도, 몬스터도. 아무것도 모르는 셈이지.”

“그럼 아그니의 신전은?”

“아, 그건 제외. 그곳은 불가침 영역이거든. 그래서 신전은 그곳에 존재 하되 없는 것과도 같아.”

이해한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곳에는 언제 갈 생각이냐?”

“흠...”

이강호가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는 내부로 진입 한 순간부터 아그니의 신전으로 향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언제 클리어 하는지를 전혀 모르니까.

하지만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기에 참았다.

이제는 스텟을 많이 보강한 상태.

위험성은 무척 높지만, 유세현의 능력을 고려하자면 못 갈 정도는 아니다.

“이번 일을 끝내면 가볼 생각이야.”

“아 그래? 그런데 무슨 일?”

그 말에 이강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가 툭 말했다.

“우리도 거점지 하나는 있어야지 않겠냐. 세현아.”

* * *

회귀전, 이강호의 동료들은 과거로 돌아갈 그를 위해 나태했던 과거의 과오와 성장가능성 등등 모든 것을 고려하여 거점지를 신중하게 선별해 주었다.

그리하여 선별된 장소는 약 30여개.

이강호는 그중에서도 설산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 위치해 있던 활화산 지역을 타겟으로 잡았다.

위엄 있는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치솟아있는 봉우리.

그 끝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와...뭔 놈의 크기가...”

자연스레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그때였다.

“전방에 적 출현!”

“전군! 대비하라!”

황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각 통솔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윽고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적.

푸르스름한 피부를 지니고 있는 놈들은 메뚜기를 닮은 종족이었다.

수는 약 100명 정도로, 정식 종족명은 메쿠라.

규모와 모습을 살핀 메쿠라들의 어깨를 으쓱거렸다. 스토르 벤 종족이 그러했듯 얕보는 것이었지만 취한 행동은 그들과는 좀 달랐다.

“킥!”

한번 비웃더니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한 것.

“놓치면 안 됩니다!”

이강호의 말에 일행을 포함한 고수들이 일제히 경공술을 펼치며 추격을 시작했다.

암흑투기를 발현시킨 유세현도 바로 뒤를 따랐다.

순식간에 좁혀드는 거리.

‘우선 한 마리.’

그가 검을 휘둘렀다.

허나, 그 순간 놈이 가속했다.

유세현은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놈은 분명히 강자였다. 하지만 암흑투기가 발현되고 있는 중인데 저 정도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니.

“구조가 달라서 그래.”

“응?”

“놈들은 같은 코인으로도 사람보다 더 강한 각력을 사용할 수 있어. 당연히 특성은 아니야.”

“크...그래? 그렇단 말이지.”

결국 그들을 전부 다 처리하기 위해서 유세현은 마족화를 사용해야만 했다.

“어떻게...그 힘을...”

푹-

마지막 메쿠라를 정리한 유세현이 루베르크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이강호는 메쿠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군집 생활을 하는 종족.

그 수는 가히 상상을 초월해 이강호가 알고 있는 종족에 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각력에...물량까지...그럼 지금은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니냐? 구울을 이용한다고 해도 상당히 많은 인원들이 죽어나갈 텐데.”

“물론, 전면전을 버린다면 그렇겠지...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다른 방법이 있는 거야?”

“응.”

활화산 지대인 이곳은 분화구에서 시도 때도 없이 마그마가 분사된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분사 되는 게 아니라 전역에 미칠 정도로 높고 멀리.

맞으면 SS랭크 급의 속성 저항력이 없는 한 90%가 넘는 확률로 사망.

하지만 이 마그마는 특별한 장소를 먹으면 일정 수준 조종이 가능하다.

“호오...그걸 이용해 몰아내겠다?”

“그렇지. 괜히 이곳을 선택한 게 아니야.”

“놈들도 이걸 알까?”

“알지 못하면 이곳에서는 살 수 없어.”

“호오...도망친 이유가 마그마로 쓸어버리기 위해서였군.”

“그렇지.”

유세현이 손을 들자 시체들이 일어섰다.

그중 6마리는 재결합되어 한 마리의 키메라가 되었다.

“메쿠라들은 각력이 강하지만 그만큼 팔의 힘이 떨어져.”

즉, 이 말은 검 같은 무기는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우르르 몰려 사냥하는 자들이니 만큼 특출 난 자들도 별로 없지.”

들으면 들을수록 할만하다.

현재 일행에게 필요한 것은 속전속결뿐이었다.

놈들이 알아채기 전에 어느 정도까지 도달 할 수 있을까?

“바로 움직일 거지?”

“물론.”

“좋아. 안내해줘 강호야.”

목표지점을 들은 유세현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구울들이 이동을 개시했다.

* * *

메쿠라를 다스리는 수뇌부들이 사태를 파악한 것은 사람들이 움직인 뒤 7일이나 지나서였다.

보고를 받고 한데 뭉친 수뇌부들이 열변을 나눴다.

“적이 파죽지세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걸 사용하도록 하죠.”

“초기 대응이 너무 늦었습니다. 시간이 맞지 않을 겁...”

쿵-

대뜸 문이 열리더니 회의실내로 병사가 뛰어 들어왔다.

땀이 뻘뻘 흐르는 것이 딱 봐도 다급한 모습.

“뭔 일이냐!”

“제...제 3-10방어 라인이 뚫렸습니다!”

“뭐라고? 제 3-10방어 라인이?”

“예!”

“말도 안 된다! 어떻게...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메크는 어떻게 됐느냐!”

“저...전사하셨습니다.”

그 말에 수뇌부들 대다수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메크는 무려 S랭크 95% 힘을 지니고 있는 자로 그 많은 메쿠라족 5000명 내에 드는 강자였기 때문.

하지만 어느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자는 있기 마련.

“놈들 전체가 전부 강한가? 그렇게 확 밀릴 정도로?”

“그게...그렇지는 않습니다.”

“뭐?”그 말에 수뇌부들의 표정이 돌변했다.

손을 들어 웅성거리는 장내를 다시 조용히 시키자 병사가 말을 이었다.

“그들의 대다수는 A랭크 90%정도에 불과합니다. 살아 돌아온 병사들이 직접 말해준 것이니 만큼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왜...되살아난 시체를 다 합쳐도 고작 25만 명도 안 되는 병력 아닌가?”

“예...그렇죠. 하지만...”

“말해봐라.”

“2천 명. 아니, 그중에서도 50~100명 정도가 너무 강합니다.”

병사가 이번에 알아낸 정보를 전부 털어놨다.

수뇌부들은 어느새 전부 침착해져 있었다.

“그놈들만 제압하면 전세는 역전 되겠군.”

“어설프게 대응해봤자 구울만 늘어날 겁니다. 최고 실력자들을 보내 끝내야 됩니다.”

대응책이 만들어진다.

허나, 이전 침착하게 질문 한 수뇌부, 바르가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마왕의 군세, 그중에서도 상위존재만 사용할 수 있다는 시체부활.

그것과 비슷한 힘을 사용하는 생명체라니...

마족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그들의 목표물은 마그마를 다룰 수 있는 중심부였다.

이는 엄청나게 사전 조사를 했다는 뜻.

“제 생각에는 그냥 이곳을 버리는 게 나을 것 같군요.”

바르가가 전멸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근거하여 말했다. 하지만 남은 수뇌부들은 이에 동참하지 않았다.

“이곳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여기만큼 성장하기 좋고 방어하기 좋은 장소가 또 어디 있다고...밖은 생지옥이에요. 분명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쯧.”

바르가가 살짝 혀를 찼다. 혼자인 그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로, 남은 건 차선책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 선택이 훗날 어떻게 작용할까?

희망? 아니면 절망?

“최고전사들을 전부 불러들여라.”

지령이 내려지는 것으로 회의는 해산되었다.

* * *

“앞으로 얼마 안 남았네.”

“그렇지. 이제 놈들은 마그마를 이용할 수 없어.”

일정범위내로 들어오면 화산의 강한 분출력 때문에 타게팅이 안 되기 때문.

“뭐? 야! 그럼 우리도 놈들을 못 노리잖아? 뇌가 없지 않는 이상 거주지를 안쪽에 만들어 놨을 텐데.”

“평상시라면 그렇지. 하지만 각인을 새로이 했을 때만큼은 범위에 상관없이 쏠 수 있어.”

들어온 자가 원래 있던 자들을 밀어낸다.

이 마그마 시스템은 애초에 그러라고 만들어져 있는 것이었다.

유세현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하자 이강호가 재미있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잠시 뒤.

다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온 이강호가 말했다.

“그러니 놈들은 슬슬 선택할거야. 이곳을 버릴지. 아니면...”

유세현의 고개가 적진을 향해 사르륵 돌아간다.

“...최정예를 보낼지.”

* * *

휘이익-

붉은 빛을 뽐내는 마그마가 스쳐지나가자 나무위로 짙은 음영이 스쳐지나갔다.

메쿠라 종족 최강자, 간쿠라와 그 외 최고전사들.

어둠을 틈타 움직이는 그들은 홈그라운드답게 타겟이 어디 있는지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 확실하게 죽인다. 특히 구울 조종자는 반드시 찾아내 죽여라.”

그들이 흩어지려는 순간이었다.

휘익-

“?!”

콰아아앙-

불기둥이 치솟으며 어둠을 거쳤다.

간쿠라는 회피에 성공했으나 미처 반응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끄아아...”

그들은 비명도 얼마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허나 간쿠라는 동요하지 않았다.

적들도 자신들이 오리라는 것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을 테니까.

“코인을 적들에게 넘기지 마라!”

쉬이익-

동료에게서 뿜어져 나온 코인을 흡수한 간쿠라.

그런 그의 눈앞으로 밤보다 더 짙은 칠흑이 몰아쳤다. 그 대단한 각력이 아니었다면 피하지 못했을 그런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몸 상태를 확인한 간쿠라의 표정이 움찔거렸다.

‘뭐, 뭐냐...이건...’

보고서에는 없던 힘.

촤악-

피할 수 있는 것도 피할 수가 없다.

유세현은 살짝 감탄했다. 암흑투기가 발현되고 있는 상태에서도 이정도의 속도라니.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 거점(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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