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족(4) >
“......”
마치 시간이 정지하듯 구루메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런~”
천사는 마치 실수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구르메의 팔이 즉사한 딸을 향했다. 딸을 껴안은 그는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왜, 왜...저, 전부 솔직히 대답해 줬는데...우리는 이제 조각에 관심도 없는데. 도대체 왜...”
“하하, 거참 미안하군. 하지만 제르엘이 살려주겠다고 했지 나는 그런 말을 내뱉은 적이 없다.”
“......”
구루메의 몸이 모든 것을 포기하듯 축 늘어졌다.
천사들의 리더가 처리하라고 눈치를 준 순간이었다.
“이 개자식드으으으을!”
콰아아아앙-
구루메에게서 터져 나온 분노가 일대를 휘감았다.
* * *
구루메가 온몸을 불살랐지만, 안타깝게도 전투는 채 10초도 지속되지 못했다.
털썩.
힘없이 주저 않는 구루메의 육신.
“가자.”
리더의 말에 천사들이 날개를 펼치더니 곧장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일행은 그들이 저편으로 자취를 감춘 뒤에야 비로소 눈 밖으로 빠져나왔다.
유세현이 인원들의 안색을 살폈다.
지구에서 온 이들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지만, 흡사 악인과 같은 모습에 천사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던 알테리아 대륙 출신자들은 상당한 충격을 먹은 표정이었다.
이에 유세현은 딱 한마디만 했다.
“이곳은 판도라이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애써 수긍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강호야. 저놈들 당연히 미행할거지?”
“응. 부탁한다. 세현아.”
“응? 미행? 미행을 한다고?”
그 말에 점점 나아지던 알테리아 대륙 출신자들의 표정이 재차 당혹으로 물들었다.
미행을 한다는 건 전투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알테리아 대륙에서 천사들은 모든 이들의 머리위에 있던 군림자였다.
인간은 절대로 대적할 수 없는 상위의 존재!
만약 전투가 발생한다면 이길 수 있을까?
그들이 막대한 힘을 손에 넣었다고 하나 그건 쉽사리 상상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허나.
“붙어도 이길 수 있습니다.”
유세현의 장담.
그것은 그들의 떨리는 마음속에 안식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그 정도의 신뢰를 지닌 인물이었다.
순식간에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레피아가 말했다.
“사실 어릴 때 소망이 천사날개를 만져보는 거였는데...푹신푹신하겠지?”
“새털이 새털이죠.”
중후함이 가득 담겨있는 유세현의 말에 일행이 피식 웃었다.
* * *
“쳇. 이놈들도 꽝이군.”
임시 리더를 맡고 있는 하급 천사, 데르엘이 혀를 찼다. 그들 주위에는 구루메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벌써 20번째의 습격.
‘젠장...대체 누가 가지고 있는 거지?’
그들은 원하던 것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이 찾고 있는 건 이름 없는 작은 구슬.
이 설산지역, 특정 장소에 있는 장치에 사용되는 물건으로 5개를 꽂아넣으면 특정 유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4개를 모아놨기에 이제 남은 건 한 개건만...
“후우...빌어먹을...”
쾅-
짜증을 억누르지 못한 데르엘이 발길질을 하자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일대가 울렸다.
“일단은 돌아가서 한 번 보고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너무 오래 활동했습니다. 뭐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쯧. 그래야겠군.”
휘이잉-
데르엘을 선두로 하여 복귀를 선택한 천사들이 이동을 개시했다.
데르엘은 이동하는 내내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중급 천사, 카리우엘에게 뭐라 보고해야 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카리우엘의 성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기 때문.
그때였다.
“응?”
난데없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오한.
그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왔던 길을 살폈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흠...뭐가 있었던 거 같았는데...뭔가 느껴지지 않았나?”
“예? 아무것도...”
찝찝한 표정이었지만 눈에 찍힌 발자국이 없었기에 이내 데르엘이 몸을 돌려 재차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이 사라진 뒤.
“후우...들키는 줄 알았네.”
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레피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답설무흔(踏雪無痕)에 달하는 경공술을 펼치지 못했다면, 잘 은폐한 것과는 별개로 들켰을 터다.
“추격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경공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루시아를 재차 등에 업은 유세현이 다시 발을 뗐다.
* * *
“뭐? 얻지 못했다고?”
“예...저희가 도착했을 적에는 문지기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수확도 없이 그냥 온 거?”
“흔적을 발견하여 구루메 부족들을 습격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 그래?”
데르엘의 말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던 카리우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천천히 다가온 그의 주먹이 데르엘을 향했다.
퍽-
“죄, 죄송합니다.”
데르엘은 반항하지 않고 고개를 조아렸다.
카리우엘이 잔뜩 짜증난 표정이 되어 머리를 긁적였다.
“후우...이래서 하급은...이 지령이 대천사 우리엘님께서 직접 내리신건 알고서 하는 말이지?”
“예...알고 있습니다. 적의 견제 심하니 그나마 신경 쓰이지 않는 저희를 보내...”
퍽버벅-
주먹이 재차 데르엘을 향했다. 방금 전보다 훨씬 힘이 실린 펀치였다.
“뭐? 신경 쓰이지 않는? 그 말은 내가 너희와 동급의, 볼품없는 놈이라는 뜻이냐?”
“아니, 그런 뜻이 아닙...”
“어쭈? 말대꾸까지?”
퍽-
퍼버벅!
마구잡이로 때리기 시작한 카리우엘의 앞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데르엘이 마침내 무릎을 털썩 꿇었다.
“한 달...한 달 더 주겠다. 반드시 찾아와. 못 찾아오면 네놈의 목숨을 없는 줄 알아라.”
“...알겠습니다.”
데르엘이 답하자, 인원들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이내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가는 그들.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기 무섭게 그들의 입에서 오만 욕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저런 개쓰레기 같은 놈이...고작 한 단계 계급밖에 높지 않은 주제에...괜찮으십니까?”
“후...열 받는군.”
“일이 잘 되서 승급하시면 놈을 처리하십쇼. 도와드리겠습니다.”
“......”
데르엘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살기 가득 담겨 있는 표정이 반드시 찢어 죽일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젠장...그나저나 어딜 가서 찾는다...”
“마지막 장소부터 계속 이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혹시 모르니 다른 종족을?”
“후...”
데르엘이 날아올랐다.
분노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착잡한 마음이 얼굴 표정에 드러났다. 승급이고 자시고 눈앞에 닥친 불똥을 처리하지 못하면 책임을 핑계로 정말 죽을 수도 있기 때문.
그런데 이동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응?”
그들의 눈에 10명 남짓 되는 생명체가 비쳤다.
구루메보다는 작은 체격. 그리고 천족과 비슷한 외모.
“인간?”
그 순간 데르엘의 뇌리 속으로 벼락이 내리쳤다. 그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데르엘님...”
“그래, 문지기를 잡은 건 인간이다! 인간이었어! 언제 내부로 들어온 거지? 수가 적으니 한 놈도 죽이지 말고 전부 포획해라!”
“예!”
후우웅!
흡사 매가 물고기를 낚아채듯 천족들이 엄청난 속도로 하강을 시작했다.
허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먹이를 노리는 순간이 사냥꾼에게는 매를 잡기 제일 쉬운 순간이란 것을.
눈에서 사람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동시에 몸을 옭아매는 암흑투기.
“?!”
비록 하급이지만 최강은 최강.
천사들의 대응력은 빨랐다.
허나, 이미 때는 상당히 늦은 후였다.
쉬이익-
천마광룡참이 스쳐지나가고, 이강호의 멸천지화가 공간을 불태운다.
그리고 그외 발현된 절기까지.
“끄아아아악!”
30명의 인원이 절반이하로 줄어드는 데는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마족화가 발현 된 유세현의 육신이 이곳에서 가장강한 데르엘을 향했다.
치이익-
맞붙는 검.
그와 마주한 데르엘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기습도 기습이지만 그보다는 눈앞의 있는 존재 때문이었다.
인간?
마족?
하지만 그는 곧 깨달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뭐, 뭐냐! 이 말도 안 되는 흉흉함은!!’
상급 마족도 이정도의 순도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데 놈은 그 이상이었다.
‘대, 대악마? 아,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데르엘은 모든 신성력을 내뿜어 항전했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토, 통하지 않는다.’
그건 격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뜻이었다.
“네, 네놈...대체 정체가 뭐냐...”
이에, 유세현이 한마디 내뱉었다.
“곧 죽을 놈이 말이 많군.”
허세의 용도가 아닌, 놈의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의 움직임이 더 느려졌다.
“크아아아! 빛의 심판!”
다급하게 고유스킬을 난사했지만 승기는 이미 유세현의 것!
푸욱-
검이 놈의 팔을 자른다.
이어서는 날개와 다리를 잘라냈다.
일대를 뒤덮고 있던 휘황찬란한 기운이 서서히 사라진다.
유세현은 놈을 죽이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사...살려줘라.”
“묻는 말에 답한다면...살려주지.”
“크헉...뭐...뭐냐...”
목이 구멍이나 데르엘은 말을 하기 힘든 상황임에도 필사적으로 답했다.
“너희들이 노리고 있는 아이템...그건 어디에서 어떻게 쓰이는 물건이지?”
케르엘은 그 말에 놀라지 않았다.
이미 함정에 걸린 시점부터 이전 느꼈던 섬뜩함이 착각이아니란 것을 알아챘기 때문.
“저, 정말 살려줄 거냐...”
“물론이다.”
“거짓말...”
“믿고 안 믿고는 너의 자유다.”
유세현은 놈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신성력이 어둠의 마력에 반대되는 힘이라서 그런지 통찰력은 발동되지 않았다.
‘뭐...그럴 거 같았지만.’
아무쪼록 유세현은 놈에게 약간의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갈등을 보이자 압박을 가했다.
“1분의 시간을 주겠다.”
지푸라기라도 잡아 볼 것인가.
아니면 잡지 않을 것인가.
파앗-
놈의 몸에서 대뜸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같이 죽...”
후욱-
푹-
루베르크가 미간을 정확히 관통했다.
절명.
유세현은 놈을 포함해 무려 15명분의 코인을 흡수했다.
정보를 얻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아직 남아있는 한 놈, 카리우엘을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 * *
우리엘이 카리우엘에게 일을 맡긴 이유는 한가지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하기에.
카리우엘은 그 결과로 최하급에서 중급까지 올랐다.
그리고 그 말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라는 뜻이기도 했다.
“크아악! 마, 말하마! 말하마!!”
놈의 포기는 빨랐다.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유세현은 놈에게서 천족의 현 상황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다! 전부 말했다! 그러니 야, 약속을 지켜...”
푹-
루베르크가 여지없이 카리우엘의 미간을 관통했다.
사람으로서의 인간성을, 마음을 더럽히는 행위.
이전 이런 내용의 드라마가 있었다.
주인공이 이기기 힘든 괴물을 잡기 위해 똑같이 괴물이 되는...
“오빠...”
“......”
유혜인의 침울한 표정을 본 유세현이 그녀의 머리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하나밖에 없는 혈육.
그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악귀도 될 수 있었다.
인간성이 박탈되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다른 이들이 욕을 해도 상관없다.
놈에게서 빼앗은 구슬을 전부 장치에 끼워 넣자 동굴이 진동하며 그들의 앞으로 카드처럼 생긴 아이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 천족(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