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그하브의 부츠(8) >
콰아아아앙!
여파로 밀려난 유세현은 다급히 놈을 살폈다.
녹아내린 전신과 입가의 피부가 잘려나가 드러나 보이는 잇몸.
놈은 몰골은 실로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처리하지 못했다.’
방심을 노린, 동료의 모든 힘을 쏟아 부운 단 한 번의 일격이 실패로 돌아갔다.
본래라면 이강호의 청염이 놈을 완벽하게 불태웠어야 정상이었지만 태양의 왕관에 붙어있는 강대한 화(火)속성 저항력 덕분이었다.
암담하다.
그리고 그래서 일까?
정신보다도 육체가 먼저 반응했다.
타다닥-
타르탄을 향해 질주하는 유세현.
스토크와 이강호, 그외 인원들도 놈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허나.
“빌어먹을 벌레가...”
단 한 마디.
타르탄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주위에서 발생한 거대한 폭발에 의해 그들의 행동은 수포로 돌아갔다.
잔뜩 핏발이 선 타르탄 눈동자가 유세현을 향했다.
방금 전 유세현이 막대한 마력을 퍼부어 시선한 천마광룡참은 그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타르탄도 도무지 되받아 칠 수 없는 것이었다.
신의 철퇴가 있었기에 그나마 궤도를 틀어 이정도 선에서 끝낼 수 있었지, 만약 일반적인 아이템이었더라면 그대로 몸과 함께 반토막이 났으리라.
타르탄이 입술을 곱씹었다.
그로서는 이 상황 자체가 엄청난 치욕이었다.
태양의 왕관과 신의 철퇴를 제외한 모든 장비를 잃어버린 그가 장갑에서 떨어져 나온 에메랄드빛 보석을 주웠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살며시 내리 긋자 그의 앞에 또 다른 갑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에 입고 있던 것보다 한 단계 낮은 하위호환 방어구였지만...
‘막아야 된다!’
일행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이강호!”
“큭! 알고 있어!”
몸을 재차 움직이기 시작한 이강호 입에서도 기어코 침음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본래 이강호가 파악한 바로는 이곳은 이정도 수준의 던전이 결코 아니었다.
아니 그것을 떠나서, 일반몬스터와 보스몬스터의 격의 차이가 너무도 크다.
이건 신물 조각이 잠들어있는 가장 최상위 던전, 유적에서나 볼 수 있는 괴리감이었다.
‘역시 이건 말이 안 된다.’
타르탄의 행동에 재빨리 반응한 일행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법적 처리가 가해진 장비가 놈의 몸에 장착되는 것이 훨씬 빨랐다.
타르탄은 보석을 왼쪽 장갑의 이음새에 끼워 넣기 무섭게 곧장 유세현을 노려왔다.
“크아아아! 네놈부터 처리해주마!”
후웅-
쇄도하는 철퇴!
유세현이 다급히 허리를 굽히자 묵직한 구체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등위를 지나쳤다.
만약 0.1초라도 늦었다면 그대로 직격 당했을 것이다.
그것을 본 이강호가 입술을 질끈 곱씹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분명 방도가 있을 거다.’
뭘 놓친 것인가.
그는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경험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다.
저급한 던전부터 시작하여 유적까지...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제외한 웬만한 건 전부 경험했기에.
‘속성적 약점이 있는 건가? 아니...아무리 봐도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뭔가 제약이 걸려있는 건가?’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매치되는 것은 없었다.
“이벨린!”
“으으!”
과거의 책사, 이벨린에게 뭔가 알아낸 게 있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그녀는 현재 제 한 몸 가누기도 급급한 상황.
이제 그에게 떠오르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세현아! 나 없이도 버틸 수 있겠냐?”
“왜?”
“보스룸!”
유세현은 단번에 그 의도를 파악하고 답했다.
“어떻게든 버텨볼게! 가!”
“미안하다.”
이강호는 보스룸 내부를 향해 달렸다.
타르탄은 뒤쫓지 않고 유세현과 스토크에게만 집중하는 행동을 취했다. 이강호는 이 모습에서 불안감을 느꼈다.
‘젠장...느낌이 좋지 않아.’
내부로 들어가기 무섭게 제일먼저 눈에 비친 것은 계단위에 놓여있는 옥좌였다.
주위를 살핀 이강호의 안색이 굳어졌다.
옥좌와 내부에 장식되어있는 있는 고풍스러운 장신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
이강호는 필사적으로 뒤졌다.
행여나 비밀통로나, 숨겨진 보관함이 있을 수도 있기에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결론은...
‘큭!’
전부다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 * *
한편, 유세현도 나름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벌레따위가! 감히! 나를! 나를!”
콰아앙!
“크윽!”
계속되는 공격에 생각을 이어나갈 시간은 정말로 조금 밖에 없었다.
유세현이 스스로의 몸을 살폈다.
쉬이이-
처음에는 그렇게 맹렬하게 뿜어져 나오던 어둠의 마력이 상당히 수그러든 상태.
‘젠장...거의 끝났군.’
마력은 풀로 채워두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에 와서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태양의 왕관으로부터 발생되어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열기.
그리고 휘두를 때마다 폭풍을 선사하는 신의 철퇴.
현재 인원들은 떨어진 체력으로 정말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천마광룡참을 정통으로 먹일 수 있을 만 한 틈을 만들어주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
그때였다.
먼저 발동시킨 마족화가 해제되며 영역선포가 일순간 사라졌다.
‘큭!’
황급히 다시 마족화를 사용했지만...
타르탄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크하하하! 그 요상한 힘도 다 된 모양이구나! 죽어라!”
빠악-
“크으으으으.”
유세현은 날아오는 놈의 왼주먹을 피할 수는 없었다.
쾅!
알테라그처럼 벽으로 처박힌 유세현.
터져 나온 각혈이 지면을 붉게 물들였다.
유세현은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후들거리는 팔과 다리.
철퇴에 맞았더라면 거의 99.99% 죽었을 것이다.
‘스토크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훗날 스토르 벤의 영웅이 될 자.
놈 덕에 방금 전 타르탄은 완벽하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되지? 대체 어떻게 해야...’
계속해서 같은 말이 머릿속을 울린다.
그리고 그럴수록 머릿속에 드리우는 암운.
시꺼먼 안개에 가려져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느낌이다.
유세현은 일단 다시 영역선포를 사용했다.
놈의 스텟이 끔찍할 정도로 너무도 높아 이 영역선포 능력이 없으면 일행이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놈의 스텟은 대체 어느 정도 되는 것일까?’
상상이지만 아마 SS랭크는 기본적으로 넘을 것이라 사료된다.
속박을 느낀 타르탄의 맹렬한 시선이 유세현이 쓰러져있는 방향을 재차 향했다.
살기를 느낀 유세현은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강호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된다.’
유세현은 믿었다.
이강호라면 보스룸에서 이 상황을 타파해줄 방도를 알아내올 것이라고.
전장으로 복귀하자 스토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허억...허억...야! 괜찮냐!”
유세현은 실소를 내뱉었다.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는데.
“물론이다.”
“그래...너가 당하면 정말 끝장이다. 버텨! 그리고 방금 보스룸으로 들어간 그놈! 방도를 알아내러 간 거 맞지?”
‘...눈치 빠른 놈.’
그러니 그때까지 살아남았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유세현은 문득 심각한 괴리감을 느꼈다.
‘분명 과거에도 스토크는 이 던전에 들어왔을 텐데...’
놈은 어떻게 이걸 클리어 한 것일까?
도중포기?
하지만 이건 자동으로 시작되는 보스전이었다. 게다가 지금 상황만으로 보자면 놈도 꼼짝없이 이곳에서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쿠궁!
뇌리 속에 벼락이 내리쳤다.
‘변수...그래 변수가 생긴 거야.’
그렇다면 변수는 무엇일까?
고심해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과거에는 없었던 것, 하지만 현재는 존재하는 것.
‘바로 우리들이다.’
동료와 자신들로 인해 이 성의 흐름이 바뀌었다.
그럼 이성에 들어와 자신들이 한 일은?
빠르게 맞춰지는 퍼즐.
유세현의 시선이 저편에 쓰러져있는 한 인물에게 향했다.
‘알테라그!’
그를 포섭하는 조건은 상당히 극악이었다.
코인의 유혹을 떨쳐내야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현장에서 조건을 알아내진 못한 스토크가 포기하고 죽였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시간 때문이긴 하나 실제로 판도라 최고 베테랑, 스토크보다도 많은 경험을 한 이강호도 죽이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유세현은 모르고 있었지만 알테라그를 포섭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위협했다가 한 번 살려주기까지 해야만 했다.
쉽게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었지만 모든 수단을 동원하다보니 조건이 충족된 것.
‘본래라면 타르탄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알테라그를 포섭했기에 타르탄이 등장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도 분명 알테라그에게 있을 터.’
지금 보니 힌트는 분명 존재했다.
[티탄족 최고의 왕.]
이강호가 해준 말이 아닌, 타르탄이 등장하면서 직접 언급한 한 말이었다.
‘알그하브가 만든 3개의 비보...’
지금 생각해보면 진즉 이상함을 느꼈어야 정상이었다.
현재의 왕은 알그하브가 만든 비보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장구류는 이강호의 공격으로 인해 녹아내려 다른 것으로 바꿔 입었지만 신의 철퇴와 태양의 왕관만큼은 아직도 건재한 것이 그 증거.
유세현은 머릿속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적과 한 때 최강으로 군림했지만 현재는 약하기 그지없는 아군.
그리고 지금 보이지 않는 3개의 비보.
“벌레들아! 신의 분노를 받아라!”
쉬이익-
콰앙!
슈슈슉-
철퇴의 구체가 내부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크레모아와 같이 무식한 속도로 사방으로 비산하는 조각들.
“크!”
인원들은 온힘을 다했다.
허나, 전부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재질이 얼마나 강한지 방어구가 버티지 못했다.
푹-
그와 중 파편하나가 리체의 복부를 그대로 관통했다.
목숨을 위태위태하게 하는 심각한 부상.
“어, 언니! 꺄악!”
“크아아악!”
동생이 다치고, 동료와 스토르 벤의 병사가 쓰러져가는 상황 속에서 유세현은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이강호의 불길로 인해 놈의 아이템이 신의 철퇴와 태양의 왕관을 남기고 전부 녹아버렸을 때를.
‘그래...분명히 있었다. 그 두 개의 아이템을 제외하고도 불타버리지 않은 아이템이!’
“스토크!”
“크으! 뭐냐!”
“너의 속도가 필요하다.”
“뭘 해주면 되지?”
“내가 놈의 시선을 끌 테니. 왼쪽 장갑에 있는 보석...그걸 빼내라.”
“보석?”
“그래. 이젠 너밖에 할 수 없다. 내 동료가 놈을 처치할 마땅한 힌트를 찾지 못한 것 같아. 그러니 이게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해라...”
“...마지막이라...좋다. 시선을 끌어라.”
유세현과 스토크가 비장한 표정이 되어 타르탄을 응시했다.
그사이 일대를 난자한 철조각들은 되돌아가 다시 철퇴를 이룬 상태였다.
유세현은 일부러 도발했다.
그리고 그것에 분노한 놈은 쉽사리 걸려들었다.
천마군림보를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철퇴를 피한 유세현을 향해 주먹이 날아온다.
“이번에야 말로 끝이다!”
유세현은 아래로 회피하며 지금까지 적정량만 사용하고 있던 천마군림보에 더 많은 마력을 쏟아 부었다.
이젠 뒤가 없다.
놈의 새끼손가락이 아슬아슬하게 귀 끝을 스쳐지나간다.
풍압만으로도 귀가 갈라지며 자상이 남았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스스슥-
손등위로 모습을 드러낸 스토크가 틈새를 향해 쌍검을 내질렀다.
치직-
“흐아아압!”
“아니?”
한 순간 당황으로 물드는 타르탄의 표정.
보석은 특수한 처리가 되어있는지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크윽 빌어먹을! 뢰진격(雷鎭擊)!”
치지직!
“빠져라아아!”
챙!
휙휙휙-
“크! 이놈들이!”
공중에 붕 보석을 잡기위해 타르탄의 왼손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빠른 것은 천마군림보로 속도의 손실을 막은 유세현이었다.
보석을 잡아든 유세현은 보스룸을 향해 전력질주했다.
“어디서!”
타르탄의 손이 바로 뒤를 따라왔다.
“이강호오오오!”
유세현은 이강호를 믿고 내부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던졌다.
“큭! 이놈들이!”
쉬익-
콰앙!
타르탄의 육신이 마치 부스터를 사용하듯 가속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다급해 보이는 모습.
허나, 이내 보석을 잡은 것은 한걸음에 달려온 이강호였다.
이강호는 보석을 받자마자 이걸 어디에 사용해야 되는 것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옥좌, 그곳에 새겨진 문양과 한데 어우러져 있어 이강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단순히 똑같은 장식처럼 보이는 홈.
딸각.
“안돼!”
이강호가 보석을 꽂자 타르탄의 절규가 내부를 울렸다.
< 알그하브의 부츠(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