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부(2) >
“뭐라고?”
유세현의 표정이 대번에 돌변했다.
“달의 샘이라고 있어. 물질적인 것에는 전혀 효과가 없지만 내적인 것을 복원시켜주는.”
“내적인 것을?”
“응. 때문에 그 구슬 안에 내제되어있는 영혼이 순수한 영혼이었다면 복원될 확률은 100% 였겠지만...그 안에 있는 건 순수한 영혼이 아닌 복사된 영혼이니까...”
유세현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네 생각에는 확률이 어떻게 될 거 같은데?”
“50대 50.”
반반.
유세현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미묘하게 느껴질 수 있는 확률이었지만 애초에 포기하고 있던 팔이다. 그러니 지금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시선이 잘린 왼팔로 향한다.
팔 하나와 팔 두 개.
이제는 꽤 자신감이 생겼다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팔이 있고 없고의 그 차이는 확실히 크다.
게다가 이전에는 천마의 검법을 따라했을 뿐이었다.
이해가 조금씩 되기 시작한 지금에 와서 두 개의 팔을 전부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이전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아마 훨씬 났지 않을까?
“다만 그 샘이 있는 곳에 바로는 못가.”
“왜? 멀리 떨어져 있어?”
“그런 이유도 있긴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도 더 큰 이유가 있어.”
그 이유는 그곳이 최강의 3종족이 눈에 불을 키고 주시하고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즉 슨.
“샘이 위치해 있는 장소는 파편이 숨겨져 있는 탑 내부야.”
통칭, 아귀의 탑.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포식자가 있는 탑인데 이강호가 기억하기로 장소의 공략은 현재를 기점으로 본다면 10년 뒤에나 이루어진다.
몬스터들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견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공략에 성공하는 종족은 천족.
그 말을 들은 유세현은 일단 싹 잊고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최강의 3종족은 현재로서는 대적이 불가능하다.
아니, 인간보다 약한, 완벽하게 대적이 가능한 종족이 있기나 할까?
“세현아 너 아공간 포켓은 없지?”
“응.”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나한테 맡겨.”
“어야.”
유세현이 구슬을 건네자 때마침 두 사람이 돌아왔다.
* * *
이강호가 인원들은 쭉 둘러봤다.
사람들은 무인들을 포함해 상당히 많이 줄어있었다.
트루크를 죽이는데 예상보다 더 시간이 지체되었기에 발생한 일이었지만 애초에 죽을 뻔한 것을 고려한자면 결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내부에 들어왔고 이제는 날갯짓을 해 나비효과를 일으키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무림맹의 맹주, 강태령을 포함한 여타 인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이제부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일단은 나막산 방어지점에 있던 인원들과 합류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근처로 떨어졌다시피 마찬가지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떨어졌을 겁니다.”
이건 무조건이었다.
처음에는 절대로 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
따로 논다는 것은 곧 죽음이었기에.
물론, 개인전이 되는 마당에 던전을 찾아 개인적으로 활동하면 되지 왜 굳이 남까지 챙기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그건 1차원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는 바보나 하는 생각이다.
동족이 강해져야 여타 종족들도 의식하여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고, 활동도 좀 더 쉽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뭐니 뭐니해도 가장 큰 이유.
사람들은 경쟁자라고해서 같은 사람을 공격하진 않는다.
아니, 최후의 최후가 되면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그 최후까지 가기 위해서는 그들이 필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 계속 같이 행동할 생각은 없었다.
생존방법과 성장할 수 있는 적절한 던전을 알려준 뒤 다시금 따로 행동할 생각이다.
‘그러니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강호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던 유세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잠시 마력의 흐름을 읽지 않고 있던 틈을 타 어마어마한 마력을 지닌 인원들 다수가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어지는 유세현의 다급한 보고.
“강호야!”
추정마력은 최소 S랭크.
숫자는 정확히 40명.
이강호가 혀를 찼다.
“정찰병인가.”
사람들은 잽싸게 암석에 달라붙어 몸을 숨겼다.
꽤나 많은 인원이지만 암석의 크기가 큰데다가 많았기에 무리는 없었다.
100m.
50m.
이제는 5m도 채 남지 않았다.
휘이잉-
스산한 모래바람이 스쳐지나간다.
꿀꺽-
사람들은 목 너머로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은 놈들이 이대로 지나가기를, 혹은 돌아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쉬익-
콰과과광!
거대한 폭음과 함께 작은 바람은 완전히 산산조각 무너져 내렸다.
터덕-
바위 위로 놈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놈들의 신장은 약 2m가량 되어 사람보다도 약간 키가 컸으며 팔, 다리라는 같은 신체 구성을 하고 있었다.
다만 같은 크게 차이가 나는 게 있다면, 육체의 표피가 돌 같은 재질로 되어있다는 것.
겉모습을 확인한 이강호는 이들이 누군지 단번에 파악했다.
회귀전 이 지역을 3분할 한 3개의 종족중 하나.
[스토르 벤]
놈들의 특징은 그 신체 구조상 물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탈수 증상은 없고, 체력을 뺏는 이 모래바람에 완전한 면역을 보인다.
그때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던 놈들이 뭐가 좋은지 낄낄 대며 웃기 시작했다.
이유는 곧 이어진 그들의 대화로 알 수 있었다.
“크크크크. 봐봐! 역시 처음 보는 얼굴 맞잖아!”
“흐흐흐, 진짜네?”
“대장님, 내부로 새로 들어온 종족 같은데 적당히 처리한 뒤 보고하죠. 양질의 아이템을 독식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맞습니다. 기껏 해봐야 A랭크 50~60% 몇 마리 있는 정도일 겁니다.”
사람들이 그 말에 몸을 한순간 움찔 거렸다.
A랭크 50~60%는 맹주급의 인원이나 지니고 있는 스텟이었다.
그런데 그런 스텟을 지니고 있는 인원을 얕볼 수가 있다니...
그들은 하나같이 생각했다.
정말 장난 아닌 세계라고.
게다가 전투를 끝낸 지도 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강호가 내뱉은 말을 떠올렸다.
‘단번에 끝내야 됩니다. 놈들은 우리를 과소평가 할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몇 명이 아니라 이강호, 유세현 그 외 적어도 20명 가량은 70%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움찔거리는 모습에서 확신을 느꼈는지 적장으로 보이는 이가 손을 들었다.
“좋아. 각각 300마리씩만 잡아라!!”
파앗-
놈들이 맹렬한 속도로 사람들의 틈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 * *
결판이 나는 건 정말로 순식간이었다.
새내기들로 판단한 놈들의 방심과 스텟을 초월한 움직임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무공.
그리고...
퍼벅-
놈들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돌덩어리가 검에 부서져 나간다.
“크으...이, 이건!”
정찰대의 대장, 체론쳄버는 연신 경악을 터트렸다.
무형의 힘이 육신을 짓눌러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이 힘만 없었어도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눌렀을 터인데.
체론쳄버는 이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과거, 일대를 휩쓸어버리며 공포를 각인하고 지나간 마족의 대장군.
스켈레톤 킹, 레오릭이 사용하던 스킬.
‘젠장...그런데 대체 어떻게...’
놈들이 이 스킬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설마 레오릭이 당했다는 건가?’
그럴 리는 절대로 없었다.
놈의 위세는 아직까지도 판도라 내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무쪼록 체론쳄버에게 더 이상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전투 발생 30초도 지나지 않아 40명의 전투원 중 벌써 30명이 당했다.
“퇴각해라! 이곳을 벗어나라!”
“크헉.”
이 와중에도 또 한 마리의 부하가 당했다. 체론쳄버는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뭐 이딴 종족이 있는 것이지?
완벽한 계산미스다. 너무 얕봤다.
체론쳄버가 자신만이라도 내빼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잽싸게 달라붙은 아퀼라가 손을 들이밀었다.
순식간에 머릿속을 휘어잡는 환각.
대악마에게 못 미쳐서 그렇지 서큐버스도 고위 마족이다.
체론쳄버가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크으!! 왜 마족이 이딴 종족에게 들러붙어 있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이 체론쳄버의 생애 마지막 말이었다.
퍼벅.
유세현의 검에 의해 부서진 그의 몸이 지면위로 쏟아져 내렸다.
* * *
“후우...”
전투를 끝마친 인원들은 제자리에 털썩 드러누웠다. 짧은 시간이었다고 하나 고작 40명을 상대하는데 수천 명이 쉴 틈 없이 움직였다.
그럼에도 엄청 힘들었고, 기껏 회복한 마력 전부를 소진했다.
이강호가 곧바로 말했다.
“당장 떠나야 됩니다.”
위세 등등했다고는 하나 놈들도 이 내부세계에서는 그렇게 강하지 않은 종족이었다.
파편 경쟁과는 무관하게 밀집생활을 하고 있기에 곧바로 추격대가 붙으리라.
그와 중 S랭크를 넘는 SS랭크 인원이 파견된다면?
장담한다.
단 1명.
1명만 와도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일 수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지나치기를 바랐던 것인데.
“크으으...빨리 갑시다!”
방향은 마력을 읽을 수 있는 유세현이 정했다.
그들은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했다.
그렇게 몇 시간.
인원들은 마침내 조우할 수 있었다.
엄청난 시체 속에 쌓여있는 황제의 군대와 길드세력을...
* * *
“끄으으윽.”
“제, 제기랄...”
그들에게는 다른 종족의 정찰병이 들이 닥친 모양이었다.
당연히 대처가 불가능했고 피해는 5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쳐들어온 인원은 유세현을 덮친 정찰병의 절반인 고작 20명에 불과했었다.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네...도망치는 것밖에...”
황제가 울분을 토해냈다.
그래, 당혹스러울 것이다. 아니, 사실 황제가 살아남은 건 기적이었다.
이게 바로 판도라 내부, 인간세력의 현 위치.
“크윽...페레...어떻게...어떻게 지금까지 버텨왔는데 여기서...”
사람들은 함께해온 동료의 죽음에 슬픔을 부르짖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단순한 개죽음이었기에.
그나마 정말 다행인건 그들에게 회귀자 이강호가 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황제가 똑같이 질문했다.
이강호는 말을 지어냈다.
“외부에 있을 때 내부에 대해 얻은 정보가 몇 개 있습니다.”
그 누구도 출처에 대해 묻는 이는 없었다.
지금의 그들에게는 이강호가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지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에.
“그중에 이 지역에 대한 정보도 있었는가?”
“예, 아마도 우리는 이곳으로 이동될 예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당히 그럴싸한 말.
“제가 얻은 정보로 보건데 이 지역에는 상당히 많은 던전이 잠들어있습니다.”
“오...그럼...”
“적을 피해 그걸 찾아내 힘을 키우도록 하죠.”
“후우...그러도록 하세.”
황제가 순수히 동의를 표했다.
자존심이 높은 무림인들 또한 적을 경험한 만큼 재차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알려왔다.
이강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무려 5천명의 피해가 났다고 하지만 이건 과거보다도 훨씬 나은 출발이었다.
그거 아는가?
과거에는 내부에 도착하자마자 무려 10만 명이 죽었다는 것을.
그것도 이강호가 있던 부대 한곳에서만 말이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얼마큼의 피해가 났을까?
아무도 모른다.
약간씩 보충되는 인원들과 만나며 그들은 정말 간신히 간신히 나아갔으니까.
< 내부(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