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304화 (304/612)

< 내부(1) >

놈의 포효와 함께 다시 재생이 시작된다.

징그러울 정도의, 바퀴벌레 그 이상의 생존력이었다.

이강호가 곧바로 머리를 노렸다.

허나, 실패.

유효한 것은 심장을 노린 유세현의 공격이었다.

“캬아악! 이, 이놈이!!”

엄청난 속도로 대응하는 트루크.

유세현의 몸이 또다시 기묘하게 움직였다.

푹-

찌르고.

후웅-

피하고.

푹-

또 찌르고.

후웅-

또 피한다.

연합군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들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체력이 거의 한계에 달했을 텐데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트루크를 상대로.

“컥...커거걱...”

충격이 있었는지 트루크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하아아아압!”

유세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놈의 목을 노렸다.

이제는 이것만이 놈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고통에 잔뜩 표정을 구기고 있던 트루크가 씨익 웃더니 유세현의 팔을 덥석 낚아챘다.

“아...”

유세현의 표정이 굳는다.

“허억 허억...크흐흐! 걸렸구나! 정말로 끝이다! 죽어라!”

도끼눈이 된 트루크가 치켜세운 도끼가 비친다. 이건 이강호도 도와 줄 수 없었다.

“세현씨!”

“선배님!”

등 뒤에서 울리는 두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놈의 팔이 떨어진다.

후웅-

도끼가 목에 닿기 직전이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하듯 놈의 몸이 뚝 멈췄다.

아무런 방해도 없었기에 유세현도, 이강호도, 연합군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트득-

기묘한 소리와 함께 잔뜩 혈안이 된 트루크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린다.

트드득-

유세현은 그것이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곧 알 수 있었다.

트루크의 팔!

회색빛으로 물든 놈의 팔은 석고상처럼 뻣뻣하게 굳어 작은 균열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회색빛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놈의 육신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크으으! 이...이게 무슨!!”

당황을 금치 못하는 트루크!

이강호는 이를 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이것이야 말로 놈이 섭취한 비약의 부작용이라는 것을.

그리고 드래곤이 무슨 생각으로 트루크를 도왔는지.

‘애초부터 공멸시킬 생각이었군.’

“트, 트루크님을 지켜라!”

연합군이 몰려온다.

유세현이 팔을 힘껏 당기자, 손을 붙잡고 있던 트루크의 팔은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크으! 어째서!! 어째서!!!”

트루크는 빠르게 굳어가는 몸을 보며 괴성을 질렀다. 스스로의 죽음을 인지한 놈은 더 이상 유세현에게 신경 쓰지 못했다.

그저 혼잣말을 반복할 뿐이다.

“내가 못 버틸 부작용 따위는...”

“허억...허억...너는 드래곤에게 멋지게 속은 거다. 이 미련한 트롤아.”

이강호의 말과 함께 유세현이 힘차게 팔을 내질렀다.

어느새 가슴까지 석화가 이루어진 트루크가 고개를 내리 저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이 몸은 왕이다! 판도라의 정점의 설 위대한...”

퍽-

생명체를 자르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를 깨부수는 둔탁한 음색이 울려 퍼졌다.

그들의 눈앞에 더 이상 트롤의 왕은 없었다.

오직 산산조각 난 초라한 석상이 만이 존재할 뿐이다.

파앗!

대량의 코인이 뿜어져 나온다.

동시에 눈앞으로 그토록 원하던 알림창이 나타난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파편을 지니고 있는 인원 모두가 수락할 시 종족 및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일부 인물들이 내부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유세현은 되는 대로 코인을 흡수했다. 이강호에게 주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잽싸게 수락하려는 유세현의 눈에 기묘하게 생긴 구슬이 비쳤다.

‘저건...’

본능적으로 빠르게 낚아챈 유세현이 마음속으로 외쳤다.

‘수락한다!’

파앗-

그 순간 적이 던진 창이 유세현의 머리가 있는 장소를 통과했다.

광명이 터져 나오며 6개의 깃털이 머리위로 떠오른다.

전투의 끝을 알리는, 현 상황을 이겨냈음을 알리는 현상이었다.

“뭐, 뭐냐!”

놈들은 유세현이 그랬던 것처럼 당황해했다.

유세현이 위치한 장소에 손을 휘젓기도 하고 스킬을 날리기도 했지만 당연히 통할 리가 없었다.

인간측 세력 또한 처음 겪는 현상에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이건? 설마?”

사람들의 눈빛에 서서히 이채가 띠기 시작했다.

“해, 해낸 건가!”

“그, 그런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상황이 발생할 리가 없어!”

[내부 진입이 시작됩니다.]

이윽고 알림창을 본 사람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크윽...어떻게 이런 일이...”

엇갈리는 희비.

그 속에서 이동되는 막간의 틈을 타 이강호가 놈들을 향해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전부 드래곤 때문이다.”

비약으로 인해 육체가 변형된 근위병 한 명이 그 말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크으으...벌레 같은 놈!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는 구나! 내, 오늘 일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네놈들이 어디에 있던 반드시 찾아내 씹어 먹어줄 것이다! 반드시, 반드시이이이!!”

이에 이강호가 피식 웃었다.

“미안하지만 네놈은 불가능할 것 같군.”

놈의 인상이 더욱 일그러진다.

놈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뗀 순간이었다.

“넌 여기서 죽을 테니까...”

말과 동시에 놈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실로 기적 같은 타이밍이었다.

“크으윽...이게 무슨...”

“부작용이다.”

“뭐, 뭐라고? 부작용?”

“그래, 네놈들의 왕도 죽음에 이르게 한 부작용이지. 그런데 이것을 네가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근위병의 몸은 느리지만 트루크와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트롤, 아라크네, 오우거 기타 등등의 인원들의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킨다.

“이제 알겠나? 너희와 목숨을 걸고 싸운 건 우리지만, 너희를 죽인 건 우리가 아닌 드래곤이다.”

“......”

“그래 맞아. 너희는 이용당한 거다. 우리를 죽이기 위한 장기 말로.”

스스스-

연합군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 감은 눈꺼풀이 떠졌을 때는...

“크윽...젠장...”

주위에 그들 말고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 * *

후우우욱-

마찬가지로 눈을 깜빡인 유세현의 눈에도 새로운 풍경이 비쳤다.

이곳저곳에 직육면체의 바위가 솟아나 있는 지형.

그는 비로소 판도라 내부로 이동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옆에는 이강호가 있었고 뒤쪽으로는 김주희와 루시아가 있었지만 유세현은 긴장이 끈을 놓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외부의 적보다도 내부의 적이 훨씬 강하기 때문.

행여나 재수 없게 지나가던 고랭크의 적에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줄초상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빛과 같은 속도로 주위 마력을 탐색해나가는 유세현.

이강호 또한 바위에 몸을 숨기고 얼굴만 빼꼼 내밀어 주위를 살피는 식으로 전체적인 지형지물을 살폈다.

“이곳은...”

중얼거린 이강호가 한순간 말을 멈췄다.

루시아 때문이었다.

“김주희, 같이 침투한 인원들도 분명 이 근처에 떨어졌을 거야. 천천히 해도 되니까 전부 모아서 이곳으로 데려와줘. 난 그사이 세현이와 같이 이곳을 파악하고 있을 테니.”

“알겠어요 선배.”

“루시아씨도 같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알았어요.”

슈슉-

두 여인은 솟아난 암석을 은폐물로 사용하며 흡사 닌자와도 같은 날렵한 몸놀림을 선보이며 두 사람 앞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유세현이 물었다.

“아는 장소냐?”

“응.”

내부 세계만 무려 10년.

워낙 기괴한 장소인지라 그가 파악하지 못한 장소도 많았지만, 아는 곳도 무척이나 많았다.

“응 예전에는 3개의 종족이 분할해서 점령하고 있던 지역이야. 체력을 앗아가는 특이한 모래바람이 부는 게 큰 특징인 곳이지.”

그리고 던전이 많이 잠들어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흐음...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당연히 던전을 돌 생각이야. 지금 이 스텟으로는 안심하고 뭘 할 수가 없어.”

그렇다.

굳이 이번일 때문이 아니라도, 스텟은 힘의 척도를 판단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었다.

“최소 S랭크 중간까지는 올려야 돼.”

유세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는지 툭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너 그놈들에게 일부러 그런 말을 한거지?”

“무슨 말?”

“드래곤에 대한 거 말이야.”

“아...”

이강호가 피식 웃었다.

“뭐, 놈들이 내부로 들어오는 건 꽤 이후의 일이겠지만...”

인간의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드래곤에 대한 적대감을 늘리는 건 좋은 일이다.

혹시 아는가?

추후 놈들이 대형 사고를 칠지.

‘뭐,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겠지만...’

표식을 남긴 두 사람은 이윽고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은 행여 모를 트랩에 주의하며 주위를 쭉 탐색해 나갔는데, 이내 완전하게 파악했는지 이강호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돌아가자. 어딘지 알 거 같아.”

“오케이.”

그들이 되돌아 왔을 때 김주희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은 암석에 등을 기대고 휴식을 취했다.

격렬한 전투로 인하여 졸음이 쏟아졌지만 유세현은 전리품부터 우선적으로 살폈다.

전투에만 집중한 만큼, 챙긴 전리품은 총 두 개였다.

하나는 트루크의 포켓.

또 하나는 트루크의 시체 근처에서 발견한 구슬.

트루크는 왕이었기에 당연히 먼저 관심이 가는 것은 포켓쪽이었다.

마치 배낭가방에서 옷가지를 쏟아내듯 포켓을 털자, 이강호가 옆에서 함께 이를 지켜봤다.

유니크 B랭크 사슬 장갑과 갑주.

쓸만한 게 산더미다.

그와 중 발견한 연합군의 계약서.

정보를 읽고 별다른 것이 없다는 걸 확인한 유세현은 거침없이 찢어버린 뒤 마지막으로 구슬을 살폈다.

유세현은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드래곤이 트루크에게 넘긴 비약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응?”

정보 공유를 하고 있는 이강호의 눈썹이 한순간 꿈틀거렸다.

아이템 명: 사혼의 구슬

등급: 유니크 [SSS Rank]

상세정보: 근처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복제하여 담는 구슬입니다.

구슬을 파괴함으로서 혼이 생전 지니고 있었던 능력을 1회 발휘할 수 있습니다.

트루크의 혼이 담겨져 있습니다.

영혼이 특수한 약물에 의해 일그러져 능력발휘가 불가능합니다.

영혼을 바꾸는 것이 가능합니다.

부순 구슬은 다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용효과: 혼의 능력 발동.

“이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유세현이 얻었던 영혼의 귀걸이와 흡사한 능력을 지닌 아이템이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건 1회성 아이템이라는 것.

묘한 위화감이 유세현의 귓가를 자극한다.

영혼의 귀걸이의 등급은 분명 유니크 B랭크였다.

그런데 이 아이템은 웬만한 레전더리 등급보다도 뛰어나다는, 이강호가 지니고 있는 이프리트의 창과도 같은 유니크 SSS랭크였다.

근데 효과가 영혼의 귀걸이에도 미치지 못하다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유세현은 정보를 상세히 살펴나갔다.

특정 단어를 확인한 그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아’다르고 ‘어’다른 게 한국어다.

정보창에 명시되어있는 글귀는 ‘스킬’이 아닌 ‘능력’이었다.

이 뜻은...

“강호야. 설마 이거...”

“응...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 이건 고유특성이라도 1회 한정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이 틀림없어.”

두근-

심장의 박동수가 빨라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유세현은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트루크의 영혼이 망가진 덕분에 발동시킬 수가 없다.

이건 눈앞에 떡이 있는데 못 먹는 것과도 같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보지 않았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건완전 희망고문이다.

“으~! 젠장...차라리 줍지나 말걸...”

그때였다.

심각한 표정으로 상념에 잠겨있던 이강호가 천천히 말했다.

“아니...그 혼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

< 내부(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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