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부의 끝(3) >
트득-
트드드득-
녹아버린 대지와 공간을 왜곡 하듯 피어오르고 있는 아지랑이.
그 장소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녹여버릴 법한 강렬한 열기가 넘실거리고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최악의 조건을 모두 이겨내고 장소에 서있는 한 인물.
“후욱...후욱...후욱...”
어마어마한 속도로 몸이 복구되고 있는 트루크를 확인한 이강호의 두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거친 호흡을 이어나가던 트루크가 중얼거렸다.
“크으으으...정말 장난 아닌 화력이군.”
이강호는 이에 다분히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날린 일격은 남은 마력 모든 걸 쥐어짜낸 회심의 일격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계산 한 만큼, 이 일격은 반드시 성공해야 되었던 것이었다.
허나, 트루크가 지니고 있던 수많은 고위 스크롤의 발동과 부하들의 방해.
아니, 사실 이런 것은 그냥 부과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강호는 사실 실패하지 않았다.
적에게 둘러싸인 그 장난 아닌, 말도 안 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완벽한 타이밍을 잡아내 공격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강호가 스킬을 발동하기 직전 트루크가 섭취한 붉은 색과는 다른 푸른색 비약, 그것이 문제로 작용했다.
안 그래도 한 층 빠른 속도가 더욱 빠르게 증가되었고 아슬아슬하게 위력이 최대로 발휘되는 범위를 벗어난 것!
물론, 그럼에도 방어결계와 보호막 등 모든 것을 부수고 치명타를 입히는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놈의 장기능력인 재생력 또한 더욱 강해졌다는 것이었다.
쉬이익-
고작 수 초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트루크의 육신은 거의 다 복구된 상태였다.
저걸 과연 재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드래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놈들을 돕는 것이지?
‘아니...그런 게 아닌가.’
드래곤은 판단한 것이다.
저 엄청난 재생력을 지니고 있는 트롤보다도, 연합군보다도 잠재적으로 봤을 때 인간이 더 위협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실제로도 인간은 그 잡초 같은 질긴 생명력을 보이며 꾸역꾸역 치고 올라간다.
물론, 마지막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이강호가 창을 다잡았다.
그가 지니고 있는 고유특성 화(火)속성 강화는 스텟의 우위를 부숴주는, 그를 최후의 영웅에 다다르게 해준 능력이다.
게다가 그는 과거와 다르게 태양신공이라는 절세의 무공도 지니고 있는 상황.
‘못 이길 건 없다.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진원진기를 활용한다면...’
그는 최대한 희망을 가져보려 생각했지만, 아무리 봐도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풍격살.”
트루크의 도끼가 허공을 가르자, 바람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이강호를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밀려들어오는 트루크의 부하들.
너무 많다.
놈들에게 맞서 항상 극한으로 움직였기에 체력이 떨어져 움직임도 둔해진 상태인지라, 이강호는 대처하는 데만 해도 온 신경을 쏟아야 되었다.
또한.
콰아앙!
트루크의 일격을 정면에서 받은 이강호의 몸이 한순간 허공에 붕 떴다.
황급히 보법을 운용하여 추가적인 공격은 간신히 어찌어찌 회피했지만...
‘젠장...이래서는...’
이강호의 눈가에 암운이 드리운다.
현재 그가 판단하기에 증가한 트루크의 힘 스텟은 적어도 외부에서는 절대 다다를 수 없는 영역, S랭크의 초반부였다.
이제는 1:1로 맞붙는 것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적이 많아서야 틈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
아니, 그걸 떠나 협공에 버틸 수나 있을까?
‘젠장...어떻게 이곳까지 다다랐는데...’
과거와는 달리 진행상황도 이전보다 훨씬 빨라 가지고 온 정보를 바탕으로 내부에서도 약간이나마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는데.
여기서 꼼짝없이 당하게 생겼다.
드래곤의 계략에 당해.
‘아니, 미처 파악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다.’
스스로의 힘을 너무 자만했다.
최강이라고 한들, 판도라 외부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일 뿐인데.
‘드래곤...’
이강호가 이를 으득 간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접근한 트루크가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쫙 찢어진 입가와 비릿하게 올라간 눈꼬리.
놈은 그 어떤 때보다도 짙은 광소를 짓고 있었다.
“크흐흐흐! 여기까지구나 인간!
쉬이익-
날카롭게 벼려진 도끼가 번뜩인다. 동시에 전후좌우, 그리고 공중으로까지 파고드는 병사들.
“이런!”
“강호공을 도와라!”약간 떨어진 장소에 있던 무인들이 뒤늦게나마 가세하기 위해 방향을 틀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이강호는 그 와중에도 틈을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곧 깨달았다.
어떻게 반응해도 어떤 신체 부위를 잃느냐의 차이일 뿐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 상황에서 신체의 일부를 잃는다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죽음은 패배를 의미한다.
‘젠장, 여기까지라니...’
상황을 인지한 이강호의 시선이 0.001초, 아주 한 순간 저편으로 향했다.
동료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튜토리얼부터 함께 한 유세현과 김주희.
자신이 사랑한 여자, 남궁시영.
그 외 레피아, 이벨린 등등.
모두 자신을 믿고 따라와 주었는데 결과를 내지 못했다.
졌다.
끝났다.
이강호가 창을 내질렀다.
소용없는 행동이었지만, 이는 마음만큼은 꺾기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크크크! 그래봤자다!”
그리고 그 순간.
쉬이이익-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 마냥 일대를 감싸고 있던 뜨거운 공기가 이동을 뚝 멈췄다.
그건 정말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콰아아앙!
후우우우우웅-
이강호를 중심축으로 하여 강풍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적들을 뒤흔든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모종의 존재를 확인한 트루크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이놈은!!’
유세현은 바닥에 딱 밀착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곧바로 날아오는 검격!
올려치기로부터 시작하여 검법이 이어지자 대응한 트루크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놈은 분명 한손이었다.
자신도 똑같이 한손이긴 하지만 스텟의 수치가 수치이니만큼 놈이 압도적 밀려야 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전혀 밀려나지 않는다.
‘설마 놈의 힘이 내 힘과 동급이라는 건가?’
그러고 보니 속도도 예사 속도가 아니다.
유세현의 등장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강호의 눈동자도 화등잔만하게 변했다.
“유세현...너...어떻게...”
유세현이 말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미 마음이 통하는 그들이었기에 굳이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훙훙훙훙훙!
순식간에 자세를 다잡은 이강호의 창이 풍차같이 빠르게 회전한다.
“크윽! 죽여라!”
기회를 놓친 적이 만회하기위해 재차 달려들었다.
허나.
스스슥-
그들의 공격은 이강호에게 닿을듯하면서도 닿지 못했다.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치던 이강호가 원심력을 이용해 그대로 창을 휘두르자 달려든 근위병 3마리의 목에 기다란 혈선이 남았다.
취이익-
푸슛!
이윽고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피.
“크으으윽.”
“커어억.”
완벽하게 목이 잘려나가진 않았지만 전장에서 이탈해야 될 정도의 치명상이었다.
이강호의 시선이 재차 유세현에게 향한다.
그는 기묘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트루크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크으...뭔 놈의 움직임이...”
여태까지 그가 알고 있던 유세현의 공격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전투스타일.
‘저건...’
이강호는 알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막되 먹은 듯해 보이지만 동작 하나하나에 깊은 묘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천마의 검법인가?’
타다닥-
이강호는 곧바로 발을 놀려 트루크가 있는 장소를 향해 돌진했다.
2대1.
아니, 2대 다수로 유세현 한 명만 추가 된 것이었지만 도무지 질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유세현이 휘두른 검이 아슬아슬하게 트루크의 목을 스쳐지나간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은 트루크가 분통을 터트렸다.
“어떻게 그딴 육체로!!”
쉬익-
트루크가 유세현의 목을 향해 한쪽 팔을 쭉 뻗었다.
한쪽 팔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유세현이 방어를 위해 손을 움직이면 도끼로 베어버릴 심산인 것.
단순한 방법이지만 외팔에게는 꽤나 위협적인 공격수단이었다.
왜냐하면 상대의 의중을 알고 있다고 한들, 이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어설프게 조취를 취하다가 잘못하여 빠져나가지 못하면 그대로 목뼈가 부서져 절명할 수 있기 때문.
그렇기에 이전의 유세현이었다면 안전을 위하여 100% 몸을 내뺏었을 테지만, 지금의 그는 피하지 않고 더욱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트루크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치켜 올라갔다.
그의 입장에서는 전부 예상 범위 내에 있던,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충분히 치명상으로 연계할 수 있는 있는 동작이었기에.
그리고 그는 자신이 실패할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타닥-
마찬가지로 생각을 읽은 유세현이 몸을 살짝 비틀며 지면을 살짝 박차자 그의 몸이 빙그르르 회전했다.
스르륵 아슬아슬하게 빗겨가는 트루크의 도끼.
트루크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아니 상상하지도 못하고 있던 파훼법이었다.
‘이럴 수가! 이런 방법이 존재하다니!’
그와 동시에 트루크의 망막에 유세현의 발바닥이 맺혔다.
뻐억!
그 발차기는 물리저항력이 낮은 인원이 맞았다면, 그대로 목이 끊어져 날아갔을 정도의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것이었다.
물론, 트루크는 고개가 젖혀지는 정도로 끝났지만...
“크으으!! 미천한 인간따위가아아아!!”
그것으로 유지되고 있던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긴 트루크는 발광하기 시작했다.
허나.
후웅!
트루크는 유세현의 뒤에서 곧이어 튀어나온 이강호의 창을 보기 무섭게 다시 그 끈을 다잡아야 했다.
“허억...허억...허억...”
만약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목이 떨어져나갔을 것이다.
챙!
채재재쟁!
이강호와 유세현은 기세를 몰아 엄청난 맹공을 펼쳤다.
두 사람은 한 몸을 둘로 나눈 분신마냥 완벽하게 상호보완 작용을 이루었다.
말로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시너지!
덕분에 주위로 적 몇 마리가 몰려들어도 소용이 없을 정도였는데, 재생력을 확인한 유세현이 이강호에게 눈치를 주자, 이강호가 재빨리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보는 대로 재생력이 장난이 아니야. 장기가 있는 주요 신체를 조각내던가, 아니면 목을 잘라야 돼. 그 이하로는 지금의 놈에게는 소용이 없는 것 같아.”
“오케이.”
퍼억.
또다시 몸통을 제대로 가격 당한 트루크의 육체가 10m가량 쭉 밀려났다.
그의 분노를 빗대듯 이마에 불룩 돋아난 수십 개의 힘줄이 꿈틀거린다.
“이 쓸모없는 놈들아! 한 놈...한 놈만 막아보란 말이다!”
트루크가 고함을 지르며 팔을 내리 긋자 손톱모양의 자국이 상공에 남았다.
극상의 날카로움을 자랑하는, 트루크의 비전스킬 중 하나였지만 아쉽게도 페이스를 되찾은 유세현과 이강호에게 닿을 수는 없었다.
촤자작-
신체가 무자비하게 난자된다.
그러자 몸을 다시 내뺀 트루크가 실성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크흐흐흐...크하하하하!”
“......”
“그래...그래...그렇군...이 상태로도 이길 수 없는 거군...”
“......”
“드래곤이 왜 내게 그런 제안을 한 것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쓱-
포켓을 뒤적거리던 트루크가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건 붉은색도, 푸른색도 아닌 새까맣기 그지없는 색을 지닌 구슬이었다.
달라붙은 적을 베어 넘긴 유세현과 이강호의 눈썹이 동시에 씰룩였다.
모종의 불안감을 느낀 것.
절대 먹게 해서는 안 될 느낌이다.
파앗.
둘은 순식간에 다시 치고 들어갔다.
허나.
카득-
카드득-
이미 비약은 트루크의 입안에서 부서진 상태였다.
그가 중얼거렸다.
“네놈들은...오늘 여기서 죽는다.”
동시에 트루크의 2차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 외부의 끝(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