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봉(3) >
“......이렇게 된 거야.”
유세현은 에반의 사망소식과 더불어 남쪽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강호에게 털어놨다.
그의 이야기는 당연히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기에 말을 끝마쳤을 때쯤에는 훈훈하던 분위기는 무척이나 다운되어있었다.
그 강한 에반이 당하다니?
그것도 퇴로가 열려있었는데.
“......”
표정이 굳은 이강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세현은 현재 이강호의 심정이 어떨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에반.
회귀 전 이강호와 마지막까지 함께한, 이강호를 믿고 스스로를 희생해 과거로 보내준 인물.
유대감이 돈독한 만큼 분명 착잡하고 심란할 터다.
“후...”
하늘을 항해 고개를 든 이강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일까?
이강호는 과거를 바꾸는 것이 항상 좋은 쪽으로만 작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그렇게 많이 준비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터졌고 결국 이런 일이 발생했다.
머릿속에서 과거 동료가 했던 말이 재생된다.
[과거를 건드린다는 건 미래를 건드리는 일. 그러니까 지금처럼 이곳에 다다르지 못하는 인원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거야. 그러니 강호야...우리가 죽어도 행여나 죄책감은 갖지 마라. 앞으로 계속 나아가.]
그 동료의 이름은 우습게도 에반이었다.
‘내가 널 잊지 않으마.’
과거 그랬던 것처럼, 동료의 이름을 마음속에 묻은 이강호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따라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유세현이 격려하듯 그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괜찮냐.”
“......”
이강호가 쓰디쓴 미소를 머금었다.
* * *
인원들은 이동을 계속했다.
목적지는 죽음의 강 너머, 아르카드 제국 본대가 주둔하고 있는 오래 된 고성.
적진에 잠입 한 이강호 또한 유세현처럼 계약에 대한 것을 알아냈는데 이로 하여금 작전을 펼쳐 연합군을 아예 와해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에 이강호의 등에 업혀있던 유세현이 물었다.
“야 강호야, 너 혹시 연합군 놈들이 신물조각 몇 개 가지고 있는지도 알아냈냐?”
혹시라도 2개 가지고 있는 놈이 있으면 그놈을 처리하여 내부로 진입 하는 편이 놈들은 와해시키는 것보다도 좀 더 효율적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충은.”
“몇 갠데?”
“3개.”
“호오...꽤 많네.”
이후 유세현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에 돌아온 이강호의 답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야. 왜냐하면 3개 중 2개를 그놈이 지니고 있거든.”
“...트롤의 왕, 트루크.”
“응. 바로 그놈.”
유세현은 입맛을 쩝 다셨다. 뭣하나 쉬운 게 없다.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건가.’
알베타스도 본인이 5개를 전부 지니고 있었다.
지금쯤 녀석은 막대한 병력을 이끌고 판도라 내부를 쏘다니고 있겠지.
알베타스를 떠올리자 여동생의 일과 긴박한 상황 때문에 잊고 있던 것이 의문이 수면 밖으로 떠올랐다.
사실 이강호를 만나면 이것에 대해 제일 먼저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이강호가 먼저 선수를 쳐왔다.
“야 세현아 몸은 좀 어떠냐.”
“몸? 음...”
유세현은 몸 상태를 체크했다.
죽을 고비로부터 어느새 3일.
겉모습은 잘려나간 왼쪽 팔 하부를 제외하고는 전부 말끔하게 돌아와 있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말 겉모습뿐이고 폭주한 마력으로 인해 망가진 내부가 회복되지 않아 그들과 나란히 달릴 수 없을 정도로 아직까지도 좋지 못했다.
완전회복하려면 적어도 2주는 걸릴것 같은 느낌.
상태를 말해준 유세현의 왼쪽 귀에 갑자기 가려움증이 밀려 들어왔다.
유세현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왼쪽 팔을 들었다.
찌릿-
손가락을 움직여 긁는 생각을 하니 바늘로 피부를 찌른 느낌이 신경을 강타한다.
유세현은 씁쓸한 표정이 되어 잘려나간 왼팔을 바라봤다.
감각만 보자면 아직도 팔꿈치 밑에 팔목이 달려있고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허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괜찮다고 인원들에게 엄포를 놓은 자신.
‘젠장...’
허나,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무척 심란하다.
장애인이 되었다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에 제일 중요한 그것, 전투.
왼팔이 잘림으로서 힘을 더 많이 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균형을 잡기가 힘들다.’
덕분에 모든 행동에 일그러짐이 발생했고, 이는 마족화가 풀린 이후 전투에 큰 지장을 주었다.
드래곤 같은 종족이 존재하는 이상 향후 전투는 더 격렬해지면 격렬해졌지 나아지지는 않을 터인데.
오른손을 이용해 귀를 긁은 유세현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노력하고 노력해서 어떻게든 적응해야 된다.’
발목을 붙들지 않도록. 짐이 되지 않도록.
다짐한 유세현이 비로소 이전 하려했던 질문을 던졌다.
내용을 들은 이강호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허나.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1천개에 달하니, 뿌리가 사라지자 줄기는 뿌리가 되고자 한다.”
알베타스가 읊조린 것과 똑같은 문구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허나 이강호는 알베타스와 달리 도중에 끊지 않았다.
“하지만 줄기는 천개요. 뿌리는 하나이니. 줄기가 서로 뿌리가 되기 위해 얽히고설키니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이파리들만 거칠게 요동치며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
그 글귀의 내용은 이전 알베타스가 말했던 것처럼 무척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뿌리가 되고 싶은 줄기는 서로 치고 박고 싸우나 힘이 똑같아 애꿎은 이파리들만 피해를 입을 뿐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줄기들은 뿌리가 되는 방식을 바꾸기로 정한다.
줄기끼리 직접적으로 전투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자신이 관장하고 있는 이파리를 전송시켜 승부를 보는 것으로.
일종의 대리 플레이인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승리하는 이파리는 줄기가 이용한 수많은 이파리 중에서도 단 하나뿐이었다.
뿌리를 절대신, 줄기를 신, 이파리를 대리자로 생각하니 이해가 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유세현이 실소를 터트렸다.
“하...”
그는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 하는 신이라니.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된 것이라니.
아무튼 간 승리자가 한 명이라는 알베타스의 말은 진실이었다.
이강호도 순순히 시인했다.
허나 그는 바로 이어서 ‘아무런 상관이 없다’라고 말했다.
승리자가 한 명이기에 다른 종족도 여러 팀으로 쪼개졌을 뿐더러 사실 적이 너무도 강해 인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죽지 않기 위해서는 무조건 뭉쳐야 된다는 거네.”
“그렇지.”
“하지만 그건 처음의 일이고 나중에는 분명 달라 질 텐데?”
그 말에 이강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끝까지...”
“응?”
“끝까지 그런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
내부에 있는 종족들이 얼마나 강한지, 혹은 얼마나 환경이 고달픈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기야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으니 모든 것을 걸고 회중시계를 얻어 회귀를 한 것이리라.
“미안하다. 네가 묻기 전에 말해줬어야 됐던 건데.”
“아냐 괜찮아. 그런데 김주희는? 이거 알아?”
“응.”
말을 들어보니 자신이 사라지고 알려준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는 이강호가 일부러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 하지 마.”
그가 이 정보를 알려준 이는 정말 김주희 뿐이었다.
신뢰관계를 적당히 쌓은 만큼, 이벨린이나 에반이나 다른 이들에게는 이것을 포함해 회귀사실 조차도 밝히지 않았다.
유세현은 이쯤에서 대화를 마치고 다시 마력 제어에 힘을 쏟았다.
* * *
2m가 넘는 큰 키와 거대한 체구, 살짝 굽은 등.
그리고 머리를 휘감고 있는 푸른갈기와 뿔룩 튀어나와있는 두 개의 거대한 아랫니.
트루크가 꿈틀거리던 남성의 허리를 살며시 즈려밟자 남성은 손을 싹싹 비비며 목숨을 구걸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뭐든 할 테니 제발...”
물론.
콰직-
그 행동이 트루크에게 통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그의 전적은 무패.
트루크와 대적한 인간의 군세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전장에서 살아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인간이 약하다기보다는 그와 대표들이 이끄는 주력 군세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악몽의 신전으로 진입한 인원들이 돌아오면 군사력은 더욱 증가.
트루크는 그때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허나.
쾅!
잔뜩 흥분한 트루크가 발로 힘껏 지면을 내리찍자 마치 폭탄이 터진 것 마냥 일대가 쩌렁쩌렁 하게 울렸다. 그런 그의 5m 앞에는 악몽의 신전에서 살아 돌아온 인원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다시 말해 봐라 뭐? 전멸?”
“...전멸은 아니고...”
퍼벅!
말이 끝날 새도 없이 이번에는 발길질이 이어졌다.
뚜두드득-
괴기스런 소리와 함께 허리가 꺾인 채 지면을 뒹구는 트롤.
제대로 일격을 선사받은 그는 이후 도무지 몸을 가누지 못했다.
“트루크, 자중해라. 자초지종을 듣는게 우선이다.”
“후...”
타 종족 대표의 말에 트루크가 그제야 심신을 달래며 분을 가라앉혔다.
이윽고 시작된 이야기.
듣고 있는 그들의 표정이 말해준다.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허나, 실제로 악몽의 신전에 들어가 대다수가 죽었다.
믿을 수는 없으나 믿어야 되는 것이다.
“시체를 부활 시킨다라...”
빠르게 이루어지는 대책 회의.
회의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끝이 났다.
지금까지 그들이 인간 세력을 완전하게 끝장내지 못한 이유는 죽음의 강을 건너지가 껄그롭기 때문이었다. 아니, 무리해서 건널 수는 있었으나 다리가 언제 내려갈지 몰랐기에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드래곤과의 계약으로 인해 무조건적으로 인간을 멸살 시켜야만 하는 상황.
새로이 등장한 4명에게 쫄 때가 아니다.
“어둠이 찾아오면 놈들의 본진으로 향한다.”
트루크가 시선을 돌려 눈앞에 생겨난 다리를 응시했다.
* * *
이강호가 허름한 성문 앞으로 다가서자, 그를 알아본 병사들은 화들짝 놀라 단박에 문을 열어 재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나가기 무섭게 거수경례를 하는 병사들.
그들은 유세현에 대한 신분조회 같은 것 따위는 하지 않았는데 새삼 이강호가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세현아 황제 좀 만나고 올 테니까. 쉬고 있어.”
“어야.”
별거 아닌 듯 말하는 이강호의 말에 대답해주자 그는 빠른 속도로 저편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김주희가 유세현의 옆으로 착 달라붙었다.
“선배님 이쪽이에요.”
“어, 그래.”
물론 팔짱 같은 건 끼지 않았다.
이전 같이 다닐 때도 그런 스킨쉽을 나눈 적은 없었기 때문.
이야기가 오간다.
대개 김주희가 질문하면 유세현이 답해주는 형식이었는데, 김주희는 헤어진 이후부터 이곳에 도착하기까지의 경위에 대해 주로 물었다.
그리고 그걸 묻는 꿍꿍이는 있었다.
“와~데오폴론의 왕에 이어서 마크까지! 역시 대단하세요. 선배!”
김주희가 방방 뛰었다.
유세현은 그 리액션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호들갑을 떨며 띄워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정말 뭣하나 변한 것이 없어보였으니까.
허나, 그렇게 느끼는 건 유세현 뿐.
유세현이 사라진 후 그녀를 지켜봐온 유혜인이나 이태광 등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생소한 광경이었다.
이태광이 추억을 회상하듯 중얼거렸다.
“그래...그러고 보니 구름섬 때는 저런 성격이었었지.”
그리고 결정적인 반응은 지나가던 병사들에게서 나왔다.
“야야야! 저 저기 저 웃고 있는 사람 얼음마녀님 아니야?”
“김주희씨? 그분이 웃기는 무슨...웃으면 정말 아름다우실 텐...헉?”
김주희의 밝은 미소를 본 병사들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그들은 믿기지 않는지 자신의 눈을 비볐다.
허나,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미소.
그들의 눈이 남자 쪽을 향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 상봉(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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